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국 고성 동부농협 조합장 - 아버지에 이어 2대째 조합장이 되다
장영국 고성 동부농협 조합장 - 아버지에 이어 2대째 조합장이 되다
  • 경남미디어
  • 승인 2019.05.30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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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동부농협 전신인 동해농협 조합장 역임
절대 불리한 여건에서 아버지의 음덕으로 당선돼
원로 조합원 업무 도우미 배치하여 업무전반 지원

장영국 고성 동부농협 조합장은 아버지에 이어 2대째 조합장이 된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대를 이어 조합장을 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이번 선거에서도 아버지가 조합장을 하시면서 쌓아온 덕을 많이 봤다.

장영국 조합장은 이번 당선으로 선친에 이어 2대째 동부농협 조합장이 됐다.
장영국 조합장은 이번 당선으로 선친에 이어 2대째 동부농협 조합장이 됐다.

이번 선거는 주변 사람들이 모두 다 이기지 못하는 선거라고 했다. 현직 조합장이 출마했다. 그리고 자신이 출마한 면에서 4명의 후보가 나왔다. 현직 조합장이 출마한 면에서는 1명뿐이었다. 선거구도로 보나 조직력으로 보나 게임이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현직 조합장을 누르고 당당히 당선됐다. 장 조합장은 그 이유로 자신이 평생 조합사무실 근처에서 살아온 것을 들었다.

보통 면 단위 농협의 직원은 읍에서 살면서 출퇴근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장 조합장은 오늘을 생각해서 그런 것은 아니지만 면의 조합사무실 근처에서 평생을 살았다. 그렇게 우직하게 살아온 것에 대해 조합원들이 늘 주의 깊게 봤다는 의미이다. 그런 우직함을 평가받아 절대 불리한 선거 여건에서도 승리할 수 있었다.

장 조합장은 선거 승리의 또 하나의 이유로 아버지를 들었다. 아버지는 지금의 동부조합 전신인 동해농협의 창시자 중 한 명이다. 동해농협에서 조합장까지 하셨다. 어릴 때 동해조합 비료창고 열쇠를 가지고 놀았던 기억도 있다. 아버지가 동해조합장을 하시면서 많은 덕을 쌓으셨다. 지금의 조합원들 중에 그걸 기억하는 분들이 많았다. 그래서 영광스럽게 2대째 조합장을 할 수 있게 됐다.

고성 동부농협은 특별한 현안이나 쟁점은 없다. 나름대로 잘 운영되고 있는 조합이라는 게 장 조합장의 얘기이다. 다만 원로 조합원들이 많다 보니 이들이 업무를 보는 데 어려움이 많다. 그래서 장 조합장은 임기 중에 원로 조합원 업무 도우미를 배치해서 안내부터 업무까지 도와 주주는 역할을 하도록 제도화할 계획이다. 또 동부조합은 시금치가 주 소득 작목이다. 15년 전부터 심기 시작한 시금치가 이제는 주 소득원이 됐다. 그래서 동부조합이 생산하는 시금치에 대한 브랜드화가 필요한 시점이 됐다. 그래서 장 조합장은 이번 임기 중에 ‘고성’이라는 용어가 들어가는 브랜드를 만들 계획이다. 그 외 거류면에 지점 2개 내는 것 등이 현안이라면 현안이다.

장영국 조합장은 1959년 거류면 감서리에서 10남매의 9번째로 태어났다. 태어날 당시 아버지가 농협 조합장이었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조합의 비료창고 열쇠를 가지고 놀았던 기억이 있다. 어려서는 부농이어서 그런지 형님, 누나들을 대 객지에 보내 공부를 시켰다. 아버지는 이상하게도 막내인 자신만은 농사를 지어야 한다며 객지로 보내주지 않고 고성농고에 보냈다. 그런데 장 조합장은 고성농고 2학년 때 공부에 눈이 뜨였다. 그때 무슨 일인지 모르겠는데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됐다. 그래서 책을 잡고 씨름도 했다. 그런데 3학년 때 대학진학을 위한 예비고사 치는 날에 다리를 다쳐 시험을 보지 못했다. 그래서 재수를 해야 겠다는 생각에 부산에 계신 누님댁에 가서 학원등록을 했다. 하지만 이를 본 큰 형이 부산에 와서 “너는 고향에서 농사지어야 한다”며 고향으로 돌려보냈다. 그러나 공부에 대한 꿈을 접지 못했던 장 조합장은 이듬해 진주농림전문대학 조경과에 진학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군에 갔다 온 장 조합장은 아버지 몰래 서울에 가서 조경공사에 시험을 쳤다. 그런데 당시는 88올림픽을 준비하고 있던 시기라 조경기사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때였다. 시험에 당당히 합격한 장 조합장은 서울에서 청운의 뜻을 품고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버지가 올라오셔서 “주변에 자식들이 없으니 이웃사람들에게 두들겨 맞게 생겼다. 네가 내려와서 농사지어라. 내가 가진 논밭은 네게 다 주마”고 읍소를 하시는 것이었다. 아버지가 그렇게 말씀하시니 또 마음이 심쿵해져서 아버지 뜻에 따라 고향으로 낙향했다.

