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롭티미스트’ 진주클럽 총무 고명숙
‘소롭티미스트’ 진주클럽 총무 고명숙
  • 경남미디어
  • 승인 2019.08.27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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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여건 여성들 추천받아 자립 때까지 장기적 지원

진주클럽 2003년 설립, 현재 30여명 회원들이 적극적으로 활동
7월 말레이시아 총회에서 진주클럽 회원 부채춤 박수갈채 받아
10여 년간 일신밴드, 레이디스싱어즈 통해 노래봉사 활동해 와
서부경남 최고 요양원 만들어 어려운 여건의 사람들 돕고 싶어

고명숙 총무는 자신은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우리 사회에서 혜택을 많이 받은 사람이라 어려운 여건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돕는데 힘을 쓸거라고 말한다.
고명숙 총무는 자신은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우리 사회에서 혜택을 많이 받은 사람이라 어려운 여건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돕는데 힘을 쓸거라고 말한다.

소롭티미스트 진주클럽 고명숙 총무를 비롯한 진주클럽 회원 7명은 지난 7월 18일부터 22일까지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하얏트 호텔에서 열린 세계총회에서 우리 고유의 부채춤을 추어 참석한 전 세계 회원들에게서 열광적인 박수갈채를 받았다. 총회 친교의 시간에 한국을 알리자고 부채춤을 춘 것이 전문 무용수 못지않은 실력을 뽐내면서 총회 참석자들의 큰 호응을 이끌어 낸 것. 이 춤을 기획하고 추진한 진주클럽 고명숙 총무는 부채춤에서 솔로 역을 맡아 참가한 7명 단원들의 리더역할을 했다. 춤이라고는 모르는 아마추어 회원들이 모여서 2 달 동안 피나는 노력을 통해 국제행사에서도 부끄럽지 않을 수준의 춤을 선사했다. 이번 부채춤 공연으로 진주클럽은 소롭티미스트 협회에서 한국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주목받는 클럽이 됐다.

소롭티미스트 협회는 한국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는 단체이다. 그러나 UN에서 공인돼 세계적으로는 많이 알려져 있는 여성들을 위한 글로벌 여성단체이다. 1921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에서 80명의 전문직 여성들이 모임을 시작하여 내 후년이면 100주년을 맞이하게 된다. 현재 전 세계 129개국에서 7만 5천여 명의 여성회원들이 활동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1966년 발족했다. 현재 전국에는 6개 지역에 43개 클럽 약 770여명의 회원이 활동 중이다. 소롭티미스트가 특이한 점은 여성들이 회원인 단체이자 여성들을 위한 봉사단체라는 점이다. 특히 봉사가 일회성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선정된 여성들이 사회적, 경제적으로 독립할 때까지 장기적으로 지원이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진주클럽에서도 결혼 이주 여성인 유시아(36) 씨를 3년 동안 지원해 경제적으로 자립하도록 도왔다. 유시아 씨는 5년 전에 남편이 간암으로 사망해 삶이 암담했던 베트남 이주 여성이다. 그런데 소롭티미스트 진주클럽의 지원 대상으로 선정돼 재봉학원에 등록하게 해주고 재봉틀을 지원하는 등 생계를 이어갈 수 있는 수단을 도왔다. 현재 유시아 씨는 아이들을 키우면서 열심히 살고 있다고 한다.

이처럼 어려운 여건의 여성들을 선정해 독립할 때까지 지원하는 소롭티미스트 진주클럽은 1994년 설립이 됐으나 그동안 활동이 뜸하다가 2003년 진주 2기로 출범해 현재 30여명의 회원들이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소롭티미스트는 어려운 여건의 여성들을 지원하기도 하지만 김장봉사처럼 일반적인 봉사활동도 한다. 지난해에는 사회적 이슈가 된 여성성폭력 예방캠페인 등도 전개한 바 있다.

고 총무는 “20~30대 여성들이 소롭티미스트 진주클럽에 가입해 활동할 경우 회원 상호간에 인맥도 쌓을 뿐 아니라 봉사활동에 대한 참 의미를 알 수 있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고 총무는 특히 여성들만으로 구성된 봉사단체라는 점에서 젊은 여성들이 참여할 경우 사회활동에 많은 장점을 얻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고명숙 소롭티미스트 진주클럽 총무는 대학시절부터 노래 부르기를 좋아했다. 그래서 결혼하고 난 후에도 노래클럽에 참여해 요양원 등에 봉사활동하는 것을 즐겨한다. 자신의 모교인 진주여고 출신들로 구성된 일신밴드, 진주거주 여성들로만 구성된 레이디스싱어즈 등에 참여해 노래봉사를 다녔다. 특히 어려운 여건의 요양원 등에서 노래봉사를 하면서 할머니 할아버지의 심신을 달래주고 있다.

