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로타리 3590지구 강기용 총재
국제로타리 3590지구 강기용 총재
  • 경남미디어
  • 승인 2019.11.01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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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마 톤즈’ 이태석 신부 선종 10주기 기념 봉사활동 전개

3590지구, 서부경남지역 81개 클럽에 4300여명 회원이 활동
올해 15억원의 예산으로 저소득층 주택개량 사업 등 전개해
강 총재, 92년 삼천포중앙클럽 창립회원으로 로타리활동 시작
중학교부터 서울서 유학, 대학졸업 후 아버님 요청으로 귀향

국제로타리 3590지구 강기용 총재는 올해 ‘스마일 톤즈, 스마일 아프리카’라는 구호 아래 아프리카 봉사활동에 집중하고 있다.
국제로타리 3590지구 강기용 총재는 올해 ‘스마일 톤즈, 스마일 아프리카’라는 구호 아래 아프리카 봉사활동에 집중하고 있다.

강기용(63) 국제로타리 3590지구 총재는 1992년 삼천포 중앙로타리클럽이 창립될 때 창립회원으로 로타리클럽에 발을 들여놓은 것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당시 사업선배가 봉사활동을 한번 해 보라는 단순한 권유로 마침 창립하고 있던 중앙로타리클럽 회원이 됐다. 강 총재는 처음에는 로타리 활동에 그렇게 큰 의미를 두고 시작하지 않았다. 그러나 할수록 감동이 커서 로타리 활동은 그 이후 강 총재의 인생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

“봉사활동을 하면 엔돌핀 보다 몇 배 강한 다이돌핀이라고 하는 호르몬이 나온다고 합니다. 봉사활동에서 오는 희열과 감동은 다른 분야에서 느끼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입니다. 그래서 봉사활동의 참맛을 아는 사람들은 평생 봉사활동에 종사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강 총재는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봉사활동에서 오는 진한 감동은 그 어떤 사회활동에서 오는 행복감 보다 크다고 강조했다. 이런 이유로 자신도 한번 발을 들여놓은 로타리클럽 활동을 평생 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 총재는 92년 활동을 시작한 5년 뒤인 97년 삼천포중앙로타리클럽의 회장으로 선출되었다. 이 이후 98년 클럽봉사위원장, 2007년 2지역 총재지역대표, 2009년 지구리소스그룹 고디네이터 등을 거쳐 2016년 차차차기 총재로 선정되었다. 3년간의 집행부 경험을 쌓은 다음 올해 7월 1일 3590지구 총재로 취임하였다.

로타리 3590지구는 81개 클럽에 4300명의 회원을 거느리고 있는 서부경남 대표적 봉사단체이다. 3590지구는 특히 올해 아프리카 봉사활동에 주력하고 있다. 올해가 ‘울지마 톤즈’로 잘 알려진 이태석 신부의 선종 10주기가 되는 해이다. 그래서 ‘스마일 톤즈, 스마일 아프리카’라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아프리카에 대한 집중적인 봉사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강기용 총재는 1956년 삼천포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를 삼천포에서 나온 강 총재는 교육열이 높았던 아버님의 권유로 중학교부터 서울 유학의 길에 올랐다. 서울에서 대학을 나온 강 총재는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지만 아버님의 사업을 물려받기 위해 삼천포로 귀향을 했다. 어려서 고향을 떠나 그런지 서울생활이 잘 맞지 않았고 아내도 삼천포 초등학교 동기라 둘은 귀향에 의기투합했다. 귀향한 이후 아버님 사업을 돕다가 1992년 대하콘크리트를 설립하면서 독립했다. 현재는 동현이라는 조그만 건자재사업을 하고 있다.

다음은 강 총재와의 인터뷰이다.

▲로타리클럽이 뭔가.

-세계에서 처음으로 생긴 봉사단체이다. 구체적으로는 1905년 미국 시카고에서 변호사였던 폴 해리스에 의해 창립되었다.

▲이름이 왜 로타리인가.

