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병호 진주 수곡농협 조합장 - 2015년 첫 당선 후 이번 선거로 재선에 성공
문병호 진주 수곡농협 조합장 - 2015년 첫 당선 후 이번 선거로 재선에 성공
  • 경남미디어
  • 승인 2019.06.28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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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현직조합장과 맞붙어서 처음으로 당선돼
지난 임기에 딸기 수출 1000만불 달성쾌거 이뤄
수곡농협에 입사 후 32년간 생활한 ‘수곡농협 맨’
고품질 딸기생산으로 딸기종가 수곡 명성 이을 것
문병호 수곡농협 조합장은 2015년 현직조합장과 맞붙어 이긴 후 이번 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했다.
문병호 수곡농협 조합장은 2015년 현직조합장과 맞붙어 이긴 후 이번 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했다.

문병호(62) 진주 수곡농협 조합장은 2015년 전국 동시 조합장 선거에 처음 출마해 당선된 후 이번에 재선에 성공했다.

2015년 선거 때 문 조합장은 당시 현직 조합장과 맞붙었다. 현직과의 대결이라 모두들 이기지 못할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문 조합장은 예상을 깨고 60%가 넘는 득표를 해 현직조합장을 큰 표 차이로 누르고 당선됐다. 사람들은 이변이라 생각했지만 문 조합장은 자신이 있었다.

문 조합장은 1982년 군대를 제대한 어린 나이에 수곡농협에 입사해 지금까지 32년 동안 수곡조합에서만 살았다. 다른 농협에 전근을 가 본 적도 없이 수곡농협에서만 평생을 산 수곡농협 귀신이다. 그래서 수곡농협에 대해서는 그 누구보다도 잘 안다. 현직 조합장과의 대결이라는 불편함은 있었지만 문 조합장은 수곡농협을 위해 최종책임자로 꼭 일하고 싶었다. 오래 일해서 수곡농협을 잘 알지만 최종 책임자가 아니다 보니 지금까지 일을 하는 데 한계가 많았다. 조합장이 돼서 그런 한계 없이 마음껏 수곡농협의 발전을 위해 일하고 싶었던 게 문 조합장이 출마한 이유였다.

다행스럽게 조합원들이 문 조합장의 이런 뜻을 잘 받아줘서 첫 출마에서 당선의 영광을 안았다. 문 조합장은 조합장이 돼서 기쁜 것도 있지만 자신이 32년간 수곡농협에서 살아온 인생에 대해 조합원들이 잘 평가해 준 것에 대해 고마운 생각이 먼저 들었다. 인생을 헛살지는 않았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뿌듯했다.

첫 임기 때는 정신이 없었다. 처음 해 보는 조합장 자리라 익숙하지도 않았다. 그래도 첫 임기동안 딸기 수출 1000만 불을 달성했다. 전국 최초의 기록이다. 면단위의 조합에서 1000만 불 수출 달성이라는 쾌거를 이루다 보니 대통령 표창도 받았다. 그만큼 지난 임기는 딸기수출에 매진했다. 딸기 수출에 매진하는 것과 함께 본점을 리모델링을 해서 농자재센터와 하나로 마트를 확장했다. 지금까지 조합원들의 숙원사업이었다. 문 조합장은 그것을 단방에 해결해 버린 것이다. 문 조합장은 지금까지 그 어느 조합장보다도 지난 4년간 자신이 더 많은 일을 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이런 지난 임기의 성과에 대해 이번 선거에서도 조합원들이 잘 평가해 줘 무사히 재선고지를 넘었다. 이번에도 선거는 어려웠지만 조합원들은 역시 성과로 평가했다.

이번 임기에 문 조합장은 냉동딸기 수출에 도전할 생각이다. 딸기는 냉동이 어렵기 때문에 지금까지 생과로만 수출을 했다. 그래서 늘 한계가 많았다. 문 조합장은 지난 4년간 딸기 냉동기술을 축적했다. 문 조합장은 이런 기술축적으로 이제 냉동딸기 수출을 해도 되겠다는 생각을 한다. 만약 냉동딸기 수출이 성공한다면 조합원들의 소득증대에 큰 계기가 될 것이라는 게 문 조합장의 진단이다. 그래서 이번 임기 중에 반드시 성공시킬 생각이다.

문병호 조합장은 1957년 진주시 상봉서동에서 태어났다. 진주 중안초등학교와 중앙중학교, 기계공고를 졸업했다. 군대를 제대한 1982년 수곡농협에 직원으로 첫 입사를 했다. 기계공고를 졸업한 친구가 권유해서 농협에 들어오게 됐다.

