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웅교수의향토인문학이야기] 청강서강 渴巖 李玄逸 선생의 도의(道義)를 강론하던 서당
[강신웅교수의향토인문학이야기] 청강서강 渴巖 李玄逸 선생의 도의(道義)를 강론하던 서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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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5.10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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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일 선생은 이황(李滉)의 학통을 계승한 대표적 학자
진주 지수면 청원마을에 위치…재령이씨(載寧李氏) 서당

<26> 진주지역 서원(書院)과 선현(先賢) <8-1>

진주시 지수면 청원리 청원마을에 위치한 재령이씨(載寧李氏)의 서당 청강서당.
진주시 지수면 청원리 청원마을에 위치한 재령이씨(載寧李氏)의 서당 청강서당.

청강서당은 현재 진주시 지수면 청원리 청원마을에 위치한 재령이씨(載寧李氏)의 서당으로, 1970년에 이철호, 이기환이 지은 목조기와형으로 학문을 연마하던 곳이다.

청원마을은 조선후기 갈암(葛庵) 이현일(李玄逸) 선생이 도의(道義)를 강론하던 곳으로, 후일 그의 영향을 받은 도내의 선비들이 선생의 후손들과 함께 본 서당을 건립했다. 그리하여 청강서당은 후손들이 뜻을 같이하는 지인들과 더불어 학문을 연마하고 심신을 수양하는 장소로 사용되었다.

이현일(李玄逸, 1627~1704) 선생에 대한 행적(行蹟)을 살펴보면, 선생은 조선 후기의 남인 중신, 문신, 정치인, 그리고 유학자로써, 특히 현종과 숙종 때에 남인 중진으로, 남인의 특출한 이론가이자 영남학파의 거두였던 이황(李滉)의 학통을 계승한 대표적 학자였다.

이현일 선생은 경북 영해(寧海)에서 태어났으며, 이황의 적통(嫡統)인 류성룡과 김성일의 학통을 모두 이은 퇴계학파의 적통인 외조부 장흥효(張興孝)와 중형 이휘일(李徽逸)을 사사(師事)했다.

1646년(인조 24년)과 1648년(인조 26년)의 초시에 모두 합격했으나, 벼슬에 나아갈 뜻이 없어 복시(覆試)를 단념했다. 그 뒤 1668년 과거에 응시했으나 낙방하고 만다. 학문 연구에 전념하며 1625년(효종 3년)에는 형 이휘일의 ‘홍범연의(洪範衍義)’ 저술에 참여했다. 1666년(현종 7년) 영남 유생을 대표하여 송시열(宋時烈), 송준길, 김수항 등의 기년복(朞年服) 예론(禮論)을 비판하는 소(疏)를 올리기도 했다.

숙종 초에 학행(學行)으로 미수(眉叟) 허목(許穆)과 윤휴(尹鑴)등의 추천을 받고 지평(持平)에 특채되었으나, 견해를 달리하기도 했다. 제주(祭酒), 예조참판을 거쳐 대사헌까지 지냈다. 그후 이조참판으로 세자시강원찬선(世子侍講院贊善)이 되고, 벼슬이 이조 판서에 이르렀다. 일찍이 조사기(趙嗣基)의 죄를 구원하려 하다가 함경북도 홍원(洪原)으로 귀양갔으나, 서인 사헌부 장령(司憲府掌令) 등의 계속된 핵청(覈請)으로 종성군(鍾城郡)에 유배되었다가 곧 석방되었다.

예송논쟁(禮訟論爭) 당시 남인의 이론가로 출사했으나, 허목, 윤휴 등 북인계 근기남인(近畿南人)(오늘날 서울, 경기 남부출신) 과는 견해를 달리했다.

1689년 기사환국(己巳換局)으로 남인이 집권하면서 영남 남인과 퇴계학파의 정치적, 학문적 입지확대에 중심적 역할을 했다. 1694년(숙종 20년) 갑술옥사(甲戌獄事)로 남인이 몰락하면서 유배되었다가 1699년 방귀전리(放歸田里) 되었다.

영남학파의 거두로 이황의 학풍을 계승해 이황의 ‘理氣互發說(이기호발설)’을 지지하고, 이이(李珥)의 학설을 반대하기도 했다. 후에 이이의 견해를 논파하는 견해를 기술하기도 했다. 서인과 노론의 종주인 이이의 학설을 정면 비판한 덕에 관직과 사후에 내린 시호(諡號)를 여러번 거두어들이기까지 했으며, 문집을 간행했을 때 관할 수령을 파면시키고 문집들을 수거하여 불살랐다. 그 뒤 추탈(追奪)과 복권(復權)을 반복하다가 1909년에 다시 복권되었다.

그의 저서로는 갈암집(渴巖集), 홍범연의(洪範衍義) 등이 있다. 본관은 재령(載寧)이고, 자는 익승(翼升), 시호는 문경(文敬)이다.

청강서당의 형태는 모두 6간이고, 뒤의 3간과 중간의 1간으로 방을 만들고, 좌우의 2간으로 헌함(軒檻)을 만들고 문루(다락방)도 3간으로 하여 용도가 편리하도록 건축했다. 특히 좌우의 헌함 2간과 3간의 문루는 흔히 있는 정재와 재실과 차이가 있다는 점이 특징이며, 서당이 주변의 자연환경과 더불어 잘 어울리며 고풍의 마을을 자랑하는 요소가 된다는 점이 큰 특징이다.

또한 청강서당은 용도가 다양하며, 주변의 자연환경과 잘 어울리며 멋있는 운치를 느끼게 할 수 있는 옛 서당이 잘 보존되어 있다는 점이 또한 그 의의라고 할 수 있다.

강신웅

본지 주필

전 경상대학교 인문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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