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냉면의 종가 ‘박군자 진주냉면’ 하연규·박군자 대표
진주냉면의 종가 ‘박군자 진주냉면’ 하연규·박군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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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11.19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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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냉면 종갓집’이라는 자부심으로 지금도 주방일 직접 해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55년간 진주냉면 만들어 와
진주냉면, 해물 육수를 통한 깔끔한 뒷맛이 특징인 건강음식
2013년 수원서 오픈 하루 수천 명의 손님이 줄을 선 적 있어
주인이 직접 주방일 하겠다면 ‘박군자 진주냉면’ 체인점 내줘
‘박군자 진주냉면’을 운영하고 있는 하연규, 박군자 대표는 진주냉면 종갓집 맛을 지켜간다는 사명감과 자부심으로 지금까지 직접 주방 일을 하고 있다. 시즌인 여름철에는 하루에 1000명이 넘는 손님을 치르기도 하는데 이럴 때는 죽을 정도로 힘이 든다. 그래도 손님들에게 진주냉면의 참맛을 제공한다는 사명감으로 주방 일을 피하지 않는다.
‘박군자 진주냉면’을 운영하고 있는 하연규, 박군자 대표는 진주냉면 종갓집 맛을 지켜간다는 사명감과 자부심으로 지금까지 직접 주방 일을 하고 있다. 시즌인 여름철에는 하루에 1000명이 넘는 손님을 치르기도 하는데 이럴 때는 죽을 정도로 힘이 든다. 그래도 손님들에게 진주냉면의 참맛을 제공한다는 사명감으로 주방 일을 피하지 않는다.

 

‘박군자 진주냉면’의 하연규(67) 대표는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아버지 하거홍 선생에게서 직접 냉면 만드는 것을 배웠다. 당시는 수도가 없던 시절이라 물 지개를 지는 것에서부터 육수뽑는 것, 면 만드는 것을 직접 배웠다. 하 대표는 어릴 때에는 물 지개를 지고 냉면을 뽑는 것이 죽기보다 싫어 크면 식당일은 절대로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운명인지 50년이 넘는 긴 세월동안 아버지를 이어서 냉면을 만들고 있다. 아내 박군자 대표도 3년간 엄한 시부모 밑에서 시집살이를 했다. 그때 아버지와 어머니로부터 냉면에 대해 배웠다. 당시는 엄한 시집살이에 눈물도 많이 흘렸지만 그 때문에 진주냉면을 배워 지금은 남부럽지 않은 재산도 모았다. 모두 다 부모님의 음덕이라고 생각한다.

아버지가 진주 서부시장 한 귀퉁이에서 고생고생 하면서 진주냉면의 전통을 이어온 덕분에 자식들은 다 부족하지 않게 살고 있다. 그래서 늘 부모님께 감사한 마음이다. 이제 하 대표와 박군자 대표의 관심은 어떻게 진주냉면을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냉면으로 만들어 갈 것인가 하는데 있다. 지금은 평양냉면이 진주냉면보다 유명하다. 하지만 맛으로는 진주냉면이 더 좋다고 자부하기 때문에 하 대표와 박 대표는 반드시 진주냉면을 전국 최고의 냉면으로 만들겠다는 각오다.

진주냉면은 해물을 소재로 육수를 만들고 메밀 면에다가 육전을 중심으로 고명을 얹어 맛과 영양을 두루 고려한 냉면이다. 영양과 음식의 궁합이 균형 잡혀 있어서 냉면 한 그릇만으로도 충분한 한 끼 식사가 된다. 진주냉면은 그 어떤 음식보다 영양과 건강이 종합된 미래지향적인 음식이라는 게 하 대표와 박 대표의 생각이다. 그래서 박군자 대표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음식인 비빔밥과 함께 진주냉면을 세계시장에 내 놓아도 인기를 끌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일은 혼자서 할 수는 없다. 그래서 하 대표와 박 대표는 진주냉면의 표준화와 프랜차이즈 추진에 열정을 다하고 있다.

