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양수 진주축협 조합장 - 보궐선거서 당선돼 이번 선거서 재선 성공
조양수 진주축협 조합장 - 보궐선거서 당선돼 이번 선거서 재선 성공
  • 경남미디어
  • 승인 2019.06.27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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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이은 부정선거로 세번 출마한 끝에 첫 당선
부정선거로 얼룩진 진주축협 이미지 개선시켜
만년 적자이던 문산 한우플라자 흑자로 전환해
진주를 한우 우량 송아지 생산기지로 만들 것
축산, 한 종목 집중 꾸준히 하면 돈 벌수 있어
평생 소와 함께 살아 얼굴도 소랑 비슷해졌다
조양수 진주축협 조합장은 세 번 출마 끝에 조합장에 당선돼 이번 선거로 재선에 성공했다.
조양수 진주축협 조합장은 세 번 출마 끝에 조합장에 당선돼 이번 선거로 재선에 성공했다.

조양수(63) 진주축협 조합장은 이번 선거로 재선 조합장이 됐다. 그러나 조 조합장이 축협 조합장이 되는 길은 가시밭길의 연속이었다. 세 번 출마해서야 당선이 될 정도로 어려웠다.

조 조합장은 진주축협에서 15년간 감사를 봤다. 감사도 선출직이다. 15년간 감사를 하면서 한번을 빼고는 모두 무투표로 당선이 됐다. 그래서 조합장에 출마하면 쉽게 당선이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조합장 선거와 감사선거는 차원이 달랐다. 조 조합장은 2015년 3월, 전국 동시 선거에 첫 출마를 했다. 그런데 투표함을 열어보니 100표 밖에 받지 못했다. 돈의 위력을 실감한 선거였다. 결국 그 돈이 탈이 났다. 부정선거로 당선자가 재판을 받게 됐고 조합장직을 상실했다.

그래서 2016년에 보궐선거가 치러졌다. 이 보궐선거에도 조 조합장은 출마를 했다. 분위기는 조 조합장의 대세라는 게 일반적인 평이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무난히 당선될 줄 알았다. 그런데 상대후보가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서 그랬는지 돈 살포를 했다. 또 돈의 위력으로 상대후보가 당선이 됐다. 3표 차이의 아까운 고배였다. 그런데 이번에도 돈이 사단이 났다. 상대후보가 또 부정선거로 조합장직을 잃었다. 또다시 보궐선거가 치러졌다. 2017년 12월의 일이다. 조 조합장은 세 번째 출마를 했다. 이 선거에서 조 조합장은 처음으로 당선이 됐다. 3년 사이에 세 번이나 출마하는 우여곡절을 통해 당선이 된 것이다. 조 조합장은 천신만고 끝에 당선이 됐지만 진주축협은 난장판이 됐다. 두 번의 부정선거로 인한 보궐선거 때문에 지역에서 이미지는 땅에 떨어졌다. 조직의 혼란도 심했다.

그래서 조 조합장이 진주축협의 조합장이 되고 난 후 가장 시급히 한 일은 조직을 안정시키고 지역사회에 축협의 이미지를 개선시키는 일이었다. 두 번이나 부정선거로 조합장이 중도 사퇴하는 일이 지역사회에 알려졌으니 진주축협의 이미지가 땅에 떨어진 지 오래였다. 또 조직이 혼란스러워 직원들의 사기도 말이 아니었다.

2017년 말 취임한 조 조합장은 그러나 빠르게 조직을 안정시켰다. 직원들에게 권한과 책임을 확실히 부여함으로써 자신감 있게 일을 추진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었다. 그 결과는 성과로 나타났다. 만년 적자에 허덕이든 문산읍 한우플라자의 경우 취임 일 년 만에 대규모 흑자로 돌아섰다. 또 지역사회에서 축협의 이미지도 개선이 됐다. 조직 안정과 이미지 개선으로 1년남짓한 임기가 시간가는 줄 모르고 지나갔다.

이번 선거에서 진주축협 조합원들은 조 조합장의 지난 1년여의 노고에 70%에 해당하는 압도적 지지로 화답했다. 이번 선거로 조합원의 압도적 지지를 확인한 조 조합장은 남은 임기 동안 진주축협을 전국최고의 조합으로 만드는 일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생각이다. 가장 중요한 사업으로는 한우 우량 송아지생산기지화 사업이다. 진주는 이 분야에 경상대학의 우수 연구진이 있다. 따라서 전국 어느 도시보다 우량 송아지 생산 사업을 하기에 적합한 지역이다. 조 조합장은 이 같은 인프라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우량송아지 생산기지화 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우량송아지를 생산해 조합원들에게 보급하면 조합원들의 소득증대에 크게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게 조 조합장의 생각이다.

