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칼럼] 감사의 크기가 인생의 크기이다
[김기덕칼럼] 감사의 크기가 인생의 크기이다
  • 경남미디어
  • 승인 2019.11.15 16:4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기덕 진주교회(평안동) 담임목사
김기덕 진주교회(평안동) 담임목사

사람은 어떤 일을 당할 때 어떻게 반응하는가에 따라 그 결과가 달라진다. 어려운 상황이나 예측할 수 없는 난관을 만났을 때 그 상황을 어떤 관점에서 어떻게 반응하는가에 따라 상황이 역전이 되기도 한다. 미미한 자동차 접촉사고를 당했다고 가정했을 때, 어떤 사람은 재수가 없고 운이 없다고 분노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래도 사람이 다치지 않았으니 감사하다고 반응을 보이는 사람이 있다. 낙심하는 경우에도 곧 당장 죽을 것처럼 모든 것을 포기하는 반응을 보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오히려 그 전화위복으로 삼고 더 큰 낙심에 빠지지 않아서 감사하다는 반응을 보이는 사람이 있다. 상황은 똑같지만 그 상황을 받아들이는 반응에 따라 그 삶의 질과 내용이 완전히 달라진다.

일반적으로 긍정적인 태도를 가진 사람은 어떤 어려운 일을 당해도 감사로 반응한다. 어려운 일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있는 일에 초점을 맞추면서 다시 재기하는 방향으로 일어선다. 그러나 부정적인 태도를 가진 사람은 갈수록 더 큰 근심, 염려, 불만, 불평이 만들어진다. 그러한 반응은 주위의 여러 사람을 긴장하게 만들고 분위기를 어둡게 만든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거의 부정적인 태도에 익숙하다. 성경 로마서 1장 21절에는 하나님의 마음을 떠난 사람은 영화롭게도 하지 않고 감사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있다.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의 마음에는 죄의 영향력이 깊게 물들어 있기 때문에 감사보다는 불평이 더 익숙하다. 사람에게 가장 큰 슬픔은 없는 것에 대한 목마름이 아니라, 감사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는 메마름이라고 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세월이 흘러갈수록 감사가 사라지고 있다. 행복은 소유에 비례하는 것이 아니라, 감사에 비례한다. 내 삶의 모든 일들이 다 감사로 여겨진다면 그만큼 행복도 커지는 것이다. 감사의 크기가 인생의 크기가 되는 것이다. 일상의 작은 감사가 큰 행복을 가져온다는 사실을 잊고 살아간다.

오늘날 이 시대의 아픔은 감사의 크기가 얼마나 인생을 바꾸는지 설명을 해주지 못하고 있다. 감사는 커녕 불만과 절망이 우리 삶을 잔뜩 꿰차고 앉아 있다. 욕심 때문에, 비교의식과 열등감 때문에, 걱정과 염려 때문에 감사하지 못하고 우리의 귀중한 인생을 낭비하고 있다. 그 중에서 욕심이 가장 감사의 걸림돌이 된다. 우스갯소리로 “사람의 욕심은 너무 높아 커트라인이 없는데 심지어 하나님조차도 사람의 욕심을 채울 수 없다”는 말이 있다. 이처럼 세상의 것으로 채울 수 없는 것이 인간의 욕심이다. 사람은 어느 하나를 간절히 원하다 그것을 소유하게 되면 만족하고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것을 원하고 조금 더 많은 것을 원하다가 불행의 늪에 빠지게 된다.

욕심과 감사는 공존할 수 없다. 욕심은 정욕적이고 사탄에게 속해 있는 영역이다. 그러나 감사는 하나님의 영역에 속해 있다. 그래서 진실한 그리스도인은 범사에 감사하며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는 삶을 산다. 알고 보면,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은 내 것 아니다. 살아 있는 동안 잠시 빌려 쓰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진실 된 그리스도인들은 감사의 크기가 있다. 작고 사소한 것에서부터 일상전반에 감사가 있는 자가 선이 굵은 큰 인생으로 산다. 지금까지 우리는 수많은 사람에게 빚을 졌다. 무엇보다도 창조주에게 큰 사랑의 빚을 졌다. 그래서 일상의 감사의 크기가 클수록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주위의 사람들에게 빚을 갚아가는 것이 된다. 감사의 크기가 인생의 크기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