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경 진주 대곡농협 조합장 - 첫 출마에서 현직 조합장 누르고 당선
최상경 진주 대곡농협 조합장 - 첫 출마에서 현직 조합장 누르고 당선
  • 경남미디어
  • 승인 2019.07.05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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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격적인 농협 경영에 조합원이 공감해 당선됐다
진주 혁신도시에 지점 개설 큰 농협들과 경쟁할 것
농산물 가공공장 만들어 조합원 소득 높여 나갈 것
한미 FTA 반대 시위에 진주서 버스 250대 동원해
농민 위하는 마음만은 세상 어느 조합장 보다 크다
최상경 대곡농협 조합장은 이번 선거에 처음 출마해 현직 조합장을 누르고 당선됐다.
최상경 대곡농협 조합장은 이번 선거에 처음 출마해 현직 조합장을 누르고 당선됐다.

최상경(62) 진주 대곡농협 조합장은 첫 출마에서 현직 조합장을 누르고 당선되는 기염을 토했다. 특히나 농협직원 출신도 아니어서 모든 사람들이 현직 조합장의 우세를 점쳤다. 그러나 투표함을 열어보니 최 조합장의 당선이었다.

최 조합장은 농협이 이대로 가서는 안 된다는 것을 평생 강조해 온 사람이다. 농민운동 하면서도 농협이 조합원들의 직원이면서 공무원처럼 행동한다며 비판해 온 사람이다. 그래서 농협이 원래 취지대로 운영돼야 한다는 것을 줄곧 주창해 왔다. 이번 선거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농협을 주인인 조합원들에게 돌려주자는 게 선거기간 내내 최 조합장이 목청 높여 외쳐온 바다. 이런 최 조합장의 호소에 조합원들이 표로 응답했다.

모든 것이 우세하다는 현직 조합장과의 대결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직원도 아니고 오로지 농민운동만 해 온 자신을 조합원들이 조합장으로 선택한 것이다. 그래서 최 조합장은 이제 시대가 바뀌기 시작했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최 조합장은 임기를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로 진주혁신도시에 지점을 내는 일을 들었다. 진주 혁신도시는 진주에서 큰 농협들 5개가 지점을 개설해 있는 곳이다. 경쟁이 가장 치열한 곳이다. 최 조합장은 여기에서 큰 농협들과 싸워서 이겨야만 진정한 의미에서 대곡농협이 자리를 잡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최 조합장은 다른 어떤 프로젝트에 우선해 혁신도지 지점 개설을 추진해 가고 있다. 약 40억 원이 들어가는 재원도 마련해 둔 상태이다.

최 조합장이 임기 중 또 하나 의욕적으로 추진하고자 하는 일은 농산물 가공공장을 설립하는 일이다. 농협이 이런 일까지 해야 되겠느냐 하고 묻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최 조합장은 농산물 가공공장이 조합원들의 소득을 올려주는 첩경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앞으로 식자재 납품은 모두 가공을 거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지금도 깐 마늘, 자른 양파 등 가공형태로 납품해 달라고 요구하는 식자재 업체들이 많다. 앞으로 이런 추세는 하나의 트렌드가 될 것이라는 게 최 조합장의 전망이다. 그래서 최 조합장은 농산물 홍수출하기에 조합원들의 농산물을 사서 저장했다가 가공을 거친 다음 판매하는 농산물 가공공장을 만들 생각이다. 민간이 하는 일이지만 농협은 적자를 내지만 않으면 되기 때문에 민간과 경쟁해서도 뒤지지 않을 것이라고 최 조합장은 자신하고 있다.

