[김용희의 세상엿보기] 은퇴 후기 - 해방감과 소외감 -
[김용희의 세상엿보기] 은퇴 후기 - 해방감과 소외감 -
  • 김용희 시인·수필가
  • 승인 2021.09.13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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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희 시인·수필가
김용희 시인·수필가

사이버대에서 18년 7개월, 타대학 3년, 군 29개월, 합 24년의 사학법 적용이다. 성대 겸임 3년과 시간강사 제외 군기간 포함. 25년 이상은 국무총리상. 15년 이상은 교육부장관상. 상 주니 그냥 받았다.

교수로서의 직업 그건 어쩌면 행운이고 복이었다. 독립된 연구실에서 맘껏 연구할 수 있었으니. 그럼에도 그 과정 또한 힘든 하나의 숙제였다. 해서 이제 또 과제 끝내고 다시 자유로의 귀환?

은퇴가 첨이라 막막하고 막연했다. 과연 내가 18년의 패턴으로 굳어진 리듬을 깰 수 있을까? 은퇴 후 사회 혹은 소외감 적응할 수 있을까? 은퇴 먼저한 친구들이 그랬다. 은퇴 후도 재미있다고. 일 많이 했으니 쉬라고. 또 일 찾아보면 있다고. 너무 두려워하지 말라고. 이제 효용가치 감소로 사회로부터 강제 퇴출되는 느낌. 그 소외감이 사실 먹먹했다. 이 학교 18년, 이렇게 오래 선생할 것이라 생각못했는데, 이 직장에서 정년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못했는데.

학교도 학위 장사(?)하는 재단도 있다. 우리나라 사학 자체가 그럴 소지가 있다. 박근혜 후보시절 사학법 개정은 저지되었고 재단은 전권을 가지고 교직원의 인사와 급여 근무조건을 결정한다. 교과부 감사는 졸업장 수여의 공정성에 맞춰져 있지 교직원 처우의 공정성에 맞춰 있지는 않다.

우리는 사회적 활동을 위해서는 졸업장이 필수 요건이니. 학교재단은 학위에 대한 이런 사회적 혜택 위에 존재한다. 중졸 고졸 대졸. 그게 사실 “교육이란 좋은 것”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는 무조건적 신뢰를 바탕으로 형성되거든. 사실 완전 창의로운 이는 학교 그만두기도 한다.

서태지부터 테슬라 회장까지. 사회의 기존 룰을 따르지 않아야 오히려 창의력이 나오고, 어쩌면 루틴한 교육과정과 내용이 오히려 창의력을 굳게 한다. 우리사회 졸업장 학력 필수조건으로 하는 것 분명 문제 있고 그 사회적 묵시적 동의에 깃대어 운영되는 것이 학원재단이다. 따라서 대학이 정부로부터 금전적 지원을 받지 않았다 하더라도 대학은 국가에 빚을 진 것이다.

왜냐하면 학위라는 것을 줄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았기 때문에. 사설학원은 빚 없다. 학원수료증에는 사회적 공적 신뢰도를 부여하지 않는다. 우리사회의 형식적 권위주의는 그렇게 관습적으로 완성되어 있는 것이다. 사설이 길었지만 대학의 사회적 의미를 꼬집어 보기 위해서 전제로 필요한 것이기에.

자신이 하는 일의 의미를 모를 때가 가장 힘든단다. 그러나 선생이란 직업은 그렇지 않았다. 최소 개인적으로는. 교육의 의미, 인간존재의 가치, 그런 것에서 의미를 찾는 성향 때문에, 즉 돈보다도 가치 즉 소유보다는 존재 그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기에, 돈은 수단이고 목적은 인간 존엄과 같은 가치론적 문제에 천착했기에.

직장을 세 번씩 그만둔 경험은 있지만 은퇴는 또다른 느낌과 도전 실험으로 다가왔다. 막연한 두려움과 공허감. 사회로부터 퇴출당하는 소외감. 이렇게 내쳐지는구나. 익숙한 것으로부터 강제 격리 혹은 가졌던 귄리들, 즉 급여수급권, 교육권, 출근권, 식사권, 각종 사회적 혜택과 신뢰도 박탈. 그러나 쉼없는 긴장과 중압감 조직적 문화로부터 해방, 조직원들에 대한 실망감 혐오감, 그런 모든 권리 의무로부터 해방 혹은 박탈. 그래 맞다. 은퇴는 ‘해방감’과 ‘박탈감’ 두 가지로 요약되겠다.

그래도 무사히 18년 아니 24년을 해냈다. 그래서 스스로 수고했다, 축하할 일이냐 물으면 “축하할 일이다. 무사히 마치게 돼서”라고 나중 답했다. 처음에는 아쉬웠지만 차츰 해방감이 더 강했으니.

막연히 두려웠던 은퇴 벌써 9일차다. 특별한 소득이 없다. 과외수입도 없다. 그러나 또 무엇이든 해야겠다. 유튜브든 블로그든, ‘집과 땅의 인문학’이든. 뭐든 수급자가 아니라 공급자가 되기 위해. 그냥 허송세월 하기 싫고 그렇게는 자기만족이 안된다.

은퇴 극복법? 일 해야겠다. 무슨 일이든, 일이 나이고 내가 일이어야겠다. 존재의 의미는 사회적 기여에 있지 않을까. 공공근로이든 컨설팅이든. 단 욕심내거나 무리하지는 말고. 은퇴란 어쩌면 욕심으로부터의 은퇴가 가장 적합한 의미가 아닐까도 생각하면서. 은퇴하지 못하는 기업주들이 욕망의 노예됨도 바라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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