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웅교수의향토인문학이야기] 조선 최고의 실학자 정약용이 노래한 진주기생
[강신웅교수의향토인문학이야기] 조선 최고의 실학자 정약용이 노래한 진주기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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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7.26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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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정약용 1779년과 1790년 두차례 진주 방문

1779년 장인인 진주병사 홍화보를 방문하러 왔다가
의기사 중수 기문(記文) 부탁받고 작성
검무 감상하고 ‘무검편증미인(舞劒篇贈美人)’ 시 지어

1790년 부친 정재원이 진주목사 부임해 문안 방문
촉석루서 옛날 회상하여 열린 연회에서 기녀 부탁받고
시 ‘重遊矗石樓(촉석루에 다시 올라 노닐다)’ 남겨

<37> 진주지역 서원(書院)과 선현(先賢) <18>

진주성내 촉석루 옆에 위치한 논개사당.
진주성내 촉석루 옆에 위치한 논개사당.

蠻海東嗟日月多

오랑캐의 바다를 동(東)으로 바라보니 숱한 세월 흘렀어라.

朱樓迢遞沉山河

붉은 누각(樓閣) 은은(隱隱)하게 산하(山河)에 잠기인 듯,

花潭舊照佳人舞

꽃 핀 못에는 지난날 미인의 춤이 비치고

畵棟長留壯士歌

단청(丹靑) 매긴 기둥엔 장사(壯士)가 머무는 듯,

戰地春風回草木

싸움터의 봄바람은 초목 끝에 감돌고

荒城夜雨漲烟波

낡은 성 밤비에 강물이 불어난다.

只今遺廟英靈在

지금(只今)도 남겨진 사당(祠堂)에 영령(英靈)이 계시온 듯

銀燭三更酹酒過

삼경(三更)에 촛불 밝히고 강신제(降神祭)를 올리네.

상기 시는 ‘다산문집’ 14권에 실려있는 시 ‘촉석루회고(矗石樓懷古)’이다. 이 시는 1779년(정조 3년) 진주 남강변에 논개를 기리기 위해 세워진 의기사(義妓祠)를 보수하면서 다산 정액용(茶山 丁若鏞: 1762~1836년)이 쓴 추모시다.

진주성 촉석루 옆 논개 사당 의기사(義妓祠) 편액에 다산 정약용의 의기사기(義妓祠記)도 걸려있다. 의기사가 창건된 지 40년이 지난 뒤인 1779년 진주병사 홍화보(洪和輔)에 의해 한차례 중수(重修)를 하게 된다. 이때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의 의기사 기문(記文)이 처음으로 작성된다. 다산은 홍화보의 사위로 당시에 진주에 머물고 있던 장인인 홍화보를 방문하러 왔다가, 마침 중수를 끝낸 의기사의 기문을 부탁받은 것이다.

당시 진주를 처음 방문한 다산은 약관(弱冠)에 불과한 나이였지만, 이미 문명(文名)이 널리 알려져 있었다. 의기사의 보수와 함께 논개의 사연을 들은 다산 정약용은 장인 홍화보의 명에 의해 의기사 기문을 짓고 감회를 읊은 시 한 수를 덧붙인다.

다산의 시문집 제14권 의기사기(義妓祠記)를 보면 ‘사(祠)가 오래도록 수리를 하지 못하여 비바람이 새었는데, 지금의 절도사(節度使) 홍공(洪公)이 부서진 것을 고치고 새롭게 단청(丹靑)을 칠한 다음 나에게 그 일을 기록하게 하고, 자신은 절구(絶句) 한 수를 지어 촉석루(矗石樓) 위에 걸었다’고 적고 있다.

다산연보(茶山年譜)에 의하면 다산이 진주에 처음 방문한 이때(1779년)가 춘3월 호시절(好時節)이어서 장인 홍화보와 함께 남강 물에 배를 띄우고 뱃놀이를 하기도 하고, 또 촉석루에 올라 기녀들이 추는 진주검무(晉州劍舞)와 포구락무(抛毬樂舞)를 감상하고 진양의 풍광을 즐기기도 했다 한다. 이때 남긴 시가 ‘촉석루회고(矗石樓懷古)’ ‘배외구홍절도범유(陪外舅洪節度帆遊)’와 ‘무검편증미인(舞劒篇贈美人)’ 등인데 다산이 장인 홍화보 절도사와 함께 뱃놀이를 하면서 읊은 시 ‘배외구홍절도범유’가 유명하다.

