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사랑] 추억속의 그곳 까꼬실 가는 길
[오! 사랑] 추억속의 그곳 까꼬실 가는 길
  • 경남미디어
  • 승인 2019.05.31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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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다음 세대 기억에서는
사라질 진양호 까꼬실
그 고향 가는 길
친구들과 동행한 산길에
바람과 햇살도 따라 왔다
정도순/교사
정도순/교사

5월 언저리인데 이미 햇살이 뜨겁다. 나지막한 벽돌집 사이로 싱그러운 바람이 때 이른 열기를 식히고, 배부른 고양이는 가로로 비스듬히 누워 늘어지게 잠에 빠졌다. 몸도 마음도 상쾌하다.

오늘은 내 고향 까꼬실로 가기로 한 날. 진양호 매표소 아래에서 배를 타고 쉽게 가는 방법이 있긴 하지만, 오늘은 도보로 산을 넘어가기로 결정했다. 친구들과 도란도란 얘기를 하며 걸을 생각이다.

수자원공사에서 만나 차 한 대에 모두 탔다. 진양호 호수를 돌며 잘 정비된 도로를 달리니 멀리 백두대간 끝점 꽃동실이 보인다. 진수대교를 건너 사평(沙坪) 푯말이 보이는 곳까지는 그리 멀지 않다. 거기서 우회전하면 겨우 차 두 대가 비켜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좁은 시멘트 도로가 시작된다. 찻길 바로 옆이 호수라 아슬아슬하다. 며칠 전 내린 비로 물이 고인 웅덩이에 차가 기우뚱하고 빠진다. 도로에 인적까지 드물어 오지 느낌이 드는 생태탐방로 끝점에 주차장이 있다. 차를 주차하고 오랫동안 묵혀둔 근육을 깨워 산길을 올라가야 한다.

길가에 쭉 뻗은 오동나무가 싹을 틔워 잎이 반짝인다. 울퉁불퉁 오래된 돌들을 켜켜이 쌓아 만든 돌계단 옆으로 계곡이 있다. 물 흐르는 소리, 새소리, 풀냄새가 마음을 차분하게 한다. 오르고 걷고 또 오르고 숨을 할딱거리고 온몸에 땀이 배일 즈음 드디어 호수 뒷면이 한눈에 보인다.

힘듦으로 말수가 줄어들었던 친구들의 입이 열리는 순간이다. 쉼터처럼 만들어진 넓다란 돌팍에서 커피도 마시고 주전부리로 잠시 쉬어가자.

황학산과 갈마봉 갈림길, 갈마봉 쪽으로 가다가 중간지점에서 왼편으로 샛길이 있다. 샛길로 난 내리막길을 10분 가량 지그재그로 내려간다. 호수를 배경으로 한 컷, 초록의 자연에 감탄하며 한 컷, 직장생활로 마음이 피폐해진 친구들이 한껏 들떴다. 편백 숲길 피톤치드향을 맡으며 내려오다 보니 한골과 가곡탐조대 갈림길이다

엊그제 90노모를 모시고 어버이날 행사를 했던 가곡 탐조대로 가보자. 가는 길에는 언니 오빠들이 졸업했고 오래전에 폐교된 귀곡초등학교 옛터도 있다. 탐조대는 실향민들의 만남의 장소이자 예쁜 호수가 한눈에 보인다. 햇빛도 잘 들어 까꼬실을 찾는 이들을 위한 쉼터이다.

산보길을 따라 개간된 앵두, 매실, 감자 밭에 사람들이 농사일로 분주하다. 고향을 그리워하는 분들이 옛터에서 소일거리로 반찬이 될 만한 것들을 가꾼다.

우리 다음 세대의 기억에서는 사라질 까꼬실. 나는 6살에 이사를 나가서 진주 시내에서 학교를 다녔지만 그 옛날의 기억이 드문드문 추억이 되어 살아있다. 한골, 번딧골, 큰말, 꽃똥실…. 2시간 거리의 탐방로는 봄이면 환상 그 자체이다.

벚꽃이 눈꽃처럼 날리고 대숲에선 삭~삭~~ 대이파리가 바람에 스친다. 비경은 육지에 자리한 제주도이다. 아는 사람만 아는 우리의 아지트. 요란하게 소문나지 않고 아담하게 눌러앉은 초록의 까꼬실은 추억의 산실, 마음의 휴양처이다.

멀리 댐 사이로 도시의 높은 아파트를 보며 늦은 점심을 먹는다. 바람 좋고 햇살 좋은 5월 어느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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