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석 하동 금오농협 조합장 - 경남에서 유일한 5선 상근 조합장이 되다
조상석 하동 금오농협 조합장 - 경남에서 유일한 5선 상근 조합장이 되다
  • 경남미디어
  • 승인 2019.04.19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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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선 마친 후 9년간 집에서 소 키우다 다시 출마
‘주변 사람들에게 무조건 져주는 게’ 5선의 비결
농협은 조합원들을 ‘요람에서 무덤까지’ 보살펴야
조상석 금오농협 조합장은 이번 당선으로 경남에서는 유일한 5선 상근 조합장이 됐다.
조상석 금오농협 조합장은 이번 당선으로 경남에서는 유일한 5선 상근 조합장이 됐다.

조상석(67) 금오농협 조합장은 5선을 달성했다. 비상근 조합장은 5선이 있다. 그러나 상근 조합장으로 5선은 경남에서 조 조합장이 유일하다.

5선이라는 과업을 이룬 이유에 대해 조 조합장은 “주변사람들에게 무조건 져주면 된다”고 단순하게 얘기했다. 지혜가 담긴 말이긴 하지만 실천하기는 참으로 어려운 이야기이다. 조 조합장은 그 단순한 진리를 실천하면서 아무도 가보지 않은 5선 조합장이 됐다.

조 조합장이 5선에 나선 것은 꼭 자신이 원해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2006년 3선을 마치고 한창 나이인 56살에 집으로 돌아갔다. 집으로 와서는 소를 키우며 나름대로 보람 있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조합이 다시 그를 불렀다. 9년 동안이나 소를 키우며 조합과는 거리를 두고 살았는데 조합에 복잡한 일이 생긴 것이다. 조합을 안정시킬 사람은 조 조합장뿐이라는 조합원들의 강권에 다시 출마하게 됐다. 그게 2015년이다. 그렇게 해서 다시 시작한 조 조합장은 이번 당선으로 5선의 고지를 오르게 됐다.

금오농협은 하동군 진교면 농협과 양보면 농협이 합병에 생긴 조합이다. 금오농협으로 이름을 지은 것은 농협 본점 사무실 앞에 있는 산이 금오산이어서 그렇게 지었다. 그런데 조 조합장은 이 이름은 바꿔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유는 금오농협이라고 하면 어디에 있는 조합인지 사람들이 잘 모른다는 것이다. 하동 출신 인사들에게도 명함을 주면 “금오농협이 어디에 있어요?”하고 질문을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명으로 다시 이름을 지어야 할 것 같다는 게 조 조합장의 생각이다.

조합이 진교면과 양보면 조합원들로 구성돼 있어서 선거가 되면 늘 진교면과 양보면의 면 대결 성격을 띠게 된다. 조 조합장은 소수지역인 양보면 출신이다. 그런데도 당선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진교를 위해 한 일이 많기 때문이다. 진교 조합원들이 이를 평가해 표를 주기 때문에 당선이 됐다는 게 조 조합장의 생각. 이번 선거에서도 진교면 후보들이 단일화를 해서 선거를 치렀기 때문에 힘든 싸움을 했다고 한다.

조 조합장은 5선의 위업을 달성한 만큼 이제 더 이상 조합장 선거에는 나서지 않겠다고 했다. 이미 해야 할 일도 많이 했고 이제는 후배들이 나서서 조합을 더 새롭게 해야 할 시기가 됐다는 것. 단지 경영능력이 있는 사람이 조합장이 됐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피력했다.

조 조합장이 5번의 조합장을 하는 동안 기억에 남는 일로는 IMF 때 모든 사람들이 실패할 것이라고 했는데도 소를 입식하기 시작해 대박을 터뜨린 것을 들었다. 그런 이유로 지금도 하동 양보는 하동에서 소의 메카로 자리 잡았다. 양보면에서 키우는 소 숫자가 인구보다 2배 이상 많다. 또 지난번 임기 때 52억 원이라는 돈을 들여서 마트를 진교에 열었다. 허허벌판에 세우다 보니 조합이 망할 것이라며 사람들의 반대가 많았다. 그런데 그 마트가 대박을 냈다. 마트의 대박으로 매년 출자금 10억 이상씩 늘어난다고 했다. 조 조합장은 지금까지 자신이 기획하고 추진한 일들은 대부분 성공을 했다. 운이 좋았고 행복한 인생이었다.

조상석 조합장은 1952년 하동군 양보면 장암리에서 태어났다. 76년 양보농협에 서기로 입사해 93년 부장으로 퇴직했다. 94년 조합장 선거에 처음 출마해 당선된 이후 내리 3선을 했다. 3선을 마친 다음 집으로 돌아가 소를 키웠다. 현재 키우는 소가 30두 정도 된다. 2015년 다시 조합에 불려와 조합장 선거에 출마해 당선된 후 이번 선거로 경남 유일의 5선 조합장이 됐다.

