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우칼럼] 익어가는 감 하나
[정용우칼럼] 익어가는 감 하나
  • 경남미디어
  • 승인 2019.10.04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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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우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과 객원교수(전 학부장)
정용우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과 객원교수(전 학부장)

사람 사는 마을에는 약간의 소음이 있기 마련이지만 이곳 아침, 내가 사는 시골에는 지극한 고요다. 서울이라는 거대 도시, 그 무시무시한 속도와 번잡 속에서 1주일을 보내고 왔으니 더욱 그렇게 느낄 만도 하다. 그 고요 속에서 잔디밭 위에 떨어진 낙엽들을 바라본다. 예전 같았으면 이곳으로 돌아오자마자 잔디 위에 떨어진 감나무 잎들을 바로 쓸어 냈을 텐데 이번에는 그냥 두었다. 가을바람에 뒹구는 낙엽들을 바라보면서 혼자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외로움을 느끼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싶었기 때문일까.

이번 상경 시 학교에서 강사법의 본격 시행에 따라 부득이 내년부터는 강의를 줄 수 없다는 통지를 받았다. 강의하기엔 나이가 너무 많단다. 젊은 사람들, 그것도 가정을 꾸리고 있는 젊은 사람들이 먹고 살고 자식 키워야 하니 우선시 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고…. 그리고 조직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 방법 또한 어쩔 수 없으니 이해는 하지만 몇십년간 계속해 온 강의를 끝내게 된다니 하루아침에 저절로 외진 세계에 내던져버린 느낌이다. 나이 때문에 더이상 강의를 줄 수 없다고 하니 내가 정말 나이를 많이 먹긴 먹었나 보다. 더욱 노년에 접어든 것이 실감 난다. 이젠 서서히 세상 명리 따위는 잊어야지 다짐하면서도 약간의 아쉬움이랄까 외로움일까 그런 감정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한여름과 달리 가을의 스산한 바람이 불면 인간을 비롯한 뭇 생명에게는 외로움이 밀려온다. 사람이 없으니 더욱 그러하다, 우리집을 중심으로 도로와 도랑을 끼고 접해 있는 7가구 중 2가구만이 중년으로 비닐하우스 농사를 짓고 있는데 이른 아침부터 일터에 나가버렸고 90세를 넘은 노인이 사는 두 집은 인기척이라고는 거의 느낄 수 없으며 나머지 다른 3가구는 살던 노인들이 죽어 모두 텅 비어 있다. 상황이 이러하니 적막할 수밖에. 사라지는 것들의 애잔함을 미리 느껴보라고 이토록 고요한가 모를 일이다.

그런데 이 지극한 아침고요 속에서도 활발하게 살아 움직이는 것이 있다. 바로 새들의 움직임이다. 우리집 주변에는 대나무밭과 산이 있어 새들이 많이 서식하고 있다. 아침이면 이들이 이 지극한 고요를 깨트린다. 대나무밭에서 산에서 내리꽂히듯 날아와서는 우리집 마당 주변에 있는 나무들 위에 내려앉곤 한다. 이들의 유영을 보는 것도 즐거움이다. 그 유영을 따라 내 눈동자가 움직인다. 몇 마리는 우리집 주변에 있는 감나무 위에 앉는다. 이 감나무는 우리집 주변에서 가장 키가 큰 나무다. 그래서 그 감나무 위에 앉을 때는 눈에 확 띈다. 가지 하나만 외로이 홀로 하늘을 향해 뻗어있는 나무이기 때문이다. 내 나이보다 더 오래된 나무라 감 달아내는 것도 힘에 부치겠다 싶어 몇 해 전 위로 솟은 한 가지만 남겨두고 모두 잘라냈다. 사람으로 치면 나처럼 은퇴해야 할 나이를 넘어섰는데 가지가 지나치게 많으면 쓸데없는 걱정과 번뇌가 생기기 않을까 걱정해서다. 나의 도움으로 가지와 잎이 줄어든 이 이 늙은 감나무는 힘을 한 데 모을 수 있어 그런지 매년 감 몇 개는 달아낸다. 새들이 앉아 즐겁게 노니는 감나무에는 원래 감 세 개가 달려 있었는데 서울에 다녀오니 한 개만 남았다. 혼자지만 열심히 익어가고 있는 중이다. 아직은 새들이 쫓아 먹을 만큼 익지는 않았지만 끝까지 떨어지지 않고 잘 익어 홍시가 되면 새들의 먹이가 될 터이다. 앉아서 놀던 새들은 다른 곳으로 날아가 버렸음에도 나는 눈을 떼지 못하고 외롭게 매달려 익어가고 있는 감을 바라본다. 제 안에 차곡차곡 향기를 쌓아 달콤하게 익어가고 있다. 익어가는 모습이 아름답다.

익어가는 감을 바라보면서 나 자신 눈길도 깊어지고 마음도 깊어져 세상의 진한 맛을 음미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하여 제대로 된 인간으로 거듭나고 싶어진다. 그러면서 나의 남은 인생을 생각해 본다.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지금 여기에 이렇게 존재하고 있는 저 감 하나가 익어가는 것과 같이, 나도 이제 익어가는 일만 남았다. 감이 커 갈 때는 뿌리의 도움이나 잎사귀의 도움을 받을 수가 있었지만 지금은 스스로 홀로 익어가야 하듯, 나 자신도 이제 스스로 홀로 익어가야 한다. 쇠락해가는 자신의 육체를 생각하면 여기서 아름답게 익어간다는 것은 우리의 영혼의 빛깔을 아름답게 잘 가꾸어 간다는 뜻이다. 잘 익은 영혼의 빛깔을 보고 ‘저 사람 곱게 익은 빛깔을 지닌 사람이구나’하는 생각이 들게끔 해야 하겠다. 지극한 아침 고요 속에서 밖으로 열려있던 마음을 안으로 향하게 하는 저 익어가는 감 하나. 노인의 날(10월 2일)에 존재론적 의미를 캐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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