문 조합장은 진주시내 출신이지만 수곡에 와 보니 수곡이 좋았다. 그런 첫 느낌이 평생을 수곡에서 살게 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보통 농협에 근무해도 다른 지역으로 전근을 가기도 하는데 문 조합장은 특이하게도 단 한 번도 다른 농협으로 이전을 해 본 일도 없다. 그런 이유로 문 조합장은 누구보다도 수곡조합에 대해서는 구석구석 잘 안다.

수곡조합에 근무하면서 기억에 남는 일로는 본점을 지금의 위치로 이전한 것이다. 90년대 초반이었던 것으로 기억나는 데 당시 본점은 침수가 되는 지역에 있었다. 그래서 비만 오면 침수가 돼 직원들이 고생을 했다. 당시 기획업무를 보고 있던 문 조합장은 이래서는 안되겠다 싶어 본점을 현재의 위치로 옮기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작업을 진행했다.

그랬더니 조합원들이 들고일어나 반대를 했다. 반대의 이유는 자금 문제였다. 당시 본점을 신축하면 이자비용만 일 년에 4천만 원 정도 들어갔다. 그런데 4천만 원은 당시 조합의 일 년 수익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조합원들이 문 조합장보고 “조합 망하게 할 놈”이라는 비판을 했다. 이런 비판에도 굴하지 않고 본점을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그런데 이게 대박을 냈다. 당시 수곡은 딸기 재배가 본격화 되던 시기였다. 이 딸기 생산 확대와 함께 새로운 본점으로 인해 수곡조합이 급성장 하는 계기가 됐다.

문 조합장은 수곡농협을 직장으로 생각하지 않고 내 집으로 생각한다. 내 집처럼 생각하고 키워놨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산다. 그래서 조합장을 하는 것도 내 집을 그 어느 집보다 더 잘 만들고 싶은 욕심 때문이다. 이제 두 번째 임기가 시작되는 시점에서 우리나라 딸기 종가인 수곡을 그 어디도 따라오지 못하는 곳으로 만드는 게 문 조합장의 꿈이다.

다음은 문병호 조합장과의 인터뷰이다. 

▲수곡농협은 관할이 어디인가.

-진주시 전체가 관할이다. 이전에는 진주시 수곡면만 관할 대상이었는데 최근 법이 바뀌어 진주시 전체가 관할이 됐다. 진주 중부농협이나 동부농협과 똑같은 지위를 갖는다.

▲그래도 현실적으로는 수곡면 사람들이 주로 조합원이겠다.

-그렇다. 현재 조합원은 1250명 정도 된다.

▲수곡농협은 언제 생겼나.

-1965년 10월 5일 창립했다. 수곡농협이 진주에서 가장 빨리 생겼다. 수곡농협의 자부심이기도 하다.

▲이유가 뭔가.

-저도 잘은 모르겠다. 다만 수곡이 예전에는 농업으로 유명한 지역이었다. 농민운동도 활발했다. 진주 농민운동 기념탑이 여기서 옥종면 방향으로 1km 정도만 가면 창촌다리가 있는 데 그 앞 대로변에 서 있다. 탑이 위치한 자리가 예전에 무실장터이다. 아마 무실장터에서 농민운동이 시작한 게 아닌가 생각된다.

▲이번이 몇 번째 선거인가.

-재선이다. 2015년 전국 동시선거에 처음 출마해 당선된 이후 이번이 두 번째 선거였다.

▲그럼 첫 선거가 어려웠겠다.

-모든 선거는 어렵다. 그래도 첫 선거가 기억에 남는다.

▲왜 출마했나.

-저는 32년간 조합에서 직원으로 근무를 했다. 그래서 제가 살아온 것을 조합원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한번 평가받아 보고 싶었다. 또 직원으로 일하는 건 한계가 있다. 최종 책임자가 아니기 때문에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하지 못하는 게 많다. 그래서 평생 일해 온 수곡농협에서 최종 책임자로 일해보고 싶었다.

▲선거는 어땠나.

-당시 현직 조합장과 맞붙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왜 조합원들이 모든 것이 유리한 현직 조합장 대신에 전무를 택했을까.

-수곡농협은 딸기가 주 작물이다. 그래서 딸기를 어떻게 팔 것인가가 가장 중요한 현안이다. 딸기를 파는데 있어 현직 조합장 보다는 당시 전무로 퇴직했던 제가 더 잘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조합원들이 그런 것을 어떻게 안다는 말인가.

