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석 합천 새남부농협 조합장 - 주변의 강권으로 보궐선거에서 나온 후 이번에 재선
김진석 합천 새남부농협 조합장 - 주변의 강권으로 보궐선거에서 나온 후 이번에 재선
  • 경남미디어
  • 승인 2019.06.21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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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자인 새남부 조합을 2년 만에 20억 흑자로 돌려놔
임기 중 5천여 평의 다목적 경제사업소 신축할 계획
새남부 농협을 합천삼가 농협으로 개명하는 것 추진

돈 벌러 부산 갔다가 28세에 귀향해 소 2마리로 시작
삼가식육식당 시작해 오늘날 삼가 한우거리 초석 다져
수익의 30%는 사회에 환원한다는 약속을 지금도 지켜
김진석 합천 새남부농협 조합장은 주변의 강권으로 조합장에 출마해 이번에 재선에 성공했다.
김진석 합천 새남부농협 조합장은 주변의 강권으로 조합장에 출마해 이번에 재선에 성공했다.

김진석(62) 합천 새남부농협 조합장은 주위사람들의 강권으로 2017년 보궐선거에 출마해 당선된 후 이번에 재선에 성공했다. 보궐선거에 나올 당시 새남부농협은 거의 파산수준이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평소 자신의 사업역량을 잘 알고 있던 주변 사람들이 조합장 출마를 강권하다시피 했다. 주변의 권유로 팔자에 없는 조합장 선거에 출마를 했다. 그런데 선거에 나와 보니 출마자가 모두 4명으로 김 조합장을 제외한 사람들은 모두다 농협과 깊은 인연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농협과 인연이 없는 사람은 자신 혼자뿐이었다. 그랬는데도 평소에 인생을 잘 살아왔는지 50%에 이르는 득표로 당선이 됐다.

당선이 돼서 실제 새남부농협에 들어와 보니 조합 상태가 듣던 것보다 더 심각했다. 이대로 두다가는 망하기 일보직전이었다. 우선 직원들의 사기를 올리는 것이 급선무였다.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했다. 그래서 본점 건물을 신축했다. 마트와 본점 건물이 40년 됐는데 그동안 손을 쓰지 못하고 비만 오면 새는 등 문제가 많았다. 그것을 연건평 500여 평의 건물로 새로 만들었다. 마트도 160평으로 확장해 오픈했다. 이렇게 하니 조합 직원들도 하면 된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김 조합장은 2년 재직동안 새남부농협을 완전히 새로 만들기 시작했다. 쌍백면에 유통센터도 만들고 저온창고도 건축했다. 대출도 적극적으로 영업을 해 600억 원에 불과하던 것을 1000억 원 이상이 됐다. 이렇게 해서 지난해 말 정산을 해보니 파산수준이었던 조합이 20억 원 이상의 흑자를 냈다. 김 조합장이 2년 만에 새남부농협이 재건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한 것이다.

김 조합장은 원래는 2년만 하고 그만둘 생각이었다. 그런데 아직 하지 못한 일이 있어서 이번에도 출마를 했다. 보궐선거 때 2년만 하고 그만둔다고 공언을 하긴 했지만 새남부농협의 미래가 더 중요했다. 그래서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는 비판도 있었지만 조합원들의 미래를 위해 그런 비판을 감내했다. 조합원들은 이런 김 조합장의 결단에 63%가 넘는 표로 응답해 줬다.

김 조합장은 남은 임기 동안 5천여 평에 이르는 다목적경제사업소를 신축하는 게 꿈이다. 김 조합장은 이 사업소를 통해 농협과 소비자가 직거래하는 시스템을 구축할 생각이다. 이런 계획은 지금까지 우리나라 농협 그 어디에서도 실현한 곳이 없다. 아무도 가보지 않은 그 길을 김 조합장이 남은 임기동안 가볼 생각이다.

김진석 조합장은 1957년 합천군 삼가면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 찢어지게 가난해 세상 돈을 다 벌고 싶었다. 그런 청운의 꿈을 안고 18살에 부산으로 갔다. 그러나 학연도 혈연도 지연도 없는 부산에서 세상의 돈을 다 번다는 것은 아예 처음부터 가능하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서 28세에 과감히 고향으로 돌아왔다. 고향에 와서 처음에 소 2마리로 시작했다. 차차 소가 많아지자 어려움이 생겼다. 소값을 도대체 예측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식육식당을 시작했다. 삼가식육식당의 시작이다. 지금부터 23년 전의 일이다. 그게 대박을 냈다. 창업한 이래 지금까지 삼가식육식당은 단 한해도 매출이 늘지 않은 일이 없었다. 그렇게 삼가식육식당으로 돈을 벌었다. 어릴 때 꿈인 세상의 돈을 다 벌진 못했지만 그래도 합천에서는 부자의 반열에 들었다.

