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충기 산청군농협 조합장 - 우리나라 최초의 통합 농협에서 3선에 성공하다
박충기 산청군농협 조합장 - 우리나라 최초의 통합 농협에서 3선에 성공하다
  • 경남미디어
  • 승인 2019.03.26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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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기 중 흑돼지 타운 조성 산청 흑돼지 명품 화 완성
조합원은 생산, 판매는 조합이 책임지는 시스템 구축
76년 산청농협 입사 40년간 직원, 8년간 조합장 역임
농산물마케팅 능력 갖춘 후배들의 조합장 도전 기다려

박충기(70) 산청농협 조합장은 이번 당선으로 3선 조합장이 됐다. 산청군 농협은 조합원 8600여명으로 경남에서 가장 큰 농협이다. 대형 농협이 된 이유는 산청군의 11개 조합이 하나로 통합됐기 때문이다. 1992년 11개로 나눠져 있는 조합이 대형화를 위해 한 개의 조합으로 통합됐다. 이런 큰 조합이기 때문에 선거도 치열하게 치러진다. 이번에도 두 번이나 조합장을 했던 후보, 산청군의회 의장을 했던 후보 등 쟁쟁한 사람들이 출마를 해 예측불허의 선거를 치렀다. 다행히 조합원들이 지난 임기의 성과를 평가해 줘 다시 당선을 시켜줬다.

산청군 조합은 통합 조합이기 때문에 사업의 규모가 크다. 따라서 경영수원이 필요한 조합이다. 그런 경영수완을 조합원들이 평가해 준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는 게 박 당선자의 말이다. 또 조합장으로 재직하면서 일관성 있고 잡음이 생기지 않은 것도 이번 당선에 큰 이유가 됐다는 게 박 당선자의 생각이다.

박 당선자는 이번 임기 중에 육가공센터와 농자재 센터를 완공하고 농산물 유통시스템을 혁신하게다고 공약했다. 육가공센터는 산청읍 고속도로 톨게이트 옆에 산청흑돼지 가공 판매센터를 만드는 것을 말한다. 이것이 완공되면 산청흑돼지는 여기서 전량 가공돼 판매될 예정이다. 생산농가들은 생산만 해 놓으면 판매는 조합이 하겠다는 것. 박 당선자는 이외에도 농산물 유통 시스템을 혁신해서 조합원이 생산만 해 놓으면 그 이후는 조합이 모든 것을 관리해 수입을 돌려주는 제도를 만들 계획이다. 이렇게 하면 현재 800억 원 정도의 농산물 판매액이 임기중에 1000억 원을 달성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이번 선거를 통해서도 확인이 됐지만 산청농협 정도의 규모에서는 이제 조합원이 생산한 농산물을 얼마나 잘 파느냐가 중요한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게 박 당선자의 생각이다. 과거에는 개별 농가에서 생산과 판매를 다 책임졌지만 이제는 생산은 농가에서 판매는 조합에서 해야 된다는 것. 그래서 박 조합장은 자신이 아니더라도 앞으로 조합장의 능력으로 농산물 판매능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조합장에 도전하는 후배들도 농산물 판매 능력을 길러야 한다는 것.

박충기 조합장은 1949년 산청 차황에서 태어났다. 비교적 부유한 아버지를 만나 고등학교를 부산으로 유학할 수 있었다. 부산의 영남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한 박 조합장은 그러나 어쩐지 도시보다는 농촌이 좋았다. 당시는 상업고등학교 졸업생에 대한 구인이 높은 시대여서 얼마든지 부산의 금융기관에 취직할 수 있었다. 그런 좋은 기회를 버리고 박 조합장은 아버지가 계시는 차황으로 돌아와 농사에 전념했다. 농사일을 하면서 4H 활동도 활발하게 하여 산청연합회 회장도 역임했다. 당시 이재근 현 산청군수도 4H활동을 열심히 할 시절이어서 나이도 비슷하고 해서 둘이서 잘 어울려 다니곤 했다. 그러나 운명인지 군대를 제대하고 농사일을 하고 있는 박 조합장에게 농협에서 일자리 제안이 왔다. 당시 농협의 금융 사업이 급격히 성장하고 있던 시점이어서 농촌에 있는 상고출신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래서 농협에 들어온 이래 지금까지 40년의 직원생활, 그리고 약 8년여의 조합장 생활을 산청농협에서 보냈다.

