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웅 교수의 향토인문학 이야기] 임진왜란 때 의병(義兵) 양성하고 주둔했던 전통사찰
[강신웅 교수의 향토인문학 이야기] 임진왜란 때 의병(義兵) 양성하고 주둔했던 전통사찰
  • 경남미디어
  • 승인 2019.10.11 15:0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신라 665년 해동진언종 창시자인 혜통조사가 창건
임란때 왜적과 전투 중 불타…‘의로운 골짜기 사찰’
1천여개 불상 모신 천불전에 금동비로자나불 모셔
유명 문인과 예술인들이 방문하고 머문 사찰로 명성

<46> 진주지역 사찰(寺刹) <3> 의곡사(義谷寺)

진주 의곡사. 경남 진주시 상봉동 비봉산에 있는 절. 임진왜란 때 승병들이 이 절을 중심으로 항전하였기 때문에 나라에서 의곡사라는 이름을 내렸다 한다.
진주 의곡사. 경남 진주시 상봉동 비봉산에 있는 절. 임진왜란 때 승병들이 이 절을 중심으로 항전하였기 때문에 나라에서 의곡사라는 이름을 내렸다 한다.

경남 진주시 상봉동 415번지 비봉산 자락에 위치한 의곡사(義谷寺)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12교구 본사인 해인사의 말사로, 665년(신라 문무왕 5년) 해동진언종(海東眞言宗)의 창시자인 혜통조사(惠通祖師)가 창건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 후 808년(신라 애장왕 9년)에는 원측선사(圓測禪師)가 중건하였고, 또 1194년(고려 명종 24년)에 월명선사(月明禪師)가 중건하였다고 전해지며, 사명(寺名)도 월명사(月明寺), 숭의사(崇義寺)로 개칭되어 불리어져 왔다.

그러다 임진왜란 때에는 이곳에 의병들이 주둔하여 왜적들과 전투를 벌이다가 절이 불타버리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그 당시에 절 이름을 근정사로, 이어 ‘의로운 골짜기에 있는 사찰’이라는 의미로 의곡사(義谷寺)로 개칭되었다.

이처럼 임진왜란으로 폐허가 된 사찰을 1618년(광해군 10년)에 성간(成侃)스님이 중건하고, 1897년(고종 16년) 덕운선사(德雲禪師), 1898년(광무(光武) 2년)에 성석스님이 다시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근대에 와서는 서예가로 잘 알려진 오제봉(吳濟峰 1908∼1991) 스님이 20여년 동안 주지를 맡았고, 불화(佛畫)로 유명한 석정스님도 꽤 오래 머물기도 했다. 그런 인연으로 유명 시인, 화가, 서예가들이 본 의곡사를 빈번하게 방문했다고 한다.

진주 의곡사 있는 불화 괘불도. 2014년 10월 29일 대한민국의 등록문화재 제624호로 지정되었다.
진주 의곡사 있는 불화 괘불도. 2014년 10월 29일 대한민국의 등록문화재 제624호로 지정되었다.

의곡사는 대웅전, 천불전, 회광당, 대흥루 등의 전각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진주불교청년회의 2층 건물도 경내에 있기도 하다. 대웅전은 1970년 중건한 정면 5칸, 측면 3칸 규모의 팔작지붕 집으로, 불단에는 아미타여래를 주불로 하여 왼쪽에 관음보살, 오른쪽에 지장보살이 협시(夾侍)되어 있고, 벽면에 후불탱, 지장탱, 칠성탱, 신중탱, 독성탱 등의 불화가 걸려 있다.

1천여개의 작은 불상을 모신 천불전은 대웅전 오른쪽에 있다. 1970년대에 지은 정면 5칸, 측면 3칸 규모의 팔작지붕 집으로, 금동비로자나불(金銅毗盧遮那佛)도 모셔져 있다. 의곡사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것은 천불전 맞은편의 회광당(廻光堂)으로, 1900년대에 지어졌으며, 현재 요사채(寮舍寨)로 사용되고 있다. ‘廻光堂’이라는 편액의 글씨는 근대의 유명 고승인 구산수련(九山秀蓮 1909∼1983) 스님의 글씨이다. ‘飛鳳山義谷寺’라는 편액도 있는데 이 글씨는 3.1운동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인 오세창(吳世昌 1864∼1953)이 쓴 것이다. 종각과 일주문 역할을 하는 대흥루(大興樓)는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로, 1층에 사천왕도(四天王圖) 4폭이 걸려 있고, 2층에 범종(梵鐘)이 있다.

특히 의곡사의 단풍은 한때 진주 8경의 하나였으며, 지금도 단풍이 화려하고 깨끗하여 많은 사람이 찾아오고 있다. 또한 의곡사의 우엉 관련 음식이 사찰음식으로 유명하기도 하다.

이 외에도 의곡사는 예부터 유명한 문인과 예술인들의 방문이 빈번한 사찰로 알려지면서, 서예의 대가인 청남 오제봉(吳濟峰) 선생이 주지스님으로 있던 1960년대에는 이름만 들어도 내로라하는 문인들이 의곡사에서 머물고 가기도 했다. 50여년 전 개천예술제 때는 전국에서 유명세를 떨치던 유명 문인들이 진주에 거의 다 몰렸었는데, 그 이유는 정확히 몰라도 모두가 의곡사에서 머물려고 했다.

특히 수필가 김성애 선생이 기고한 글에서 구상(具常) 시인이 의곡사에 머물면서 만취한 상태에서 자다가 일어나 불상 앞에 실수를 범했는데, 다음날 아침 공초 오상순 시인이 큰 방문을 활짝 열어젖히며 ‘상아! 어제 당신 부처님한테 멋있게 한마디 하더구나’ 하며 호탕하게 말하는 바람에 선배 문인들도 모두 웃고 넘겼다고 했다. 물론 청남 스님인 오제봉 선생도 관대하게 웃어넘겼다는 얘기도 전해오고 있다. 더욱 구상 시인은 한국문단의 최초로 노벨 문학상 예비후보에 이름이 올랐던 분이기도 하다.

이 외에도 수많은 문인들을 청남 스님은 의곡사에 모두 다 받아 주셨던 것이다. 동시에 청남 스님은 청소년들에게 의곡사에서 한학과 서예를 가르치며, 선비정신을 길러 주는 등 후학 양성에도 게을리하지 않았으며, 그때 그 제자들이 지금도 여러 지역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강신웅

본지 주필

전 경상대학교 인문대학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진주대로 988, 4층 (칠암동)
  • 대표전화 : 055-743-8000
  • 팩스 : 055-748-1400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선효
  • 법인명 : 주식회사 경남미디어
  • 제호 : 경남미디어
  • 등록번호 : 경남 아 02393
  • 등록일 : 2018-09-19
  • 발행일 : 2018-11-11
  • 발행인 : 황인태
  • 편집인 : 황인태
  • 경남미디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미디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7481400@daum.net
ND소프트
「열린보도원칙」 당 매체는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고충처리인 이선효 055-743-8000 7438000@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