고향에 와서는 농사일을 하긴 했지만 체질에 잘 맞진 않았다. 그래서 85년도에 치러진 농협공채시험을 쳐서 농협에 들어오게 됐다. 그리고는 32년간 농협직원으로 살았다. 아버지가 물려주신다던 논밭은 사업을 하시던 형님들이 다 팔아먹고 실제 물려받은 것은 별로 없었다. 그래도 아버지 덕분에 말년에 농협 조합장까지 하게 됐다. 아버지가 선대 조합장으로 많은 덕을 베풀었기에 이번처럼 어려운 여건에서도 조합장이 될 수 있었다고 생각된다. 이렇게 되고 보니 고향에 남으라는 아버지의 말씀이 그때는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지금은 깊은 뜻이 있지 않았나하는 생각도 든다.

다음은 장영국 조합장과의 인터뷰이다.

▲동부농협이 관할이 어디인가.

-경남 고성군 거류면과 동해면을 관할로 두고 있다. 현재는 고성동부농협이 아니고 그냥 동부농협이다. 사람들이 헷갈려 한다. 진주에도 동부농협이 있고 다른 시군에도 동부농협이 있다. 그래서 제 임기 중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동부농협을 고성동부농협으로 개명을 해야 한다.

▲조합 이름 바꾸는 것이 어렵나.

-그렇지는 않다. 그래도 조합원 총회를 거쳐야 하고 농림부 승인을 받아야 한다. 그런 절차를 거쳐야 한다. 그래서 시간이 걸린다.

▲조합장은 이번이 초선인가.

-그렇다. 처음 출마해 당선됐다.

▲몇 명이 출마했나.

-현직 조합장을 포함해 모두 5명이 출마했다.

▲그럼 현직을 누르고 당선된 것인가.

-그렇다. 제가 약 37%를 얻었고 현직 조합장이 약 30%를 얻었다.

▲현직 조합장을 이긴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5명의 후보 중 조합 직원 출신은 저 한 명이었다. 그런 게 조합원들이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또 아버지의 도움도 받았다.

▲아버지의 도움이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나.

-아버지가 지금 동부농협의 전신인 동해농협의 창립멤버였다. 조합장까지 하시는 등 조합을 위해 평생을 사셨다. 또 누나도 조합에서 8년 정도 직원으로 근무를 했다. 우리 집안이 농협집안인 셈이다. 약 50년 동안 동부조합을 위해 저희 가족들이 많이 기여를 했다. 이번에 선거를 해보니 그것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 아버지가 해 온 일들로 인해 좋은 평가를 하는 조합원들이 있었다. 그런 게 득표에 도움이 됐다고 생각한다.

▲이번 선거에서 힘든 일이 무엇이었나.

-모든 사람들이 현직 조합장을 이기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정이 그런 것이 동부농협이 동해면과 거류면의 2개 면을 관할하고 있다. 그런데 제가 출마한 거류면에서 4명이 나왔다. 현직 조합장 고향인 동해면에서는 1명이었다. 선거라는 게 소지역주의가 있다. 자기면 출신이 조합장이 됐으면 하는 생각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선거구도상 제가 이길 수 없는 형편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이겼나.

-사람들이 모르는 저만의 노하우가 있었다.

▲그게 뭔가.

-저는 조합에 들어온 이래 지금 조합사무실이 있는 이 동네에서 살았다. 이 동네에서만 약 30년을 산 셈이다.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않나.