삼기식육식당을 하면서 주변도 많이 챙겼다. 김 조합장이 한우식당을 시작할 때 삼가에 한우식당이 2~3개에 불과했다. 먹거리타운이 생겨야 서로가 이익이 된다는 생각에 김 조합장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한우식당을 권유했다. 삼가한우거리의 탄생이다. 지금은 삼가에 20개가 넘는 한우식당들이 영업을 하고 있다. 휴일이면 줄을 서서 한우를 먹는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한다. 이렇게 주변과 공생을 실천할 뿐 아니라 매년 수익의 30%는 사회에 환원한다는 처음의 약속을 지금도 지키고 있다.

김 조합장과 아내는 평생을 죽도록 일만 했다. 그래서 나이 60이 되면 물러나서 편하게 살자고 아내와 약속을 했다. 그런데 새남부 조합에 일이 생겨 구원투수로 징발이 됐다. 그래서 아직 아내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 김 조합장은 새남부 조합이 튼튼하게 자리를 잡으면 그때는 좀 여유 있게 지낼 수 있을 것이라고 아내를 달래고 있다.

다음은 김진석 조합장과의 인터뷰이다.

▲새남부농협의 관할범위가 어딘가?

-경남 합천군 삼가면, 쌍백면, 가회면 등 3개 면을 관할 대상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왜 남부도 아니고 새남부 인가.

-원래 쌍백면 조합과 가회면 조합이 합병을 해서 남부 조합이라고 있었다. 그런데 삼가 조합이 남부조합을 2015년에 흡수합병을 했다. 합병을 하면서 다시 출발해 보자는 의미에서 새남부농업협동조합으로 이름을 바꿨다.

▲그런데 이름이 어렵다. 새남부농협이라고 하면 알아듣는 사람이 있나.
-그게 문제다. 실제로 조합원들 대상으로 어떤 이름이 좋은지 여론조사를 해 봤다. 삼가농협, 황매산농협, 새남부농협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더니 삼가농협이 좋다는 사람이 80% 이상이었다.

▲우리도 삼가는 잘 안다. 요즈음 한우로 뜨는 동네 아닌가. 그런데 이렇게 좋은 이름을 두고 왜 족보도 애매한 새남부농협이란 이름을 쓰나.

-저도 동감이다. 삼가라는 이름은 오래전부터 알려져 와서 사람들에게 인지도가 높다. 또 농산물은 지역명과 함께 할 때 브랜드 가치가 있다. 남해 마늘, 함양 양파, 함안 수박 등이 그렇다. 그래서 올해 대의원 대회에서 조합의 이름을 변경하자는 안을 정식으로 상정해 볼까 생각중이다.

▲김 조합장은 이번이 재선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 2017년 보궐선거에서 당선돼 이번이 재선이다.

▲2017년에 왜 보궐선거가 있었나.

-2015년에 흡수합병을 통해 새남부농협이 생겼다. 합병이 되면 당시 조합장이 2년을 더 할 수 있게 돼 있다. 그래서 합병당시 조합장이 2017년 3월까지 임기를 했다. 그리고 잔여임기에 대해 2017년에 보궐선거를 실시한 것이다.

▲그럼, 김 조합장은 보궐선거에 처음 출마한 것인가.

-그렇다.

▲어떻게 해서 보궐선거에 나서게 됐나.

-저는 농협 조합원이긴 했지만 직원도 아니고 간부도 아니었다. 또 축산업을 주로 하고 있어서 농협과는 별 관련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런데 제가 삼가에서 30년 동안 소도 키우고 식당도 하고 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이 제가 나가야 새남부농협이 산다며 거의 강권하다시피 권유했다. 그래서 저만 잘살면 뭐하나. 조합을 살려서 조합원들이 같이 살아야지 하는 생각에 출마를 한 것이다. 주변의 강권으로 팔자에 없는 조합장을 하고 있다.

▲김 조합장이 없으면 새남부농협이 망할 형편이었나.

