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규 합천농협 조합장 - 두 번의 조합장 선거 모두 치열한 경쟁 속에 당선
최정규 합천농협 조합장 - 두 번의 조합장 선거 모두 치열한 경쟁 속에 당선
  • 경남미디어
  • 승인 2019.05.24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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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년 농협 근무한 경험 바탕으로 합천농협 이끌어
첫 임기 중 49% 불과한 예대비율 80%까지 높여
과거 사고로 난 손해 해결하며 경영능력 인정받아
농협은 농민들에게 봉사하는 곳…조합원은 ‘가족’

최정규(62) 합천농협 조합장은 직원 출신으로 재선 조합장이다. 두 번 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당선됐다. 처음 출마했을 때는 세 번째 출마인 일반인과 합천농협에서 함께 지내며 같은 날 명예퇴직했던 동료, 3명이 경쟁해 37%로 당선됐다. 두 번째 출마에서는 38세 젊은 나이 때부터 합천농협에서 감사 세 번과 비상임이사로 10년 동안 지내온 능력이 많은 48세 젊은 후보와 경쟁해 54% 득표해 조합장에 당선됐다. 최 조합장은 자신이 쟁쟁한 후보들과 치열한 경쟁 속에서도 조합원의 선택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로는 조합원을 진심으로 대하는 마음과 지난 임기 동안 합천농협을 살리기 위해 해낸 업적들을 꼽았다.

최정규 합천농협 조합장은 두 번의 조합장 선거 모두 치열한 경쟁 속에 조합원들로부터 진심 어린 마음과 경영능력을 인정받아 당선됐다.
최정규 합천농협 조합장은 두 번의 조합장 선거 모두 치열한 경쟁 속에 조합원들로부터 진심 어린 마음과 경영능력을 인정받아 당선됐다.

최 조합장은 실제로 지난 임기 동안 합천농협을 살리기 위해 많은 일을 해냈다. 합천농협은 군 중심에 위치해 경제사업보다는 신용사업으로 몸집을 키워야 했다. 그러나 자신이 조합장 되기 전 합천농협의 예대비율(예금대비 대출 가능한 비율)은 49%에 불과해 최 조합장은 첫 출마에서 예대비율을 70%까지 키울 것을 공약으로 삼았다. 이에 당선 후 자신을 중심으로 전 임직원과 노력한 결과 임기를 시작한 지 2년 만에 예대비율을 공약보다 10% 더 많은 80%를 달성하는 경이로운 성적을 거두었다.

최 조합장은 자신이 이번 선거에서 당선된 또 다른 이유로는 RPC(미곡종합처리장)사업 사고를 슬기롭게 해결한 점도 꼽았다. 조합장 취임 전 합천군 내 농협들은 연합으로 RPC사업을 진행했다. 그러던 중 미수금을 받지 못해 사고가 났고, 이로 인해 합천군 내 농협들에게 30억 여원의 손해가 났다. 최 조합장이 취임하자 관리조합이었던 합천농협은 규정에는 없지만 관리조합이라는 이유로 50%의 손해를 부담해야 했다. 이에 최 조합장은 소송으로 손해를 24억원으로 줄이고, 합천농협이 부담해야 하는 12억도 동분서주하며 3년 만에 해결해 지금은 안정화를 시켰다. 이러한 추진력으로 조합원들에게 만족할 만한 경영성과를 보여줘 인정을 받은 것이다.

합천농협은 합천읍과 봉산·묘산·대양면이 합병한 농협이다. 대부분 다른 농협들과 달리 읍내 중심에 본점과 하나로마트, 주유소 등이 한 곳에 모여 합천군의 랜드마크처럼 자리하고 있다. 이에 합천군 인구가 4만5000여명에도 불구하고 하나로마트는 지난해 기준으로 일 매출 3000만원, 연 매출 120억원을 기록하고 있고, 주유소도 연 매출 50억원을 달성하고 있다.

합천농협은 대부분 다른 농협들과 달리 읍내 중심에 본점과 하나로마트, 주유소 등이 한 곳에 모여 합천군의 랜드마크처럼 자리하고 있다.
합천농협은 대부분 다른 농협들과 달리 읍내 중심에 본점과 하나로마트, 주유소 등이 한 곳에 모여 합천군의 랜드마크처럼 자리하고 있다.

