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정효 진주남부농협 조합장 - 두 번째 출마해서 현직 조합장 물리치고 조합장에 당선
송정효 진주남부농협 조합장 - 두 번째 출마해서 현직 조합장 물리치고 조합장에 당선
  • 경남미디어
  • 승인 2019.03.28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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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농협, 진주에서 가장 성장 잠재력이 큰 지역에 위치
조합원의 생산물을 얼마나 잘 파느냐가 조직생존의 관건
‘생산은 조합원, 판매는 조합’이 하는 조직 구조 만들 것
“대초 송서기 조합장 할 때 조합이 좋았다”말 듣는 게 꿈

송정효 진주남부농협조합장은 이번이 두 번째 조합장 선거이다. 두 번 출마해서 꿈에 그리던 조합장이 됐다. 진주남부농협은 진주에서 가장 발전하는 지역에 위치해 있다. 항공국가산업단지, 뿌리산업단지가 조성중인 정촌면과 혁신도시가 들어선 문산 등이 관할 구역이다. 따라서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이 가장 큰 조합이다. 송 조합장은 이런 시기에 남부조합장이 돼서 어깨가 무겁다고 했다.

송 조합장은 오일쇼크가 한창이던 1980년에 남부조합에 입사해 지금까지 남부조합맨으로 살았다. 2016년 잠시 진주시 원예조합 상임이사로 2년간 외도를 한 것을 제외하고는 지금까지 약 30여년을 남부조합에서 인생을 보냈다. 그래서 남부조합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안다. 이번 선거에서 현역이었던 상대후보와 당당히 경쟁해서 50%가 넘는 득표율로 당선이 된 것도 자신의 이런 이력이 원천이 됐다. 현역을 꺽은 데 대해 송 조합장은 “조합원들의 변화욕구가 많았다.”고 말했다. 시장도 그렇고 조합장도 너무 오래 하면 안 된다는 게 송 조합장의 지론이다. 자신도 지금 초선이지만 3선까지 할 생각은 없다고 분명히 못 박았다.

이번 선거에서 이긴데 대해 송 조합장은 “조합원이 자신이 30여년 해 온 것을 믿어줬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저 사람한테 맡기면 남부조합이 발전할 것 같다는 믿음이 자신을 선택케 했다는 것. 실제로 송 조합장은 남부조합에서 상임이사를 할 때인 2012년, 2013년 연이어 전국 농협에서 업적평가 최우수상을 받았다. 조합도 상을 받았지만 자신도 CEO상을 받았다. 남부 조합이 이 상을 받은 것은 전무후무한 일이다. 그래서 조합원들이 자신의 능력에 대해서는 의심을 하지 않는다, 고 말했다.

송 조합장은 이제 농협이 마케팅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예측했다. 조합원이 좋은 농산물을 생산해 놓으면 조합이 책임지고 팔아야 하는 시대가 됐다는 것. 조합이 신용사업도 하지만 결국은 조합원의 생산물을 얼마나 잘 파느냐가 조직 생존의 관건이 될 것이라는 게 송 조합장의 지론이다. 그래서 송 조합장은 재임 중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들과 자매결연을 맺어서 조합원과 도시민들이 자주 교류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이것만 잘해도 송 조합장은 남부 조합이 많은 변화가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송정효 조합장은 1957년 정촌면 대초마을 어려운 가정에서 태어났다. 부모님이 가난해 공부를 할 수 없는 여건이었으나 장남이 꼭 공부를 해야 한다는 부모님의 열성에 부산에 유학해 영남상업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어머님이 사천, 삼천포 장날이 되면 물건을 떼어다가 부산에서 노점에서 팔기도 하고 집집마다 다니면서 쌀 한말 두말씩 팔아서 자신을 공부시켰다. 그때 그 고생하시던 어머님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생생하다고 말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부산에서 직장에 다니다가 군대제대를 했는데 마침 오일쇼크로 국내 경제가 어려움이 처한 시기였다. 그래서 고향에 내려와 쉬고 있는데 마을 이장님이 농협입사원서를 마루에 놓고 갔다. 당시 농협이 무엇을 하는 곳인지도 몰랐던 송 조합장은 이장님의 권유로 시험을 치러 갔다. 그렇게 해서 지금의 남부농협조합에 입사를 했다. 이번 선거에서 경쟁자였던 정광호 전 조합장과 입사동기이다.