-로타리란 돌아간다는 의미이다. 처음에 회원들의 사무실에서 돌아가며 회합을 가졌던 초기 형태에서 이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봉사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을 말하나.

-로타리의 취지가 ‘초아의 봉사’이다. 우리나라에도 도시 입구에 가다보면 ‘초아의 봉사’라고 새겨진 돌로 된 표지석을 볼 수 있다. 나를 뛰어넘어 봉사하는 삶을 살자는 의미이다. 로타리클럽 회원들은 위험에 처한 어린이, 빈곤과 기아, 환경, 문맹, 폭력 등 중요한 이슈들을 해결하기 위한 지역사회 봉사 프로젝트들을 개발할 뿐 아니라 청소년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직업개발을 홍보하며 학생, 교사를 비롯한 기타 전문인들에게 교육과 국제 교류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현재 회원은 얼마나 되나.

-전 세계 200여개 국에서 약 120만 명의 회원이 있다.

▲조직은 어떤 형태로 구성돼 있나.

-국제로타리클럽 중앙사무국은 미국 일리노이주의 에번스톤에 있다. 한국은 로타리 조직으로 11, 12존(zone)이다. 이 존 아래 19개 지구가 있다. 제가 속한 지구는 3590지구이다. 제가 3590지구 총재이다.

▲그럼 3590지구 아래에는 어떤 조직이 있나.

-3590지구는 다시 11개 지역으로 나뉘어지고 이 아래에는 81개의 클럽이 있다. 클럽이 로타리의 가장 기본 단위이다.

▲그럼 3590지구가 관할하는 지역은 어디인가.

-경남의 4개 시 8개 군이다. 구체적으로 진주시, 사천시, 거제시, 통영시, 고성군, 남해군, 하동군, 산청군, 합천군, 거창군, 함양군, 의령군이 관할지역이다.

▲3590지구의 회원은 몇 명이나 되나.

-81개 클럽에 4300여명이 있다.

▲한국에서 로타리 운동이 시작된 것은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에는 1927년 경성클럽을 효시로 1935년 부산, 1937년 평양, 1938년 대구클럽 등이 계속 결성되었다. 그러다가 제2차 세계대전으로 1940년 클럽활동이 중단되었다가, 광복 후인 1949년 3월 서울로터리클럽이 우리나라 사람의 손으로 재건되어 국제로터리본부의 승인을 받았다(초대 회장 崔淳周, 창립회원 25명). 이어서 1952년 1월 부산클럽, 1954년 대구클럽, 1957년 인천·대전클럽, 1959년 광주클럽 등이 각각 결성되었다.

▲6.25때 로타리클럽이 기여를 많이 하였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렇다. 국제로터리본부는 6·25전쟁 때 각국 로터리클럽에서 수집한 수많은 의약품·구호품·학용품 등을 국내 로터리클럽 또는 적십자사를 통해서 배포한 일이 있었으며, 우리나라 로터리 발전에 많은 지원을 하였다.

▲우리나라 로타리클럽이 진행하는 봉사활동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

-탄자니아 툼비로타리 모자보건센터 건립이 한국 로타리안들이 추진한 대표적인 봉사활동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건가.

-한국 로타리안들은 탄자니아에 로타리 모자병원을 건립했다. 툼비병원은 탄자니아 프와니주 주민 100만 명이 이용하는 유일한 의료시설로, 1개 침대에 2명의 임산부가 누워 출산으르 대기하는 실정이며, 인큐베이터가 부족해 30촉 전구를 이용하여 신생아를 보호하는 등 시설, 장비, 인력, 재정 등 보건의료를 충족하지 못하는 실정이었다. 툼비-로타리병원은 2008년 9월 2일, ‘한국 로타리의 날’에 로타리안 1인당 1만 원씩 모금한 5억 원과 사회복지공동모금회(사랑의 열매)에서 지원한 5억 원으로 건립했으며,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 4억 원, 한국국제협력단(KOICA) 3억 원, 글로벌보조금 사업으로 1억 원 상당의 디지털 엑스레이, 4천만 원 상당의 초음파 기기 등을 대대적으로 지원했다. 현재 툼비-로타리 모자병원 진료 실적은 급성장하여 영유아 사망률도 급격히 줄었다고 보고되고 있다.

