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효 합천 가야농협 조합장 - 첫 출마해 박빙 승부 끝에 2표차로 당선되다
정종효 합천 가야농협 조합장 - 첫 출마해 박빙 승부 끝에 2표차로 당선되다
  • 황인태 본지 회장
  • 승인 2019.07.12 13: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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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마 권유받고 중앙회 퇴직하고 출마강행
취임 후 중앙회에서 50억 원 자금 유치해
사고로 어수선했던 조합 빠르게 안정시켜
농협대학 졸업하고 중앙회서 36년간 근무

정종효(61) 합천 가야농협 조합장은 이번 선거에서 혼이 났다. 출마했을 때는 압도적 표 차이로 당선될 줄 알았다. 그런데 선거를 하다 보니 그게 아니었다. 중앙회 출신이라는 게 오히려 걸림돌로 작용했다. 조합을 경영하는 데는 중앙회 출신이 장점이 많다. 그러나 정작 선거에서는 불리했다. 가야조합 출신이 아니다 보니 조합원들과의 인맥에서 절대적으로 열세였다. 평소에 고향사람들이라 안부를 전하는 정도였지 조합장을 하기 위한 목적 아래 관리하지 않았다. 그렇다 보니 막상 선거가 열리니 그냥 아는 정도로는 힘을 쓰지 못했다. 투표함을 열어보니 2표 차이의 박빙의 승부였다. 가슴이 철렁하는 순간이었다.

정종효 가야농협 조합장은 이번에 처음 출마해 박빙의 승부 끝에 2표 차이로 당선됐다.
정종효 가야농협 조합장은 이번에 처음 출마해 박빙의 승부 끝에 2표 차이로 당선됐다.

정 조합장은 2표 차이이긴 하지만 당선이 돼서 조합원들에게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정 조합장은 “그래도 조합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당선이 됐습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절대로 이기지 못했을 겁니다”라고 선거의 소감을 말했다.

정 조합장은 원래 가야농협 조합장에 뜻이 없었다. 정 조합장은 2015년 창원 공판장 책임자로 중앙회를 퇴직한 후 검사역으로 재고용돼 일하고 있었다. 2018년이 되자 고향의 어른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자네가 와야 가야조합이 안정이 되겠네”라며 어른들은 정 조합장의 출마를 권유했다. 처음에는 손사래를 쳤다. 고향 어른들도 집요했다. 그런데 정 조합장도 가야조합의 사정을 잘 알고 있었다. 야로조합과의 통합으로 부실채권을 많은 데다가 가야조합에서도 그해 사고가 났다. 그래서 조합이 어수선하고 표류하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조합의 부도도 걱정될 정도였다. 정 조합장이 와야 조합이 안정되겠다는 어른들의 말이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다. 그래서 정 조합장은 결단을 내렸던 것이다.

선거라는 혹독한 과정을 치렀지만 정 조합장은 오히려 잘 됐다고 생각한다. 그런 과정을 통해 조합을 더 잘 알게 됐고 조합원들에 대한 이해도 높아졌다. 정 조합장은 취임하자마자 조합을 빠르게 안정시켰다. 중앙회에 찾아가서 50억 원이 넘는 돈을 가져왔다. 이 돈으로 일단 급한 불들은 껐다. 사정이 이렇게 되지 직원들도 중심을 잡기 시작했다.

정 조합장은 자신이 임기 중 할 일로 가야농협의 안정을 최우선으로 꼽았다. 사고가 나지 않는 농협, 조합원의 신뢰를 받는 농협으로 탈바꿈시키는 것이 정 조합장의 임무라고 생각할 정도로 조직의 안정을 최우선으로 경영할 생각이다. 그런 다음 경영을 정상화시켜 조합을 흑자농협으로 만들어 나갈 계획이다.

이를 위해 정 조합장은 우선 농협중앙회로부터 100억 원 이상의 자금을 끌어올 생각이다. 이미 50억 원은 가져왔고 남은 돈도 50억 원 이상을 가져올 계획이다. 이런 다음 이 재원들을 활용해 농협을 활성화시킬 생각이다.

정 조합장은 또 임기 중 현재 1100억 원 수준의 대출 규모를 1400억 원으로 늘려나갈 계획이다. 정 조합장은 가야농협 조합원들로서는 불가능하다고 보고 합천출향인사, 외부 기업들을 중심으로 대출을 알선할 생각이다. 또 농산물 판매사업도 적극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가야조합에서는 야로면에서 양파와 마늘 등이 많이 생산된다. 그래서 이들 농산물의 계통출하를 늘리고 단 10원 이라도 더 받을 수 있도록 판매 전략을 다시 짤 생각이다.