조 조합장은 1956년 산청군 단성면 소남리에서 아버지 조종호 선생의 5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다. 한전, 진주교육대에서 근무하고 국회의원 출마 등을 하셨던 지역에서 엘리트이셨던 아버지는 막내인 조 조합장의 교육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조 조합장을 어려서 진주로 이주를 시켜 봉래초등학교에 진학을 시켰다. 그런데 조 조합장이 옥봉동 집 근처 개울에서 놀고 있다가 근처 고무신 공장에서 쏟아져 나온 뜨거운 물에 화상을 입는 사고를 당했다. 이 사고로 조 조합장은 혈압에 문제가 생겼다. 혈압이 높아져 조금만 집중을 해도 졸도를 하는 상황이 반복됐다. 이로 인해 중학교 때까지는 학교에 약을 들고 다닐 정도로 어려움을 겪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제대로 공부를 하지 못했다. 지금도 조 조합장은 그때 사고의 후유증으로 혈압약을 먹고 있을 정도로 당시 사고의 영향이 크다.

진주 농전 축산과를 나온 조합장은 1979년 김해축협에 직원으로 취직을 했다. 1983년 양산으로 전근을 간지 얼마 지나지않아 조 조합장은 진성면에 목장이 매물로 나왔다는 소리를 들었다. 마침 직장 생활도 조금 싫증이 나던 때라 조 조합장은 당장 이 목장을 인수했다. 그리고는 3마리의 젖소로 목장경영을 시작했다. 하촌목장의 시작이었다.

이 하촌목장이 조 조합장의 오늘을 만들었다. 조 조합장은 목장경영이 적성에 맞았다. 밤낮없이 목장 일에 몰두했다. 목장은 번성했고 한때 80마리까지 젖소가 늘었다. 조 조합장은 하촌목장으로 돈도 벌었고 자식들 교육에 결혼까지 시켰다. 그리고 하촌목장으로 인해 진주축협과도 인연이 맺어졌다. 축협에서 조합원, 대의원을 거쳐 2000년도부터 감사를 맡았다. 15년 동안 감사를 무난히 마치고 조합장에 출마해 우여곡절 끝에 조합장 직에 올랐다. 아버지가 희망했던 선출직에 대한 꿈을 막내가 이룬 셈이다.

조 조합장은 평생을 소와 함께 살았다. 그리고 소로 인해 성공을 했다. 평생을 소와 살다보니 얼굴도 소를 닮아간다는 소리를 주변에서 듣는다. 소로 인해 축협 조합장 직에 오른 조 조합장은 지난 1년간 땅에 떨어졌던 진주축협의 이미지를 개선시켰다. 또 조직도 안정시켰다. 이번 임기동안은 진주축협을 전국최고의 조합으로 만드는 일에 본격적으로 나설 생각이다. 그걸 이루는 것이 자신을 평생 먹고 살게 해주고 아버지 때부터의 꿈을 이루게 해준 동료 축산인들에 대해 보답하는 일이라는 게 조 조합장의 생각이다.

다음은 조양수 조합장과의 인터뷰이다.

▲진주축협은 관할이 어디인가.

-진주시내 전체가 관할이다.

▲조합원은 몇 명인가.

-선거 당시는 944명이었다. 지금은 조금 늘어 980명 정도 된다.

▲진주축협은 설립이 언제 됐나.

-조금 오래됐다. 1966년 설립돼 올해로 54년째이다.

▲규모는 어느 정도나 되나.

-신용사업 규모가 1조 1600억 원 정도 된다. 진주에서는 농협전체에서 3위 정도에 해당한다.

▲조 조합장은 이번이 재선인가.

-그렇다. 지난 2017년 12월 보궐선거에서 당선돼 이번이 재선이다.

▲보궐선거가 왜 치러졌나.

-당시 조합장이 부정선거로 유죄를 받아서 직을 상실하게 됐다. 그래서 보궐선거가 이루어졌다. 저는 당시 보궐선거 때 세 번째 출마해서 당선된 거다.

▲세 번이나 출마한 이유가 있었나.