그때 고향으로 돌아오지 않고 부산에서 자리를 잡았더라면 벌써 퇴직했을 나이다. 다행히 고향에 와서 아버지도 잘 모셨고 평생 일할 수 있는 직장도 잡았으니 박 조합장은 자신의 삶이 운이 좋은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벌써 나이 70이 넘었기 때문에 박 조합장은 이번이 마지막 임기라고 생각하고 일에 임하고 있다. 박 조합장은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대규모 산청농협을 보다 젊고 유능한 후배들이 나타나 경영해 주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박충기 조합장과의 인터뷰이다.

 

박충기 조합장은 앞으로 농협에서는 농산물 마케팅 능력이 가장 중요한 시대가 됐다고 말했다.
박충기 조합장은 앞으로 농협에서는 농산물 마케팅 능력이 가장 중요한 시대가 됐다고 말했다.

△조합 규모가 어떻게 되나.

-조합원이 8600여명이다. 경남도내에서 가장 큰 조합이다.

△어떻게 해서 가장 큰 조합이 됐나.

-원래 산청군 농협이 11개였다. 면단위 마다 조합이 있었다. 면단위 조합이다 보니 규모가 작아서 사업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통합하자는 움직임이 있었다. 중앙회에서도 권유를 했고. 처음에는 9개가 됐다가 1992년도에 한 개의 조합으로 통합됐다.

△다른 군도 이렇게 통합 조합인가.

-그렇지 않다. 산청군이 전국에서 최초이다. 그 이후에 경기도 가평군에서 통합이 이루어졌고 최근에는 순천시의 조합들이 통합을 했다. 아직은 통합 조합으로 운영되는 곳이 극소수에 불과하다.

△결국 통합이 안 되는 것은 자리싸움 때문인가.

-그렇다. 산청군만 하더라도 11개 조합이 있을 때 전체 임원수가 77명 정도 됐다. 그런데 통합이후에는 조합장 1명에 임원을 포함해도 22명 정도에 불과하다. 조합의 고위직 숫자가 대폭 줄었다. 인건비가 크게 줄어드는 셈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조합장에 꿈이 있는 사람들은 통합을 반대한다. 그래서 통합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런데 산청은 어떻게 통합을 이뤘나.

-산청 조합의 선배들의 헌신과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선배들의 그런 대의명분에 충실 하는 희생정신이 없었다면 우리도 다른 시, 군처럼 여러 개로 나눠져 있었을 것이다.

△조합이 통합되면 어떤 면에서 유리한가.

-인건비가 절약되는 것은 사실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그것보다는 조합이 대규모가 되면 큰 사업을 수행하기가 쉽다. 면단위 조합에서는 규모가 작다 보니 어떤 사업을 하려고 해도 경제성이 없어서 추진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산청군 단위 조합이 되면 규모의 경제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여러 일을 추진할 수가 있다. 결국 조합원들에게 이익이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산청군 농협에서 활동한 선배들의 기여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이번 산청군 농협 조합장 선거가 치열했다고 들었다.

-이번 뿐 아니라 늘 그랬다. 통합 조합이다 보니 유능한 사람이 많다 보니 조합장 감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보통 4~5명이 선거에 나온다. 이번에도 4명이 출마했다. 그러다 보니 선거가 치열해 질 수밖에 없다.

△이번 선거에서 박 조합장 득표율이 얼마인가.

-제가 2,137표를 얻어 35%의 득표를 했다. 차점자가 1,720표를 얻어 28%의 득표를 했다. 저와 차점자 표차이가 417표 밖에 되지 않는다. 굉장히 치열한 선거였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치열한 선거였는데 어떤 점이 유리해 당선됐다고 보나.