하 대표와 박 대표가 진주냉면 체인점을 내주는 데는 기본 원칙이 있다. 그것은 식당 주인이 직접 주방 일을 봐야 한다는 원칙이다. 하 대표와 박 대표도 지금까지 직접 주방 일을 보고 있다. 식당은 주인이 주방을 보지 않으면 성공하지 못한다는 게 이들의 생각. 돈 좀 벌었다고 외제차 타고 다니면서 골프치고 카운터나 보겠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은 당장은 성공할지 몰라도 결국은 안 된다는 것이 하 대표와 박 대표의 지론이다. 자신들도 남부럽지 않은 부를 이뤘지만 지금도 매일 주방 일을 직접 하고 있다. 그런 사명감과 장인정신을 가진 사람을 뽑아서 체인점을 내주고 성공을 시키겠다는 게 하 대표와 하 대표의 생각이다.

박 대표와 하 대표는 이런 장신정신과 사명감을 가진 사람들을 모아서 진주냉면을 세계 최고의 음식으로 만드는 게 아버지 하거홍 선생과 어머니 황덕이 여사의 뜻이며 진주냉면 종갓집을 운영하고 있는 자신들의 의무라고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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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냉면의 시작은 언제인가.

△아버지 하거홍, 어머니 황덕이 여사가 1950년대 진주서부시장에서 냉면집을 시작한 때부터이다.

-그때도 진주냉면이라는 상호를 사용했나.

△그때는 진주냉면이라는 상호를 사용하지 않았고 부산냉면이라는 상호를 썼다. 그런데 아버지 어머니가 만드는 냉면이 독특하고 진주를 대표하는 음식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진주냉면으로 통칭하게 됐다.

-그럼 아버지 어머님께서 진주냉면을 독창적으로 개발하신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진주에는 기생문화가 융성했고 따라서 교방음식이 발달했다. 북쪽에는 평양기생이고 남쪽에는 진주기생이라고 불리지 않았나. 냉면은 양반들이 기생들과 음주 후에 후식과 입가심으로 먹는 음식이었던 것 같다. 그것이 시중으로 흘러나왔고 서민들이 먹기 시작했다. 아버지도 진주 교방음식이던 냉면에 대해 알고 계셨고 그것을 보완 발전시켜 독특한 본인의 비법을 만든 것으로 생각된다.

-진주냉면의 특징은 무엇인가.

△냉면은 간단한 음식이다. 이 간단한 음식이지만 맛은 천차만별이다. 그래서 냉면을 만드는 것은 예술이라는 생각으로 늘 임하고 있다. 진주냉면은 해물을 중심으로 한 육수, 메밀로 만든 면, 그리고 고명 등 세 가지 요소로 구성된다. 그중에 진주냉면의 가장 큰 특징은 해물을 소재로 한 육수이다. 그리고 고명에 육전이 들어가는 거다. 진주냉면은 다른 냉면과 달리 해물을 소재로 육수를 내기 때문에 먹고 나면 깔끔한 뒷맛이 있다. 그래서 아마 조선시대에 양반들이 기생들과 음주가무를 한 다음에 이 냉면을 먹지 않았나 싶다. 음주 후에 개운한 맛은 다른 냉면에서는 느낄 수 없는 맛이다.

-박군자 냉면의 특징은 무엇인가.

△우리는 아버님이 원래 하시던 전통의 맛을 그대로 고수하는 게 특징이다. 그래서 다른 형제들에 비해 좀 강하다는 평을 받는다.

-박군자 대표나 하연규 대표는 언제부터 냉면 일을 시작했나.

△<하연규 대표> 저는 중1때부터 아버지 밑에서 물 지개를 지면서 일을 시작했다. 저는 고등학교 때 까지는 덩치가 큰 편이었다. 학교에서 늘 덩치가 1~2번째 갔다. 그래서 아버지가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식당에 불러 물 지개 지는 일부터 시켰다.

-그때는 식당일 하는 게 좋지는 않았을 텐데.

