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우칼럼] 로드킬 당한 사마귀
[정용우칼럼] 로드킬 당한 사마귀
  • 경남미디어
  • 승인 2019.10.18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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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우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과 객원교수(전 학부장)
정용우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과 객원교수(전 학부장)

독일시인 릴케가 썼다. 두 세계 가운데 ‘한쪽은 하늘로 올라가고, 다른 쪽은 땅으로 꺼지는’ 시간인 해질녘…. 나는 그 해질녘이 좋아 평소에는 이때쯤 저녁산책을 시작한다. 그런데 오늘은 조금 빨리 나섰다. 가을 하늘이 너무 청명하여 나를 유혹하기 때문이다. 요 며칠 가을비 치고는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많이 내렸는데 이렇게 청명한 가을하늘을 만들어 내려고 그랬을까. 자연의 섭리란 참으로 오묘하기 그지없다.

바람도 서늘하여 산책하기에 안성맞춤, 콧노래를 부르면서 나의 저녁산책은 시작된다. 우리 집에서 약 1킬로미터의 2차선 포장도로를 걸어가면 강둑길에 도착한다. 강둑길은 약 1.5킬로미터. 왕복하면 약 5킬로미터가 되는 산책길이다. 시골인지라 나의 산책길은 대체적으로 한산하지만 그래도 2차선 도로 산책 시에는 차량들이 가끔 지나다니기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도로 이쪽저쪽 위아래를 열심히 살피며 걷는다.

이렇게 약간 긴장한 상태에서 눈동자를 굴려가면서 걷다 보면 가끔 눈에 띄는 것이 있다. 로드킬 당한 동물들이다. 어쩌다 고양이와 같이 큰 동물들이 치여 죽은 것을 볼 수 있기도 하나 그런 경우는 흔하지 않다. 제일 많이 로드킬 당한 것은 뱀과 곤충들이다. 곤충 중에서는 유독 사마귀가 많다. 뱀은 움직임 자체가 느리고 몸통이 길어 로드킬 당할 확률이 높아서 그렇다손 치더라도 날개가 달려있어 날 수 있는 사마귀가 유독 많은 것은 좀 예외다.

그 이유는 사마귀라는 놈의 성질 때문이다. 이 사마귀는 여름철에서 늦가을까지 나뭇가지나 풀숲에서 자주 볼 수 있는데 도대체 겁이 없다. 사람이 접근해도 여간해서 움직이질 않는다. 피하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빤히 사람을 쳐다본다. 아주 오만하고 건방져 보인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마귀를 ‘버마재비’라고도 불렀을까. 범(호랑이)의 아재비라는 뜻이다. ‘아재비’란 아저씨의 낮춘 말로 곤충이나 동물이름 뒤에 붙으면 무섭다는 의미이다. 버마재비는 범처럼 무서운 곤충이란 뜻이다. 게다가 동족까지 잡아먹는 잔인함도 지니고 있다. 거미 따위가 그렇듯이 사마귀 암컷은 흘레붙는 중에 느닷없이 수컷을 야멸치게 잡아먹어 버린다. 종족보존의 비원(悲願)이 참 무섭다. 죽어가면서도 씨를 퍼뜨리려 드는 저 수컷 사마귀. 이런저런 생물학적 특성 때문에 사마귀를 주제로 한 이야기가 심심찮게 등장하고 있다. 당랑거철(螳螂拒轍)도 그중 하나다. 제힘에 부치는 대상에 맞서려는 무모한 행동거지를 빗댄 사자성어다. ‘당랑(螳螂)이 수레를 막는다’는 뜻이다. 이 당랑(螳螂)이 우리말로 사마귀이다.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어느 날 중국 제(齊)나라 장공(莊公)이 수레를 타고 사냥터로 가던 중 웬 곤충 한 마리가 앞발을 도끼처럼 휘두르며 수레를 막는 것을 보았다. 마부를 불러 그 곤충에 대해 묻자, 마부는 “저것은 사마귀이옵니다. 놈은 나아갈 줄만 알지 물러설 줄을 모르고, 제 힘은 생각하지도 않고 적을 가볍게 보는 버릇이 있습니다” 그러자 장공은 “사람이라면 반드시 천하에 용맹한 사나이가 될 것이니라”고 말하면서 수레를 돌려 갔다고 한다.

이리 보아도 저리 보아도 사마귀라는 놈은 참 별난 놈인 것만은 틀림없다. 이렇게 별난 놈을 오늘 두 번이나 만났다. 오늘 만난 사마귀는 모두 죽어 있는 사마귀이다. 로드킬 당했기 때문이다. 제힘에 부치는 대상에 맞서려는 무모한 행동을 하다가 그리 된 것이다. 힘 있는 상대를 제대로 알아보고 얼른 날아 피했으면 살아남았을 텐데, 겁 없는 당랑(螳螂)이 도로 위에서 수레(요새는 자동차)를 막아서다가 치여 죽은 것이다.

오만이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고 말았다. 오만은 본질적으로 자기를 위에다 두는 것이지만 실상은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 좀 있다고 뻐기다가 도리어 죽임을 당한 것이다. 오만의 극치를 달리고 있는 우리도 사마귀 신세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로드킬 당한 사마귀를 뒤로 하고 이젠 강둑길로 나의 산책은 이어진다. 눈앞에는 남강이 유유히 흐른다. 강은 뭐 하러 저렇게 흐를까. 1등 되기 위해 흐를까. 아니면 상대를 짓누르고 이기기 위해 흐를까. 아니다. 1등 되기 위해 흐르는 강도 없고 상대를 짓누르고 이기기 위해 흐르는 강도 없다. 그냥 아래로 아래로 흐를 뿐이다. 꼭 겸손을 닮았다. 그래서인지 그 흐르는 모습이 더욱 평화롭게 다가온다. 오만의 극치를 치닫고 있는 우리에게 겸손의 미덕을 깨우치기 위해 강물은 저토록 유유히 흐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로드킬 당한 사마귀와 유유히 흐르는 강. 오만의 극치가 대립의 극치로 이어져 시끄러운 요즘, 우리 모두 한 번쯤 곱씹어 볼 대상들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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