조 조합장은 오랜 조합장 생활을 통해 앞으로 농협은 조합원을 요람에서 무덤까지를 책임지는 조직이 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특히 농촌 농협은 요양원을 운영해서 현지 사람들이 도회지 요양원에 가지 않고 자신의 고향에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이번 임기 중 조합에서 요양원 운영하는 것을 한번 추진해 볼 생각이라고 했다.

다음은 조상석 조합장과의 인터뷰이다.

▲금오농협은 어디를 관할하나.

-그런 질문을 자주 받는다. 우선 금오농협은 이름이 잘못되었다.

▲왜 그런가.

-2006년도에 하동 진교농협과 양보농협이 통합했다. 그때 이름을 고민하다가 농협 앞에 있는 산이 금오산이다. 그래서 금오농협이라고 했다. 그런데 아무도 알지를 못한다. 이 고향 출신들에게도 금오농협 명함을 주면 ‘어디에 있어요?’ 하고 묻는다.

▲그런데 왜 그렇게 했나.

-그 당시는 진교농협과 양보농협이 합병을 하다 보니 어디 한군데 이름을 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렇다 보니 타협안으로 산 이름으로 정한 것인데 우리 생각이 짧았다. 지금은 금오농협이 어디에 있는지 잘 모르니 농협 홍보하기가 어렵다. 이름을 고쳐야 할 것 같다.

▲조합장은 이번이 몇 번째 조합장인가.

-5번째 조합장이다.

▲5선이란 말인가.

-그렇다.

▲경남에 5선 조합장이 있나.

-비상근의 경우에는 2명이 있다고 들었다. 상근 조합장의 경우에는 제가 유일하다고 알고 있다.

▲어떻게 해서 그렇게 장기집권을 하게 됐나.

-그게 좀 사정이 있다.

▲어떤 사정인가.

-제가 처음 조합장이 된 게 1994년이다. 그때부터 3선을 하고 연임제한에 걸려 퇴직을 했다. 처음 조합장이 된 것은 양보조합장이었다. 그때 가장 큰 현안이 진교조합이 부실 조합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합병 작업을 무사히 마치고 3선으로 집에 갔다.

▲그런데 왜 또 나왔나.

-집에 가서 9년 동안 소 키우며 살았다. 그런데 소 키우며 사는 사람을 조합원들이 다시 불러냈다.

▲그럼 계속 조합장을 한 게 아니고 9년 동안 집에서 소 키우다 다시 나온 것인가.

-그렇다. 2006년에 집에 가서 2015년에 조합장에 다시 나왔다.

▲나오게 된 이유가 있는가.

-제가 지지를 해서 조합장 선거를 한 사람이 있는데 선거사고가 나서 조합이 시끄러웠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조합을 안정시켜 달라며 집에서 소 키우는 사람을 다시 불러낸 것이다.

▲그렇게 다시 나와서 이번에 재선이 된 건가.

-그렇다.

▲이번 선거는 득표율이 어떻게 되나.

-금오조합은 진교면과 양보면 조합원으로 구성돼 있다. 그렇다 보니 선거가 면 대결의 성격을 띠게 된다. 그런데 진교 조합원이 1170명이고 양보 조합원 806명으로 진교조합원이 양보조합원보다 364명이 많다. 진교출신과 양보출신이 1:1로 붙으면 진교출신이 이기게 돼 있다. 그런데 저는 양보출신으로 이번에 약 53%의 득표율로 이겼다.

▲진교, 양보 1:1의 경쟁이 아니었나.

-아니다. 진교출신 후보와 양보 출신 후보인 제가 1:1로 붙었다.

▲그런데 어떻게 이겼나.

-제가 진교를 위해 한 업적이 있다. 그것을 진교 조합원들 중에 평가한 분들이 있는 것 같다.

▲어떤 것인가.

-진교에 마트를 세웠는데 그게 장사가 잘된다. 양보 출신으로 진교를 위해 일을 잘하다 보니 진교조합원이라 하더라도 평가하는 사람이 있었던 것 같다.

▲축하 난을 보니 ‘대의원 당선을 축하합니다’ 란 구절이 있다. 무슨 뜻인가.

-이번에 농협중앙회 대의원을 같이 하게 됐다.

▲중앙회장 선거를 하는 대의원 말인가.

-그렇다. 하동에는 한 명이 있는데 제가 하게 됐다. 제 임기가 전반기 2년간이다. 후반기 2년은 다른 조합장 가운데서 선출하게 된다.

▲전국적으로 대의원이 몇 명이나 되나.

-290명이다. 하동은 1명, 진주는 규모가 커서 2명이다.

▲이번에 5선이 됐는데 또 출마할 것인가.

-아니다. 이번이 진짜로 끝이다. 더 한다는 것은 욕심이다. 후배들에게 물려주어야 한다.

▲5선이라는 기적을 이루었는데 이렇게 오랜 기간 선거에서 지지 않는 비결이라도 있나.

