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우칼럼] 혼자 살아간다는 것
[정용우칼럼] 혼자 살아간다는 것
  • 경남미디어
  • 승인 2019.07.10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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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우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과 객원교수(전 학부장)
정용우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과 객원교수(전 학부장)

우리 집을 둘러싸고 도로나 도랑을 경계로 하여 접해 있는 집이 모두 6가구이다. 이서방네 아주머니댁도 그중 하나다. 다른 집은 대개 도로를 사이에 두고 접해 있지만, 이 집은 우리 집과 도랑 하나를 사이에 두고 접해 있다. 이서방네 아주머니가 올해 91세인 까닭에 도랑 정리 작업은 항상 나의 몫이다. 도랑에 쌓인 토사를 걷어내고 자라난 풀을 베어내야만 여름철 물이 잘 흐른다는 것은 알아 성화가 심하다. 말 못하는 아주머니라 상대하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이 아주머니께서 얼마 전에 뇌출혈을 일으켜 요양병원에 입원해 재활치료를 받고 계신다. 혼자 살다가 입원하였으니 지금은 빈집이 되었다. 워낙 고령이라 내 생각으로는 다시 이 집으로 돌아오기가 어려울 것 같다.

이 아주머니 외에도 도로 건너 또 한 가구의 아주머니도 요양병원에 입원해 계신다. 역시 혼자 살고 계시던 94세 아주머니인데, 지난해 산책길에서 발을 잘못 디뎌 도랑에 빠져 헤어나질 못해 허우적거리다가 이장에게 발견되어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지금까지 퇴원을 못하고 있다. 동네 사람들 이야기로는 이 아주머니도 아마 다시 집으로 돌아오기가 힘들 것 같다고 한다. 도로를 사이에 두고 우리집과 접하고 있는 또 다른 두 가구는 아주머니 혼자 사시다가 2~3년 전에 돌아가시고 지금은 빈집 상태로 남아 있다. 이 외 두 가구는 사람이 살고 있다. 한 가구는 아주머니 혼자서, 또 다른 한 가구는 비교적 젊은 부부가 농사일에 종사하고 있다. 줄여서 말하자면 우리집을 둘러싸고 있는 여섯 가구 중 다섯 가구가 비어 있거나 혼자서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나까지 포함하면 일곱 가구 중 여섯 가구가 이에 해당한다. 이게 우리 마을의 현 거주실태이다. 혼자 살아가는 것이 대세가 된 세상이다.

요즘 혼자 살아가는 인구가 많다 보니 ‘홀로족’이나 ‘혼자 안녕하기’ 등의 신조어들이 생겨난다. 대개는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것에 큰 의미를 두는 말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도시에서는 ‘초라한 더블 보다는 화려한 싱글이 낫다’라며 혼자 사는 즐거움을 찬미하는 말이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한 적이 있다. 아마 도시의 젊은이들에게는 현재진행형인지도 모르겠다. 젊은 여성 1인가구의 경우 더욱 그럴 것이다.

그러나 이곳 시골은 다르다. 인생은 결국 혼자서 가는 길이라고 한다지만 혼자서 살아가는 노인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왠지 허전해 보이고, 나도 머지않아 저러한 처지에 다다르게 될 것을 생각해 보면 허허롭기만 하다. 인간의 만년(晩年)은 쓸쓸한 게 당연한 일이고, 갈수록 사회로부터의 소외 정도가 심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지만 가끔 노인 빈곤이나 노인 고독사 등의 비극적인 이야기들이 들려올 때에는 절망감까지 느끼게 된다.

백세 시대가 오기도 전에 고령사회의 그늘이 짙고도 길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두 손 놓고 그저 바라만 보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의 노후가 빈곤 때문에, 외로움 때문에 불안하고 자살을 선택하는 사람이 늘어난다면 이는 건강사회가 아니기 때문이다. 100세 장수시대가 축복이 아니라 저주라는 말이 나와서는 안 된다. 노후대책 등에 대한 복지정책들이 강화돼야 하고 이를 위한 예산마련도 중요하다. 그러나 재원마련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니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코맥 맥카시의 소설 제목)는 말까지 나오지 않았겠는가.

진정으로 노인을 위한 나라는 누가 만들어주지 않는다. 노인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국가의 정책이나 제도에만 의존할 경우, 노인은 기껏해야 복지의 대상이 될 뿐이다.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수동적 존재로 밀려나게 된다는 뜻이다. 하여 큰돈 들이지 않고도, 돈에 의해 전적으로 좌지우지되지 않고도 우리 삶의 방향을 전환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는 거다. 자신의 삶을 성찰하며 은퇴 후 살아갈 짧지 않은 삶의 방향을 찾기 위한 철학적 고민의 시간을 가져보는 거다. 이제 세상의 순리를 알게 되었으니, 남에게 의존하지 않고 우리 주체적으로 삶의 내용을 채워나가 보는 거다. 욕심을 버리고 훌훌 초연한 세계로 나아가 보는 거다. 모습은 자꾸 왜소해져 가도 마음은 한없이 커가는 것이 나이 듦의 의미라면 나이가 든다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 아니겠는가. 그럴 수 있다면 아무도 찾아오는 이 시골에서 아무런 할 일이 없어도, 병들어 침대에 누워 지낼 수밖에 없을지라도 행복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런 사람이 되도록 힘 써보는 거다. “나이에 알맞은 지혜를 갖지 못한 사람은 그 나이에 가지는 온갖 불행을 면치 못한다”(볼테르)고 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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