-저는 1977년에 산청농협에 들어와 산청농협에서만 40여년을 생활했다. 그 살아온 과정을 조합원들이 다 지켜봤다. 금권이나 인사 등의 문제에서 지탄받을 일을 하지 않았다. 박충기는 믿을 수 있다, 그런 믿음이 생긴 것이 유리하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제가 뭐라고 말하기보다 회장님이 조합원들에게 물어보는 게 더 정확하지 않을까 싶다.

△이번이 몇 선인가.

-3선이다. 2012년에 농사짓다가 처음 출마해 당선 된 이후 이번이 세 번째이다.

△3선이면 임기제한에 걸리나.

-아니다. 산청농협은 비상근 조합장이기 때문에 임기제한이 없다. 이론적으로는 계속 출마할 수 있다.

△그럼 다음번에도 출마할 것인가.

-제 나이가 벌써 70이다. 이제 그만해야 겠다, 는 생각을 하고 있다. 나중에 어떤 생각이 들지 모르지만 지금은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번 선거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인가.

-산청 농협은 대형 조합이어서 선거 때 조합원들을 일일이 만나볼 수가 없다. 그래서 고안해 낸 것이 관내 경로당을 방문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경로당도 341개나 된다. 경로당 갈 때마다 선거얘기는 일체 하지 않고 허리건강 운동방법을 시범을 보여 드렸다. 그랬더니 어르신들이 호감을 많이 표현하셨다. 다음에 만나면 허리운동 가르쳐 준 사람 이렇게 기억을 하셨다. 그게 이번 선거 때 도움을 많이 받은 것 같다.

△산청군 농협의 가장 큰 이슈는 무엇인가.

-육가공센터를 만드는 것, 농자재센터를 만드는 것, 농산물 유통을 혁신하는 것 등이다.

△육가공센터는 어떤 사업인가.

-산청톨게이트 입구에 2000여 평 규모의 산청흑돼지 가공센터와 식당들을 만드는 프로젝트이다. 일종의 장터처럼 산청흑돼지를 가공에서 판매까지 하려고 하고 있다. 식당은 추후에 추진하기로 하고 올해 내에 육가공센터는 준공하려고 하고 있다. 지금 설계를 마친 상태라 입찰 후 공사를 시작하면 올해 내로는 완공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렇게 되면 조합원들에게 어떤 이익이 돌아가나.

-산청흑돼지가 명품이 된다. 산청 톨게이트 입구이기 때문에 접근성이 좋다. 여기에 흑돼지 전문 타운이 생기면 생산된 흑돼지의 가공과 판매가 자동으로 이루어지게 된다. 그런 점에서 흑돼지 생산농가에게 큰 혜택이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농자재센터는 어떤 사업인가.

-농자재를 싸게 구입할 수 있는 대형 농자재마트를 구축하는 사업이다. 문대에 2000여 평의 부지를 마련해 만들려고 하고 있다. 이 센터가 완공되면 조합원들이 저렴하고 편리하게 농자재를 구매할 수 있게 된다.

△농산물 유통 사업은 어떤 것인가.

-산청 농산물 판매액이 800억 원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이것을 제 임기 내에 1000억을 달성하려고 한다. 이를 위해 농산물 유통을 혁신해야 한다. 농산물 간이 경매장을 만들어 농민들이 농산물을 생산해서 조합에 가져오기만 하면 직원들이 간이경매장에 가져가서 경매해서 조합원들에게 판매대금을 돌려드리는 그런 시스템을 구축할 것이다. 이 시스템이 구축되면 조합원들이 조합을 믿고 생산만 하면 된다. 판매에 대한 부담이 없기 때문에 조합원들이 생산하는 농산물들이 품질이 더 좋아지리라고 생각된다.

△임기 중에 꼭 이루고 싶은 일이 있나.

-육가공센터나 농자재센터 등을 잘 운영하려면 결국 돈이 있어야 한다. 돈을 만들기 위해서는 신용사업이 바탕이 돼야 한다. 현재 산청군 농협의 신용사업 규모가 약 1조원이다. 이를 임기

중에 1조5천억 원으로 늘려 조합이 경제사업을 수행하는데 어려움이 없도록 하는 게 목표이다.