-제가 없다고 망하기야 했겠나. 그런데 저도 잘 몰랐는데 실제 조합장이 돼 보니 적자투성이에 망하기 일보직전이었다.

▲보궐선거에는 몇 명이 출마했었나.

-네 명이 출마했다.

▲어떤 사람들이었나.

-저를 빼고는 모두 조합과 관련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럼, 득표율이 얼마였나.

-약 50%였다. 50%를 넘지는 않았는데 거의 육박했다.

▲네 명이 나와서 50%의 득표라면 대단한 득표율 아닌가.

-그렇게 생각한다. 또 저는 조합과 관련이 없는 사람이었는데도 이렇게 지지를 해 준 것은 조합을 살려보라는 조합원들의 소망이 결집됐던 것으로 생각했다. 또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인심을 잃지는 않았구나 하는 것도 실감했다.

▲실제 조합에 와 보니 어렵던가.

-문제가 많았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는데 해결하지 않고 있는 현안들이 많았다.

▲주로 어떤 문제들이었는가.

-조합장이 돼 보니 현재 본부로 쓰는 이 건물이 지은 지 40년이 돼서 비가 샐 정도였다. 또 마트도 20평 정도로 구멍가게 수준이었다. 그래서 “왜 마트가 이렇게 작나”하고 물어봤다. 그랬더니 직원들이 “주변에 상인들이 많아서 그들과 이해상충이 있어서 크게 짓지 못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래서 조합원이 3000명이 넘고 주민이 얼마나 많은데 주변 상인들 반대 때문에 못한다는 게 말이 안 된다, 는 생각에 새로 건축을 했다. 지금 쓰는 이 건물인데 총 평수가 500평이 넘고 또 마트도 160평이나 된다.

▲그렇게 쉬운 일을 전직 조합장들은 왜 못한 건가.

-그건 제가 답변하기 그렇다.

▲또 다른 일은 어떤 게 있었나.

-조합은 일단 대출을 많이 해야 이익이 남아서 다른 사업을 할 수 있다. 조합이 경제 사업에 치중해야 하지만 경제 사업을 하려고 해도 돈이 있어야 되지 않나. 경제 사업은 사실 돈이 안 된다. 그래서 대출을 많이 팔았다. 제가 들어올 때 600억 원 정도였는데 현재 1000억 원이 넘었다. 2년 만에 이룬 성과이다.

▲일을 척척 하는 것 같다. 또 다른 일은 무엇을 했나.

-쌍백면에 유통센터를 지었다. 7년 전에 조합에서 700평의 땅을 샀다. 그런데 이것을 등기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유를 물으니 조합은 농지를 등기할 수 없다고 하더라. 그럼 어떻게 하면 등기를 할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건물을 지어서 토지의 지목이 바뀌면 할 수 있다고 하더라. 그래서 도비와 군비, 중앙회 지원금과 우리 조합의 자부담 7천만 원 등을 합쳐서 3억 5천만 원으로 창고를 지었다. 그랬더니 등기가 됐다.

▲이렇게 쉬운 일을 왜 지금까지 끌고 있었을까.

-사실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도비와 군비 등을 끌어오는 게 그리 쉽지는 않았다.

▲그래도 김 조합장은 하지 않았나.

-저는 오랫동안 기업을 하면서 경영자로서 활동을 했기 때문에 어디가 핵심인지 잘 안다. 일머리를 알기 때문에 쉽게 해결할 수 있었다.

▲조합 상태는 어떤가. 처음 맡을 때는 적자였다고 했는데 이제 벗어났나.

-지난해 20억 원 이상의 흑자를 냈다. 제가 책임진 지 2년만의 결과이다.

▲이렇게 적자 조합을 흑자로 돌려놓았고 현안문제들도 척척 해결했으니 이번 선거는 쉬웠겠다.

-그렇진 않다. 제가 처음 조합장에 출마했을 때 2년만 하고 말겠다고 약속을 했다. 그래서 그 약속을 지키라고 압박이 심했다.

▲그럼, 2년만 할 생각이었는데 왜 더할 생각을 했나.

-사실 2년이면 새남부농협을 정상화시킬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조합장이 돼 보니 해결할 과제들이 더 많더라. 그래서 부득이하게 이번에도 출마를 하게 됐다.

▲그래서 이번에는 득표율이 얼마나 됐나.

-두 명이 출마해서 63.9%였다.

▲그 정도면 굉장히 안정적인 득표라고 생각된다.

