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웅교수의향토인문학이야기] 청곡사 ‘목조 지장보살삼존상’ 등 보물급 문화재도 즐비
[강신웅교수의향토인문학이야기] 청곡사 ‘목조 지장보살삼존상’ 등 보물급 문화재도 즐비
  • 경남미디어
  • 승인 2019.09.20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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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조 지장보살삼존상 및 시왕상 일괄
1657년에 조성 업경전에 모셔…아이 같은 인상이 특징
다른 사찰의 지장전에서 보기 드문 해학적으로 표현

■ 청동은상감향로 (靑銅銀象嵌香爐)
일제 강점기때 수탈…되찾아와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
조선초기에 제작 태조 계비인 신덕왕후와 관련 전설도

<43> 진주지역의 사찰(寺刹) <1> 청곡사 ③

청곡사 목조지장보살삼존상 및 시왕상 일괄 중 목조지장보살삼존상
청곡사 목조지장보살삼존상 및 시왕상 일괄 중 목조지장보살삼존상

지금까지 본지에서는 청곡사(靑谷寺)의 창건과정과 관련 설화(說話), 그리고 청곡사 내의 국보급(國寶級) 문화재인 ‘청곡사 영산회 괘불탱(靑谷寺 靈山會 掛佛撑: 국보 제302호)에 대한 역사적, 문화재적 가치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본 난에서는 이어서 청곡사 내에 있는 또 다른 여러 문화재 중에 보물급 문화재인 ‘목조 지장보살삼존상(木造 地藏菩薩三尊像)’ 및 ‘시왕상 일괄(十王像 一括)’에 대해서 기술해 보고자 한다.

‘청곡사 목조지장보살삼존상 및 시왕상 일괄’은 우선 ‘보물 제1689호로써, 현재 청곡사 내의 업경전(業鏡殿)에 모셔져 있는데, 업경전은 사실상 다른 사찰의 명부전(冥府殿), 또는 지장전(地藏殿)과 동일한 전각(殿閣)이라고 볼 수 있다. 지장보살(地藏菩薩)을 본존으로 하고, 염라대왕(閻羅大王)을 비롯한 19대왕들 명부의 존상(尊像)들이 봉안되어 있는 전각이라 볼 수 있다.

지장보살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그의 옷을 다 벗어주고, 자기 몸은 땅속에 숨겼다고 전해 온다. 옛날에는 어머니들은 아기를 재울 때 대나무로 만든 요람을 좌우로 가볍게 흔들며 ‘지장보살, 지장보살’을 외우며 아기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기를 염원하기도 했다.

업경전(業鏡殿)에는 불단(佛壇)에 지장보살 좌상(坐像)을 중심으로 도명존자(道明尊者)와 무독귀왕(無毒鬼王)인 지장보살삼존상(地藏菩薩三尊像)이 자리하고 좌우로 시왕(時王), 귀왕(鬼王), 판관(判官), 인왕(仁王), 범천(梵天), 제석천상(帝釋天像) 등이 배치되어 있다. 지장보살좌상에서 발견된 발원문(發願文)에 의하면, 이 상(像)들은 1657년에 조성되었다.

문화재청의 설명에 의하면 일반적으로 좌상의 지장보살은 입상(立像)이나 의자상(椅子像)인 다른 권속(眷屬)보다 크고 위용있게 조성하지만, 청곡사 지장보살 좌상은 도명존자(道明尊者)와 무독귀왕(武督鬼王), 시왕(時王) 등과 비슷한 크기이다. 코는 높고 콧등이 반듯하고 입술은 작아 아이 같은 인상을 주고 있다. 특히 염라대왕(閻羅大王) 등 시왕은 다른 사찰의 지장전(地藏殿)에서 보기 드문 해학적(諧謔的)인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다.

각 존상(尊像)의 비례를 보면, 전체적으로 신체에 비해 머리 부분이 크게 제작되었다. 특히 무독귀왕(武督鬼王), 시왕(時王) 및 권속(眷屬) 등은 쓰고 있는 관모(冠帽)는 그 관모가 너무 높아 3등신의 신체 비례를 하고 있다. 신체는 상체와 하체의 옷 주름은 곡선을 살려 양감(量感)있게 처리 처리함으로써 장식미를 더했으며 각각의 자세들도 다양하지만 안정감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청곡사의 불상(佛像)은 17세기에 활동한 여러 조각승의 불상과 계통이 연결되는 요소가 없는 독특한 조각 형식을 하고 있으며, 전체적인 조형미(造形美)가 뛰어났다고 볼 수 있다.

이어서 다음은 같은 보물급인 청곡사 청동은상감향로(靑銅銀象嵌香爐)에 대해서 살펴보기로 한다.

청곡사의 청동은상감향로(靑銅銀象嵌香爐)는 1379년에 조성되어 청곡사 대웅전에 있었는데, 일제강점기 시절에 일본 병사들이 수탈해갔으나, 다시 찾아와 지금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 향로는 전형적인 고려시대의 은입사(銀入絲) 향완(香碗)의 형식을 따르는 조선 초기의 향완으로 ’대명홍무(大明洪武) 30년 정축(丁丑(정축: 1397년)‘이라는 연대가 새겨져 있어 청곡사로서는 매우 중요한 문화유산이다.

또한 총 99자가 새겨진 구연(처마) 뒷면의 명문(銘文)은 은입사 되었으며 청곡사에서 조성되었다는 문구 및 조성 연대와 함께 항상 부처님의 가피력(加被力)으로써 백성들을 다스리게 해 달라는 발원문 등이 새겨져 있다.

이와 같은 성보(聖堡)는 청곡사의 중요한 역사적인 향로이므로 반드시 청곡사로 가져와야 하며, 청동 은상감 향로가 원래의 집으로 다시 돌아오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다.

청곡사 청동 은상감 향로는 조선 태조의 계비인 신덕왕후와 관련이 있다. 신덕왕후는 지나친 욕심으로 인해 두 아들을 죽게 만들고 자신마저 죽어서까지 방원에게 처참한 복수를 당하는 비운의 왕비였으나, 지아비였던 태조 이성계에게는 매우 깊은 사랑을 받기도 했다. 이 외에도 신덕왕후의 또 다른 전설이 청곡사에 오늘날까지 계속 전해오고 있다.

 

 

 

강신웅

본지 주필

전 경상대학교 인문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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