오랫동안 요양원 등에 노래봉사를 다닌 경험을 기반으로 고 총무는 자신이 직접 요양원을 운영해 볼 생각이다. 자신이 요양원에 봉사를 다니면서 아쉬웠던 부분을 보완해 서부경남 최고의 요양원을 만드는 게 고 총무의 꿈이다. 마침 인테리어건축을 하고 있는 동생이 인테리어 재능기부를 하겠다고 해 요즈음 둘이서 호텔 같은 요양원을 만들 꿈에 부풀어 있다고 한다.

“저는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우리 사회에서 혜택을 많이 받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 혜택의 일부라도 사회에 돌려주기 위해 수익을 생각하지 않는 최고시설의 요양원을 만들어 어려운 여건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돕고자 합니다” 고명숙 총무가 인생 2막에 하고 싶은 일이라고 했다.

소롭티미스트 진주클럽 고명숙 총무를 비롯한 회원 7명이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하얏트 호텔에서 열린 세계총회에서 부채춤을 추어 열광적인 박수를 받았다.
소롭티미스트 진주클럽 고명숙 총무를 비롯한 회원 7명이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하얏트 호텔에서 열린 세계총회에서 부채춤을 추어 열광적인 박수를 받았다.

다음은 고명숙 총무와의 인터뷰이다.

▲소롭티미스트란 단체는 어떤 곳인가.

-여성들로 구성된 여성들을 위한 글로벌 자원봉사 단체이다.

▲회원들도 여성이고 봉사의 대상도 여성인가.

-그렇다. 전 세계 129개국에서 7만5천여 명의 여성 회원이 활동하고 있는 글로벌 봉사단체이다. 인류 최초로 달을 밟은 우주인인 닐 암스트롱의 어머니도 소롭티 회원이었다. 또 이번 말레이시아 총회에서 개막연설을 한 말레이시아 여왕도 소롭티 회원이다. 전 세계의 저명한 여성들이 소롭티 회원으로 활동을 하고 있다.

▲그럼, 세계적으로 알려진 로타리클럽, 라이온스클럽 등과 비슷한 단체인가.

-글로벌 봉사단체라는 점에서는 비슷하다. 그러나 소롭티미스트는 회원이 여성들로만 구성이 돼 있고 또 봉사의 대상도 여성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난다. 소롭티는 어려운 환경에 있는 여성들과 소녀들이 사회적 경제적 지위향상을 할 수 있도록 장기적으로 도와주는 일을 하고 있다.

▲특정 선택된 여성들에게 장기적으로 지원한다는 말인가.

-그렇다. 소롭티미스트의 정신은 일회성으로 봉사가 끝나는 것이 아니고 추천받은 소녀나 여성들을 장기적으로 지원하여 사회적으로 독립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본부는 어디에 있고 언제 설립됐나.

-본부는 영국케임브리지에 있다. 처음 설립된 것은 1921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이다. 이때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향상을 확립하기 위해 전문직 여성 80명이 모여서 활동이 시작됐다. 그 이후 1948년 유네스코(UNESCO)로부터 공식적으로 인정을 받았고 1950년 UN의 경제사회분야 평의회(ENOSOC)의 자문지위를 받아 오늘날 소롭티미스트의 정체성을 확립하였다.

▲한국협회는 언제 설립이 됐나.

-한국협회는 1966년 서울클럽이 창립되면서 시작되었다. 현재 전국에는 6개 지역에 43개 클럽 약 770여명의 회원이 활동 중이다.

▲진주클럽은 언제 설립이 됐나.

-진주클럽은 1994년 설립이 됐다. 그러나 그동안 활동이 뜸하다가 2003년에 진주 2기로 다시 시작해 현재에는 약 30명의 회원이 활발히 활동 중이다. 회장은 강인성이며 저는 총무를 맡고 있다.

▲고 총무는 언제 가입했나.

-5년 전에 10명의 지인들과 함께 가입해 활동하고 있다.

▲진주클럽은 그동안 어떤 활동들을 했나.

-유시아(36) 라는 베트남에서 결혼이주를 한 여성을 3년째 돕고 있다.

▲돕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

-유시아 씨는 베트남에서 결혼을 위해 한국으로 온 이주민 여성이다. 그런데 남편이 5년 전에 간암으로 돌아가셨다. 그래서 아이들을 혼자서 키우고 있다. 저희 진주클럽에 추천이 들어왔고 심사결과 돕기로 결정해 3년째 돕고 있다.

▲주로 어떻게 돕고 있나.