정 조합장은 이렇게 해서 가야농협을 안정시키고 사업을 활성화해 조합원들이 믿고 신뢰하는 조합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자신에게 부여된 임무라고 생각하고 있다.

정 조합장은 1958년 가야면 성기리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까지는 고향에서 다니다가 대학은 농협대학을 졸업했다. 농협대학을 졸업하고는 1981년 농협중앙회에 입사를 했다. 36년간 농협중앙회에서 요직을 두루 거쳤다. 그런 다음 창원공판장 책임자를 마지막으로 퇴직을 했다. 퇴직하고 고향으로 와서 지내려고 하는 데 중앙회에서 다시 검사역으로 재고용해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2018년 농협조합장 선거를 앞두고 고향의 어른들이 찾아와 조합장 출마를 집요하게 권유해 사표를 내고 출마를 하게 된 것이다.

정 조합장은 원래 자신의 길은 아니었지만 조합장으로서 농협을 바로세우고 농협이 조합원들로부터 신뢰받는 조합이 되도록 하는 것이 이제 자신의 꿈이 됐다고 말했다.

다음은 정종효 조합장과의 인터뷰.

▲가야조합의 이름이 독특하다.

-조합의 본점이 소재한 곳이 합천군 가야면이다. 그래서 가야조합이라고 이름 지었다.

▲가야의 뜻이 무엇인가.

-불교에서 유래한 용어로 알고 있다.

▲신라 이전에 존재했던 고대국가 가야와는 다른 의미인가.

-그렇다. 그 가야는 함안에 가야읍이라고 있다. 그 의미와는 다르다. 우리가 쓰는 가야는 불교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여기 가야면에 우리나라 불교의 대표적 사찰인 해인사가 위치해 했다. 불교 성지 부다가야에도 가야란 용어가 들어간다.

▲가야조합의 관할범위는 어디인가.

-합천군 가야면과 야로면이 관할이다. 2015년에 가야조합이 야로조합을 흡수 통합했다.

▲조합원은 몇 명인가.

-2303명이다.

▲정 조합장은 이번이 첫 출마인가.

-그렇다. 지난해 농협중앙회에서 퇴직하면서 출마했다.

▲선거가 어땠나.

-치열했다. 모두 4명이 출마해 제가 2표차이로 당선됐다. 또 2등과 3등도 20표 차이밖에 나지 않을 정도로 박빙의 선거를 치렀다.

▲2표차이면 전국에서 최소차이로 당선된 것 아닌가.

-그렇게 알고 있다.

▲어떻게 해서 선거가 이렇게 치열했나.

-처음에는 제가 압도적으로 당선될 줄 알았다. 그런데 선거를 하다 보니 그렇게 됐다.

▲압도적으로 당선될 거라는 것은 무슨 근거가 있었나.

-저는 사실 처음부터 조합장에 뜻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가야조합에 여러 어려움이 있었고 그런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제가 필요하다는 지역 어른들의 뜻을 받들어 출마한 것이다. 그런 의미의 출마였기 때문에 처음에 여론을 들어봤을 때는 제가 압도적으로 당선될 줄 알았다. 그런데 선거란 게 그런 측면만 있는 게 아니더라. 그래서 고전을 했다.

▲어떤 점이 약점이었나.

-아무래도 저는 여기 조합 출신이 아니다. 중앙회 출신이다 보니 고향이기는 해도 조합원들과 접촉이 없었다. 고향에 자주 오기는 해도 어떤 목적을 가지고 조합원들을 관리한 적이 없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조합원들에 대한 인지도도 낮고 또 저를 아는 사람도 적었다. 평생 여기서 살면서 부대껴 온 다른 후보들에 비해 저는 타지 출신으로 보였다. 그런 것들이 약점으로 작용했다.

▲그런데도 어떻게 이겼나.

-조합을 걱정하는 조합원들이 아니었으면 제가 당선되기는 어려웠을 거다. 그래도 제가 조합장이 돼야 어려움에 처한 조합이 안정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조합원들의 뜻으로 당선된 거다.

▲가야조합에 무슨 어려움이 있나.

