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웅 교수의 향토인문학 이야기] 1470년 장구한 역사 지닌 경남 최고(最古) 고찰(古刹)
[강신웅 교수의 향토인문학 이야기] 1470년 장구한 역사 지닌 경남 최고(最古) 고찰(古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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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9.27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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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현산 아래 자리한 조계종 12교구 본사 해인사 말사
554년 연기조사 창건 당시 163개의 방을 가진 대규모
임진왜란 때 숨겨둔 무기 발각 사찰 내 모든 전각 불타
고려 지공스님, 무학대사, 조선 사명대사 등 머물기도

<44> 진주지역 사찰(寺刹) <2> 응석사(凝石寺) ➀

진주시 집현면 정평리 집현산(集賢山) 아래 자리한 응석사(凝石寺)의 대웅전 모습.
진주시 집현면 정평리 집현산(集賢山) 아래 자리한 응석사(凝石寺)의 대웅전 모습.

경남 진주시 집현면 정평리 741번지 집현산(集賢山)에 자리한 응석사(凝石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2교구 본사인 해인사의 말사다. 정확한 위치는 오늘날 집현산 등산로 입구로, 예부터 집현산은 진주 외곽의 명산으로 산이 깊고 넓어 등산로가 많이 개발되어 있기도 하다. 결국 그만큼 숲이 울창하며, 계곡이 깊은 명당(明堂)의 자리에 위치하고 있는 사찰이라고 볼 수 있다.

진주 응석사는 통일신라시대 554년(진흥왕 15년)에 연기조사(緣起祖師)가 창건했으며, 2019년을 기준으로 거의 1470년의 긴 역사를 간직한 명실공히 경남지역에서 최고(最古(최고)의 전통 사철이다. 당시 가람(伽藍 승려가 거주하면서 불도를 닦는 곳)의 규모는 대웅전을 비롯하여 관음전과 문수전, 극락전, 나한전, 팔상전 등과 163개의 방이 있었을 정도로 규모가 매우 대단했었다고 한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을 비롯해서 산신각, 일주문, 요사체 등이 있으며, 이 중 대웅전은 경남유형문화재 제141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대웅전은 팔작지붕 기와집이며, 주심포(柱心包)계통을 따르고 있는 정면 3칸의 건물로써 활주를 받쳐 보강하고 있다. 현재 응석사 대웅전의 규모는 원래 창건 시 규모보다는 적지 않게 축소되었으며, 그 연대는 대체적으로 병자호란 이전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그리고 현재 경내 뒤편에는 경상남도 기념물 제96호로 지정된 무환자(無患子)나무가 있는데, 이 나무는 신라말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심었다고 전해오는데, 실제 수령이 약 250년으로 추정되며, 그 높이는 15m에 달한다.

이제부터 응석사의 구체적인 수난의 역사와 긴 세월 본 사찰에서 머물렀던 과거 저명한 고승(高僧)들과 그리고 본 사찰에 현재까지 보존되고 있는 유명 문화재들에 대해 기술하고자 한다.

1592년 임진왜란 때에 왜병들이 본 사찰에 몰려와 관음상 밑에 숨겨 두었던 승병들의 무기가 발각되자 왜병들에 의해 사찰 내에 있는 거의 모든 전각들이 불타기도 했다. 그 뒤 1736년(영조 12년)과 1899년(광무 3년)에 두 차례 중수가 있었으며, 일주문을 지나 누각형식의 종루(鍾樓)도 있다.

응석사 종루.
응석사 종루.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경내가 시작되는데, 종루 앞에는 대웅전이 금당으로 자리한다. 대웅전 뒤쪽으로 나한전과 산신각 그리고 나반을 모셔 놓은 독성각이 거의 같은 축선상으로 배치되어 있는데, 특히 산신각과 독성각은 거의 처마가 잇대어 있을 정도로 근접해 있다. 이러한 가람 배치는 창건 이후 임진왜란 직전까지의 모습은 아닐 것으로 생각되는데 아마도 임진왜란으로 사찰 대부분의 당우(堂宇 건물)가 불에 타 없어진 뒤, 사역(寺域)의 규모가 상당히 많이 축소되었고, 그때그때 형편에 따라 전각을 세우면서 이러한 배치가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어서 본 응석사에 머물렀던 역대로 유명한 스님들을 살펴본다면, 고려시대에는 신통력이 매우 뛰어나 중국의 양나라 무제에게까지 알려졌던 지공(指空)스님, 효심으로 지장보살까지 감동시켰다는 나옹(懶翁)스님, 고려말 역사적 전환기에서 마지막 왕사였던 무학(無學)스님 등이 머물렀다. 조선시대에 와서는 임진왜란 때 큰 공을 세웠던 사명대사 유정(惟政 1544∼1610년) 스님과, 석화(石花)나 곡차(穀茶)같은 신조어를 만들어냈던 진묵 일옥(震黙 一玉 1562∼1663년) 스님 등이 머물며 화엄도량으로서의 명성을 떨치기도 했다. 근대에 와서는 조계총림의 초대 방장이었던 구산 수련(九山 秀蓮) 스님이 응석사에 머물면서 수도(修道)하기도 했다.

다음 호에서는 응석사에 남아있는 유명 문화재인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木彫釋迦如來三佛坐像)과 응석사 무환자(無患子)나무에 대해서 살펴보기로 한다.

 

강신웅

본지 주필

전 경상대학교 인문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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