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희의세상엿보기] 김제동의 모순과 희망
[김용희의세상엿보기] 김제동의 모순과 희망
  • 경남미디어
  • 승인 2019.06.14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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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희 시인·수필가
김용희 시인·수필가

김제동의 90분 강연료가 1550만원이라고 여기저기 떠들썩하다. 그런데 줄 만한 가치가 있고 받을 만한 자격이 있으면 그게 무슨 문제인가? 어느 가수가 지방 행사에 와서 자신의 히트곡 몇 개 부르고 수천만원 받았다. 김재동의 두어배다.

뭐가 문제일까? 자본주의 사회는 수요와 공급의 균형점에서 가격이 결정된다. 그리고 그것은 인류가 고안한 가장 바람직한 사회운영시스템이다. 그것 부정하면 자본주의 부정이다. 그리고 그건 보수당이 추구하는 가치인데 보수당이 시장가격에 충실한 김씨의 강연료를 문제삼는 것은 엄연한 자기부정이다. 왜 그럴까? 원래 이런 특혜나 반서민적인 사건(?)에 대한 공격은 진보의 직업이며 역할인데 보수가 그러고 있으니…. 진보성향인사라 진영논리 때문일까?

결국 뭔 얘기인가? 아웃사이더의 대변인, 소외자들의 위로자, 특권과 반칙, 사람 위에 사람있는 세상을 그토록 공격의 대상으로 하던 이가 소시민으로는 상상하기 어려운 강의료를 받았으니까, 알바생을 위로하고 그들에게 존재이유를 심어주던 바로 그 강연의 강사료가 특권이었고 특별함이었고 서민으로서는 꿈꾸기도 어려운 또 다른 그들만의 세상이었으니 철저한 배신감과 허망감을 느끼는 게지.

“강연료를 기부했다. 무료강의는 수십번도 수백번도 더 했다. 그리고 그렇게 준다는 것을 굳이 내가 안받는다고 하느냐?”는 식의 변명같은 설명으로는 동지의식(?)을 가진 서민들을 이해 동의시키기에는 그 생경한 한계 앞에 선 그들을 어쩌지 못하는 게지. 그는 서울대 출신들에 빗대어 2년제 대학을 8년이나 다녀도 밥벌이하는 자신을 예로 든다. 특권층 사회의 구조를 통으로 비난하면서 그들이 만들고 누리는 그 구조의 일반적 작동방식을 비난하면서 자신도 동승한 것이다. 본인 스스로 시장논리의 수용자이면서 그 시장을 부정하거나 공격하거나 혹은 시장의 지배자들을 힐난하는 것으로 자신의 입지를 포지셔닝 해 왔다면 그건 사실 대단한 자가당착이요 자기부정이다.

“나는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고 하면서 남들은 그럴 만한 가치가 없다고 말했다면, 그게 곧 특혜성 모순이며 면죄된 내로남불인 것이다. 얄팍하게 소시민들의 억눌린 감정이나 부추기듯 위로하면서 스스로는 그 속물이 되어있었다면 이런 배신도 없다.

우리 사회의 본질적 가치구조는 수급이며 시장이다. 그런데 시장가격은 그만한 가치가 있었기에 그렇게 형성된 것이다. 김제동의 고액강연이 문제라면 대기업 임원들의 수억 수십억대 봉급은 어쩌냐? 요즘 핫한 가수 송가인의 행사비가 200만원에서 2000만원으로 올랐다고 박지원이 말한다. ‘오늘밤 김제동’은 10회당 350만, 년 6억 이상이란다. 김구라는 라디오스타에서 회당 900만원, 유재석은 과거 무한도전에서 회당 1100만원. 김구라는 비아냥으로, 김제동은 재치와 구조비판으로, 유재석은 유함으로 그렇게 각자의 캐릭터를 만들었다. 선택은 시청자 몫이다. 방송사도 다만 그 시장의 수용자일 뿐이다.

문제는 뭔가? 건강한 자본주의다. 양극화 그 건널 수 없는 강, 그 절망 앞에서는 맑스가 말하듯 혁명밖에 없다, 그런 사회가 되지 않으려면 건강한 자본주의가 되어야 한다. 베버 식의 가진 자의 검소함과 겸손, 가진 자의 모범, 기부와 헌신…. 빌 게이츠, 워렌 버핏 그들의 기부는 익히 안다.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거는 거의 전재산을 기부했다, 우리 재벌은 절세한다. 김제동이 비난할 꺼리가 없는 사회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그의 비난이 관심을 잃는 사회는 가능하다. 그게 모순없는 김제동의 사회이자 우리가 희망하는 사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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