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희의세상엿보기] 살아가는 일
[김용희의세상엿보기] 살아가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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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4.12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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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희 시인·수필가
김용희 시인·수필가

“사채를 벌려 입학금을 냈습니다. 애들 이제 다 키워놓고 지금은 공부할 수 있고 시를 쓸 수 있어 참으로 행복합니다.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오는군요” MT에 참가한 오십대 여자분의 얘기다. 올해 육십이라는 여자분 “저는 처녀입니다” 왠? 지난번 딸 결혼시켰는데…. “그 딸은 그냥 제가 데려다 키운 딸이고 영문학과 졸업시켜 시집 잘 보냈습니다. 해서 이제는 나도 시집가고 싶습니다” 49세의 교수 “저는 독신주의자라 혼자 살 것입니다” 직업이 아직 안정되지 않은 것 같은 키 크고 잘생긴 멋쟁이 교수의 자기소개다.

첫 앰티, 자기소개(만남)하자고 술까지 한 잔씩 돌렸더니 보따리들 풀어 놓는다. 대학 영문과를 졸업한 분, 석사학위를 가지신 분, 소설 쓰다 좀 업그레이드하고자 해서 입학했다는 분, 매일 야간작업에 시간을 내지 못하는 이, 군대라는 경직조직을 벗어나고 싶어서 탈출한 이, 그래도 공통된 하나는 함께 하고 픈 욕망이다. 의지하고 싶어서, 누군가를 만나고 싶어서, 나를 드러내고 표현하고 싶어서, 그것을 글로 남기고 싶어서…. 각양각색이다.

한 분이 손금을 봐 준대니 나도 너도 “저요, 저요”다. 우리네 ‘살아가는 일’이다. 살아가는 일, 살아내는 일. 사연을 안고, 사연을 걸머지고, 사연을 끌고 그렇게들 살아간다.

문창과의 첫 앰티. 이십대 젊은 친구들이 가장 많지만 그들은 온라인 뒤로 숨어서 침묵하며 지켜보고 사오십대 어른들만 중년의 길에 자신을 풀어놓는다. 근데 참 사연들이 많다. 평범한 가정이, ‘평범이란 것이 뭘까’할 정도로 흔치 않다. 세태의 단면을 보고 있는 것일까? 무 자르듯 잘라서 보는 세태의 단면. '살아 낸다'는 것이 참 어렵다는 것, 생계유지, 가정의 안정, 그게 그리 녹록치않다는 것. 불안하고 불확실한 사회, 이전에는 먹을 것이 없고 돈 될 것이 없어 생존 자체가 그리 어려웠는데 지금은 그것은 거의 해결되었는데도 왜 이리 더 불안정한 시대가 된 것일까?

군간부 특강을 갔다. 사단장 소장을 위시하여 영관급 약 백여 명. “외롭지 않으십니까?” 했더니 대부분 극공감이다. 직업이 안정되어도, 온전한 분들도 모두 외롭다. 아마도 불안정한 우리 사회, 외로운 사회, 여유가 있건 없건 승진하고 싶고, 뛰어나고 싶고, 성공하고 싶고, 자기를 표현하고 싶고, 실현하고 싶은 사회.

‘디아스포라 아니랑 로드’를 방영한다. 우리의 노래 아리랑이 국제사회에서도 큰 관심을 갖는 모양이다. 지난번에도 동서양 작곡가들이 제법 높은 관심을 가지고 편곡하거나 인용하는 것을 봤다. 매력을 느끼는 이유를 물었더니 모른단다. 그래서 아리랑이 좋단다. 모르기 때문에 매력을 갖는 것이란다. 다 알아 버리면 싫증 날지도 모르지만 늘 미지의 영역이 남아있는 곳은 지속적 탐험의 과정이겠다.

산다는 것? 우리 또한 연주를 하고 있는 것일까. 모르는 그 어떤 것을, 힘겹게 외롭게 그러나 경이롭고 놀라워하면서, 끝없이 나아갈 뿐, 걸어갈 뿐 아리랑 고개의 길을…. 또다시 마지막 설교를 끝내고 거창으로 가버린, 차와 집이 없는 이재철 목사처럼, 열심히 겸손하게, 집착하지 않을 수 있는 경지까지 가면, 그 서러운 고통들을 지나 스스로 존재하는 외로움을 들고. 그리고도 아리랑고개를 계속 넘어가는 그 알고도 모를 희망의 삶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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