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웅교수의향토인문학이야기]인문학적인 사고와 삶에 대한 이해가 앞서야
[강신웅교수의향토인문학이야기]인문학적인 사고와 삶에 대한 이해가 앞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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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11.16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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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적인 삶은
정확한 이성보다는 타고난 감성으로
지나친 합리성보다는 순리로
머리보다는 가슴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2> 진주역사의 올바른 정립을 위한 과제 (2)

성리학(性理學)이 불교를 대신하여 학문관의 주도적 구실을 하는 전환을 마련한 정도전(鄭道傳)은 사물인식의 바른 도리를 찾았다.
정약용(丁若鏞)은 나라를 튼튼하게 하고 백성을 살리는 방도를 강구하는 것이 진유(眞儒)가 하는 올바른 학문적 사명이라고 하였다.

 

지난 호에서 기술했던 ‘진주역사의 올바른 정립을 위한 과제’로써 진주고전인문학(JinJu Classical humanities) 설정을 논술하기 전에, 우선 총체적인 우리 인문학의 전통과 그 발전과정을 기술할 필요가 있다고 사료된다.

그리하여 본인이 그간 동·서양의 다양한 연구자료들을 탐독하고 고찰한 결과에 따라, 다음과 같이 우리 인문학의 의미설정과 그 발전과정을 우선 정리하기로 한다.

제일 먼저 인문학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중국의 ≪주역(周易)≫<비괘편:費卦篇>에 보인다. 즉 「觀乎天文, 以察時變, 觀乎人文, 以化成天下」(하늘의 모습을 잘 관찰하여, 계절의 바뀜을 살피고, 사람의 모습을 잘 관찰하고서, 천하의 변화를 이룩한다.)로써, 상기 ≪주역≫의 내용으로 본다면, 중국인문학의 정수는 주로 인간의 세속적인 사상을 중심으로 삼고, 문화 역시 윤리학과 정치학을 기본으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결국 그들의 인문학은 윤리학과 정치학을 근간으로 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음 서양인문학은 소위 동양과 마찬가지로 오상(五常)과 육소(六素)를 갖춘 원초적인 인간연구 즉 인류(mankind)와 인간성(human nature) 그리고 인간애(benevolence)에 대한 보다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연구과정을 기본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고전기록에는 ‘인문학’이라는 용어는 찾아볼 수 없고 ‘학문’이라는 명칭이 일찍부터 우리나라에서는 ‘인문학’이라는 용어를 대신해 왔다고 볼 수 있다.

상기 동·서양의 인문학적 제 요소를 총체적으로 정리해보면, 소위 인문학(人文學, humanities)이란 “태고부터 하늘과 땅 사이에 태어나서 수천 년을 살아온 인간은 일찍부터 하늘로부터 인(仁), 의(義), 예(禮), 지(智), 신(信)이라는 천부(天賦)의 덕목을 받고 태어났으며, 동시에 땅으로부터는 청(淸), 허(虛), 비(卑), 약(弱), 박(朴), 졸(拙)이라는 최선의 소양(素養)을 부여받았지만, 긴 세월 살아오는 과정에서 천부의 그 오상(인·의·예·지·신)과 땅이 베푼 육소(청·허·비·약·박·졸)를 조금씩 마구 버리기 시작했다. 그 결과 오늘날 우리 인간은 하늘과 땅이 베푼 덕목과 소양을 세속적이고 본능적인 탐욕과 편의주의에 빠져 그 모두를 깡그리 버려서 작금에는 거의 모두가 비정한 기계적 삶을 영위하고 있다. 그리하여 좀 늦었지만, 더 늦기 전에 그 전부의 오상(五常)과 땅이 베푼 육소(六素)를 다시 인간의 가슴속으로 귀환시키고자하는 작업이 인문학이라고 볼 수 있다.” 결국 인간은 머리보다는 가슴으로 살고, 지나친 합리성보다는 순리(順理)로, 또 정확한 이성(理性)보다는 타고난 감성(感性)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도록 교육시켜야 할 것이다. 바로 이러한 교육과정이 인문학의 사명이며 역할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하여 본 호에서는 전대의 우리 선조들이 각 시대별로 오늘날까지 시도해왔던 우리 인문학의 전개과정을 각 시대의 인물과 그들 사상 중심으로 고찰해보기로 한다.

우리의 고유한 인문학 체계는 불교시대의 깨달음의 학문 이념으로부터 성리학의 처사접물적(處事接物的) 학문론과 실학시대의 비판(批判)과 반성적(反省的) 학문론의 과정을 거쳐 조선 말기의 최한기(崔漢綺)라는 대학자에 의하여 우리의 정통적 인문학이 최고조에 도달할 수 있는 성과를 얻게 되었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의 인문학은 그 어떤 지역보다도 오랜 기간에 걸쳐 풍부한 업적을 이룩했을 뿐만 아니라 학문이 무엇이며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관한 논의를 자각적으로 전개한 학문론의 전통 또한 뚜렷하다. 학문에 대한 통괄적인 이해를 투철하게 하면서 학문하는 사람의 마음가짐과 학문의 실천적 의의를 중요시 한 것이 일괄된 전통이다. 그러면서 전통을 시대변화에 상응해 조금씩 변화를 이룩했다고 볼 수 있다.

 

 

정약용(丁若鏞)은 나라를 튼튼하게 하고 백성을 살리는 방도를 강구하는 것이 진유(眞儒)가 하는 올바른 학문적 사명이라고 하였다.
성리학(性理學)이 불교를 대신하여 학문관의 주도적 구실을 하는 전환을 마련한 정도전(鄭道傳)은 사물인식의 바른 도리를 찾았다.

 

우리나라는 불교시대(佛敎時代)에 학문관을 수립하는데 주도적인 구실을 한 원효(元曉)와 지눌(知訥)은 국민적인 대립을 넘어서서 스스로 깨닫는 것이 무엇보다도 긴요하다고 했다. 성리학(性理學)이 불교를 대신하여 학문관의 주도적 구실을 하는 전환을 마련한 정도전(鄭道傳)은 사물인식의 바른 도리를 찾았으며, 이황(李滉)은 성리학의 원리를 깊이 추구하면서 덕행을 스스로 갖추는 내면적인 성실을 중요시 하고, 이이(李珥)는 사람은 누구든지 학문을 해야 일상생활을 바르게 할 수 있다고 했다. 학문을 하는 합리적인 과정을 거치지 않고 종교의 교리나 윤리적 당위를 받아들이는 태도를 거듭 배격하여 학문의 의의를 더욱 크게 평가했다.

그런데 성리학의 학문관은 마음가짐을 지나치게 중요시하고 사물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적극 개발하지 않은 결함이 있어 실학시대에 비판을 받았다. 이수광(李睟光)은 윤리적 실천에 구애되지 않고 학문적 발언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으며, 김만중(金萬重)은 성리학의 규제를 넘어서서 객관적인 사물의 실상과 바로 대면하는 방법을 모색하였다. 정약용(丁若鏞)은 나라를 튼튼하게 하고 백성을 살리는 방도를 강구하는 것이 진유(眞儒)가 하는 올바른 학문적 사명이라고 하였다. 최한기(崔漢綺)는 그보다 더 나아가 학문의 목적과 내용은 다양하지만 운동하고 변화하는 기(氣)를 근거로 하는 학문이라야 오류를 극복할 수 있다하면서 학문은 시대에 따라 변하고 바뀌는 것이 당연하다고 하였다.

다음 호부터는 진주 향토인문학 관련 고전을 시·문 중심으로 기술하기로 한다.

 

 

강신웅

본지 주필

경상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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