△그렇다. 그런데 아버지가 평생 냉면 만드느라 물 지개를 지셔서 어깨가 내려앉았다. 그래서 그 모습을 보고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군대 갈 때까지 아버지 밑에서 냉면 일을 배웠다.

-그럼 처음부터 아버지 일을 이어받으려고 생각했나.

△아니다. 아버지 밑에서 냉면 일을 하면서도 절대로 식당일은 하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다. 그래서 학교 졸업 후에 부산에 가서 직장일도 2년 정도 했다. 그런데 적성에 맞지 않더라. 결국 다시 돌아와 식당일을 하게 됐다. 그게 지금까지 하고 있는 거다.

-박군자 대표는 언제 냉면을 배웠나.

△<박군자 대표>저는 직장에 다니다가 선을 봐서 남편과 결혼을 했다. 그때 남편이 식당에서 일을 하고 있더라. 결혼을 하고 3년을 시부모님과 함께 살았다. 그 3년 동안 부모님 식당에서 일을 하며 냉면을 배웠다.

-그럼 독립적인 냉면집은 언제 시작했나.

△3년을 시부모님을 모시고 나니 독립하라고 하셨다. 그래서 1990년도에 진주시 상평동에 부산냉면이라는 상호로 독립적인 냉면집을 시작했다. 그런데 그게 대박이 났다. 그때 돈을 엄청 벌었다. 그리고는 지금의 장소로 옮겨서 ‘박군자 진주냉면’이라는 상호로 시작했다.

-하연규 진주냉면이 아니고 박군자 진주냉면으로 한 이유가 무엇인가.

△<하연규 대표>부산냉면으로 하고 있으니 사람들이 우리가 만들고 있는 냉면이 우리나라에서 독특한 진주만의 냉면인데 부산이라는 상호가 들어가는 것은 맞지 않다고 지적을 많이 받았다. 그래서 진주냉면이라는 상호를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냉면은 저보다 아내인 박군자가 더 소질이 있고 잘 만들었다. 원래 아내가 손맛이 있다. 또 아버지, 어머니 밑에서 힘든 시집살이를 하면서 배워서 그런지 냉면은 저보다 더 맛있게 만들었다. 그래서 저보다는 박군자라는 이름을 넣어서 ‘박군자 진주냉면’으로 한 것이다. 진주냉면을 알리고 박군자의 독특한 냉면 맛도 알린다는 차원에서 그렇게 했다.

-그럼 아버지 어머니 아래에서 나온 게 박군자 진주냉면이 유일한가.

△아니다. 누나는 부산에서 진주냉면을 하고 있고 여동생이 진주에서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하연옥 진주냉면’을 하고 있다.

-그럼 하거홍, 황덕이 선생 밑에서 크게 보면 ‘박군자 진주냉면’ ‘하연옥 진주냉면’이 나온건가.

△그렇다.

-박군자 진주냉면과 하연옥 진주냉면 집의 냉면 맛은 같은가.

△장사라는 것이 형제들이라 하더라도 샘이 있다. 그래서 동생집의 냉면 맛을 우리가 평가하는 것은 좀 뭐하다. 다만 아무래도 뿌리가 같으니까 우리는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손님들은 약간 차이가 난다고 하더라. ‘박군자 진주냉면’이 맛있다는 사람도 있고 ‘하연옥 진주냉면’이 맛있다는 사람도 있다.

-어디가 더 맛있나.

△ 맛있는지 아닌지를 결정하는 것은 손님들 몫이다. 다만 ‘박군자 진주냉면’은 아버님이 만들었던 전통적인 방식을 고집한다고 우리는 생각하고 있다.

-하 대표와 박 대표는 이 육수의 비법을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았나.

△그렇다. 우리는 아버지가 만들던 그 방법대로 전통을 고수하고 있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아버지가 만들던 그 방법을 유지하려고 애쓴다. 그래서 옛날 아버지가 만들던 냉면 맛을 찾는 사람은 우리 집에 온다.