최 조합장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이번 임기 중에 합천농협을 더 키워나갈 계획을 하고 있다. 부임 이전인 2015년 860억원에서 현재 1760억원으로 두 배가 늘어난 대출은 2000억원을 달성목표로 달려가고, 예대비율을 75%이상 꾸준히 유지하기 위해 예금도 2500억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지난 임기 동안 최 조합장의 경영성과를 보면 이번 목표도 가능할 전망이다.

또 신용사업과 더불어 경제사업도 현재 진행하고 있는 하나로마트 리모델링을 통해 연 매출 150억원을 달성하고 주유소도 연매출 60억원 목표로 해 수익을 늘려나갈 계획이다. 이 수익으로 최 조합장은 손익이 나는 범위 안에서 농약·농자재·비료 등을 할인판매하는 환원사업을 확대해 조합원들의 농가부담을 덜어줄 생각이다.

최 조합장의 경영 방침은 단합과 소통을 최우선으로 두고 있다. 최 조합장이 초선으로 처음 취임한 후 얼마 지나지 않은 4년 전, 전 조합장 때부터 직원들이 준비해오던 노조가 출범했다. 처음에는 노조 입장에서 요구가 커 갈등도 많았고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 하지만 최 조합장은 농협의 손익 내에서 노조의 요구를 합리적으로 수용할 것은 하면서 갈등을 풀어나가 현재는 많이 완화된 상태이다. 또 최 조합장은 조합원들과의 소통을 위해 매년 좌담회를 실시해 전 조합원이 모인 자리에서 직접 운영공개를 하며 조합원의 의견을 청취해 사업계획 및 농협운영에 반영하고 있다. 이번 임기에서도 최 조합장은 좌담회를 통해 신뢰받는 농협이 되도록 소통할 계획이다.

최정규 조합장은 1958년 합천군 묘산면에서 태어났다. 묘산초등학교, 묘산중학교를 나와 농협에 입사하기 위해 당시 상고였던 대구 협성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최 조합장의 어렸을 때 꿈도 은행원이었다. 그리하여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년 후인 1978년 공채시험을 통해 농협과 인연을 시작했다. 이후로 36년간 농협에 근무하면서 형편에 맞게 근면·성실하게 살자는 일념 하나로 억울한 일들도 참아내고 2014년 상무로 명예퇴직했다.

최 조합장은 어린 시절부터 농협에 근무하면서 한 직장에서 오래 있다 보니 수장을 해서 자신만의 철학으로 경영을 해보고 싶어 조합장에 나오게 됐다. 초선과 재선 모두 선거는 쉽지 않았지만, 조합원들의 좋은 평가로 치열한 경쟁 속에 당선이라는 영광을 안았다.

최 조합장은 그동안 치열한 선거를 치러오면서 선거라면은 다시는 하기 싫다고 했다. 하지만 이번 임기 내에 많은 성과를 이뤄내 조합원들이 한 번 더 기회를 준다면 무투표로는 3선에 나서 봉사를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다음은 최정규 조합장과의 인터뷰이다.

▲합천농협은 관할이 어떻게 되나.

-합천읍, 봉산면, 묘산면, 대양면으로 1개읍 3개면을 관리하고 있다.

▲합병농협인가.

그렇다. 1989년도에 1차로 합천농협, 대양농협, 봉산농협이 합병했고, 2년 후 묘산농협까지 합병했다.

▲관할하고 있는 곳이 많아서 본점 부지가 꽤 크다.

-그렇다. 다른 대부분 농협과 달리 합천 중심가에 본점과 하나로마트, 주유소가 모여 합천군의 랜드마크처럼 자리하고 있다.

▲조합원은 몇 명인가.

-약 2450명 정도 된다.

▲이번 선거는 재선인가.

-그렇다. 재선도전이었다.

▲득표율이 얼마였나.

-두 명이 경쟁했는데 54%정도의 득표를 얻었다.

▲그 정도라면 선거가 매우 치열했겠다.

-맞다. 이전에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38세 젊은 나이 때부터 비상임감사 3번과 비상임이사 1번을 10년 동안 지내온 48세의 젊은 분과 선거를 치뤘는데 매우 힘겨웠다.

▲이번 선거의 쟁점이 뭐였나.