최 조합장은 대곡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평생 농민운동을 해 왔다. 농민운동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로 한미FTA를 반대하기 위해 진주에서 250대의 버스를 동원한 일을 꼽았다. 약 1만명의 농민들을 250대의 차량에 나눠 태우고는 서울의 집회장으로 향할 때 가슴이 뜨거워 졌던 일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그렇게 반대해도 한미FTA는 체결이 됐지만 그래도 그런 활동으로 인해 농민의 이익이 조금은 지켜졌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최 조합장은 1957년 대곡면 와룡리 유동마을에서 태어났다. 중학교까지는 대곡에서 나온 다음 부모님의 권유로 부산 동서고등학교에 유학했다. 그러나 한창인 시절에 부산에서 혼자서 살다보니 노는 재미에 빠져 공부는 열심히 못했다. 학교 졸업 후에 고향으로 귀향한 최 조합장은 아버님의 별세가 겹쳐서 농사를 짓게 됐다. 그런데 농사가 그리 싫지 않았다. 그래서 다들 도시로 도시로 향할 시기에 최 조합장은 고향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인생을 시작했다.

농사를 짓다가 부산에 가서 사업도 해보고 다시 귀향하기도 하고 대곡에서 주유소도 경영했다. 주유소는 조합장에 출마하기 전까지 경영하다가 지금은 폐업을 해 둔 상태이다. 주유소가 잘 됐지만 조합장에 전념하기 위해서는 주유소를 팔아야 되겠다는 게 최 조합장의 생각이다. 최 조합장은 비록 실력은 부족할지 모르지만 조합원을 위하고 농협을 원래 주인인 농민들에게 돌려주어야 한다는 생각에는 우리나라 그 어떤 조합장보다 더 확고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한다.

다음은 최상경 조합장과의 인터뷰이다.

▲대곡농협은 관할이 어디인가.

-원래는 진주시 대곡면이 관할이다. 그런데 최근 법령이 개정돼 진주시 전체가 관할이 됐다.

▲언제 설립됐나.

-1966년 설립됐다.

▲오래됐는데 다른 조합에 통합되지 않고 그동안 잘 유지돼 왔다.

-그렇다. 이웃에 있는 중부농협 등과 통합 논의 등이 있었지만 조합원이 반대해 통합되지 못했다. 대곡은 비교적 농업기반이 좋은 편이라 사실 통합하지 않아도 운영하는 데 큰 문제가 없다.

▲이번이 초선인가.

-그렇다.

▲출마한 이유가 무엇인가.

-저는 농민운동을 해 왔다. 농민운동을 하면서 늘 농협이 농협의 기본취지에 맞지 않게 운영된다고 생각해 왔다. 그래서 농협을 원래의 취지대로 운영하기 위해서 출마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어려워서 이해가 잘 안 된다.

-농협의 기본은 농민이다. 따라서 그 어떤 이유보다도 농협은 농민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

▲농협이 농민 말고 다른 이를 위해서 활동하나.

-농협이 정부의 대행사업을 많이 한다. 그렇다 보니 농민보다는 정부 편을 들 때가 종종 있다. 농협직원들도 자신들이 조합원들의 직원인지 정부의 공무원인지 헷갈려 할 때가 있다. 그런 점을 그리 말하는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농협은 농민 편이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그게 이번 선거에서 먹혔나.

-조합원들이 동의했으니 당선되지 않았겠나.

▲이번 선거에는 총 몇 명이 출마했나.

-현직 조합장을 포함해 모두 5명이 출마했다.

▲득표율은 어떻게 되나.

-35% 정도 득표했다.

▲5명 출마해서 그 정도 득표면 상당히 안정적인 지지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 특히 모든 면에서 유리한 입장인 현직 조합장을 상대로 이만한 득표를 한 것은 조합원들이 좋게 봐 주었다고 생각한다.

▲선거에서 쟁점은 있었나.

-쟁점이라기보다는 현직 조합장은 안정적인 조합운영을 강조했고, 저는 공격적인 경영을 강조했다.

▲그럼 조합원들이 공격적인 경영에 더 지지를 보냈다는 의미 아닌가.

-그렇게 생각한다. 조합원들은 지금 현실에 안주하기보다는 좀 더 공격적인 경영으로 조합을 발전시켜 주기를 바란다고 생각된다.