-저는 앞에서 말했지만 평생 수곡농협에서만 생활했다. 어려서 수곡농협에 입사해서 늙어 퇴직할 때까지 32년간을 수곡농협에서만 살아온 특이한 케이스다. 그렇다 보니 저의 수곡농협 생활과 능력, 성격, 대인관계, 사회생활 등 일거수일투족에 대해 모르는 게 하나도 없다. 제가 평생 살아온 모든 것에 대해 조합원들이 잘 알고 있다. 그런 종합적인 것에 대해 평가를 한 것이 아닌가, 그리 생각한다. 다행히 당선이 돼서 제가 수곡농협에서 그리 못살아오지는 않았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당시 득표율이 얼마였나.

-60%를 넘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정확한 수치는 모르겠다.

▲그 정도면 압승 아닌가.

-생각보다 많은 표 차이로 이겼던 기억이 난다.

▲그럼 이번 선거는 어땠나.

-이번 선거는 지난 4년에 대한 평가를 받는다는 자세로 임했다.

▲후보는 몇 명이었나.

-3명이었다.

▲그래서 득표는 어땠나.

-약 50%에 육박하는 득표를 했다.

▲3명 나와서 절반 정도 받았으면 압도적이지 않은가.

-저도 그렇게 생각한다. 지난 4년간 나름대로 잘 했다고 조합원들이 평가한 것으로 생각한다.

▲지난 4년 첫 임기 때 주로 한 일은 무엇인가.

-수곡은 전국 최고의 딸기 생산지이다. 그래서 딸기를 수출하는 일에 집중했다. 딸기도 이제 과잉생산 단계에 접어들어 수출을 하지 않으면 농가소득을 올릴 수 없다. 그래서 수출에 집중했다.

▲성과가 있었나.

-제가 취임할 때 700만 달러 정도 수출했다. 그런데 지난해 수출 1000만 달러 상을 받았다. 4년간 약 50%의 수출증대를 가져왔다. 이건 농협에서 수출한 것만 집계한 것이고 농협이 수출에 집중함에 따라 다른 영농조합에서 수출한 것까지 포함하면 이것보다 크게 늘었다고 보면 된다. 첫 임기는 오로지 딸기수출을 늘리는 데 초점을 뒀고 어느 정도는 성과를 거뒀다. 이런 노력에 대한 평가를 받아 2018년 농업인의 날에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딸기 수출 채산성은 어떻게 되나.

-국내 판매보다는 채산성이 있다. 국내 판매의 경우 연간 평균 단가가 1kg에 8100원 정도 된다. 수출은 약 9000 원 정도 된다. 수출은 여기에다가 선별비, 물류비 등을 지원받는다. 그래서 국내 판매보다는 수익성이 좋다.

▲그 외 다른 일은.

-본점 리모델링 사업을 했다. 리모델링을 통해 조합장 방을 1층으로 옮겼다. 당초에는 조합장 방이 2층에 있었다. 그래서 조합원들이 조합장 방에 오는 데 불편함이 있었다. 그런데 1층으로 옮기고 나니 조합장 방을 찾는 조합원들이 늘었다. 그만큼 소통이 원활하게 된다는 말이다.

▲본점에는 사무실만 있나.

-아니다. 농자재센터도 있고 마트도 있다. 리모델링 하기 전에는 농자재센터도 좁아서 문제가 많았다. 그런데 농자재센터와 하나로마트의 규모를 늘려 입주를 시켰다.

▲이런 일들을 평가받아 재선에 성공한 것인가.

-아무래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저는 지난번 임기 4년 동안 지금까지 수곡농협 조합장 가운데 가장 일을 많이 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그런 것을 조합원들이 말을 하지 않아도 다 평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 이번 임기에는 어떤 일을 할 것인가.

-이번 임기에는 딸기 생과수출도 늘리겠지만 냉동딸기 수출에 도전해 볼 생각이다.

▲냉동 딸기 수출이 가능한가.

-지금까지 딸기 냉동에 대해 노하우를 많이 축적했다. 이미 국내 시장에는 내놓고 있다. 반응이 좋은 편이다. 그래서 수출에도 적용해 볼 생각이다. 이미 수출선에 샘플을 보내 놓은 상태이다. 냉동딸기 수출이 활성화되면 조합원들의 소득증대에 또 하나의 획기적인 계기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그 외 이번 임기 중에 할 일은.