-모든 사람에게 져주는 것이다.

▲그게 말은 쉽지 실천하기는 참 어려운데.

-저는 모두에게 져준다. 저만 그런 게 아니고 가족들도 그렇고 제 지인들도 그렇다. 그래서 가족들과 지인들에게 못할 일이다. 그 사람들은 저 때문에 자신들 주변 사람들에게 늘 죄송하다, 미안하다는 말을 달고 산다. 이제 졸업해야 한다. 제 나이도 그렇고.

▲임기 중 하고 싶은 일이 있나.

-벼 육묘장을 만들고 싶다.

▲무슨 뜻인가.

-우리 조합원들의 절반이 연령이 70대 이상이다. 사실상 농사를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조합은 오래전부터 벼농사를 대행해 주고 있다. 모내기에서 농약 치는 것, 수확, 판매까지 다 대행해 주고 있다. 그런데 아직 묘는 대신 만들어 주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육묘장을 만들어 묘를 키워 주면 이제 벼농사는 완전히 조합이 대행해 주는 일관체제가 완성된다. 그래서 육묘장을 만들고 싶은 것이다.

▲임기 중 또 해결해야 할 과제는

-농자재 마트를 만들어야 한다. 제 생각에 진교가 하동의 관문이다. 여기에 농자재 마트를 만들어 놓으면 진교가 거점이 되지 않을까 그리 생각한다.

▲또 다른 일은 무엇을 하고 싶나.

-이건 아직 생각 중인 일인데. 잘 될지는 모르겠다.

▲무슨 일인가.

-저는 앞으로 농촌 농협들은 요양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만 해도 조합원의 절반이 70대 이상이다. 그런데 아프면 요양원에 가야 된다. 자식들이 다 외지에 있다 보니 요양원에 가면 도시에 있는 요양원에 가게 된다. 그걸 조합원들이 다 싫어한다. 여기서 살다가 여기서 죽고 싶다는 게 조합원들의 바람이다. 그래서 조합이 앞으로는 요양원을 운영해서 조합원들이 요양원에 있다가 돌아가시도록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는데 제 생각이 맞는지는 모르겠다.

▲그건 좋은 아이디어 같다. 꼭 실천하길 바란다. 5선을 했는데 기억에 남는 일이 있나.

-1997년 말에 IMF가 왔다. 그래서 농가들이 다 망했다. 소값이 몇 백만 원 하던 것이 50만원도 나가지 않을 정도로 떨어지더라. 그래서 그때 생각했다. 지금이 오히려 기회가 아닌가. 지금 소를 키우기 시작하면 조합원들이 돈을 벌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모든 사람들이 미친 사람이라고 했다. 그런데도 IMF 일 년 후인 1998년부터 소를 입식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입식하고 나니 한 달이 지나면 가격이 두 배 오르고 그랬다. 그때부터 양보면이 하동에서 소 키우는 중심이 됐다. 지금도 양보면에는 사람보다 두 배 이상 소가 많다. 그게 보람이 있었고 기억에 남는다.

▲또 다른 기억에 남는 일은

-진교농협을 합병해 정상화시킨 것이다. 당시 진교농협에 부실채권이 45억 원이나 됐다. 그것을 합병해 안정적인 조합으로 만들었다. 그것도 기억에 남는 일이다.

▲처음에 마트 이야기를 했는데 마트도 기억에 남는 일 중 하나인가.

-그렇다. 제가 지난 임기 중에 진교에 하나로마트를 열었다. 52억 원이라는 큰돈을 들여 마트를 열었다. 그런데 그게 처음에는 허허벌판이었다. 허허벌판에 만들다 보니 다들 망한다고 했다. 그런데 그게 잘돼서 수지규모가 4년 전에 비해 2배 이상 늘어났다. 매년 출자금이 10억 이상씩 늘어난다. 그래서 조합에서는 양보사람이 진교사람을 위해 일한다는 말들이 돌 정도로 성공했다.

▲개인적인 얘기를 좀 해 보자. 언제 어디서 태어났나.

-1952년 양보면 장암리에서 태어났다.

▲농협과는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됐나.

-76년도에 양보농협에 서기로 입사를 하게 됐다. 그게 농협과의 첫 인연이다.

▲그럼 언제 퇴직했나.

-93년에 조합장에 출마하기 위해 당시 부장으로 퇴직했다.

▲그리고는 94년 초에 조합장에 출마한 것인가.

-그렇다. 이번 임기를 마치면 20년을 조합장으로 근무하게 되는 것이니까 직원으로 일한 기간보다 더 많게 된다. 조합원의 사랑을 많이 받은 사람이다.

▲조합장을 해 보니 조합장은 어떤 사람이 해야 된다고 생각하나.

-조합장은 인기보다는 경영능력이 있어야 한다. 이제 조합도 경영의 시대가 됐다. 경영능력이 있어야 조합도 잘 운영할 수 있다. 황인태 본지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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