-합병되기 전에 야로조합에 사고가 있었다. 그래서 부실채권이 90억 원 이상이다. 또 지난해에는 가야조합에서도 사고가 있었다. 이런 일들로 인해 조합이 어수선하고 불안정한 상태이다. 이뿐 아니라 전임 조합장 시절에 조합이 인프라 투자가 너무 많았다. 마트, 주유소 등이 다 신축하거나 개축됐다. 이 때문에 가야조합의 경우 전체자산에서 고정자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90%를 넘는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해야 한다. 이런 것들은 경영능력이 있어야 해결이 된다. 그래서 뜻있는 조합원들은 고향출신 중에 경영능력을 갖춘 조합장이 와야 된다고 생각하고 저의 출마를 권유했던 것이다. 제가 당선되고 나니 될 사람이 됐다는 말들이 많았다. 이런 흐름이 저에게 용기를 준다.

▲그럼, 취임 후 조합이 좀 안정이 됐나.

-제가 취임한 지 이제 4개월 정도 됐다. 그리 오래된 것은 아니지만 조직은 빠르게 안정이 됐다. 중앙회로부터 50억 원의 자금을 끌어와 일단 조합의 급한 불들은 껐다.

▲중앙회 출신이니 중앙회에서 자금 끌어오는 것은 좀 쉽겠다.

-아무래도 그렇다. 이미 50억 원은 가져왔고 앞으로도 100억 원 이상 끌어올 생각이다. 이 자금들을 활용해 조합을 안정시켜야 한다.

▲임기 중 할 일은 무엇인가.

-선거기간 중에도 내내 이야기했다. 가야조합을 빠른 시일 내에 안정시키고 도약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것이다. 또 사고 없는 농협을 만드는 것이다. 요즈음은 조합에 사고가 나면 치명적이다. 전국적으로 뉴스가 전해지는 시대이기 때문에 조합의 이미지에 치명적인 손해가 간다. 그래서 사고가 나지 않는 게 중요하다.

▲사고는 금융 사고를 말하나.

-금융사고 뿐 아니라 농산물 판매 부문 등에서도 사고가 날 수 있다.

▲조합장이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나.

-저는 중앙회에서도 검사부에 오래 근무했다. 그래서 사고의 징후를 알아채는 기법이 여럿 있다. 이런 것들을 통해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그 외 임기 중 할 일은.

-아무래도 조합원들이 생산하는 농산물의 판매에 주력해야 한다. 저는 중앙회에 있을 때도 영업부서에 오래 있었다. 이런 경험들을 살려서 조합원들이 생산하는 농산물에 대한 판매고를 높여야 한다. 그래야 조합원들의 소득이 올라가고 조합이 안정을 찾게 된다.

▲가야조합에서는 주로 어떤 농산물들을 생산하나.

-야로면에서 양파를 주로 생산한다. 그리고 마늘도 요즈음은 생산량이 늘어난다. 그 외 한우와 돼지도 많이 키운다. 이런 것들에 대한 판매 전략을 세워야 한다. 조합을 통한 계통출하를 늘리고 제값을 받을 수 있도록 조합이 판매 전략을 강화해 나갈 생각이다.

▲판매를 강화하려면 어떤 전략을 써야 하나.

-아무래도 대도시와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대도시의 마트, 백화점 등 유통시스템을 잘 활용해서 가야조합이 생산하는 농산물에 대한 수요를 늘릴 계획이다.

▲금융부문은 어떤가.

-현재 대출이 1100억 원 정도 된다. 사업역량을 키우기 위해서는 대출을 늘려야 한다. 제 임기 중에 1400억까지 대출을 늘릴 생각이다.

▲대출은 어떻게 해서 늘리나.

-조합 내에서는 어렵다. 대부분이 고령자들이어서 자금수요가 없다. 그래서 관외에서 우량기업이나 단체들을 많이 개발해 대출을 알선할 생각이다. 또 출향인사들을 통해 대출을 늘려야 한다. 고향출신들에게 같은 값이면 고향 농협을 이용해 달라는 그런 부탁을 드릴 생각이다. 그런 점에서도 여기서만 살았던 다른 사람들에 비해 타지에서 살았던 제가 더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해 보자. 언제 태어났나.

-1958년 합천군 가야면 성기리에서 태어났다. 태어난 마을이 성기마을이라서 어릴 때 아이들이 이상하게 생각하곤 했다. 특히나 옆 마을은 야동마을이다. 성기마을, 야동마을이 함께 있어서 어떻게 이런 이름들이 마을 이름이 됐는지 신기해 했다. 실제로 우리 동네에 골프장이 있다. 골프장에 오는 손님들이 입간판에 성기마을, 야동마을이라고 돼 있는 것을 보고 재미있어 한다.