-상대 후보는 젊은 패기였고, 저는 35년간 농협에 몸담은 경험으로 선거를 치뤘다. 아마 나이많은 조합원들이 상대 후보가 경험을 더 쌓아야 한다고 생각한 것 같다.

▲이전에 선거도 치열했다는데 어떠했나.

-이전에 선거에서는 3명이 선거를 붙어 37%로 당선됐었다.

▲정말 치열했겠다.

-맞다. 후보도 한 분은 3번 출마경험이 있는 분이었고, 한 분은 저와 함께 농협 생활을 지내다 같은 날 명예퇴직을 한 동료였다. 정말 힘겹게 됐다.

▲어떤 점이 조합원들의 선택을 받았다 생각하나.

-조합원을 진심으로 대하는 마음과 지난 임기 동안 합천농협을 살리기 위해 해낸 업적들을 조합원들께서 좋게 평가해주신 것 같다.

▲어떤 일들이 있었나.

-제가 조합장이 되기 전 합천농협은 합천군 중심에 있었기에 경제사업보다는 신용사업으로 몸집을 키워야 했다. 하지만 예대비율은 절반도 안되는 49%에 불과했다.

▲그래서 어떻게 했나.

-첫 출마 때 공약을 예대비율 70%달성을 목표로 내걸었고, 2년 만에 공약보다 10%많은 80%를 달성했다.

▲2년 만에 이게 가능한가.

-주말도 없이 모든 임직원들이 대출목표를 잡고 관내, 관외 따지지 않고 수도권을 중심으로 정말 열심히 뛰어다녔다.

▲직원들이 힘들어했겠다.

-아마 제가 조합장이 되고 나서 개인마다 대출목표가 생겼으니 싫어했을 수도 있지만, 부담을 줄여주고자 70% 정도는 제가 했다.

▲또 다른 성과는 없나

-합천농협에 제가 취임하자마자 그동안 잠재돼있던 사고가 많이 터졌는데 그것을 모두 해결했다.

▲어떤 사고였나

-과거 합천군 내 농협들이 연합으로 미곡처리장사업, 즉 RPC사업을 했는데 쌀 미수금을 받지 못해 제가 취임하자 농협들이 30억여 원의 손해를 봐야하는 사고가 터졌다.

▲그래서 어떻게 해결했나.

-연합으로 한 RPC사업이라 수익도 공동, 손해도 공동으로 부담 해야하지만 합천농협이 관리조합이라는 이유로 관리가 부실했다며 규정에는 없지만 50%의 손해를 부담해야 했다. 이렇게 되면 손해가 막심해 취임 후 합천군 내 조합들을 뛰어다니고 소송도 진행하며 손해를 24억까지 줄였다. 이에 12억원의 손해를 보긴했지만 3년 만에 해결하고, RPC사업 사고에 따른 세무조사도 문제없이 해결했다.

▲또 어떤 사고가 있었나.

-전 조합장 시절 농협은 수익을 창출해야 하는데 예대비율이 낮으니 그럴 수 없어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에 주식투자를 했었다. 한진해운에 투자를 했었는데 제가 조합장 시절 한진해운이 하루아침에 갑자기 파산을 하면서 다 종이쪼가리로 돼 15억원의 손실을 봤다. 지금은 손실을 다 처리했고, 현대상선 5만 주는 아직 보유하고 있다.

▲또 다른 일은

-제가 취임하고 나서 노조가 생겼었다. 전 조합장 때부터 준비해오던 노조였는데 처음에는 요구가 크니깐 없을 때 보다는 갈등도 많았고 힘도 많이 들었다.

▲지금도 그런가

-아니다. 노조의 요구에 손익이 나는 범위 내에서 합리적으로 수용할 부분을 수용해주면서 지금은 갈등이 많이 완화된 상태이다. 저는 4년 임기를 채우면 그만두지만, 노조는 직원들이다. 직원들은 20년 이상을 이곳에 몸담아야 하는데 근로자로써의 요구도 있겠지만 직장이 우선이 되야하기 때문에 이런 부분을 노조에게 많이 어필했고, 노조의 의견도 이사회에 의견을 물어 어느 정도 손익 내에서 들어줄 수 있는 것은 들어줘 지금은 큰 트러블없이 지내고 있다.

▲이번 임기 동안 할 일은 무엇인가.

-오랫동안 농협에 몸 담고 있으면서 각 농협은 신용사업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지금 예대비율을 75% 유지하면서 예금과 여신을 각각 2500억원, 2000억원까지 늘려나갈 것이다.