-앞으로는 어떻게 할 것인가.

△서울 송파구에 ‘박군자 진주냉면’을 내년 3월 쯤 오픈해 ‘박군자 진주냉면의 전국화, 세계화를 위해 본격적으로 나설 생각이다.

-현재 체인점은 전국적으로 몇 곳이나 되나.

△현재 전국에 30개 정도의 체인점이 있다.

-체인점을 내는 기준은 무엇인가.

△주방을 오픈하고 주인이 직접 주방을 보는 것, 이 두 가지이다. 주인이 주방 일을 직접 하지 않으면 아무리 유능하고 돈이 많은 사람이 와도 체인점을 주지 않는다.

-이유가 무엇인가.

△저도 그렇지만 식당이라는 것이 주인이 직접 주방을 봐야 음식 맛이 일정해진다. 그래야 장사도 잘 되고 성공한다. 그렇지 않으면 처음에는 브랜드 명성으로 손님이 온다. 그렇지만 오래가지 않아 맛이 들쭉날쭉하고 관리가 잘 안 돼 결국 식당이 오래가지 못한다. 이것은 우리의 경험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 어떤 경우라도 주인이 직접 주방 일을 하는 것이 우리가 정한 제1의 원칙이다.

-그럼 하 대표와 박 대표도 직접 주방 일을 하나.

△그렇다. 우리도 직접 주방을 오픈하고 주방 일을 직접 한다. 여기 와서 보면 냉면을 먹을 때 박 대표가 육전을 직접 만드는 장면을 늘 볼 수 있다. 시즌인 여름철에는 손님이 하루에 1천명이 넘을 때도 부지기수다. 그런 날은 저녁에 우리 모두 초죽음이 된다. 우리가 초죽음이 될 정도로 힘든 노동을 해야 할 정도로 가난하지는 않다. 그래도 우리는 우리가 직접 진주냉면을 만든다는 그런 자세를 아직은 포기할 생각이 없다. 우리는 진주냉면의 종가라는 그런 사명감과 장인정신으로 냉면을 만들고 있다.

-체인점을 하려는 사람들은 많나.

△‘박군자 진주냉면’은 홍보를 하지 않는다. 그래도 입소문을 듣고 체인점을 하려는 사람들이 100명이 넘게 대기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쉽게 체인점을 내주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주인이 직접 주방 일을 볼 것인가, 하는 것 때문에 그렇다. 하고 싶다는 사람 다 체인점 내 줬으면 전국에 1만개는 됐을 거다.

-진주냉면이 진주 아닌 곳에서도 통할까.

△2013년 3월 경기도 수원에서 저희들이 직접 진주냉면 집을 열었던 적이 있다. 그런데 그때 하루에 수천 명 정도가 냉면 먹으려고 줄을 서서 경찰이 나와 질서정리를 한 적이 있다. 수원이 생긴 이래 전무후무한 일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사람들이 아이돌 콘서트가 열린 줄 알았을 정도이다.

-그 집은 어떻게 했나.

△한달 정도 하다가 계속 이러다간 우리가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다른 사람에게 넘겼다. 지금도 장사가 잘 되고 있다.

-사람들이 박군자 진주냉면을 하면 잘할 수 있을까.

△우리는 퇴직한 사람들이 부부가 결심을 해서 직접 주방을 보면서 고생하겠다는 각오를 한다면 먹고사는 문제는 해결이 된다고 생각한다. 요즘은 냉면을 여름철에만 먹지는 않는다.
또 면집이 밥집 보다는 마진이 좋고 쉽다. 그래서 직접 하겠다는 각오만 하면 살아가는데는 큰 문제는 없다고 생각한다.

-‘박군자 진주냉면’ 집을 여는데 얼마정도가 필요한가.

△식당의 크기, 위치 등에 따라 다르다. 우리는 2억 정도면 개업할 수 있다고 본다. 냉면집은 테이블 2~3개 놓고 식당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빵집을 오픈하는 것 보다는 적게 든다.

황인태 본지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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