처음 입사해서는 부실채권 받아오는 일을 했다. 그런데 송 조합장은 그 일에 소질이 있어서 잘 해 냈다. 이상하게 그런 일이 재미있었다. 당시는 돈을 갚지 않는 사람들이 많았을 시기인데 여하튼 그 일을 잘 해냈다. 그 일에서 능력을 인정받았는지 그 이후 조합 내에서 승승장구해 상무, 상임이사까지 했다. 그리고는 이번에 마침내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송 조합장은 조합장을 그리 오래할 생각은 없다고 했다. 재선이면 충분하고 3선까지 출마해서 강제로 퇴진하는 일은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박수 받을 때 떠나라는 말을 늘 마음에 품고 조합장 일을 하겠다고 다짐했다. ‘대초 송서기’ 그놈이 조합장일 때 남부조합이 좋았다는 말을 듣는 게 꿈이라고 했다.

다음은 송정효 진주남부농협조합장과의 인터뷰이다.

송정효 진주남부농협조합장은 조합원이 뽑아주면 재선까지만 하고 그만두겠다는 선언을 했다. “박수 받을 때 떠나라”는 말을 늘 가슴에 새기면서 업무에 임하겠다고 했다.
송정효 진주남부농협조합장은 조합원이 뽑아주면 재선까지만 하고 그만두겠다는 선언을 했다. “박수 받을 때 떠나라”는 말을 늘 가슴에 새기면서 업무에 임하겠다고 했다.

▲현직을 상대로 한 선거에서 이기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경쟁자였던 정광호 전 조합장은 저하고 남부농협 입사동기이다. 그래서 어려운 점이 많았다. 정 조합장은 아마 자기가 당선될 줄 알고 있었을 것이다. 현직의 이점과 탄탄한 조직이 있었기 때문이다. 정 조합장은 낙선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50%가 넘는 득표율로 송 조합장이 당선이 됐다. 이유가 무엇인가.

-정 조합장도 조합운영을 잘했다. 그래도 조합원들은 이번 선거에서 변화를 원했던 것 같다. 뭐든 오래하면 안되지 않나. 그런 점에서 조합원들이 한번 바꿔보자는 그런 흐름이 있었던 것 같다.

▲조합원들이 송 조합장에게 기대한 바가 무엇이었을까.

-저도 남부조합에 입사해 여기서 상임이사도 했다. 그래서 저에 대해 조합원들이 잘 알고 있다. 저에 능력에 대한 기대와 믿음 이런 게 있었다고 본다.

▲어떤 점에서 송 조합장에게 믿음이 갔다고 보나.

-제가 조합에서 상임이사로 근무할 때다. 조합은 조합장이 대표하지만 사실 경영은 상임이사가 한다. 그때 저희 남부조합이 조합업적평가에서 연속해서 전국1위를 했다. 2012년, 2013년의 일이다. 여태까지 없던 일이다. 그때 저는 개인적으로 ceo상을 받았다. 그런 것들을 조합원들이 잘 알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원예조합에서도 상임이사를 하지 않았나.

-2016년에 진주원예조합에서 상임이사를 했다. 그때 원예조합에 가보니 원예농협이 전국에 48개가 있는데 하위권에 속했다. 그것을 제가 퇴임할 즈음에 전국 3위까지 끌어올렸다. 신용사업부문에서 여신과 수신고를 두 배 이상 증가시켰다.

▲남부농협, 원예농협 등에서 올린 경영성과를 보면 진주일원에서 송 조합장의 경영능력에 대해서는 평가 하겠다.

-그렇다고 생각한다. 남부조합에서만 잘했다면 특수성을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런데 생전 모르던 원예조합에 가서도 경영성과를 실적으로 보여줬다. 이런 점에서 저는 검증된 사람이라고 보면 된다. 그래서 이번 선거구호도 ‘검증된 일꾼’이었다.

▲그럼 그렇게 검증된 일꾼으로서 남부조합을 앞으로 어떻게 바꿀 것인가.

-가장 시급한 것이 내동지점을 옮기는 것이다. 지금 남부조합의 내동지점이 산골짝에 있다. 이미 내동 농협주유소 옆에 부지를 마련해 뒀다. 약 370평정도 된다. 여기에 건축을 해서 남부지점과 하나로마트, 로컬푸드, 각종 경제사업 등을 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제가 조합장이 아니어도 꼭 해야 할 일이다.