▲또 다른 봉사는 어떤 게 있나.

-‘몽골을 푸르게’ 사막을 초원으로! 라는 구호 아래 몽골 식목사업도 한국 로타리안들이 행한 주요한 봉사활동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

-한국의 로타리는 2005년 국제로타리 창립 100주년 기념으로 ‘몽골을 푸르게’ 5개년 사업을 실행해 2009년 사업을 완료했다. 한국 17개 지구가 공동으로 매년 5월, 몽골 현지를 방문해 황사의 진원지인 고비사막 등지에 나무심기 프로젝트를 벌였다. 몽골정부에서는 이 프로젝트를 녹색사업으로 채택했으며, 한국 17개 지구, 로타리재단, 몽골 정부의 지원으로 매년 30만 달러 이상의 기금을 조성하여 몽골에 묘목을 재배하는 시설과 기술을 전파하고, 이를 통해 저소득층 몽골인들에게 일자리를 창출해 주었다.

▲강 총재 관련 이야기를 좀 해 보자. 총재는 언제 됐나.

-올해 7월 1일 취임했다. 내년 6월 30일까지가 임기이다.

▲총재의 임기는 1년인가.

-그렇다. 그러나 3년 전에 차차차기 총재에 선출되기 때문에 사실상 4년간 집행부에서 일하게 되는 셈이다.

▲3년 전에 후계자를 미리 선정해 놓는다는 의미인가.

-그렇다. 로타리클럽의 지도자 선출의 특징이다. 3년 전에 차차차기 총재를 선출하고 다음해에 차차기총재, 그 다음해에 차기 총재, 그리고 마지막으로 총재에 오른다. 이렇게 총재에 대한 연습을 하게 한 다음 대표역할을 맡기는 게 로타리클럽의 특징이다.

▲이렇게 하는 이유가 있나.

-미리 집행부에 들어가 충분한 경험을 쌓으라는 얘기 같다. 그래야 여러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지 않겠나, 그런 의미로 받아들인다.

▲3590지구에는 어떤 봉사활동들이 있나.

-올해가 ‘웃지마 톤즈’로 유명한 이태석 신부의 선종 10주기이다. 그래서 우리 3590지구에서는 ‘스마일 톤즈 스마일 아프리카’캐치프레이즈 아래 아프리카에서 봉사활동을 주로 하고 있다.

▲봉사활동이란 어떤 것들인가.

-주택개량사업도 해주고 식수도 공급해준다. 또 교육자재나 의료기기를 공급해 건강을 챙길 수 있도록 해주고 있다.

▲외국 봉사활동 외에 국내에서는 어떤 일들을 하나.

-국내에서는 저소득세대에 방충망을 설치해주고 보일러를 교체해주기도 한다. 또 지적장애인을 위해 사랑의 집고치기 활동도 한다. 물론 장학금 지급 등 기본적인 봉사활동도 포함하고 있다.

▲이렇게 해서 1년에 들어가는 예산이 얼마나 되나.

-올해 3590지구의 예산은 약 15억 원이다.

▲이 예산은 어떻게 해서 마련되나.

-주로 회원들의 회비와 기부금으로 충당된다.

▲강 총재는 어떤 클럽에서 로타리 활동을 시작했나.

-1992년 삼천포 중앙로타리클럽이 창립되면서 창립회원으로 활동을 시작한 게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어떤 인연으로 로타리에 가입하게 된 건가.

-당시 제가 나이가 36살로 한창 사업을 하고 있을 때이다. 그때 주변의 선배들이 로타리 활동을 통해 봉사활동의 맛을 한번 보라고 권유했다. 처음에는 봉사활동이 뭔지도 잘 모르고 시작했다.

▲당시 창립회원이 몇 명이었나.

-35명이었다. 현재는 93명이다.