-어쨌든 수곡은 딸기생산이 가장 중요한 현안이다. 그래서 고품질의 딸기를 만들어 내는 게 중요하다. 이를 위해 수정벌 보조 사업을 시작할 계획이다. 수곡은 벌을 통해 수정을 한다. 이것을 정부 보조를 받도록 지금 진주시와 협의 중이다.

▲딸기 외에 할 일은 없나.

-조합원들이 고령화가 심각한 수준이다. 그래서 벼 육묘장을 만들어 조합원들의 노동력을 줄여줄 계획이다. 또 연작으로 인한 토양개량 사업도 계획하고 있다. 이것 정도는 이번 임기에서 완성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개인적인 얘기를 좀 해 보자. 어디서 태어났나.

-1957년 진주시 상봉서동에서 태어났다.

▲학교는 어떻게 되나.

-진주 중안초등학교와 중앙중학교, 기계공고를 졸업했다. 대학은 과기대에 진학했지만 업무에 바쁘다 보니 졸업을 못했다.

▲기계공고를 졸업한 사람이 왜 공장으로 가지 않고 농협으로 왔나.

-당시에는 기계공고 졸업하고 농협에 있는 선배들이 많았다. 또 기계공고를 같이 졸업한 친한 친구가 농협에 있었다. 그 친구가 농협이 좋은 직장이라고 많이 권했다. 그 친구의 영향이 컸다. 그런데 그 친구는 안타깝게도 일찍 돌아가셨다.

▲그럼 농협에는 언제 들어온 것인가.

-군대 제대하고 1982년 수곡농협에 입사했다.

▲시작부터 수곡농협에서 한 건가.

-그렇다. 그리고 저는 평생 수곡농협을 떠나 본 적이 없다. 2014년 말에 조합장 출마한다고 사표를 냈으니 32년 동안 수곡농협에서만 살았다. 이런 사례는 그리 많지 않을 거다.

▲농협 직원 출신이라 하더라도 평생을 한 조합에서만 근무한 사람은 보지 못했다. 왜 그리 됐나.

-이유는 모르겠는데 어떻게 하다 보니 그리 됐다. 우선 수곡이 저는 마음에 들었다. 시내에서 태어나 시내에서 학교를 졸업했는데도 당시는 시골이었던 수곡이 왠지 마음에 들었다. 시내에 있다가도 여기만 오면 마음이 놓일 정도로 수곡을 좋아한다. 그렇다 보니 굳이 다른 조합에 갈 이유가 없었다.

▲32년간 수곡농협에서 지내면서 에피소드도 많을 것 같은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본점을 지금 위치로 옮긴 것이다. 90년대 초반이었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당시 조합이 여기서 1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다. 그런데 그곳이 저지대라 비만 오면 침수가 되는 지역이었다. 그때 제가 총무기획을 보고 있던 때이다. 그래서 본점을 여기로 옮기자고 기획을 하고 추진을 했다. 그랬더니 조합원들의 반대가 심했다.

▲왜 반대가 심했나.

-조합 건물을 새로 지으려니 연 이자 지급액이 4천만 원 정도 됐다. 당시 조합의 수익이 그 정도였으니 수익을 모두 이자지급에 쏟아부어야 할 판이었다. 그래서 조합원들이 “조합 망해 먹을 놈”이란 말들을 많이 했다. 그런 반대가 있었어도 강행했다. 그런데 그게 대박이었다.

▲왜 대박이 됐나.

-본점 이전과 수곡 딸기의 본격적인 재배가 맞물리는 시기였다. 그래서 본점을 옮기자 수곡딸기와 함께 수곡농협이 급성장을 했다. 이자 지급은 문제가 되지 않을 정도였다. 그것이 제 수곡조합 생활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다.

▲주변에 친구는 어떤 사람들이 있나.

-진주시의회 의장을 하는 박성도 시의원이 제 기계공고 동기이다.

▲조합장의 꿈은 무엇인가.

-수곡은 우리나라 딸기의 종가이다. 80년대에는 수곡딸기가 올라가야 딸기 장이 설 정도였다. 지금은 다른 지역에서도 딸기를 많이 생산하지만 수곡딸기의 명성은 아직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제가 조합장을 하는 동안 명품딸기를 만들어 딸기의 종가 수곡딸기의 명성을 이어가도록 하는 것이다. 그게 조합원들이 저를 선택한 데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한다. 황인태 본지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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