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근칼럼東松餘談] 감나무를 예찬한다
[하동근칼럼東松餘談] 감나무를 예찬한다
  • 경남미디어
  • 승인 2019.11.29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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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근 동국대 언론정보대학원 교수 / 전 imbc 사장
하동근 동국대 언론정보대학원 교수 / 전 imbc 사장

곶감의 전국적 주산지인 산청 덕산에서 중산리로 가는 길옆 야산 과수원의 감나무들이 주홍색 감들을 가지 끝이 휘늘어지도록 수도 없이 매단 채 맑디맑은 가을 하늘을 배경으로 초겨울을 맞이하고 있다. 코발트색 하늘과 주홍색 감들이 연출하는 너무나도 선명하고 명징한 색의 콘트라스트가 빚어내는 초겨울 풍광은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연발하게 만든다. 한편으로, 지리산 자락 마을 곳곳의 옥상과 처마 끝에는 수백, 수천 개의 곶감 예비군들이 사열하듯 한 줄에 수십 개씩 매달려 껍질 벗은 속살을 늦가을 햇볕과 차가운 겨울바람에 내맡긴 채, 떫디떫은 그 맛에 얼굴 찡그리게 만드는 못된 성질머리를 차츰 죽이고 달래서, 언제 그랬냐는 듯이 혀끝을 희롱하는 꿀 같은 달콤함으로 제 맛을 바꾸기 위한 이른바 ‘득미(得味)의 고행’을 이어가고 있는 계절이 지금이기도 하다.

옛 고향집 마당에도 감나무가 두 그루 있었다. 말이 두 그루이지 열 명이 넘는 집안 대식구의 겨울 간식거리는 충분히 될 정도로 수확량이 풍성했고 모양새도 품격이 있었다. 봄이면 감꽃을 모아 목걸이를 만들며 놀았고, 여름밤이면 감나무 아래 평상에 누워 모깃불 연기를 친구삼아 은하수를 따라 반짝이는 하늘의 별을 세다가 잠들기도 했다. 초가을 태풍으로 땅에 떨어진 땡감을 모아 소금과 잿물을 풀어 넣은 단지에 쟁여서 시큼하게 삭혀먹기도 했다. 그리고 늦가을 서리가 내리면 식구 모두가 나서서 감을 땄다. 손이 닿지 않는 곳의 감은 간짓대 끝을 쪼개어 벌림새를 만든 뒤에 고개 아프게 하늘을 쳐다보며 가지 채 따내기도 했다. 물론 까치밥은 남겨두긴 했지만… 다 따낸 감들은 광속의 커다란 보리쌀 뒤주 속에 모습을 숨겼다가 홍시라는 모습으로 기나긴 겨울밤 찐 고구마와 함께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고, 어떤 놈들은 한동안 벌거벗고 매달렸다가 호랑이가 제일 무서워하는 곶감으로 변신해 우리 형제들의 단맛에 고픈 입을 채워주었다.

이처럼 봄에는 꽃을 보고, 여름에는 그늘을 즐기며, 가을에는 열매를 따서 먹는 등 사시사철 우리생활의 친근한 존재가 되고, 과실 또한 변신의 귀재라고 불릴 만큼, 실로 다양하게 활용된다는 점에서 감나무에 비견될만한 과수는 아마도 없으리라 생각된다. 조선시대 ‘향약집성방’에서는 감나무는 수명이 길고, 녹음이 짙고, 새가 집을 짓지 않으며, 벌레가 꼬이지 않고, 단풍이 아름다우며, 열매가 좋고, 낙엽이 거름이 된다하여 버릴 것이 하나도 없는 좋은 나무라고 예찬했다. 각종 물기물질과 비타민의 보고인 홍시와 곶감이 최근 연구에서 기억력 향상에도 도움이 된다니 오죽하랴.

해마다 1월초가 되면 덕산에는 한바탕 곶감축제가 열린다. 해풍이 스며든 영광굴비처럼 지리산 골바람에 제대로 깊은 맛이 배어든 올 한해 곶감농사의 결정품들이 제각기 단맛을 뽐내며 모습을 드러낸다. 지난 계절 온갖 비바람과 한설을 견디며 맺어낸 결실이 제 주인을 찾아가는 축제이자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하는 장터 한마당이다. 세계적으로 감나무의 종류는 4백여 종이 넘지만 식용이 가능한 감은 네 종류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것도 한·중·일 세 나라, 동아시아 지역에서만 집중 출하된다. 한국과 중국은 홍시와 곶감을, 일본은 단감의 원산지라는 점에서 단감을 생과로 주로 즐긴다. 그런 점에서 앞으로 감의 국제화는 상품을 개발하기에 따라 가능성이 충분하고 전망도 밝다. 한국의 홍시와 곶감이 조만간 전 세계인들의 입맛을 사로잡는 K푸드의 핵심전략 아이템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고향 후배가 보내준 고동시 몇 개가 집안거실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홍시로 변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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