-2015년 전국동시선거에 처음 출마했었다. 그런데 그때는 세 명이 나와서 3등을 했다. 그런데 그 선거가 부정선거가 돼 2016년에 보궐선거가 치러졌다. 그래서 또 출마했다. 그 선거에서는 제가 이긴다는 대세가 형성돼 있었다. 제가 우위에 있다는 선거판세 때문에 그랬는지 상대방 후보가 무리를 했다. 선거 직전에 돈을 살포하다가 선관위에 적발이 됐다. 선관위에 적발은 됐지만 상대후보가 돈의 위력 때문인지 3표 차이로 당선이 됐다. 그래서 선관위가 검찰에 선거법 위반으로 당선자를 고발했다. 그게 유죄를 받아서 2017년에 다시 선거가 치러진 것이다. 그 선거에 다시 출마해 당선됐다. 그렇게 해서 세 번 출마해서 조합장이 됐다.

▲삼시세판 만에 조합장이 된 셈이다. 그렇게까지 해서 조합장이 돼야 하는 이유가 있었나.

-참으로 축협 조합장 입성하기가 어렵더라. 제가 진주축협에서 감사를 15년 이상 했다. 그것도 한번을 제외하고는 모두 무투표로 감사가 됐다. 그래서 조합장도 쉽게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조합장 선거하고 감사선거는 차원이 다르더라. 조합장 선거가 너무 혼탁하고 돈이 난무하는 선거여서 사실 중간에 그만두고 싶은 생각이 많았다. 그렇지만 도와준 젊은 조합원들의 미래를 생각하면 중간에서 그만둘 수가 없었다.

▲2015년 동시 선거 때 당선이 됐더라면 진주축협이 그리 복잡한 과정을 통하지 않고 안정이 됐을 수도 있겠다.

-그랬을 수도 있을 거다. 2015년 동시선거에서부터 2017년 보궐선거 때까지 진주축협이 계속되는 부정선거와 검찰의 수사, 법원의 재판, 그리고 연달아 치러지는 보궐선거 등으로 지역사회에 큰 누를 끼쳤다. 때로는 얼굴을 들고 지역에 나갈 수 없을 정도로 진주축협하면 이미지가 실추돼 있었다.

▲그럼 이번 선거는 어땠나.

-이번 선거는 비교적 조용한 선거를 치렀다. 저를 비롯해 2명이 출마했는데 저뿐 아니라 상대후보도 돈 선거를 하지 않았다. 그래서 선거가 끝난 후에도 조용하다.

▲이번 선거 득표율이 어떻게 되나.

-약 70% 정도 된다.

▲그 정도면 압도적이지 아닌가.

-그렇다. 사실 무투표로 가자는 조합원들의 여론이 많았다. 그런데 마감 직전에 한 명의 후보가 등록을 해서 선거가 이루어졌다. 지난 1년 남짓 조합장을 하는 것을 조합원들이 잘 평가해 주신 것 같다.

▲보궐선거 이후 이번 선거 때까지 주로 한 일이 무엇인가.

-그동안 진주축협의 부정선거와 재판 등이 언론 등을 통해 지역사회에 널리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축협의 이미지를 개선하는 게 제일 급한 문제였다. 그래서 어떻게 하든 조합을 공정하고 깨끗하게 운영하는 데 초점을 뒀다. 그래서 지금은 조직이 많이 안정됐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했나.

-대폭적으로 권한을 위임했다. 이사의 일은 이사에게 철저하게 위임하고 직원의 업무는 직원이 책임지고 하도록 했다. 권한을 주는 동시에 책임도 분명하게 물어서 자신감을 갖고 일하도록 했다. 그랬더니 차차 조직이 안정됐다. 진주시 문산읍에 있는 한우플라자 같은 경우도 제가 취임하기 전에 늘 적자 운영이었다. 그런데 제가 취임한 후 일 년이 지난 지난해에는 1억6천여만 원의 흑자가 났다. 매니저에게 권한을 주고 책임경영을 시켰더니 그렇게 되더라.

▲또 다른 일은.

-사실 축협의 문제는 중소농가의 문제이다. 대규모 농가들은 정부가 직접 챙긴다. 그래서 지원 등에서도 여러 혜택을 받는다. 정책의 사각지대가 되는 곳이 중소농가들이다. 그래서 제가 취임한 후 이들을 많이 돌보는 정책을 추진했다. 그렇다 보니 일부 대규모 농가들이 불만을 제기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협동조합이라는 것은 다 잘살기 위해 하는 것이기 때문에 중소농가들에 대한 관심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강화할 생각이다.

▲이런 일들이 평가받아 이번 선거는 비교적 압도적으로 이긴 것인가.

-아무래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조직의 안정으로 직원들의 업무만족도가 높아졌다. 또 축협에 대한 지역사회의 신뢰도 많이 올라갔다. 그런 것들이 조합원들에게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농협은 직원과 조합원의 만족도가 올라가면 사실 선거를 할 필요가 없을 정도이다.