▲최 조합장은 이 같은 조합원의 생각을 어떻게 실현시킬 것인가.

-제 임기 동안에 진주혁신도시에 지점을 낼 생각이다. 여기에는 신용사업부와 로컬푸드 직매장이 들어갈 것이다.

▲왜 혁신도시에 들어갈 것인가. 본점이 위치한 대곡과는 많이 떨어진 곳인데.

-진주 혁신도시는 진주의 성장엔진이다. 여기에서 이미 진주의 농협들이 5곳이나 들어와 있다. 여기서 다른 조합과 경쟁해서 이기겠다는 말이다. 그래야 대곡조합이 우물 안 개구리를 벗어나 제대로 된 조합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승산은 있나.

-저는 대곡농협이 이길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획을 잘 하면 다른 농협과 경쟁에서 승산이 있다. 또 대곡은 시설채소나 과실류에서 다른 지역보다 농사를 잘 짓는다. 로컬푸드 직매장을 통해 진주시민들에게 대곡농산물의 우수성을 보여줄 것이다.

▲언제 시작할 것인가.

-구체적 계획이 만들어지는 대로 곧 시작할 거다.

▲재원은 마련돼 있나.

-약 40억 원 정도 들어가는데 재원마련계획은 서 있다.

▲임기 중 또 하고픈 일은 무엇인가.

-식자재 가공공장을 만들고 싶다.

▲그건 뭔가.

-농산물 가격이 폭락하는 것은 홍수출하기라고 해서 제철에 한꺼번에 나오기 때문에 그렇다. 그래서 홍수출하기에 농산물을 구매해서 반 가공 등을 해서 판매하는 사업을 농협에서 시작하겠다는 거다.

▲그건 민간인들이 사업차원에서 하는 것 아닌가.

-그렇다. 지금까지 농협에서는 잘 안 해 왔다. 그런데 농협에서 이제 이런 분야에 눈을 돌려야 한다. 그래야 조합원들의 소득도 보장할 수 있게 된다.

▲민간인들과 경쟁에서 이길 수 있나.

-농협은 장점이 수익을 내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적자만 나지 않으면 하는 것이 조합원들을 위해 바람직하다. 그게 제 생각이다.

▲상당한 사업수완이 필요할 것 같은데.

-제가 젊었을 때는 사업도 해 본 경험이 있다. 그리고 요즈음은 식자재 납품이 대부분 가공 상태 납품으로 진화하고 있다. 예를 들면 마늘도 깐 마늘 납품으로 바뀌고 있고 양파도 썰어서 가져오라고 한다. 가공하지 않으면 식자재 회사들이 납품을 받지 않는 시대가 곧 온다. 그런데 개별 농가차원에서는 가공해서 납품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농협이 이를 대신해야 한다. 이런 일을 대곡농협에서 먼저 시작하겠다는 거다.

▲이런 일을 하기 위해서 대곡조합이 해결해야 할 가장 큰 문제는 뭔가.

-조합원과 직원들의 의식이 깨어나야 한다는 거다.

▲그건 무슨 말인가.

-조합장이 돼 보니 조합원들도 그렇지만 특히 직원들이 매너리즘과 패배주의에 많이 빠져 있더라. 무엇을 해도 시큰둥하다. 그래서 먼저 직원들부터 ‘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심어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말로 해서 되는 일이 아니다. 어떤 성공스토리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직원들이 “하니까 되네…”하고 생각할 것이다. 그래서 성공스토리를 만들 것이다.

▲성공스토리의 첫 번째가 앞에서 얘기한 혁신도시에 지점을 내는 것인가.

-그렇다. 5개의 진주농협이 경쟁하는 혁신도시에서 경쟁해서 이긴다면 대곡조합도 오랜 잠에서 깨어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인 얘기를 해보자. 어디서 태어났나.

-1957년 진주시 대곡면 와룡리 유동마을에서 태어났다. 6형제 중 5번째였다.

▲학교는 어떻게 되나.