-조합의 직원이 되면 다 읍에서 생활하면서 출퇴근한다. 자녀들 교육문제도 있고 여러 사정이 있어서 그렇게 한다. 그런데 저는 입사 때부터 이 사무실 근처에서만 살았다. 그게 기본 바탕이 됐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우직하다고 생각했을 것 같다.

-그렇다. 평생을 저에 대해 봐 온 것이다. 그래서 조합원들의 신뢰가 깊다고 저는 생각한다. 그런 게 모든 조건이 불리한 가운데서도 제가 승리하게 된 이유가 아닌가 생각된다.

▲동부조합의 현안은 무엇이 있나.

-동부농협 관할지역은 시금치가 주산지이다. 남해군만큼 시금치를 많이 재배한다. 연간 80억 원 정도의 소출을 올리고 있으니 면 단위 조합으로서는 큰 편이다. 그래서 시금치 전국브랜드를 만들어야 한다. 그게 현안이다.

▲어떤 브랜드로 할 것인가.

-고성 동부 시금치란 브랜드를 생각하고 있다. 조합원들과 더 논의해봐야 한다.

▲여기서는 시금치를 언제부터 재배했나.

-15년 정도 된다. 그런데 지금은 주 작목이 됐다. 약 1000농가가 한다. 많이 하는 농가는 연간 3000만 원 정도의 수입을 올리고 있다. 그래서 조합원들이 시금치 가격에 민감하다. 이번 선거에서도 시금치 가격을 어떻게 안정시킬 것인가 그런 게 중요한 이슈가 됐다.

▲동부조합의 또 다른 현안은 무엇인가.

-거류면 용산리와 송정리에 새로운 지점을 내야 할 것 같다. 그런데 그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고민하고 있다. 또 자재창고도 만들어야 한다. 예산이 10~15억 원 정도 들어갈 것 같다. 제 임기 중에는 완공하지 않을까 싶다.

▲여기도 고령 조합원들 때문에 어려운 일들이 많은가.

-우리 조합도 그렇다. 70대 이상 원로 조합원들이 많다. 그래서 이분들에 대해 특별히 신경을 써야 한다.

▲예를 들면 어떤 것들인가.

-원로 조합원 중에는 치매 직전인 분들도 많다. 이런 분들은 업무처리를 잘 못한다. 지금 하고 계시던 일도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이분들이 조합에 오면 업무 도우미를 배치해서 모든 것을 대신 처리해 주도록 할 생각이다. 안내에서부터 업무진행까지 모든 일을 업무 도우미가 처리하도록 제도화할 생각이다. 이런 일들을 조합이 해야 되지 않나, 그렇게 생각한다.

▲신용사업은 규모가 얼마나 되나.

-예금이 2200억 원, 대출이 2000억 원 규모이다.

▲상당히 예대비율이 높다.

-그렇다. 동부조합의 경우 경영은 안정돼 있다고 보여진다.

▲조합의 자산은 얼마나 되나.

-현재 2500억 원 수준이다. 면 단위 조합으로서는 큰 편이다. 그래서 비상근 조합장이다. 2500억 원 이상이면 비상근 조합장을 둘 수 있다.

▲비상근 조합장이면 임기제한이 없지 않은가.

-그렇다. 종신조합장도 할 수가 있다.

▲조합장도 그런 꿈이 있나.

-그렇지 않다. 동부조합은 재선조합장도 잘 허용하지 않는다. 전직 조합장이 유일하게 재선조합장이었는데 이번 선거에서 저한테 졌다. 그만큼 동부조합은 야당성이 강한 곳이다. 그래서 오래한다는 것은 아예 생각하지도 않고 있다.

▲개인적인 얘기를 해 보자. 언제 어디서 태어났나.

-1959년생이다. 고성군 거류면 감서리에서 조합장의 9번째 아들로 태어났다.

▲형제가 9명이었나.

-아니다. 10명이었다. 제가 9번째이다. 현재는 8명이 생존해 있다.

▲학교는 어떻게 되나.

-고성농고를 나오고 진주 농림전문학교 조경과를 졸업했다.

▲농고를 간 이유가 있나.

-형들은 어려서부터 다 서울, 부산으로 보냈다. 그런데 유독 막내인 저만은 농사꾼을 만들어야 한다며 억지로 농고를 보냈다. 고향에서 농사지어야 한다며 아버지가 대학은 아예 보내지 않으려고 했다.

