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명소 곳곳에 친일매국노 이름 ‘버젓이’
진주 명소 곳곳에 친일매국노 이름 ‘버젓이’
  • 한송학 기자
  • 승인 2019.08.09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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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의암 바위 중간 암벽 을사오적 ‘이지용’ 새겨져
뒤벼리엔 친일 행적 앞장 ‘이재각·이재현·성기운’ 음각돼

시민들 “바위에 새겨진 친일인사 이름 지워야” 여론 조성
시민단체서 세운 친일행적 안내판 훼손된 채 1년째 방치

진주시 “회의 거쳤지만 관리부서도 불분명한 상태다” 설명

한일 경제전쟁으로 전 국민의 반일감정이 극에 달한 가운데, 진주의 대표 절경과 호국충절 상징물에 친일매국노의 흔적이 그대로 방치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흔적은 진주 8경 중 3경인 뒤벼리 암벽에 한자로 새겨진 이재각, 이재현, 성기운과 호국충절의 상징인 촉석루와 의암 바위 중간 암벽에 새겨진 이지용 한자 글씨이다.

뒤벼리 바위 음각은 민간단체에서 지난 1999년 12월 ‘민족반역자 안내판’을 세워 이들의 친일 행위를 알리는 데 그쳤고, 현재까지 새겨진 이름은 그대로 남아 있다. 뒤벼리 바위 음각은 평상시에는 낙엽과 낙석 방지 그물 등으로 가려져 보이지 않지만, 겨울철이 되면 이름이 그대로 드러난다.

촉석루 아래 바위에 새겨진 을사오적 이지용 이름 음각은 아무런 조치가 없다. 특히 이지용의 음각은 이지용의 친일 행위를 꾸짖은 기생 산홍, 우국지사 한규직·규설 형제, 김시민과 논개를 기린 글, 왜장을 끌어안고 투신한 논개의 의암 바위와 나란히 위치해 있어 시민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다. 을사늑약을 반대했던 인물로 추정되는 호국영령 30~40명의 이름도 바위에 함께 새겨져 있다.

진주 8경의 하나인 뒤벼리 암벽에 새겨진 친일매국노 이재각(사진 왼쪽), 이재현(사진 오른쪽) 한자. 사진은 향토사학자 추경화 선생이 1999년 촬영.
진주 8경의 하나인 뒤벼리 암벽에 새겨진 친일매국노 이재각(사진 왼쪽), 이재현(사진 오른쪽) 한자. 사진은 향토사학자 추경화 선생이 1999년 촬영.

◆친일매국노 이지용, 이재각, 이재현, 성기운은 누구인가?

이재각은 일제하에 일본이 명한 영국특명 전권대사로 영국 황제 대관식에 참여했으며, 1905년에는 봉천대첩에도 참가하기도 했다. 그 후 을사늑약 후에 대한적십자사 총재로 임명되기도 했으며, 1906년에는 일본 황태자 결혼식에까지 참석할 수 있을 정도로 일본이 인정하는 친일파이다. 그리고 그는 일본 정부가 수여한 훈장인 대훈서성장, 일훈욱일 동화대수장 등을 항상 가슴에 달고 다닐 정도로 친일의 행적이 극심했던 사람이었다.

이재현은 이완용의 당숙되는 사람으로, 매우 적극적인 친일 행적은 없었지만, 주변 사람들의 친일 행위를 방조한 결과 1901년에는 경남관찰사가 됐다. 1904년에는 책임관이라는 관직으로 의병을 훌륭하게 토벌했던 결과로 '의정부찬정'과 '특진관'이라는 높은 관직에 이르기도 했다.

성기운은 친일의 업적이 뛰어나서 ‘훈일등’ 팔괘장‘등의 훈장을 받았다. 일본 정부로부터 국권침탈에 크게 협력해준 대가로 ’남작(男爵)’이라는 일본인이 아니면 매우 받기 어려운 높은 직위와 거액의 돈을 받기도 했다.

그 후에도 1905년 충북 관찰사, 1906년 경기 관찰사까지 역임하기도 했다. 더욱이 그는 국권침탈 후 일본에서 합방에 도움을 크게 준 한국인 몇 사람들에게 선심용 관광을 실시했는데, 대부분 사람은 거절했지만, 성기운, 이재각, 이완용 등은 관광에 참여했다. 당시 그들이 입은 신식제복에는 일제가 제공한 각종 훈장을 주렁주렁 달고 다닌 것으로 알려졌다.

이지용은 을사오적 가운데 한 사람이다. 이지용은 1910년 일진회의 합병성명서에 찬성을 표하고 지지여론 확산을 위해 조직된 국민동지찬성회 고문을 맡았다. 1911년 은사공채 10만 원을 받았으며 일본으로부터 작위를 받은 조선 귀족들이 일왕의 성은에 감읍하고 ‘사회의 모범’이 되기 위한 활동을 전개할 목적으로 1911년 조직한 조선귀족회의 이사로 활동했다.

진주성 촉석루 아래 암벽에 새겨진 을사오적 이지용 이름.
진주성 촉석루 아래 암벽에 새겨진 을사오적 이지용 이름.

◆친일매국노 이름 새긴 바위 방치

이들 바위 음각에 대해 1990년 이후부터 지역의 각종 시민단체에서 진주시에 여러 차례 바위에 새겨진 이름들을 지워달라고 건의를 했다. 1999년에는 뒤벼리 친일파의 이름을 제거해야 한다는 서명운동도 대대적으로 전개했다.

당시 진주시의회에서도 뒤벼리 친일파 이름을 제거해야 한다는 의견을 수차례 시에 제출했지만, 시에서는 제거하는 대신 그물이나 넝쿨로 가리는 조치에 그쳤다.

결국, 시민단체들은 진주시가 완전히 제거할 때까지 뒤벼리 암벽에 새겨진 이름들이 친일파라는 사실을 알리는 현판을 세웠으며, 오늘날까지 이르고 있다.

특히 시민단체에서 세운 민족반역자 안내판마저도 훼손된 채 1년여째 방치되고 있는데, 지난해 10월 훼손된 현판에 대해 진주경찰서에서 수사를 진행했지만, 결국 범인을 찾지 못했다. 현판은 현재까지도 훼손된 채 방치되고 있다.

촉석루 아래 바위에 새겨진 이지용 이름에 대해서는 논의조차 되지 못하고 있는데, 진주시와 지역의 문화단체 등에서 문화재청과 협의해 존치 여부와 민족반역자 안내판 설치 등에 대해 깊이 있는 논의가 요구된다.

◆진주시 관리 부서 없어

친일매국노 바위 음각에 대해 진주시의 관리 부서도 불투명해 손을 놓고 있다. 진주시에서는 담당 부서가 확실하지 않아 이들 이름 관리를 위해 몇 차례 회의를 여는 것에 그칠 뿐 대책 마련을 하지 못하고 있다.

진주시 관계자는 ”명확한 관리 부서는 없지만 뒤벼리와 촉석루 아래 바위에 새겨진 이름을 두고 몇 차례 회의는 개최했다“며 ”이들 이름의 조치를 위해서는 문화재청 등과 협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송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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