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사랑] 아마추어 주부의 변명
[오! 사랑] 아마추어 주부의 변명
  • 경남미디어
  • 승인 2019.04.19 13:2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내 취미 청소하기는
아들과 남편이 도와주지 않는
탓이랬더니
이구동성으로 반발한다
자신들이 하는 집안일을
조목조목 열거하면서
김인남/교사
김인남/교사

늘 골골거리는 나를 보고 남편은 불량품이라고 놀린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전히 정상적인 곳이 한 군데도 없다. 이런 나를 안타까워하던 지인이 국선도를 배워 보라고 권했다. 날씨가 흐린 탓인지 오후에는 온몸이 찌뿌드드하고 쑤셔댔다. 경락 마사지를 받으러 갈까, 국선도를 배우러 갈까를 망설이다가 국선도장으로 갔다.

회원가입 원서에 특이하게 취미를 적는 칸이 있었다. 그 칸을 메우는 게 쉽지 않았다. 내세울 만한 취미가 없어서였다.

한때는 취미에 ‘요리’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요리하기를 즐겼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를수록 내 요리 솜씨는 후퇴하기만 하는 것 같다. 바쁘다는 핑계로 집에서 만들어 먹기보다는 식당에서 사 먹기를 즐겼고, 시댁에서 얻어먹기를 즐긴 결과이리라.

나는 ‘반찬통족’이다. 캥거루족, 오렌지족, 제비족, 헬리곱터족, 미시족…. 사회적 이슈를 대변하는 ‘00족’이라는 말 중에 반찬통족이라는 말은 없다. 이 말은 내가 지어낸 말이다.

주말마다 빈 반찬통들을 한 보따리 가득 싸서 시댁으로 가져가서는 음식이 가득 든 반찬통들을 또 한 보따리 싸가지고 집으로 돌아오는 생활의 반복. 이런 내 생활이 마냥 편하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걱정스럽기도 하다. 시어머님 건강에 이상이 생겨서 더이상 반찬을 해 줄 수 없게 되거나, 내가 시어머니가 되었을 때를 생각하면 아득해진다.

부끄럽지만 나는 아직 주부의 기본인 김치를 담글 줄 모른다. 여태껏 김치를 담아 볼 기회가 없었다. 갖가지 종류의 김치를 수시로 담아 주시는 시어머님 덕분(탓)이다.

사업상 손님들하고 식사할 기회가 많은 남편도 아마추어 주부가 되는 데 한몫했다. 남편이 집에서 밥을 잘 먹지 않으니 자연히 음식 만들기에 소홀해질 수밖에 없었다. 남편은 입맛이 까다롭지만 내가 만든 음식에 맛없다는 소리를 절대로 안 한다. 대신 한 번 먹어보고 맛이 없으면 먹지를 않는다. 이러한 남편의 태도가 요리에 대한 열정과 자신감을 잃게 만들었다.

고민고민 하다가 취미 칸에 ‘청소하기’라고 적어 넣었다. 청소하기를 취미라기에는 겸연쩍어서, 적어 놓고 혼자서 많이 웃었다.

내 취미가 청소하기라고 말 한 사람은 남편이다. 처음에는 이 말에 강하게 반발했다. ‘당신이나 애들이 집안일을 안 도와주니까 내가 청소를 하는 것이지, 청소하기가 취미는 아니다’라고. 이 말에 남편과 아이들이 이구동성으로 반발했다. 휴일이면 청소기 돌리고, 닦고, 이불 털고, 화분에 물주고, 쓰레기 분리수거하고…. 서로 자기들이 했던 일들을 목소리 높여 외쳐댔다. 알았다고, 취미로 청소를 한다고 인정을 하고 말았다.

서툰 요리솜씨를 취미로 내세우는 것보다 가족들이 인정해 주는 청소하기를 취미라고 하는 것이 더 맞는 것 같다. 청소하기가 취미라고 해서 집안이 반짝반짝 윤기가 흐를 거라고 상상하시면 곤란하다. 아침에 집을 나와서 거의 10시간 후에나 집에 들어가니 청소를 할 시간이 프로주부들에 비해서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쉴새 없이 쓸고 닦고를 반복해도 구석구석 먼지와 땟국은 나날이 더해가기만 한다.

화사하고 따사로운 햇살이 집안에 들어오는 시간에 집에 있지 않는 게 천만다행이다. 형광등 불빛 아래에서만 보이는 머리카락 치우기에도 벅찬 체력을 가졌으니.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진주대로 988, 4층 (칠암동)
  • 대표전화 : 055-743-8000
  • 팩스 : 055-748-1400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선효
  • 법인명 : 주식회사 경남미디어
  • 제호 : 경남미디어
  • 등록번호 : 경남 아 02393
  • 등록일 : 2018-09-19
  • 발행일 : 2018-11-11
  • 발행인 : 황인태
  • 편집인 : 황인태
  • 경남미디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미디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7481400@daum.net
ND소프트
「열린보도원칙」 당 매체는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고충처리인 이선효 055-743-8000 7438000@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