-저도 그렇게 생각한다. 비록 2년만 하고 말겠다는 약속은 지키지 못했지만 조합원들이 제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하신 것 같다. 그래서 안정적인 지지를 보낸 것으로 생각한다.

▲앞으로 할 일을 무엇인가.

-다목적 경제사업소를 만들 계획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인가.

-약 5000평의 부지에 양파저장창고, 마늘 경매장, 주유소, 비료, 농약 등 자재마트, 로컬푸드직매장 등이 들어가는 종합경제사업소이다. 이 사업소를 통해 우리나라 조합에서는 최초로 농협과 소비자가 직거래를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한다.

▲자금조달 방안은 마련돼 있나.

-현재 경제사업소를 매각하면 가능하다. 이번 임기 중에 꼭 완성시킬 생각이다.

▲또 다른 할 일은.

-이 지역은 양파를 많이 재배한다. 그래서 양파기계화 사업을 완성할 생각이다.

▲그건 무슨 일인가.

-양파 파종, 수확, 선별, 포장, 판매 등 양파와 관련된 모든 일을 기계화하겠다는 것이다.

▲지금 그렇게 하고 있는 곳이 있나.

-가회면에서 시범적으로 하고 있다. 이것을 전 조합차원에서 시행해 보겠다는 말이다.

▲그게 실현되면 획기적인 일이 되겠다. 또 다른 일은.

-가회지점이 우리 농협이 생길 때 지은 건물이다. 그래서 비만 오면 문제가 생긴다. 이 건물을 신축하는 게 가회면의 숙원사업이다. 그래서 이것도 내년까지는 새 건물을 완성할 생각이다.

▲개인적인 얘기를 해 보자. 언제 어디서 태어났나.

-1957년 삼가면에서 태어났다.

▲나이가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동안이라는 얘기를 듣지 않나.

-주변에서도 그런 얘기를 자주 한다.

▲사회생활은 어떤 일부터 시작했나.

-저는 찢어지게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래서 18살에 세상의 돈을 다 벌겠다는 포부를 안고 부산으로 갔다. 거기서 여러 가지 일을 했다. 그런데 원래 가난한 사람이 학연도 지연도 혈연도 없이 도시에서 돈을 번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10년을 부산에서 살다가 28살에 고향 삼가로 다시 귀향을 했다.

▲귀향을 해서는 무엇을 했나.

-처음 소 2마리를 키우기 시작했다. 그게 지금의 저를 만든 계기가 됐다.

▲어째서 그런가.

-소와의 인연으로 부를 이뤘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한 것인가.

-소를 키우기 시작한지 10년 쯤 됐다. 그런데 소 값이라는 게 매년 등락이 심하더라. 그래서 이거 안 되겠다. 내가 직접 팔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삼가에 삼가식육식당을 열었다. 지금부터 23년 전의 일이다. 그런데 제가 식당을 연 이래 지금까지 매출이 줄어든 적이 없다. 매년 매출이 늘었다. 소도 키우고 식육식당도 해서 나름대로 상당한 부를 이뤘다. 지금은 소를 400~500마리 정도 키우고 식당은 합천에서는 세금납부 순위가 앞설 정도가 됐다.

▲세상의 돈을 다 벌겠다고 도시로 갔지만 정작 돈은 고향에서 벌었다.

-그렇다. 제가 처음 식육식당을 열었을 때는 삼가에 한우식당이 2~3개에 불과했다. 지금은 20개가 넘는다. 저도 한우식당을 해서 돈을 벌었지만 삼가 지역이 전체적으로 한우타운으로 성장하는 계기가 됐다. 그런 점에서 자부심을 느낀다.

▲그렇게 돈을 많이 벌어서 어디에 쓰나.

-버는 돈의 30%는 사회 환원을 하고 있다. 주변의 도움으로 돈을 벌었기 때문에 어려운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게 맞다, 고 생각하면서 살고 있다.

▲성공한 인생인데 아쉬운 건 무엇인가.

-저와 제 아내는 정말 죽도록 일만하면서 살았다. 하루에 16시간씩 일하면서 보냈다. 그래서 60이 되면 이제 일에서 벗어나 취미생활도 하고 해외여행도 다니고 좀 여유 있게 보내자고 아내에게 약속했다. 그런데 조합장을 하는 바람에 아내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 그게 늘 마음에 걸린다. 새남부농협이 튼튼하게 기반을 잡도록 한 뒤에 아내와의 약속을 지킬 생각이다. 황인태 본지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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