▲이번 임기 때에는 어떤 일을 할 것인가.

-축협의 선거문화를 좀 바꾸려고 한다.

▲어떻게 하겠다는 말인가.

-내년에 감사선거가 있다. 또 그 다음해에는 이사 선거가 있다. 이 선거들부터 공정하고 투명하게 치러져야 조합장 선거에서 부정선거를 할 시도를 하지 않는다. 그래서 내년에 치러지는 감사선거부터 돈을 쓰지 못하도록 시스템을 만들 생각이다.

▲생각하는 방안이 있나.

-예를 들면 감사, 이사 선거는 대의원들이 유권자이다. 축협에는 대의원이 50명 정도 된다. 따라서 이들을 한자리 모아놓고 후보들이 공동정견발표와 토론을 하는 기회를 만들 생각이다. 그리고 이런 자리 외에서는 후보들이 유권자들을 아예 접촉하지 못하도록 제도화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후보와 유권자가 개인적으로 만날 기회가 사라지기 때문에 돈 선거를 방지할 수 있다. 이런 방향으로 선거문화를 바꾸어 나갈 계획이다.

▲정책적으로는 어떤 일들을 할 생각인가.

-축협은 사실 한우농가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한우농가들을 어떻게 지원할지가 가장 중요하다. 그래서 한우개량사업을 본격적으로 시행할 계획이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좋은 한우를 얻으려면 사실 송아지가 좋아야 된다. 그래서 진주를 우량송아지 생산기지화 할 계획이다.

▲그게 무슨 말인가.

-경상대는 수정난 이식사업을 한 경험이 오래됐다. 그래서 관련 기술이 발전돼 있다. 저도 수정사 자격증이 있다. 그래서 경상대-진주시-축협이 상호협동해서 수정난 이식사업을 통해 우량송아지를 생산하는 기지화 한다는 말이다. 지금까지 횡성한우 등 한우가 어디가 좋다는 곳은 있어도 우량송아지 생산기지는 없었다. 송아지만 잘 생산해도 사실 축산농가의 소득이 크게 늘어난다. 마침 진주에는 이와 관련된 인프라가 잘 돼 있는 점을 활용해 축협에서 우량송아지를 만들어 판매하는 사업을 본격 추진해 조합원들의 소득을 증대시키는 사업을 임기 중에 실시할 계획이다.

▲개인적인 얘기를 좀 해 보자. 언제 어디서 태어났나.

-1956년 산청 단성면 소남리에서 태어났다. 5형제 중 막내이다. 아버지가 공부시킨다고 어려서 진주로 이사를 했다. 그래서 초등학교부터 진주에서 다녔다.

▲아버지가 교육열이 높으셨던가 보다.

-아버지(조종호)는 한전 직원도 하셨고 교육대에서 교편도 잡으셨다. 또 비록 당선은 안됐지만 산청지역에서 국회의원에도 출마하는 등 상당히 엘리트이셨다. 그래서 자신이 못 이룬 꿈을 자식들이라도 이루도록 자식들 공부에 관심이 많으셨다.

▲그래서 아버지 뜻대로 공부를 잘 했나.

-초등학교는 봉래초등을 졸업했다. 49회이다. 그런데 초등학교 때 사고를 당해 사실 공부를 제대로 못했다. 그래서 대아중학교와 대아고등학교 진주 농전 축산과를 졸업했다.

▲어떤 사고였기에 공부를 못했나. 핑계 아닌가.

-아니다. 초등학교 때 제가 살고 있던 집이 옥봉동에 있었다. 그런데 당시 옥봉동에 고무신 공장이 많아서 개울에 고무신 공장에서 나오는 뜨거운 물이 흘렀다. 초등학교 때 개울에서 놀다가 그 뜨거운 물에 화상을 입는 사고를 당했다. 그 화상으로 인한 후유증으로 혈압이 높아져서 신경만 쓰면 졸도를 했다. 중학교 때까지 학교에 약을 들고 다닐 정도로 그 정도가 심했다. 그렇다 보니 공부를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다.

▲지금도 혈압이 높나.

-그렇다. 옛날보다는 많이 나아졌지만 그래도 지금도 혈압약을 먹을 정도로 평생 고질병이 됐다.

▲그런데 스트레스가 심한 선거를 어떻게 치르면서 조합장을 하고 있나.

-그때마다 스트레스를 잘 해소해야 된다. 그렇지 않으면 못산다.

▲학교 때 친구는 어떤 사람들이 있나.