▲그럼 경제사업은 어떻게 할 것인가.

-경제사업도 물론 활성화시킬 것이다. 신용사업이 중심이 돼야 한다는 말은 신용사업과 경제사업을 6대4나 7대3의 비율로 해야한다는 말이다. 농협을 크게 키우기 위해서는 예대비율이 높아야 한다.

▲그럼 예금과 대출, 어떻게 높일 계획인가.

-농촌에서 예금과 대출을 늘리는 데는 한계가 있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출항인사들의 도움을 받아 계속 늘려나갈 생각이다.

▲경제사업은 어떻게 할 것인가.

-경제사업은 지금 하나로마트가 일 매출 3000만원, 연매출 120억을 기록하고 있고, 주유소도 연매출 50억원을 달성하고 있다. 하지만 이에 만족하지 않고 하나로마트 연매출 150억원, 주유소 60억원을 달성할 계획이다.

▲계획이 있나.

-지금 하나로마트 리모델링을 진행하고 있는데 내부시설을 보완하고 상품을 다양하게 해 값싸고 좋은 물건을 많이 보급할 계획이다. 합천군 내 중심에 위치해 많은 군민들이 찾기에 군민들이 만족할 수 있도록 한다면 충분히 가능성 있다고 본다.

▲그 외 구상하고 있는 일은

-환원사업을 확대할 계획이다. 신용사업과 경제사업의 수익으로 조합원들에게 농약·농자재·비료 등을 할인판매해 조합원들의 농가부담을 덜어줄 계획이다.

▲또 다른 일은

-사고 없는 농협, 단결되는 농협을 만들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저희 농협에는 사고가 많았다.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직원들과 단결해 철저한 일 처리로 농협에 손해를 끼치는 일이 없도록 할 계획이다. 농협은 본연의 업무를 농협정신에 원칙이 어긋나지 않으면서 우리 상대가 한 가족 같은 농민인 것을 잊지 말고 어려운 농촌에 봉사한다는 자세로 근무해야 한다.

▲개인적인 얘기를 해보자. 언제 어디서 태어났나.

-1958년 묘산면에서 태어나 농민인 부모님 밑에서 자랐다.

▲학교는 어떻게 되나.

-묘산초·중학교를 나와 대구 협성고등학교를 진학했다.

▲대구로 고등학교를 진학한 다른 이유가 있나.

-어렸을 때부터 꿈이 은행원이었다. 당시 대구 협성고등학교는 상고로 은행원이 되기 위해 시험을 쳐서 들어갔다.

▲그럼 농협과는 언제 인연을 맺었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년 뒤인 1978년도 공채시험을 통해 농협에 입사를 했다.

▲그럼 지금까지 농협에서만 일했나.

-그렇다. 36년을 농협에서 일하고, 상무로 명예퇴직했다.

▲주로 어디에서 근무했나.

-합천농협, 하나로마트점장, 대양·봉산·묘산지점 지점장까지 다해봤다.

▲36년간 농협에 근무하면서 추억이 많겠다. 기억나는 일이 있나.

-울릉도에 쌀을 팔았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1995년도 묘산농협에 있을 때였는데 울릉도까지 판로를 개척해서 쌀을 도정에서부터 배에 선착하는 것까지 책임지고 했다. 그때 당시 돈으로 20억에서 30억 정도를 팔았다. 또 대출을 내어줄 때 취급자의 잘못으로 책임자인 제가 변상을 했었던 것도 기억에 남는다. 그때 당시 돈으로 2500만원이었는데 대구 시내에 아파트 한 채를 살 수 있는 돈이었다.

▲조합장의 꿈은 언제 꾸게 됐나.

-36세에 일찍 상무로 진급했었다. 그러면서 합천농협의 지점 거의 모든 곳에서 장으로 몸담게 됐었는데 합천농협의 수장이 돼 나만의 경영방식으로 농협을 이끌어보고자 하는 마음이 생겨서 출마했었다.

▲3선에도 도전할 생각인가.

-지금은 모르겠다. 하지만 선거를 치러야 한다면 다시는 안 할 것 같다. 하지만 이번 임기 내에 성과로 조합원들이 한 번 더 기회를 준다면 무투표로는 3선에 나서 봉사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강정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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