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H 깃발아래 ‘청년농부’ 다 모여라
4-H 깃발아래 ‘청년농부’ 다 모여라
  • 김시원 기자
  • 승인 2018.11.30 18: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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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농촌사회 이끌어갈 전문농업인 단체
정보교류·관련 교육 등 영농에 큰 도움
귀농·귀촌 붐 속 청년농업인에게는 필수
경남4-H연합회 영농4-H회원들이 경남농업기술원에서 농업용굴삭기 교육을 받고 있는 모습.
경남4-H연합회 영농4-H회원들이 경남농업기술원에서 농업용굴삭기 교육을 받고 있는 모습.

 

청년농업인4-H는 우리 농업과 농촌사회를 이끌어갈 전문농업인으로서 자질을 키우고, 정보 교류 등을 위해 청년 농업인이라면 꼭 가입해야 할 필수적인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 특히 4-H운동은 노동교육을 추가해 현장교육과 실천과제 등을 주요 프로그램으로 하고 있어 청년 농부들의 영농에 큰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귀농한 젊은 농부들은 대부분이 4-H활동을 하고 있고, 4-H 회원 또한 귀농·귀촌 붐을 타고 급격이 늘어나고 있다.

4-H운동의 시작은 국가 장래를 이끌어갈 청소년들 교육 일환으로 시작됐다. 이들이 지·덕·노·체의 4-H이념을 생활화함으로써 인격을 도야하고 농심을 배양하며 창조적 미래세대로 성장토록 하는 것이 목표다. 이후 여러 시대를 거치며 청소년뿐만 청년, 학교, 4-H본부 등 연령에 맞는 연합체로 확대되었다.


4-H는 명석한 머리[Head, 智育], 충성스런 마음[Heart, 德育], 부지런한 손[Hands, 勞育] 및 건강한 몸[Health, 體育]을 의미하는 네 가지의 이념[4-H]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들 단어의 의미를 각각 지(智)ㆍ덕(德)ㆍ노(勞)ㆍ체(體)로 번역하여 사용한다.

지구촌 80여개 국가에서 활동하고 있는 4-H연합회는 한국에선 1945년 해방직후 시작됐다. 일제시대 이후 낙후된 농촌의 부흥과 실의에 빠진 청소년들에게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당시 구자옥 경기도지사와 경기도 군정관인 앤더슨 중령, 이진묵 경기도 문정관 등이 미국의 4-H활동을 도입하기로 하고, 경기도 일원에 ‘농촌청소년구락부’를 결성하기 시작해 50년까지 1900여개 마을에 5만여 명의 회원이 참여하는 성과를 거두었으나 6ㆍ25전쟁으로 잠시 중단이 되었다.

하지만 전쟁이 끝나기도 전인 1952년 12월 정부가 4-H운동을 국가시책사업으로 채택함에 따라 전국으로 확대되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전쟁으로 황폐화된 산업의 각 분야를 도와주기 위해 1953년 8월 한미재단이 발족되었고, 11월에는 민간추진단체인 ‘한국4-H구락부중앙위원회’(현 한국4-H본부)가 결성되었으며, 4-H중앙경진대회를 개최하기에 이르렀다. 이로써 일련의 정책수립과 후원체제를 바탕으로 4-H운동은 전후 복구와 농촌재건운동과 연계해 추진되었다.

1962년 3월 농촌진흥청이 발족되면서 정부의 조직적인 지원으로 4-H운동은 발전의 기틀을 마련하게 되었다. 1965년에는 특수지도사의 부활과 4-H민간단체 육성, 자원지도자 연찬회, 4-H연합회 육성 등을 통해 활성화 여건을 마련했다. 이에따라 전국대학4-H연구회연합회 결성과 4-H신문의 발행, 4-H운동발전연찬회 개최, 전국4-H지도자야영대회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기에 이르렀다.

1970년대 4-H운동은 당시 정부의 새마을운동 밑바탕이 되었고, 새마을 운동과 함께 환경개선, 농업생산기반의 정비, 주곡의 자급기반 확층 등에 주도적 역할을 수행했다.

1981년 한국4-H중앙연합회가 창립돼 새마을운동중앙본부 회원단체로 가입하면서 조직관리가 새마을운동중앙본부로 이관되었으며, ‘4-H구락부’ 명칭도 ‘새마을청소년회’로 바뀌었다. 1983년에는 한국4-H후원회 사업 일부도 새마을운동중앙본부로 이관되어 4-H운동은 새마을운동에 통합되었다. 이후 87년 ‘한국4-H운동40년사’를 발간해 그간의 역사를 정리 했고, 88년에는 ‘4-H회’라는 이름을 되찾는 등 4-H운동이 전반적인 변화를 겪으면서 정체성을 찾아가는 시기였다.

하지만 농촌에 기반을 두었던 4-H운동은 산업화와 인구의 도시 이동, 특히 농촌사회의 붕괴라고 불릴 만큼 급격한 변화 속에서 회원의 감소 등으로 침체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1990년 서울 강동구 명일동에 한국4-H회관을 건립함으로써 4-H운동 추진에 새로운 발전적 전기를 맞게 되었다. 불우이웃돕기 등 인보활동을 전개하고 학생4-H회를 통해 4-H이념을 확산시켜 지역사회 청소년교육운동으로 뿌리를 내렸다. 또 농업과 농촌을 이끌어갈 후계세대인 영농회원들은 특화작목 등으로 농업의 활로를 찾는 노력을 기울였다.

이후 새로운 사회변화에 발맞춰 회원의 연령을 조정해 회원 배가운동을 전개하고 자연ㆍ농촌사랑 정신을 심어주기 위한 각종 교육 및 연수활동을 강화했다. 또 청소년들에게 필요한 정보화 및 리더십교육, 각종 활동프로그램의 개발 보급, 도농교류 확대, 과제교육 활성화사업 등을 활발하게 추진했다. 특히 그동안 4-H의 3대행사인 청소년의 달 행사, 야영교육, 중앙경진대회를 더욱 내실 있게 추진하여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청소년활동으로 자리 매김했다. 특히 4-H활동지원법의 제정과 이 법에 따른 4-H시책 수립, 주관단체 지정 등을 통해 이 시대가 요구하는 농업ㆍ환경ㆍ생명운동으로 거듭나고 있으며 4-H민간추진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김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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