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희의세상엿보기]주인으로 사는 법 - 노비문서의 소각 -
[김용희의세상엿보기]주인으로 사는 법 - 노비문서의 소각 -
  • 경남미디어
  • 승인 2019.11.19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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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희의 세상엿보기시인·수필가
김용희의 세상엿보기시인·수필가

뭔가 늘 불안하다. 강박관념, 뭔가 늘 짓누르고 쫓기고 긴장하고 그러다가 우울하고…. 이것이 조울증 강박증 조현증 정서장애 불안장애… 뭐 그런 것들인가? 정서적으로 좀 편안해지는 법은 없을까? 뭔가에 늘 쫓기는 삶,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삶, 그렇게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군대 직장… 늘 그렇게 삶은 흘러왔다. 뭔가 하지 않으면 불안하고 일단은 뭐든 열심히 해야 그나마 어느 정도 정서적 안정이 되는.

지각 결근 근무지이탈 복부규정 학칙 규칙 규범 관습… 그렇게 틀에 갇혀 자신을 채찍질하며 한 삶을 살아왔다. 한 발짝이라도 헛디디면 그곳은 불량품이 되거나 낭떠러지, 그러다가 교회나 성당이나 절간에 가면 더 착한 사람을 원한다. 영혼까지 맑아야 하고 양심도 속이지 말아야 하고, 그렇게 규범 제도 나아가 윤리와 도덕 종교까지 끝없이 순응하는 인간, 순종하는 인간을 만들어 왔다. 타인이 만들어 준 굴레와 기준을 지키려 무던히 애쓰며 그렇게 노력해왔다. 그 규범과 기준과 틀이란 것들에 대한 타당성 검증도 물론 남들이 혹은 사회가 해준대로.

비난과 처벌이 두렵고 칭찬과 보상을 바라며 그렇게 타인의 시각에 자신을 맞춰 어쩌면 누구나 한 삶을 산다. 사회적 낙오자가 되지 않기 위해 타인보다 우월적 지위를 얻기 위해 인정받기 위해 그렇게 산다. 그렇지 않으면 존재감을 잃고 실의에 빠지고 낙담하고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 이런 여건을 탈피하긴 어렵다.

한 친구가 있었다. 삶을 어쩌면 뒤집어 보는 친구, 남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세상을 위로 쳐다보는 것이 아니라 위에서 아래로 조망하는 눈을 가진 친구, 자신이 봉급생활자이면서 사장의 입장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친구, 사장이 직원들을 힘들게 만들면 내가 사장이라도 그리했을 것이라고, 늘 수고에 비해 결과가 큰 것만을 추구하며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되어 생활하는 친구가 있었다. 어떻게 저렇게 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을까? 그 친구는 다양한 직업을 동시에 한다.

교회에 가면 하나님의 말씀을, 절에서는 부처님의 말씀을 전한다. 구약의 하나님은 더 심각(?) 하다. 자기의 백성 자신을 섬기는 백성은 돌보고 복에 복을 더하지만 그렇지 않은 백성들은 한 번에 쓸어버린다. 그런데 그 말씀이라는 것이 당사자분들이 직접 적거나 녹음한 내용이 아니다. 제자들이 듣고 적어서 수천 년을 내려온 글과 말이다. 그리고 그것을 진리라고 한다. 자의적인 해석을 해도 완벽하게 판단하거나 진위를 가려줄 그 누구도 없다.

재화는 유한하고 욕망은 무한하니 인간사는 본질적으로 경쟁과 투쟁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사랑만 주장하다 존재가 소멸된 씨족 부족 국가가 얼마나 많은데, 사랑은 이 지점에서 늘 이율배반과 자가당착 자기모순에 빠질 수밖에 없다. 구호로만 머물 수밖에 없는 내적 한계를 지닌다. 목사들이 세습하는 이유는 이런 구조를 입증하고 설명해주는 일반적 사례다. 소록도에서 나환자 한센병 환자들을 수십년 돌보다 고국 네덜란드로 돌아가신 두 분 수녀 정도라면 얘기는 다르겠다. 사랑은 그렇게 실천하는 것, 자아가 사라진 자리, 욕망이 소멸된 자리, 그곳이 예수가 계신 곳일 테다.

성적을 잘 받으면 칭찬을 듣고 선생과 가정에서 모범생이 되고 그렇게 제도권 내에서 키워져 왔다. 개미는 착하고 베짱이는 나쁘고, 그렇게 휴식과 놀이는 곧 죄악이란 의식이 은연중 형성되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사람을 일의 노예로 제도의 노예로 사회의 노예로 키우는 일이다. 관리자는 실무하지 않는다 골프치고 사람만나고 로비하고 상대의 숨은 의도 파악하고 타인말 믿지 않고 일단 의심하고, 그래서 종의 역할 착하고 순한사람 역할, 그게 바보들의 행진이라는 걸 깨닫는 사람이다.