-중학교까지 대곡에서 나왔고 고등학교는 부산동서고등학교로 유학을 갔다. 이후에 경남과기대 농학과를 졸업했다.

▲당시 대곡에서 부산으로 유학가려면 집안이 부유했던가 보다.

-그런 건 아니다. 어릴 때 아버님이 장에 갔다가 장터에 있는 국수가 맛있게 보여서 먹고 싶었으나 자식들 공부 때문에 참고 오셨다는 말을 들었다. 그 정도로 아버님의 자식공부에 대한 열의가 대단했다. 그래서 부산까지 유학을 갔다.

▲그래서 공부는 잘 했나.

-아니다. 한창 젊었을 때 부산에서 혼자 살았으니 재미있는 일이 많았다. 그래서 놀기 바빴고 공부는 제대로 안 했다.

▲그럼 고등학교 졸업 후에는 어떻게 했나.

-고향으로 돌아왔고 군대 갔다 와서 농사를 지었다.

▲왜 농사를 짓게 됐나.

-형님들이 다 고향을 떠났다. 그런데 그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래서 농사를 지을 사람이 없었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제가 맡아서 하게 됐다.

▲그래도 어릴 때 대도시로 유학까지 갔던 사람이라 시골이 답답했을 것 같은데.

-그렇지는 않았다. 농사가 그리 싫지는 않았다.

▲농사는 얼마나 됐나.

-논이 4000평, 밭이 2000평 정도 됐다.

▲지금도 농사를 짓고 있나.

-지금도 콩 농사를 3000평 정도 짓는다.

▲농사만 지었나.

-아니다. 농사짓다가 사업하러 부산에 가기도 했다. 또 귀향해서 농사도 짓고 주유소도 운영했다. 조합장 출마하기 전까지 주유소를 운영했는데 출마하면서 폐업을 했다.

▲왜 그게 조합장 활동하는데 장애가 되나.

-그런 건 아니지만 이제 조합장 일에 전념해야 하고 또 어차피 팔려고 했던 거다. 그래서 폐업을 해 두었다.

▲그럼 농사짓는 땅은 팔았나.

-아니다. 아버님에게서 물려받은 땅은 한 평도 팔지 않았다. 2016년에 모두 다 묶어서 종답을 만들었다. 그래서 앞으로 누구도 제가 농사짓던 땅을 팔지 못한다.

▲그럼 농토는 앞으로 어떻게 처리되나.

-제가 농사짓다가 못 지으면 아들들 가운데는 지을 놈이 없으니 손자들에게 기대해 보는 수

밖에 없다. 그것도 안 되면 임대해서 수수료 받아서 제사 지내야 한다. 그런데 우리 세대가 가면 제사나 지내겠나. 후손들이 누군가는 관리할 거라고 생각한다.

▲농협과는 어떻게 인연이 됐나.

-저는 농민운동을 주로 했다. 금산농협 신정호 조합장하고 금곡농협 정의도 조합장이 농민운동을 함께 한 사람들이다.

▲농민운동 하면서 기억에 남는 일은.

-한미FTA 체결할 때 제가 진주시 농민운동 대표를 맡고 있었다. 그때 한미FTA 반대한다고 진주에서 버스 250대를 동원해 서울에 올라간 일이 있다. 버스 250대를 동원하는 것은 참으로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 일을 해냈다. 그게 기억에 많이 남는다.

▲한미 FTA는 지금 와서 보면 우리나라에 이익이 된 일인데 왜 그리 반대했나.

-나라 전체로 보면 그럴 것이다. 그러나 농민 입장에서 보면 희생이 컸다. 아직도 농민들의 희생에 대해서는 완전한 보상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생각된다.

▲조합장이 되어 보니 어떤가. 평소생각처럼 잘 할 수 있겠나.

-저는 다른 어떤 조합장에 비해서도 정신 상태는 똑 바르다고 생각한다. 조합원을 위하고 농협을 위한다는 정신만큼은 그 어떤 조합장에 비해서도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한다. 황인태 본지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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