△농사를 대행하는 사업도 의욕이 많다고 들었다.

-산청은 농사를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조합원이 고령화되다 보니 그런 현상이 생긴다. 그래서 조합에서 농사를 대신 지어주는 농작업 대행사업을 시작할 생각이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 건가.

-조합에서 기계와 인력을 확보해서 농사를 위탁하는 조합원에 대해서 농사를 대신 지어주는 것이다. 조합이 일종의 직원을 고용해서 직접 농사를 지을 생각이다.

△그게 잘 될까.

-저는 잘될 거라고 본다. 물론 직원들이 사무직은 아니고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사람들을 고용해 짓는다. 고용창출도 되고 농산물 생산량도 늘어나는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본다. 임기 중에 꼭 만들 계획이다.

△개인적인 얘기를 좀 해 보자.

-언제 어디서 태어났나.

△산청군 차황면에서 태어났다. 호적은 1950년생으로 돼 있는데 사실은 한 살 더 많다. 올해

만으로 70이다.

△학교는 어디서 다녔나.

-중학교까지는 산청에서 다녔고 고등학교는 부산에 유학을 갔다. 영남상업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부산까지 유학을 갈 정도면 집안사정이 괜찮았나 보다.

-동네에서는 부자라는 소리를 들었다. 그런데 부자라서 그렇다기보다는 이모님이 부산에 계셔서 학교 다닐 동안 이모 집에서 생활했다.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했으면 그 당시에는 부산에서 취직하기가 쉬웠을 것 같은데.

-아버지 연세가 저보다 40살 정도 많았다. 또 저는 도시보다 농촌이 좋았다. 그래서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고향 차황으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아버지 도와서 농사를 지었다.

△그건 참 쉽지 않은 일인데. 특히 당시는 다들 농촌을 떠나 도시로 향하던 시절이 아닌가.

-다들 그랬다. 그래도 저는 어쩐 일인지 농촌이 좋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고향에 와서 농사를 지었나.

-그렇다. 농사를 짓다가 1970년에 4H 산청군연합회 회장을 했다. 그만큼 당시에는 농사에 열정적이었다.

△4H는 이재근 군수도 활동하지 않았나.

-이재근 군수와 함께 활동했다. 당시 이재근 군수도 열혈청년이었다.

△그럼 그 활동을 하다가 농협에 들어오게 된 것인가.

-그렇다. 71년에 군대 갔다가 74년 제대하고 와서 또 농사를 짓다가 76년 말인가 농협에 왔다.

△농사를 계속 짓지 농협에는 왜 들어왔나.

-당시 농협의 금융 사업이 급격히 커지는 시점이었다. 아무래도 상고를 졸업한 사람이 농사를 짓고 있으니 나름대로 인재라 생각했는지 금융사업을 위해 농협에 들어오라고 했다. 그래서 농사도 지으면서 농협일도 했다.

△그리고는 지금까지 농협에 있는 건가.

-그렇다. 2001년에 상임이사가 됐는데 2009년에 퇴직하고 다시 농사를 짓다가 2012년에 조합장에 출마해 당선돼 지금에 이르고 있다.

△그래도 당시 부산에서 취직하지 않고 고향으로 돌아온 선택이 잘한 것 같다. 고등학교 동기들 중 직장생활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 같은데.

-그렇다. 제 나이가 벌써 70인데 동기들은 오래전에 퇴직했다. 아직까지 직장생활하고 이렇게 큰 조합의 조합장을 세 번이나 하고 있으니 복이 있는 인생이란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도 그렇게 큰 어려움은 없었다.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조합장에 도전하는 후배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나.

-이제 조합도 마케팅 시대이다. 조합원들이 생산한 농산물을 잘 팔아줘야 된다. 신용사업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농산물을 잘 팔아주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다. 그래서 그런 역량을 키우라고 조언하고 싶다. 그런 능력이 뛰어나야 앞으로 조합장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황인태 본지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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