학창시절 성적이 떨어지면 거지 취급을, 성적이 오르면 왕자 취급을… 그렇게 한국형 인간은 사회적 효율성의 측면에서 판단된다는 의식이 만들어져 왔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어쩌면 노예로 길러지고 있었던 것이다. 공부 잘하는 친구가 사업도 잘하기 어렵고 서울법대 나온 인간들 결정권자가 되는 것 잘 보지 못했다. 우등생은 기껏 선생이나 법률가 의사 기업체 이사 잘되면 장관, 창의적이거나 의외성을 갖거나 개척정신이 높거나 모험심이 강하거나 독창적이거나… 우리사회 노예교육의 실상이다. 일본이 아니 그 이전 조선부터 권위주의 관료주의라는 틀이 만들어온 상명하복의 주입식 교육 결과다. 어쩌면 신라가 나당연합군 만들어 만주벌판 호령하던 고구려 멸망시킨 다음부터. 한국식 교육 그것은 어쩌면 노예교육이다. 생각하는 인간이 아니라 타인생각 습득 암기 주입하는 교육이다. 토론수업 하지 않는 이유다. 교회나 사찰이 토론하지 않고 설교 설법만 하는 이유다. 성적이 떨어져도, 공부를 못해도, 조금 방황해도 온전히 사람인데.

쓸모없으면 버려지는 사회, 인간이 소재로 키워지는 사회, 가정과 회사에 도움이 되지 못하면 주눅 들고 사직해야 하는, 그렇게 효용성으로 인간은 판단된다. 자본주의다. 이것 뒤집으면 사회주의 나아가서 공산주의 하자는 것이니. 이런 이해관계 적용되지 않는 유일한 곳이 가정인데. 때문에 존재가 드러나는 곳이 가정이라는데. 카프카의 변신, 마르셀의 가족개념…. 그렇게 길러져서 사회로 나왔을 때는 충실한 심부름꾼이 된다, 말 잘 듣는 인간이 된다, 시키는 것을 성실히 수행하는 히틀러 치하의 아이히만 같은 사람이 된다.

현명하게 사는 법이 무엇일까? 세상의 지배자는 아니라도 최소한도 타인의 의도대로만 살지 않는 방법은 무엇일까? 삶의 여유공간을 보는 방법, 스스로의 의식과 인식과 관념으로 바라보는 방법이 무엇일까?

평생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하지 못하는 남편과 부부관계인 어떤 이는 같이 살아주는 것만도 어디냐고 한다. 어느 중년의 여가수는 남편에게 평생 행사비 출연료 모두 가져다 바치다가 결국 이혼했다. 드디어 자유의 몸이 되었다. 사우디나 중동에서 여자들은 남자의 부속물로 살아가고 있다.

금융과 언론을 지배한 불룸버거는 트럼프보다 10배도 더 부자란다. 금융 언론… 그것을 서비스업이라 한다, 직접 생산물을 제조하는 사업이 아니다. 그러나 금융이나 유통 주식 투자자들이 진짜 부자다. 고리대금업자는 무익한 사회악으로 규정하고 ‘죄와 벌’에서 노파살해의 대상이 되었는데 현대사회는 여론을 이끌거나 금융이란 이름의 대부업자들이 거부로 탄생한다.

그러니까 자신을 자꾸만 채찍질하지 말자는 것이지, 노는 것 즐기는 것이 범죄가 아니라는 것이지. 그런 강박관념은 노예교육의 결과라는 것이지, 일하기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놀기 위해서 일도 하는 것, 일도 재미로 해보자는 것, 근면과 성실만큼 스스로를 노예로 만들어 가는 지름길도 없다는 것, ‘하마터면 열심히 살뻔했다’ 가 베스트셀러인 이유인 것. 노는 법을 배우지 못하면 그것은 바보되기 십상이라는 것이 서양속담이다.

잘못도 좀 저지르고 사는 것이 인간이다. 남에게 불편을 주기도 하고 지각 결근도 하고 근무지 이탈도 하고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이면 남의 음식을 훔쳐도 되는 것, 추우면 부처도 난방으로 사용해도 되는 것.

지혜롭게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 타인의 종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해서 게임이론으로 사유하는 것, 내가 주인이라는 입장에서 무엇이든 판단하는 것, 제도에 나를 맞추지 말고 그 제도를 이용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 그보다 더 본질적인 것은, 아니 아예 사유의 틀을 벗어나서 종교적 시각처럼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한바탕 꿈이라는 것, 그래서 너무 올인하지 않는 것, 삶은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 그렇게 욕심 집착의 인간 본질의 허상에 이제 그만 노예가 되지 말라는 것, 사회! 탈피할 수는 없지만 구조를 이해하고 인간욕망을 이해하고 그 속에 매몰되지 않고 외부에서 바라도 보면서 조망하면서 그렇게 주인으로 살아볼 일이다. 제도는 욕망은 어쩌면 사회적 개인적 노비문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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