▲건축은 언제 시작하나.

-이번 7월에 임대기간이 끝나면 바로 건물을 해체한 후 공사를 시작할 예정이다.

▲이런 숙원사업들도 있지만 임기 중 이것은 꼭 해내고 싶다는 것이 있나.

-이제 조합의 역할도 많이 바뀌는 시대이다. 지금까지 조합은 신용사업의 비중이 컸다. 조합활동의 90% 정도가 신용사업이다. 그러나 농협은 기본적으로 농민을 위하는 조직이다. 앞으로 판매는 조합에서 생산은 농민이 하는 그런 구조가 돼야 한다. 조합원은 좋은 농산물을 생산만 해 놓으면 판매는 조합이 다 책임지고 하는 시대가 돼야 한다. 제 임기 중에 이런 시대를 열겠다. 남부조합이 진주시내 그 어느 조합보다 이런 일에 적합한 지역이다.

▲그건 왜 그런가.

-진주 남부지역이 진주에서 가장 활력이 높은 지역이다. 혁신도시와 정촌산업단지, 역세권 등이 다 남부조합 관할에 있다. 진주시 남부지역은 아파트가 가장 많이 건설되고 인구가 가장 크게 증가하는 지역이다. 그래서 판촉활동 등도 크게 도움이 된다. 새로 생기는 대규모 아파트들과 자매결연 등을 맺어 조합원들이 생산한 우수한 농산물들을 직판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해 보자. 어디서 태어났나.

-정촌 두랑 저수지 옆, 대초 마을이라는 곳에서 태어났다. 호적에는 1958년생으로 돼 있는데 실제로는 1957년도가 출생년도이다.

▲학교는 어디를 다녔나.

-초등학교는 예하초등을 다녔고 중학교는 진주남중을 졸업했다.

▲초등학교 친구나 중학교 친구 중에서 알려진 사람이 누군가.

-초등학교는 별로 알려진 사람이 없고 중학교 친구 중에서는 진주시의회 박성도 의장이 친구이다.

▲고등학교는 어딘가.

-고등학교는 부산에 유학해서 영남상업고등학교를 나왔다.

▲박충기 산청농협조합장이 이 학교를 나오지 않았나.

-맞다. 박 조합장님이 선배다. 이 지역에서는 졸업생이 드물어서 친하게 지내고 있다.

▲그 당시 부산에 유학 갈 정도면 집안이 괜찮았던 것 같다.

-그렇지 않다. 집안이 어려웠다. 제가 고등학교 1학년 때 밑의 여동생이 공부를 잘해서 진주여중에 들어갔다. 그러나 1학기를 채우지 못하고 공부를 놓았다. 그 정도로 집안 사정이 어려웠다. 그러나 장남 하나는 제대로 공부시켜야 한다는 부모님 뜻에 의해 부산까지 유학해서 공부를 하게 됐다. 공부를 못한 여동생 일은 지금도 늘 가슴이 메어지는 일이다. 참 똑똑한 아이여서 공부를 제대로 했더라면 크게 성공했을 텐데.

▲그래도 부산에서 유학하려면 쉽지가 않았을 것 같다.

-어머니가 사천, 삼천포 장날이 되면 물건을 사서 외갓집이 있는 부산 대신동 등에 부쳤다. 이것을 부쳐놓고는 부산에 직접 오셔서 물건을 찾아서 노점에서 팔아서 학비를 댔다. 어머니가 집집마다 다니면서 쌀을 한말씩 두말씩 팔아서 공부를 했다. 그 정도로 장남의 공부에 대한 부모님의 열의가 대단했다. 지금도 부산에서 장사하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그 어머니의 은혜를 어떻게 다 갚을 수 있겠나.

▲그럼 고등학교 졸업 후에는 무엇을 했나.

-상고를 나왔으니 우리나라 최고의 은행에 입사할 꿈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은행에 입사하지 못하고 당시 부산에 있던 한창섬유라는 회사에 들어갔다. 한창섬유는 당시 우리나라 50대 기업 안에 들어가는 회사였다. 거기에 공채로 입사해 3년정도 근무했다. 그리고는 군대에 갔다.

