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우칼럼] 잔디밭에서 풀을 뽑으며
[정용우칼럼] 잔디밭에서 풀을 뽑으며
  • 경남미디어
  • 승인 2019.05.17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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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우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과 객원교수(전 학부장)
정용우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과 객원교수(전 학부장)

어제 오후 햇볕이 좋아 잔디밭 잡초 - 여기서의 ‘잡초’는 나와 잔디의 입장에서 이야기한 것일 뿐, 자기는 그냥 당당한 한 생명이라고 여길 것이다 - 제거작업을 했다. 작업에 들어갔다 하면 오직 풀뽑기에 집중할 뿐 다른 일은 잊어버린다. 그야말로 무심(無心)의 경지에 빠져든다. 좋고 나쁨도 없어지고, 선과 악, 행복과 불행, 삶과 죽음 등 모든 생각은 정지되어버리고 오직 풀만 뽑는다. 시간 개념마저도 잃어버린 채 작업은 계속된다.

이때쯤이면 해거름 밭농사일 마치고 이웃 아주머니들이 귀가한다. 잔디밭에서 풀 뽑고 있는 나에게 한마디씩 거든다. “어두워지는 데 무슨 일을 그렇게 골똘하게 하고 있노?” “잔디밭 풀 뽑고 있습니다”하고 대답하면 “그냥 농약 치면 될 텐데 뭘 그렇게 수고스럽게 뽑고 있노? 옆집 누구는 농약 치니 얼매나 잔디밭이 깨끗하게 되어 있더노? 농약이 최고데이” 이렇게 말씀하신다.

정말 잡초는 생명력이 강하다. 특히 토끼풀과 쑥이라는 놈은 더욱 그렇다. 이 토끼풀과 쑥 외에도 내가 그 이름을 모르는 2종류의 질긴 놈이 더 있다. 땅 밑 줄기로 뻗어나가는 놈들이다. 이들은 매일 잎을 떼어내지 않는다면 제거가 불가능하다. 어쩌다 장시간 집을 비웠다가 돌아와 보면 그냥 또 덤불을 이루고 있다. 덤불을 이룬 상태가 되면 농약 없이는 제거가 힘들어진다. 이때는 나도 어쩔 수 없이 그 덤불을 이루고 있는 부분에 한해서 농약을 친다. 며칠 지나면 잔디는 그대로 살아 있고 잡풀만 멋지게 제거된다. ‘아 이래서 보통 사람들이 농약의 유혹을 벗어나지 못하는구나’ 하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나는 가능한 한 농약을 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농약을 치는 대신에 손으로 풀을 뽑는 것이다. 앞에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풀뽑기는 나를 무심의 경지로 인도하니 ‘수행 흉내내기’의 좋은 방편이기도 하다. 예로부터 현자들은 ‘마음을 비우라’고 끝없이 가르쳐왔다. 마음을 비우게 되면 그 자리에 청정한 마음, 광명스러운 마음이 찾아든다고 했다. 바로 그 마음이 자기 본성이고, 그 자리가 곧 부처라고 가르쳐왔다. 그래서 수많은 선지식들이 시도 때도 없이 이렇게 무심을 가르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 관점에서 풀뽑기를 통하여 ‘수행 흉내내기’를 시도해 보는 것도 또 하나의 즐거움일 수 있겠구나 하고 생각해 본 것이다. 혹시 나에게도 시절인연이 닿는다면 ‘탐욕도 벗어 놓고, 미움도 버려두고, 물처럼 바람처럼 살다가 가라’고 한 나옹선사나, ‘아무 것에도 걸림이 없는 마음, 욕심 다 버린 뒤 넓어진 마음, 다 버려 고요히 깊어지는 마음’을 이야기 한 장자가 느낀 그러한 비움의 경지를 조금이나마 맛볼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가능한 한 농약을 치지 않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그것은 ‘생태적 각성’이다. 풀을 잡겠다고 농약을 마구 치는 일에 아픔이 느껴져 다른 방법을 찾아보는 자세가 바로 ‘생태적 각성’이다. 자동차가 미세먼지 오염원이라고 해서 자동차를 사용하지 않을 수 없다. 부득이하여 자동차를 사용하되 ‘생태적 각성’에 근거하여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의 몸이 비록 현실의 요구나 욕망 때문에 어떤 행위를 하더라도 순간순간 자신의 행위가 생명의 요구에 옳게 반응하고 있는지 물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농약을 치지 않고 직접 손으로 잡초를 뽑아내지만 이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몸이 고되다. 몸이 고통을 느낄 때쯤이면 작업을 중단하고 뽑아낸 풀을 한곳에 모은다. 돌아보니 잔디밭이 말끔해졌다. 기분이 좋다. 그러나 풀은 자기 생명을 잃었다. 그래서 잡초에게 용서를 빈다. “잡초야 미안하다. 내 이기(利己)로 인하여 네 생명을 단축했구나.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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