-면담을 통해 본인이 하고 싶은 바를 도와준다. 유시아 씨의 경우 자립에 필요한 재봉학원에 등록시켜줬을 뿐 아니라 재봉틀을 기증해 줘 자립의 기반을 마련해 줬다. 유시아 씨는 이 재봉틀을 활용해 가방도 만들어 팔고 해서 열심히 살고 있다.

▲그럼, 이렇게 재봉틀만 사주고 나면 끝나나.

-그렇지 않다. 소롭티미스트가 선정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끝까지 돕는다. 그 이후에도 매달 한 번씩 클럽 회원들이 집을 방문해 잘 살고 있는 지 점검을 하고 또 필요한 것들을 돕기도 한다. 푸드뱅크를 통해 필요한 것들을 모아서 갖다 주기도 한다. 유시아 씨는 현재 아이들과 함께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다.

▲또 다른 케이스가 있나.

-2011년에 김류진 이라는 미혼모를 도운 케이스가 있다.

▲어떤 얘기인가.

-당시 김류진 씨는 미혼모였다. 그런데 클럽에 추천이 들어와 지원대상이 됐다. 소롭티미스트의 지원으로 대학을 졸업했으며 평소에 하고 싶던 음악을 하고 있다. 현재 음반도 낸 상태이며 열정적으로 살고 있다.

▲소롭티는 이렇게 한 사람을 지속적으로 지원하면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제한되지 않나.

-그런 문제는 있다. 그래도 소롭티의 설립취지가 어려운 여건의 여성이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하자는 데 있기 때문에 지금도 그 정신이 이어지고 있다. 물론 장학금 등은 여러 명에게 나누어서 주고 있기는 하다.

▲올해 지원대상은 어떤 사람이 있나.

-작년에 고 3학생이던 소녀가장인 안다현 학생을 선발해 장학금 200만원을 보조했다. 그리고 진주클럽 정경순 회원이 수시로 안다현 학생의 남동생을 찾아가 반찬도 전해주고 그랬다. 현재도 클럽의 국인송, 조정숙 회원이 지속적으로 이들 남매를 보살피고 있다.

▲지원대상은 어떻게 선정을 하나.

-여러 곳에서 추천을 받아서 소롭티의 선정기준에 따라 선정한다. 자립의지가 강한 사람들이 일단 선정이 된다.

▲이번에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총회에서 진주클럽이 인기가 많았다고 들었다.

-그랬다. 지난 7월 18일~22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하얏트 호텔에서 소롭티미스트 21차 정기총회가 열렸다. 이 행사에서 친교의 시간에 저희 진주클럽 회원들이 부채춤을 추었다. 그래서 참석한 많은 회원들의 열광적인 박수갈채를 받았다.

▲회원들이 직접 부채춤을 춘 것인가.

-그렇다. 이번에 참석한 저를 비롯해 강필자, 강인성, 김상희, 서은실, 조미향, 고가람 등의 회원 7명이 두 달간 부채춤을 연습해 총회에서 공연을 했다.

▲아마추어들이 스스로 연습하기에 어려운 점이 많았을 텐데.

-소롭티 총회가 워낙 국제적으로 유명한 행사이다 보니 저희들은 한국을 알려보자는 소박한 마음에서 시작했다. 아무래도 한국의 전통을 알리는 게 좋겠다 싶어 우리 고유의 부채춤을 선택했다. 그런데 부채춤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진주에서 유명한 무용가인 김경숙 무용단장께서 지도해 주셨다. 김 단장이 지도해 주지 않았더라면 불가능했을 거다.

▲그래도 꽤 연습을 해야 할 텐데.

-2개월 동안 나름 피나는 연습을 했다. 부채춤은 부채를 펴는 게 기술인데 부채 펴는 데만 일주일 이상 걸릴 정도로 사실 난이도가 있는 춤이었다.

▲그 공연에서 고 총무의 역할은 무엇이었나.

-제가 솔로역할을 했다. 솔로는 춤의 가운데서 주연 역할을 하는 것을 말한다. 다른 공연자들과는 차별화되는 춤을 추었다.

▲반응이 좋았다고 하던데.

-총회에 참석한 사람들이 모두 전문 무용인들인 줄 알았다는 반응이었다. 나름 국위선양에 기여했다고 생각한다.

▲이전에도 춤을 춰 본 적이 있나.

-아니다. 처음이었다. 저는 부채를 쥐어 본 적도 없었다. 그런데 7명의 공연단들이 모두 다 잘 해줘 호평을 받았다.

▲진주클럽의 앞으로 활동계획은 뭔가.