▲삼천포 인구가 줄었을 텐데 로타리 회원은 늘었다.

-그렇다. 회원들이 열심히 활동하다 보니 회원들이 늘고 있다.

▲92년부터이면 27년간 활동을 했다. 이렇게 오랫동안 활동하게 된 이유가 뭔가.

-봉사라는 게 한번 맛을 보게 되면 중독성이 있다. 봉사활동을 하게 되면서 감동을 겪게 된다. 봉사활동을 하게 되면 보통 엔돌핀보다 더 강한 다이돌핀이 나온다고 한다. 이는 돈 몇 푼 버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희열을 맛보게 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봉사활동에 빠져들게 된다. 처음에는 자신의 활동으로 희열을 맛보다가 나중에는 다른 사람이 하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감을 느끼게 된다. 이런 봉사를 통한 행복감이 로타리 활동을 평생 하게 된 이유이다.

▲인맥이나 사업상의 필요에 의해 로타리 회원이 되는 사람은 없나.

-그런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활동을 하다보면 그런 것보다는 봉사라는 자체의 활동이 주는 즐거움에 빠져들게 된다. 인맥이나 사업상 필요는 부차적인 것이다. 저는 그렇게 생각한다.

▲로타리클럽에서 지도자의 대열에 낀 것은 언제부터인가.

-1997년 삼천포중앙로타리 클럽에서 5대 회장으로 선출되고부터이다. 이때부터 3590지구 지도부의 역할을 하게 됐다.

▲총재도 클럽 소속인가.

-그렇다. 저는 지금도 삼천포중앙로타리클럽 소속이다. 총재를 마치면 다시 평회원으로 돌아간다.

▲삼천포 중앙로타리클럽의 활동을 소개해 달라.

-올해 삼천포 동서동에 있는 취약계층 6세대 사랑의 집 고쳐주기 봉사를 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인가.

-주거환경이 열악한 취약계층 가정을 회원들이 수차례 방문하여 불편한 부분을 세심하게 살폈으며, 단체사업예산 1000만원과 회원들의 재능기부로 이루어진 노력봉사와 물품지원을 통해 지붕보수, 도배, 장판 및 LED등 교체를 통해 쾌적한 주거공간으로 탈바꿈시킨 일이다.

▲강 총재는 원래 하는 일이 뭔가.

-건설업, 구체적으로는 레미콘 사업을 했다.

▲언제부터 했나.

-1991년 대하콘크리트 주식회사 대표이사를 맡으면서 본격적으로 레미콘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 이후 진산아스콘, 한려레미콘 회사 등을 경영했다. 현재는 동현이라는 건자재회사를 하고 있다.

▲사업은 괜찮나.

-요즈음은 규모를 많이 줄이고 있다. 나이도 들고 아이들도 다 커서 예전만큼 사업열의가 크지 않다. 그래서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조그맣게 하고 있다.

▲강 총재는 언제 어디서 태어났나.

-1956년 삼천포에서 태어났다.

▲학교는 어떻게 되나.

-삼천포 문선초등학교를 졸업하고는 서울로 유학을 갔다. 서울 경서중학교를 졸업하고 배문고등학교를 나왔다. 대학은 서일대학교를 졸업했다.

▲그럼, 학교를 마친 후 다시 삼천포로 돌아온 것인가.

-아니다.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아버님이 사업을 물려받아야 한다며 귀향을 요청했다.

▲그래도 당시는 도시로 도시로 향하는 시대라서 삼천포로 귀향하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그렇지 않았다. 아내도 삼천포 초등학교 동기이다. 또 중학교부터 서울생활을 해서 그런지 서울살이가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아내와 함께 삼천포로 귀향하자는 데 의기투합하게 됐다.

▲그럼, 삼천포에 와서 아버님 사업을 그대로 물려받았나.

-처음에는 그렇게 하다가 91년에 대하콘크리트라는 회사를 설립하면서 독립을 했다. 그리고는 지금까지 레미콘과 건설분야에서 사업을 하고 있다.

대담 황인태 본지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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