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희의세상엿보기] 실상으로의 여행
[김용희의세상엿보기] 실상으로의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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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9.17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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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희 시인·수필가
김용희 시인·수필가

세마(sema)의식은 이슬람의 명상법이다. 생과 사를 의미하는 흑백의 옷을 입고 수도자는 몇시간을 무념무상의 상태로 같은 자리를 맴돈다. 하루 다섯번 예배하는 예배당은 거룩한 장소가 아니라 삶의 놀이요 편안한 휴식의 자리다. 예배당의 자원봉사 요건은 단 하나 직업이 있어야 한다. 자원봉사자는 지도자 직분자도 포함된다. '수피'란 의미는 마음이란 뜻으로 형식이 아니라 마음, 그릇이나 포장이 아니라 내용을 의미한다. 예배가 현실과 분리되지 않는다. 삶이 곧 예배요 예배가 곧 삶이다. 그러니까 세마의식은 이슬람의 명상법이다. 불교는 좌선 참선을 하며 명상에 빠져든다. 단학수련원에서는 채 5분도 버티기 힘든 학의 자세로 30분을 넘기게 하면서 인간한계를 넘는 명상수련을 한다.

만해 한용운 선생은 독립선언서를 주도하다시피 했다. 월남 이상재 선생이 독립청원서를 작성하여 일제 총독부에 제출하자고 하니 ‘청원’은 노비가 상전에게 하는 것이라 하면서 어찌 동등한 자주국가가 스스로 예속을 인정하려 하냐고 분개한 분이다. 당시 문학의 거두인 최남선이 독립선언서를 작성하고도 본인은 일제의 보복이 두려워 끝내 서명은 하지 않으니 다시는 육당을 보지 않으려 한다. 독립선언서에 날인한 33인이 서대문형무소에서 사형집행이 예상되니 더러는 울고불고 난리난게다. 만해 왈 “나라가 없는데 목숨은 부지해서 뭐 하는가. 참 불쌍한 사람들”이라고. 지금 우리 사회는 이런 선열들을 쫓아 얼마만큼 의식이 있는가.

만해가 만주에서 독립운동하다가 오히려 독립군에 오인받아 총맞고 죽어가던 신비스런 체험을 스스로 썼다. 어찌어찌하여 다시 살아나긴 했는데, 스님들은 수도증진 끝에 깨달음을 순간적으로 얻는단다. 그러면 오도송이란 것을 남기는데, 만해는 스님된지 10년 만에 오세암에서 참선 중 모든 의심이 순식간에 사라지면서 깨달음을 얻고 ‘눈밭에 복사꽃이 피었다’고 적는다.

참선의 경지에 들면 시간이 사라지고 생각도 사라지고 무념무상으로 수시간이 흐른다. 기독교인들은 보혜사 성령이 대신 빌고 기도해주는 방언을 하기도 한다.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을 찾아가는 이들 그들이 보살이요 신자요 수피자 아닐까.

종교적 형식의 허상말고, 탱화나 부처상이라는 허상말고, 추워서 얼어 죽을 것 같으면 목각부처상도 난방용으로 쓰는 실상, 구원받았다는 하나님 종 되었다는 하늘책에 기록되었다는 오만의 십자가인 자기우상 말고.

“지난 수십년 전이 어제 같다가도 또 엊그제 일은 까마득하기도 합니다. 오늘 저녁은 제법 쌀쌀합니다. 가을 느낌이 듭니다. 그래도 찾을 것은 낭만과 희망 여명의 설렘과 낙조의 여유 아닐까요? 올 가을엔 또 더 깊은 가을을 찾아가고자 늘 그런 꿈으로 살아내야지 싶습니다. 하나의 실패를 넘으면 그 다음을 또 찾아가고 비록 그 무엇이 되지 않더라도 말입니다. 작은 기쁨이라도 소중히 여기고, 늘 배려하는 맘이 우선이어야 하지만 또 늘 놓치고 사는 게 우리 삶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그래도 넘고 넘어 끝없이 가다보면 언제인가 그 무엇이든 만날테지요.

만해의 오도송을 봤습니다. 의심이 모두 걷히고 눈속에 복사꽃이 피었다 하더군요. 어젯밤 보름달은 무척 밝았습니다. 중천에 말없이 뜨는 달을 보며 오늘도 ‘부족함의 미학’ ‘기다림의 미학’을 깨트린 것을 또 달빛으로나마 씻어봅니다. 그리고 오늘 밤 달을 또 올려다봅니다. 제법 크게 울리는 귀뚜라미 소리에 언젠가 깨어질 질그릇 소리를 기대하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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