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우칼럼] 공감능력
[정용우칼럼] 공감능력
  • 경남미디어
  • 승인 2019.05.31 13:4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용우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과 객원교수(전 학부장)
정용우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과 객원교수(전 학부장)

시골에서 살다 보면 가끔씩 서울이 그리워진다. 특별히 무슨 계획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냥 서울에 다녀오고 싶어진다. 이곳에 정착하기 전 40년을 서울서 살았으니 어쩜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아니다. 그것만으로 서울 가고 싶은 것이 아니다. 서울에 내가 사랑하는 가족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서울에는 나를 제외한 내 가족 모두가 산다. 그 중에서 특히 내가 사랑하는 외손녀가 있다. 올해 5살이다. 너무 귀엽다. 서울에서 며칠을 지내는 동안 온통 관심은 이 외손녀에게 쏠린다. 나와 함께 놀아주면 더없이 고맙지만 놀아주지 않아도 좋다. 그냥 바라만 보고 있어도 좋다. 우리 외손녀는 건강하지만 어린아이다 보니 가끔씩 아프다. 몸이 아플 때면 그렇게 생기발랄하던 아이가 그만 힘이 빠져 축 늘어진다. 보기에 안타깝다. 안타까운 마음에 내가 대신 아파주고 싶다. 그만큼 내가 아픔을 느낀다는 이야기다.

지혜의 상징인 문수보살(문수사리)이 부처의 지시에 따라 유마힐을 문병하여 그에게 묻는다. “거사님, 병은 참을 만하십니까? 치료를 잘못하여 악화된 것은 아닙니까? 세존께서는 간절하게 물으셨습니다. 이 병은 무슨 일로 무엇으로 인해 일어났습니까? 어떻게 하면 나을 수 있습니까?” 질문을 받은 유마힐은 불경 사상 가장 유명한 대답을 한다. “일체 중생 누구나 다 병에 걸려있으므로 나도 병들었습니다. 만약 모든 중생들이 병에 걸리지 않고 있을 수 있다면 그때 나의 병도 없어질 것입니다. 예를 들어 장자에게 외아들이 있어 그 아들이 병들면 그 부모도 병들고, 만약 아들의 병이 나으면 부모도 낫는 것과 같습니다. 중생이 병을 앓으면 보살도 병을 앓으며, 중생의 병이 나으면 보살도 낫습니다” 정말 지극한 공감능력이다. 공감능력이란 상대와 함께 느끼고 함께 감정을 공유하는 능력이다. 상대에게 마음의 주파수를 맞추는 능력이다. 남의 딱한 처지를 보고 그냥 외면하지 못하는 것도 그의 내면에 공감능력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 근래 우리 사회에는 상대의 고통을 헤아릴 줄 모르는 공감장애를 지닌 분들이 늘어나고 있어 우려스럽다. 특히 정치계에서 그런 일이 수시로 일어난다. 얼마 전 우리는 차마 사람으로서는 받아들이기에 거북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한 정치인이 방송에서 “상처가 났는데도 고통을 느끼지 못한 채 방치해 상처가 더 커지는 병이 한센병”이라며 문재인 대통령을 한센병 환자에 빗대어 이야기했다. 사실 여부는 여기서 문제 삼지 않겠다. 문제는 한센병 환자들에 대한 비유다. 그 정치인은 이 발언 후 한센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에게 사과했지만 어쩐지 씁쓸한 기분은 그대로 남아있다. 말할 수 없는 고통과 비극적인 상태에 대해 함께 슬퍼하고 손을 내밀어 기도하는 것이 사람의 본성일진 대 어쩜 이렇게 아무 생각 없이 타인의 아픔과 비극을 철저히 타자화해 버릴 수 있을까. 아무리 정치적 입장을 표방했다고 하지만…. 공감능력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왜 이런 일이 심심찮게 일어날까. 아마 정치인들의 왜곡과 착각으로 점철된 우월성 때문일 것이다. 권력을 갖게 되거나, 상대방보다 높은 권력적 지위에 있게 되면 평상시보다 공감능력이 떨어진다고 했으니(노스캐롤라이나 대학 갈린스키 교수) 말이다.

고통을 받아들일 수 있는 인격의 크기가 그 사람의 크기라고 했다. 아무 고통도 받아들일 수 없거나 타인의 고통을 느낄 수 없는 사람의 인격은 야만의 인격이다. 야만의 인격만 난무하는 그곳에는 제대로 된 정치가 설 수 없다. 거기엔 갈등과 충돌밖에 없다. 이래서는 안 된다. 제대로 된 정치를 하려면 공감능력이 충만한 인격으로 자신을 성장시켜나가야 한다. 타인의 지극한 슬픔과 연민, 눈물과 고통을 머리보다 가슴으로 먼저 느끼고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 가슴으로 느끼고 받아들여야 보다 큰 이익과 명분을 위해 사소한 이해관계와 선입관을 내려놓을 수 있다. 그래야만 우리의 눈은 크게 열리고 세상은 다르게 보인다. 비로소 풍성한 공감대가 펼쳐지게 된다. 이쯤 되어야 제대로 된 사람이고, 이런 사람이 하는 정치라야 제대로 된 정치다. 물론 이런 사람, 이런 정치인이 되기가 쉽지 않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 우리 공동체 다수가 공감하는 희망과 대안을 만들어 내기 위한 진정한 소통은 여기서부터 시작될 테니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진주대로 988, 4층 (칠암동)
  • 대표전화 : 055-743-8000
  • 팩스 : 055-748-1400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선효
  • 법인명 : 주식회사 경남미디어
  • 제호 : 경남미디어
  • 등록번호 : 경남 아 02393
  • 등록일 : 2018-09-19
  • 발행일 : 2018-11-11
  • 발행인 : 황인태
  • 편집인 : 황인태
  • 경남미디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미디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7481400@daum.net
ND소프트
「열린보도원칙」 당 매체는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고충처리인 이선효 055-743-8000 7438000@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