-매달 1회 모임을 갖고 활동을 평가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김장봉사를 통해 수백포기의 김치를 담가서 불우이웃들에게 나눠주기고 했다. 올해에도 장애인 시설 등을 방문해 노래봉사 등을 하고 있다. 앞으로 성폭력 예방캠페인 등 여성들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려고 하고 있다. 그래서 회원들의 모집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특히 20~30대의 여성들이 참여해 주길 희망하고 있다.

▲회원이 되면 어떤 점이 좋나.

-여성들을 위한 지속적인 봉사라는 점에서 여성에 대해 더 깊이 성찰하고 생각해 볼 기회를 갖게 된다. 또 국제적인 단체이기 때문에 국제적인 인맥을 쌓을 기회도 많다. 활동적인 젊은 전문직 여성들이 소롭티에 참여해 국제적인 안목도 높이고 봉사의 의미도 알아가기를 희망한다.

▲개인적인 얘기를 해 보자. 언제 어디서 태어났나.

-1964년 진주에서 태어났다.

▲학교는 어떻게 되나.

-진주여고와 경상대 영문과를 졸업했다. 그리고 경상대 영문과에서 석사학위와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원래 학문을 하려고 했었나.

-아니다. 대학 다닐 때는 학문보다는 음악을 더 좋아했던 것 같다. 대학교 때 바로크라는 클래식 기타 동아리 활동을 했다. 그래서 경상가요제에 참가하기도 했다.

▲경상가요제 성적은 어땠나.

-대학 2학년 때 선배가 만들어준 자작곡으로 경상가요제에 참여해 금상을 받았다. 대상을 받으면 전국 단위의 대학가요제에 참여할 수 있었다. 그런데 금상을 받아 대학가요제에 참여하지는 못했다. 가정이지만 만약 대상을 받아 대학가요제에 나갔더라면 제 인생이 아마도 지금과는 많이 달라져 있지 않았을까 하는 그런 생각도 해 본다.

▲사회활동은 어떤 걸 했나.

-경상대 국제대 등에서 시간강사를 10년 정도 하다가 아이가 크면서 아이 뒷바라지 하느라 그만두었다. 그 이후 합창단 등에 참여해 주로 봉사활동을 다닌다.

▲청년기의 음악에 대한 열정을 계속 이어가고 있는 것인가.

-그런 것이라기보다는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하다 보니 단체에 가입했고 요양원 등 어려운 곳에서 노래를 원하는 이웃들을 위해 봉사활동을 하는 것이다.

▲주로 어떤 단체에서 활동했나.

-진주여고 출신들로 이루어진 일신밴드라는 곳이 있다. 여기서도 보컬로 활동하고 있다. 또 진주의 여성들로 구성된 레이디스 싱어즈(Ladies Singers)라는 합창단에 참여해 단장을 맡기도 했다.

▲요양원 등에 노래봉사를 다니는 이유가 무엇인가.

-요양원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너무 좋아하신다. 우리도 마찬가지이지만 할머니 할아버지도 노래를 듣는 순간만큼은 다들 천진난만한 아이가 된다. 그런 것들을 보면서 봉사활동에 대한 보람을 느끼고 그만두지 못하게 된다. 제가 가진 보잘 것 없는 재주이지만 노래를 통해 사람들에게 기쁨을 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있다.

▲노래봉사의 에피소드가 있나.

-중증 치매에 걸린 할머니 할아버지 등을 수용해 놓은 요양원에 노래봉사를 간 적이 있다. 중증 치매면 거의 기억을 하지 못하는 상태이다. 그런데 노래를 듣는 순간 마치 아이가 된 것처럼 나와서 덩실덩실 춤을 추는 천진난만한 그 모습에 노래를 부르는 우리 모두가 울컥해진 적이 있다. 우리가 즐거움을 준 것이 아니라 할머니 할아버지가 우리에게 감동을 선사했던 행복한 순간이었다.

▲앞으로 계획이 있나.

-제가 지금까지 요양원에 봉사활동을 많이 다니면서 시설들이 조금 더 개선됐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저는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혜택을 많이 받은 사람이다. 그래서 그 혜택을 사회에 환원하는 차원에서 수익을 생각하지 않고 서부경남에서 최고로 가는 요양원을 만들어 어려운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

▲구체적으로 추진 중인가.

-진주시 사봉면에 마침 저희 땅이 있어서 현재 허가 등이 추진되고 있다. 동생이 인테리어 건축을 하고 있어서 동생도 재능기부를 하겠다고 한다. 그래서 크진 않지만 서부경남 최고의 시설을 만들 생각으로 진행 중이다. 동생이 호텔 같은 요양원을 만들어 보자고 해서 그런 요양원을 그려보면서 한창 꿈에 부풀어 있다. 인생 2막의 제 야심작이다. 황인태 본지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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