▲성과 관련된 속설이 있나.

-그런 것은 아니다. 성기(城基)마을은 한자로는 성의 터전이라는 의미이다. 아마 성(城)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동네에 옛 성터가 있나.

-동네에 성터는 없다. 그래도 동네의 역사 어느 부분에서 성터가 있었으니 이런 이름이 생기지 않았겠나 하는 생각을 한다.

▲학교는 어떻게 되나.

-여기서 초중,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은 농협대학을 나왔다.

▲농협대학은 어떻게 해서 가게 됐나.

-어려서 집이 가난해서 그렇게 됐다.

▲그래도 농협대학을 일반인은 잘 모를 텐데.

-동네에 농협에 다니는 형들이 있었다. 그런 영향을 받아서 그렇게 된 것 같다.

▲그럼 농협에는 대학졸업 후 들어온 건가.

-그렇다. 81년도에 중앙회에 입사를 했다. 그리고 첫 근무를 가야조합에서 했다.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됐나.

-원래 중앙회 입사를 하게 되면 첫 3년 동안은 현장근무를 하게 된다. 저는 연고가 가야면이어서 가야조합에서 3년간 일하게 된 것이다.

▲그런 다음에는 어떤 일을 했나.

-중앙회에서 2016년 퇴직했다. 창원공판장 책임자로 있다 퇴직했다. 또 퇴직한 다음에는 다시 검사역으로 재고용돼 2018년까지 일했다.

▲중앙회 일을 하면서 기억에 남는 일은.

-함안지부에 근무할 때다. 2010년경이다. 그때 함안수박의 매출을 연간 400억 원을 돌파한 기록을 세웠다. 그게 기억에 남는다.

▲수박판매로만 400억 원을 했나.

-그렇다. 당시로서는 대단한 기록이었다. 서울, 울산 대도시 마트 등을 안 찾아 간 적이 없을 정도로 많이 활동했다. 롯데마트에서 많이 받아줬다.

▲또 다른 에피소드는.

-감사부서에서 많이 일했다. 그때 사고가 날 수 있는 조합의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는 일도 많았다.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나.

-검사부에 오래 있다 보면 노하우가 생긴다. 사고의 조짐이 보이면 조합장 등에게 얘기해 조치하도록 해서 사고를 미연에 막을 수 있게 된다.

▲그럼, 조합장에 대한 꿈은 언제부터 있었나.

-원래 저는 조합장에 뜻이 없었다.

▲그런데 어떻게 출마하게 됐나.

-중앙회를 퇴직하고 검사역으로 다시 일하고 있는 2018년이었다. 그때 가야조합의 어른들이 저를 자주 찾아왔다. 조합이 여러 면으로 어려우니 그것을 해결하는 것은 저밖에 없다며 권유를 많이 하셨다. 그런 권유를 듣고 제가 고향을 위해 조그만 일을 할 수 있겠다 싶어서 출마를 결심한 거다.

▲그런데 막상 출마해 보니 선거가 참으로 어려웠던 것인가.

-그렇다. 선거에 막상 출마해 보니 처음 생각했던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래서 고생을 많이 했다. 농협에서는 중앙회 출신이 단위조합 조합장 당선되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만큼이나 어렵다는 속설이 있다. 이번에 제가 그 속설을 제대로 경험했다.

▲중앙회 출신이 조합장 되는 것이 왜 어렵나.

-아무래도 단위조합에 근무하지 않다보니 조합원들과 접촉이 없다. 조합원들과 인맥이 쌓이지 않다보니 선거에서는 불리할 수밖에 없다. 선거라는 것이 명분이나 당위로만 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

▲그럼, 우리나라 농협조합장 가운데 중앙회 출신이 몇 명이나 되나.

-1700여명 가운데 저를 포함해 3명뿐인 것으로 알고 있다.

▲같은 농협조직이라도 정말 어렵긴 어려운 것 같다. 조합장으로서 어떤 각오가 있나.

-농협을 바로 세우고 농협이 조합원들로부터 신뢰를 받게 하는 것이다. 또 관내 생산되는 농산물들은 10원 이라도 더 받고 팔아서 조합원들의 소득을 높여주는 것이 조합장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황인태 본지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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