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웅교수의향토인문학이야기] 청곡사의 국보 영산회괘불탱(靑谷寺靈山會掛佛幀)
[강신웅교수의향토인문학이야기] 청곡사의 국보 영산회괘불탱(靑谷寺靈山會掛佛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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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9.06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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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표적 불화승 의겸대사가 1722년 제작
석가모니가 설법하는 장면인 영산회상도 그려 넣어
야외 의식용 대형 불화로 괘불대에 걸어놓고 행사
18세기 초 불화(佛畫) 중 뛰어난 작품 평가받아

<41> 진주지역의 사찰(寺刹) <1> 청곡사

청곡사 영산회괘불탱.
청곡사 영산회괘불탱.

지난번 본지에서는 청곡사(靑谷寺)의 위치와 창건과정 그리고 그 설화(說話)에 대해서 살펴 보았다. 본호에서는 오랫동안 진주의 유일한 국보로 있었던 청곡사내의 “청곡사 영산회괘불탱(靈山會掛佛幀)”에 대한 역사적, 문화재적 가치에 대해서 기술해보고자 한다.

청곡사 영산회괘불탱은 오랜 기간 진주 유일의 국보(제302호)로 청곡사(전통사찰 제74호)내에 설치된 불교문화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조선후기 가장 대표적인 불화승인 금어(金魚) 의겸대사(義謙大師)가 열명의 화승(畵僧)과 함께 조선조 1722년(경종 2년)에 제작한 것으로 길이10m, 폭 6.37m에 달하는 야외 의식용 불화(佛畫)이다.

의겸대사는 18세기 중후반 전라도와 경상도 일대 사찰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불화(佛畫)를 제작했는데, 평생 다섯점의 괘불을 남겼다고 한다. 특히 의겸이 그린 괘불은 모두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을 중심으로 다보불(多寶佛)과 아미타불(阿彌陀佛), 관음세지보살(觀音勢至菩薩), 문수보살(文殊菩薩), 보현보살(普賢菩薩)의 다섯 보살로 이루어진 공통점을 볼 수 있다. 이 가운데 청곡사 영산회괘불탱은 의겸대사가 그린 괘불 중 그 시대가 가장 앞선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석가모니(釋迦牟尼)가 설법(說法)하는 장면인 영산회상도(靈山會上圖)를 그린 괘불로 화려하고 다채로운 문양(紋樣)이 특징이다.

그렇다면, 괘불(掛佛)이란 과연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괘불은 ‘걸어두는 불화(佛畫)’라는 뜻으로, 법당안에 들어갈 수 없을 만큼 많은 불자들이 모이는 야외 불교 의식에서 사용하는 불교 관련 그림을 말한다. 사실상 괘불은 동북아시아의 불교 문화를 공유했던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한국만의 특징적인 불화(佛畫)를 말한다. 멀리서도 알아볼수 있고 수많은 사람들의 소망을 이뤄줄 수 있는 신통력을 강조하기 위해 크게 그린다고 볼 수 있다.

야단법석(野壇法席)이라는 말도 여기서 유래되었다고 볼 수 있다. 전통적으로, 사찰의 대웅전 앞 넓은 마당인 야단(野壇)의 괘불대(掛佛臺)에 괘불을 걸어놓고 큰 행사를 하게되면 수많은 인파가 모여들어 복잡하게 움직이는 것을 보고 야단법석(野壇法席)이라는 용어가 생겼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청곡사의 괘불에는 과연 어떤 분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는 가를 살펴보기로 한다.

청곡사 괘불에는 본존불(本尊佛)인 석가모니(釋迦牟尼)를 중심으로 양 옆에는 지혜를 상징하는 문수보살(文殊菩薩)과 보현보살(普賢菩薩)이 자리하고 있다. 석가모니는 얼굴이 둥글고 풍만한 모습에 상체는 짧지만 당당하고 우람하게 표현되어 있으며 가슴을 과감히 노출시킨 점이 특징이다. 의복은 붉은색과 녹색으로 채색했고 어깨에 걸친 옷은 중후하게 묘사해 놓았다. 석가의 손을 보면 무릎 밑까지 내려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뛰어봐야 부처님 손바닥’이라는 말이 있듯이, 석가의 자비와 지혜가 머리까지 닿게 한다는 의미로 길게 그려져 있으며, 석가의 귀가 긴 것은 모든 중생들의 이야기를 다 들어주시기 위해 일반 중생들 보다 길다고 볼 수 있다. 석가의 왼쪽에는 문수보살(文殊菩薩), 오른쪽에는 보현보살(普賢菩薩)이 연꽃가지를 들고 서 있다. 본존 보다 약간 작은 신체, 화려한 보관, 둥근 얼굴, 정면을 향한 자세 등이 매우 당당하고 화려한 모습이다. 복잡하고 화려한 꽃무늬와 장신구가 보살을 더욱 돋보이게 하고 있다.

보살의 머리 위에는 석가의 10대 제자인 아난, 가섭존자(迦葉尊者) 등 제자상이 배치돼 있으며 최상단 왼쪽에는 백의관음보살(白衣觀音菩薩)과 우측에는 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이 자리하고 있다. 아난존자(阿難尊者)는 출가하기 전, 석가의 사촌 동생으로 머리가 너무 좋아 한번 들은 것은 잊어버리는 일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석가의 설법이 있을 때는 항상 따라가 석가의 말씀을 기억해 두었다가 돌아와 기록으로 남겼다고 한다. 우리가 흔히 알고있는 연화경(蓮華經)이나, 법화경(法華經) 등의 경전은 모두 아난존자에 의해 기록으로 남겨졌다고 한다.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을 중심으로 문수보살, 보현보살을 화면 가득 배치한 구도(構圖), 당당하고 건장한 체구, 둥글고 원만한 얼굴, 화려하고 맑은 색채와 꽃무늬 장식 등에서 18세기 초반의 불화(佛畫) 가운데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석가, 문수, 보현의 삼존불입상(三尊佛立像)이라는 점에서 예천 용문사의 괘불도와 비교되고 있으며, 불교회화(佛敎繪畵) 연구에도 귀중한 자료가 되는 매우 가치있는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강신웅

본지 주필

전 경상대학교 인문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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