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년 통한의 칠만의총 別曲
400년 통한의 칠만의총 別曲
  • 강현일 기자
  • 승인 2019.10.25 10: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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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진주지만, 천고만고의 시름과 아픔으로 우리는 살아왔다. 계사년 6월, 하늘과 땅이 죽음처럼 무너진 그 날! 여기 이곳 초록의 평화로 살아온 진주진양이라는 그 땅이 느닷없이 이웃 살인마의 잔학한 탐욕의 본능인 추악한 살육으로 지구상에서 영원히 묻혀질뻔 했노라.

다시 말하면 지구 역사상 그 선례를 거의 찾을 수 없을 정도로 가장 완벽한 초토가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사람은 물론 하늘을 나는 새, 그리고 땅속의 모든 벌레들까지 그 모두가 일루의 흔적도 없이 송두리째 사라진 것이다.

분하고도 원통하구나! 이 원수를 어찌 갚을꼬! 이 원수를 어찌 갚을꼬! 어이하리, 어이하리, 정말정말 어이하리.

선혈의 핏빛 누더기로 죽어간 우리의 할머니, 할아버지로부터 핏덩이 아이들까지 참혹하게 낭자되매 그 통곡과 아픔의 눈물, 진홍의 피가 남강으로 흘러흘러 푸르디푸른 남강물을 깜깜한 지옥의 강으로 변하게 했다. 420년이 지난 지금도 남강에 가면 7만영혼의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분하고도 원통하구나! 이 원수를 어이하리! 이 원수를 어이하리! 어이하리, 어이하리, 정말정말 어이하리.

그 때 그 후 진주인들은 그 잔혹한 420년간 무엇을 생각해 왔으며, 무슨 일을 해오며 살았는가! 모든 과거를 잊고 살았는가! 아니면 선대인들의 죽음과 같은 아픔을 잊고 살았는가!

1592년 4월 임진년에 부산 동래에서도 당시 동래부사 송상현 이하 수백 명의 군관민이 순절했고, 동년 8월 금산에서도 의병장 조헌 이하 칠백명의 의병이 순절했으며, 그 후 1597년 7월에 남원에서도 전라병사 이복남과 구례현감 이하 만여 명이 순절했도다.

그러나 당시 동래, 금산, 남원에서는 당시 지역민들이 즉각 그 많은 시신들을 거두고 안치하고 합장하여 참담한 그 원혼들의 명복을 빌 수 있는 의총을 만들었는데, 이곳 진주는 그 당시는 물론 400여 년의 세월이 지난 오늘날 까지도 세계 전사상 최다의 진주 선령들의 처참한 죽음을 그대로 방치하고 못본체 해온 그 까닭은 무엇인가?

지금도 진주의 하늘에는 망자들의 곡소리가 진동하고, 남강은 여전히 진홍의 핏물이 주검처럼 흐르고 있지 않은가?

분하고도 원통하구나! 이 원수를 어이하리! 이 원수를 어이하리! 어이하리, 어이하리, 정말정말 어이하리.

그래도 여전히 칠만의총에 대한 본질적인 의미나 그 건립의 필요성에 대한 절실한 의지가 없다면 진주에서 지금까지 진행되어 온 수십 년간의 수많은 축제, 예술제 그리고 심지어 각종 제향까지도 향후 지속적인 존립의 가치가 진정 있는지 다시 한번 우리 모두의 깊은 숙고와 반성이 필요하다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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