-초등학교는 사실 졸업은 했지만 제가 별로 찾지를 않는다. 그래서 초등학교 친구들은 별로 없다. 중학교, 고등학교를 같이 나와 제가 제일 친한 친구는 지금 시내에서 명성약국을 운영하고 있는 윤상렬이다. 부부가 약국을 잘 운영하고 있고 저와는 평생 잘 지내는 친구이다.

▲그 외 잘 지내는 사람들이 있나.

-친구라기보다는 제가 목장을 진성에서 운영했기 때문에 진성 사람들과 친하다. 진주시의회 의장을 한 이인기 전 시의원의 경우 첫 선거 때 제가 재무부장을 맡아서 당선시켰을 정도로 막역하게 지낸다.

▲대학을 졸업한 후에 무엇을 했나.

-축산과를 졸업했으니까 축협 등에서 구인이 많았다. 첫 직장이 김해축협이었다. 1979년도에 김해축협에 직원으로 취직했다. 그리고 83년에 양산축협에 갔다가 바로 그만두고 목장을 시작했다.

▲목장은 어떻게 해서 시작한 건가.

-양산축협으로 이동하고 얼마 있으니 진주시 진성면에 젖소목장이 매물로 나왔다. 마침 직장일도 슬슬 재미가 없어질 때여서 바로 인수를 했다. 하촌목장의 시작이었다.

▲처음에 몇 마리로 시작했나.

-젖소 3마리로 시작해 많이 할 때는 80마리 정도까지 목장이 커졌다.

▲목장을 하는 게 사업성이 있나.

-젖소는 한우보다 훨씬 수익성이 좋다. 젖소 목장을 한눈팔지 않고 꾸준히 하면 돈을 번다. 다만 문제는 이것 하다가 저것 하는 등 자꾸 바꾸다 보니 어려움에 처하게 되는 거다. 젖소만 꾸준히 키워도 생활하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 실제로 제 목장 근처에 비닐하우스 하다가 제가 권유해 젖소를 키우는 사람이 있다. 지금도 우리 집 밑에 산다. 그 사람이 젖소로 돈을 벌었다. 그래서 늘 “조양수 때문에 부자 됐다”는 말을 하고 다닌다고 들었다. 지금 자식에게 넘겨줄 정도로 목장이 잘 된다. 이처럼 한 우물을 파면 짐승 키우는 일은 돈은 된다.

▲그런데 왜 젖소 키우다가 한우로 바꿨나.

-좀 우습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축협 조합장 한번 해보려고 한우로 바꿨다.

▲젖소농가로는 축협조합장이 안되나.

-현실이 그렇다. 축협 조합원의 약 70%가 한우농가들이다 보니 젖소농가가 명함을 내밀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래서 8년 전에 젖소에서 한우로 바꿨다. 한우가 젖소보다 어렵다는 것을 알았지만 조합장을 하고 싶으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돈은 좀 벌었고 이제 조합장을 해서 권력을 누리고 싶다, 이런 말인가.

-꼭 그런 말은 아니지만 조합장을 맡아서 축산을 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다.

▲진주축협과는 어떻게 인연이 됐나.

-하촌목장을 하면서 조합원에 가입했다. 그리고 대의원을 10년 하다가 2000년부터 축협의 감사를 했다. 15년 정도 감사를 했다. 그렇게 감사를 하고 조합장에 출마한 거다.

▲사회생활은 어떤 것을 했나.

-저는 목장 경영하고 축협활동하고 진성면에서 주로 지냈다. 일반 사회활동은 그리 많이 하지 않았다. 축협과 목장 경영, 그게 평생동안 집중한 일이다. 그래서 사회에 발이 그리 넓지 못하다. 주변 사람들이 골프치자고 권유가 많았는데 저는 골프 칠 시간이 없었다. 소 관리하고 축협의 일을 보는 것만 해도 시간이 모자랐다. 저는 평생을 소랑 같이 살았다. 대학도 전공이 축산이고 첫 직장도 축협이고 지금까지 소를 키워 자식 대학 보내고 결혼시켰다. 평생 소랑 같이 지내다 보니 얼굴도 좀 길쭉한 게 소를 닮아간다는 소리를 듣는다.

▲다음 선거에도 나설 것인가.

-일단 4년을 잘 할 생각이다. 선거는 직원들이 해준다는 말이 있다. 제가 일을 잘하면 직원들의 입을 통해 조합원들에게 알려진다. 제가 일을 못하는 데도 다음번 선거에서 당선된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평생 한 일은 목장 경영하고 축협일 한 거 밖에 없는데 진주축협이 전국에서 최고가는 조합으로 만드는 게 저의 인생에 남은 일이라는 생각이다. 황인태 본지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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