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웅교수의향토인문학이야기] 성주 이씨 분중 대유학자들을 봉안한 사당 겸 서당, 안곡서원
[강신웅교수의향토인문학이야기] 성주 이씨 분중 대유학자들을 봉안한 사당 겸 서당, 안곡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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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6.05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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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梨花)에 월백(月白)하고…’ 이조년(李兆年)이 대표적
산청 신안면에 위치…2008년 경상남도 문화재자료로 지정

<30> 진주지역 서원(書院)과 선현(先賢) <12>

산청군 신안면 중촌갈전로에 위치한 안곡서원(安谷書院).
산청군 신안면 중촌갈전로에 위치한 안곡서원(安谷書院).

산청군 신안면 중촌갈전로 303번지 14-15에 위치한 안곡서원은 일제강점기의 서당으로, 2008년 2월에 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제442호 ‘산청 중천리 안곡서당’으로 지정됐다. 이후 2018년 7월 12일 안곡서원(安谷書院)으로 문화재 명칭이 변경됐다.

안곡서원은 성주 이씨 문중의 이장경(李長庚), 이조년(李兆年), 이포(李褒), 이인립(李仁立), 이제(李濟)의 영정(影幀)을 봉안하고 제향(祭享)하면서 강학(講學)도 실행한 사당(祠堂)겸 서당(書堂)의 기능을 갖는 곳으로 1913년에 강당이 제일 먼저 지어지고, 3년 후인 1916년에 영당(影堂)이 지어졌다.

강당은 정면 5칸, 측면 1칸의 규모에 전퇴(前退)를 둔 전퇴 집이고, 영당은 ‘ 숭정가원후오병진사월(崇禎起源後五丙辰四月)…’로 上梁되어 있어 1916년 봄에 지어졌음을 알 수 있다. 강당과 영당은 건립 연대가 비교적 높고 보존상태가 양호하며 유교의 건축형식이 비교적 잘 표현되어 있고, 특히 ‘이화(梨花)에 월백(月白)하고’로 널리 알려진 고려 충신 문렬공 이조년(李兆年)과 관련된 유적으로 알려졌다.

안곡서원 솟을삼문에 걸린 경모문(景慕門) 현판.
안곡서원 솟을삼문에 걸린 경모문(景慕門) 현판.

특히 다정가(多情歌)인 ‘이화(梨花)에 월백(月白)하고, 은한(銀漢)이 삼경인 제, 일지춘심(一枝春心)을 자규(子規)야 알려마는, 다정(多情)도 병(病)인양 하여, 잠 못들어 하노라’라는 시조로 유명한 이조년(李兆年 1269~1343)은 성주(星州)가 본관이며, 자는 원로(元老), 호는 매운당(梅雲堂)과 백화헌(白花軒)이며, 그의 시호는 문렬(文烈)이기도 하다.

그는 1294년(충렬왕 20년)에 진사로 문과에 급제했다. 이후 안남서기(安南書記)와 예빈내급사(禮賓內給事)를 거쳐 지합주사(知陜州事), 비서랑(祕書郎(비서랑)을 역임했다. 1306년(충렬왕 32년) 비서승(秘書丞)으로 재임 중 왕유소(王惟紹) 등이 충렬왕 부자를 이간(離間)시키고 서흥후(瑞興侯) 왕전(王琠)을 충렬왕의 후계로 삼으려 했다. 이조년(李兆年)은 이에 가담하지 않고, 최진(崔晉)과 충렬왕을 보필했으나 결국 누명을 쓰고 사건에 연루되어 귀양을 가기에 이르렀다. 유배 후 13년간 고향에서 숨어 지냈다. 심양왕(瀋陽王) 왕고(王暠)가 충숙왕의 왕위를 찬탈하려 하자, 이 음모를 원나라에 상소하기도 했다.

1336년 충숙왕 귀국 후 감찰장령(監察掌令)이 되고, 전리총랑(典理摠郎)을 거쳐 군부판서(軍簿判書)에 승진, 수차례 원나라에 다녀왔다. 1340년 충혜왕이 복위하자 정당문학(政堂文學)에 오르고, 예문관대제학(藝文館大提學)이 되어 성산군(星山君)에 봉해졌다. 왕의 음탕함을 간(諫)하는 요청이 받아들여지지 않게 되자, 이듬해 사직했다. 후에 성근익찬경절공신(誠勤翊贊勁節功臣)이 되었다. 공민왕때 성산후(星山侯)에 추증, 충혜왕의 묘정(廟庭)에 배향되었다.

그리고 이조년의 초상을 보면, 원나라 복속기에 복식(服飾)에 미친 몽고풍의 영향이 잘 나타나 있다. 이조년의 초상은 조선조에 들어와 개묘와 중묘를 했다고 하는데, 홍색포는 넓은 깃 가운데에 한 줄의 바느질선이 있는 긴 것으로 여밈을 깊게 했고, 양옆이 무릎 높이 아래로 트여 있으며, 허리에는 가는 홍색띠를 띠었다. 포속에 착용한 옷으로는 청색이 보이며, 머리에는 역시 몽고식의 발립(鉢笠)을 쓰고 주를 늘이고 있다.

이조년 이외에 안곡서원에 함께 배향된 성주 이씨 문중의 이장경(李長庚), 이포(李褒), 이인립(李仁立) 그리고 이제(李濟) 등까지도 고려말에서 조선초에 크게 활동했던 훌륭한 대명유들이며, 또한 대학자들이었다.

강신웅

본지 주필

전 경상대학교 인문대학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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