그리고 촉석루에 올라 푸르게 출렁대는 남강 물과 강가의 버들잎을 바라보며 검무를 감상하던 다산은 그 자리에서 시를 지어 기녀에게 주게 된다. 이 시가 바로 ‘칼춤 시를 지어 미인에게 주다’라는 ‘무검편증미인(舞劒篇贈美人)’이다. 검무를 추는 기녀의 춤사위 동작 하나하나를 놓칠세라 섬세하고 세련되게 시어로 묘사하고 표현한 다산의 통찰력에 감탄을 자아낼 수밖에 없는 이 시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진주 포구락무 공연 모습.
진주 포구락무 공연 모습.

鷄婁一聲絲管起

계루고 한 소리에 풍악이 시작되니

四筵空闊如秋水

넓디넓은 좌중이 가을물 처럼 고요한데

矗城女兒顔如花

진주성 성안 여인 꽃 같은 그 얼굴에

裝束戎裝作男子

군복으로 단장하니 영락없는 남자 모습

紫紗褂子靑氈帽

보라빛 괘자에다 청전모 눌러쓰고

當筵納拜旋擧趾

좌중 향해 절한 뒤에 발꿈치를 들고서

纖纖細步應疏節

박자 소리 맞추어 사뿐사뿐 종종걸음

去如怊悵來如喜

쓸쓸히 물러가다 반가운 듯 돌아오네.

翩然下坐若飛仙

나는 선녀처럼 살짝 내려앉으니

脚底閃閃生秋蓮

발밑에 번쩍번쩍 가을 연꽃 피어난다.

--- (하략) ---

우선 다산 정약용 선생의 진주 관련 행적을 살피기 전에 그는 과연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서 알아볼 필요가 있다.

그는 1762년(영조 38년)에 경기도 광주(지금의 경기도 양주)에서 태어나 부친에게서 경사(經史)를 공부하여, 1789년(정조 13년)에 문과에 급제한 이래 도부승지, 형조 및 병조참의 등을 거쳐 정조 18년 그가 33세 때, 암행어사가 되어 경기도 연천일대를 돌면서 부패한 관리와 비참한 농민생활상을 본 것이 차후 그가 위대한 실학자와 정치 개혁가가 된 동기였다.

그러나 그의 인생도 서학인 천주교 신앙 때문에 신유박해, 기해박해를 겪으면서 전라도 강진에서 18년간의 귀양살이를 하기도 했다. 말년에는 그의 고향인 광주에서 신앙과 저술생활을 하면서 여생을 마쳤다. 이때 그의 유명한 저술들인 경세유표(經世遺表), 목민심서(牧民心書) 그리고 흠흠신서(欽欽新書) 등이 지어졌다.

특히 다산이 스물아홉 살이었던 1790년 두 번째로 진주를 방문한다. 부친인 정재원(丁載遠)이 진주목사로 부임하였기에 아버지를 문안하기 위하여 들린 것이다. 다산은 이때도 촉석루에 올라 진주의 산수(山水)와 연운(煙雲)을 감상하고 악공과 기녀를 불러 연회를 베풀었다. 그러나 12년 전에 보았던 기녀는 그동안 살색이 누렇게 변하고 피부에 주름이 생겨 옛날의 그 기러기와 제비처럼 춤추던 젊고 아리따운 모습이 아니고 동작이 매우 굼뜨고 둔해졌음을 보고 문득 자신도 늙어감을 깨닫게 된다. 이때 한 늙은 기생이 일어나 춤을 추고 나서 칼을 던지고, 다산 앞에 다소곳이 꿇어앉아 술잔을 권하면서 “인생의 환락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이 술을 드시고 여러 기생을 위하여 시를 지어 이 자리를 빛나게 하여 주십시오”하고 요청하게 된다. 다산은 함께 합석한 절도사의 권유도 있어 시 한 수를 지어 기생들에게 명하여 시를 노래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남긴 시가 ‘촉석루에 다시 올라 노닐다(重遊矗石樓)’ 였는데 또한 일부를 소개한다.

黃鶴三登興味窮

세 번째 오른 황학루 흥취 한량없는데

玄都再過又春風

재차 찾은 현도관 또다시 춘풍속이네.

花船依柳新添碧

버들에 기댄 놀잇배 푸른빛을 더하였고

歌妓如花半褪紅

꽃 같은 가무 기생 붉은빛 약간 가셨구나.

尙有紗籠縣壁上

비단으로 싼 고인 시 벽장에 아직 있는데

且將羅襪弄波中

다시 선녀 거느리고 물결 속에 놀았으면

欲知節度分符處

절도사 부절 나눈 그곳이 어디런가.

正在黃州錦綺叢

바야흐로 황주의 비단 속에 계신다네.

다산의 부친 정재원은 진주목사로 재직하던 이듬해(1792년)에 진주에서 병으로 세상을 하직하였다.

강신웅

본지 주필

전 경상대학교 인문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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