▲군에 갔다 와서는 무얼 했나.

-하사관 시험을 쳐서 군대를 갔다 오니 1980년이었다. 1차 오일쇼크로 국내경제가 어려울 때이다. 그래서 고향에 와서 몇 달 놀고 있었다. 몇 달 놀고 있는데 마을 이장 하시는 이웃집 아저씨가 농협 입사원서를 던져놓고 갔더라.

▲그래서 시험을 친 건가.

-그게 아니고. 저는 그때까지 농협이 뭐하는 곳인지도 몰랐다. 그래서 이장 아저씨한테 물어보니 소도 키우고 하는 곳이라는 얘기를 하시더라. 그래서 내가 갈 곳이 아닌가 보다 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시험이나 한번 쳐보라고 하셔서 시험을 쳤다.

▲그래서 합격해서 들어오게 된 건가.

-그것도 사연이 있다. 시험을 당시 선명여고에서 보는데 시험 치러 가보니 제 생각에 시험은 요식행위이고 이미 입사할 사람들은 다 정해져 있다는 느낌이 들더라. 그래서 첫 시간 보고 나서 시험 거부하자는 운동을 했다. 그런데 그렇게 호응이 좋지 않아서 일단 시험은 다 보고 나왔다. 시험을 보긴 했지만 별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래서 합격 여부도 알아보지 않았다.

▲그런데 어떻게 오게 됐나.

-시험치고 며칠 지난 어느 날 중앙시장에서 친구들 하고 막걸리를 먹고 정촌가는 18번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친구 녀석이 갑자기 “시험 친 게 어떻게 됐냐.”고 묻기에 저도 갑자기 시험결과가 궁금했다. 그래서 다른 사람한테 “시험발표가 났는지 한번 알아봐라.” 그랬다. 그랬는데 합격했다는 연락이 온 거다. 9명을 뽑는데 3등인가, 4등인가 하는 성적으로 합격을 했다는 거다. 그런데 문제는 너무 늦게 알았다. 서류제출이 바로 그 다음날이었다. 건강검진 등의 서류도 있는데 하루 만에 서류를 맞추는 게 불가능할 정도였다. 그래도 허겁지겁 서류를 맞추어서 내고나니 입사가 됐다. 그렇게 해서 남부농협에 출근하게 됐다.

그때 우연히 시험결과를 알아보지 않았더라면 오늘날 저는 없을 것이다. 참으로 농협에 들어올 운이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당시 입사동기들이 누구인가.

-이번 선거에서 저하고 경쟁했던 정광호 조합장이 당시 입사동기였다.

▲정 조합장 하고도 얽힌 일화가 많겠다.

-그렇다. 평생을 같은 농협에서 근무를 했고 또 경쟁자로 선거까지 치렀으니 참 독특한 인연이다. 이번 선거에서 좌절되면서 준비하고 있던 것들이 많을 텐데 상실감이 클 것이다. 시간이 조금 지나면 만나서 맺힌 것이 있으면 풀려고 하고 있다. 다 남부농협을 잘 만들려고 한 사람들이니 큰 차원에서 보면 맺힐 것도 없다.

▲남부 조합에서 처음 한 업무가 무엇이었나.

-처음 한 일이 부실채권 받아오는 일이었다. 당시는 술집 등이 돈을 갚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또 공무원 중에도 갑질 한다고 애먹이는 사람들이 많았다. 저는 그런 일은 잘했다. 끈질기게 가서 잘 받아냈다.

▲이번이 초선인데 3선까지 갈 것인가.

-선거 중에도 분명히 말했지만 3선까지 할 생각은 없다. 조합원이 뽑아주면 재선까지는 해보고 싶다. 그러나 3선은 하지 않을 것이다. 2번 하고 반드시 물러날 것이다. 억지로 3선하겠다고 선거에 나서서 강제로 퇴진당하는 그런 꼴을 보이고 싶지 않다. 아름다운 퇴장을 할 생각이다.

▲어떤 조합장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제가 태어난 마을이 정촌 대초마을이다. 고향에서 제 별명이 ‘대초 송서기’이다. ‘대초 송서기’ 그놈이 조합장 할 때 그래도 남부조합이 좋았다. 그런 말 듣는 게 제 목표이다.

황인태 본지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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