▲그런데 어떻게 진주 농전을 갔나.

-그게 좀 사연이 있다. 고성농고 다닐 때 2학년 때부터인가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일인지 그때 머리가 깨인 것이다. 그런데 고등학교 3학년 때 예비고사 치는 날 다리가 부러져서 시험을 치지 못했다. 그래서 재수하려고 부산 누님댁에 가서 서면에 있는 학원에 등록을 했다. 그런데 큰 형이 고향에서 농사지어야 한다며 돌려보냈다. 그런데도 고향에서 농사짓기가 싫었다. 그런데 2년제 전문대학은 예비고사를 보지 않아도 됐다. 그래서 진주 농림전문학교 조경과에 진학한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됐나.

-조경과를 졸업하고는 군대 갔다 와서 아버지 몰래 서울에 조경공사에 시험을 쳐서 합격이 됐다. 당시는 88올림픽을 한창 준비하고 있을 때이다. 그래서 조경기사 자격증 가진 사람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었다. 그렇다 보니 조경공사에서 조경기사를 많이 뽑았다.

▲그런데 어떻게 고향에 왔나.

-서울 조경공사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다. 한 2년 정도 됐다. 그런데 아버지가 어느 날 올라오셨다. 그리고는 “자식이 옆에 하나도 없으니 동네사람들한테 두들겨 맞을 지경이다. 무서워 죽겠다. 제발 내려가자. 가진 논밭을 너한테 다 줄게…”하고 저를 설득하셨다. 그런데 아버지가 그렇게 말씀하시니 요즘말로 ‘심쿵~’ 해져서 그냥 따라 내려왔다. 그게 지금까지 고향에 살게 된 이유다.

▲아버지가 그 약속은 지키셨나.

-전혀 아니다. 형님들이 사업한다고 논 밭 다 팔아먹고 정작 제가 물려받은 것은 별로 없다.

▲보통은 장남이 고향을 지키고 그 밑에 자식들은 외지에 나가는데.

-우리 집은 그렇지 않았다. 어려서부터 형들은 다 외지로 공부하러 나갔다. 저만 집에 붙들어 매셨다. 이유가 무엇인지 그렇게 하셨다.

▲그럼, 아버지 따라 고향에 내려와서 농사지었나.

-농사는 사실 짓지 못했다. 체질이 맞지 않아서 도저히 못하겠더라. 그런데 85년에 농협에 공채가 있었다. 그래서 시험을 쳐서 합격을 했다. 지금은 동고성농협으로 통합됐는데 당시 개천농협에 입사했다. 그리고는 10개월 만에 현재 동부농협 관내로 전근을 왔다. 지금까지 여기서 산다. 그게 제 인생이다.

▲동부농협에서는 언제 퇴직했나.

-2017년 말에 지점장으로 퇴직했다. 32년을 농협 직원으로 근무한 것이다.

▲고향생활은 재미있었나.

-처음 5년 동안은 월급 한 푼도 아내한테 가져다주어 보지 못했다.

▲이유가 뭔가.

-고향에 사니까 객지에 사는 친구들이 내려오면 그 안내를 제가 다 담당했다. 워낙 술을 좋아하고 친구를 좋아하다 보니 그렇게 되더라. 그래서 월급을 집에 갖다 줄 여유가 없었다. 부모

팔아 친구 산다는 말이 있는데 제가 그렇게 살았다.

▲그래도 아버지에 이어 2대 조합장까지 됐으니 아버지의 덕 아닌가.

-그렇게 생각한다. 지금 와서 보면 제가 형제들 중 제일 출세한 형편이다. 말년에 아버지에 이어 2대째 조합장이 됐으니 조합원들에게 감사하고 저 개인적으로는 영광스럽게 생각한다. 서울에서 직장 생활했어도 괜찮았겠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고향에서 살면서 친구들 사귀고 이웃들과 함께 산 게 좋지 않았나 생각된다.

▲자녀는 어떻게 되나.

-아들 두 명이 있는데 모두 서울 산다. 저도 아버지처럼 둘째 놈 꼬셔서 데려와야겠는데 아무래도 그놈은 저보다 영리해서 제 말을 들을 것 같지 않다. 황인태 본지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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