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웅 교수의 향토인문학 이야기] 통일신라 전국 9개주 개편 때 행정·군사 중심지로 부상
[강신웅 교수의 향토인문학 이야기] 통일신라 전국 9개주 개편 때 행정·군사 중심지로 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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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12.24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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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에 처음으로 붙여진 이름은 청주(菁州)

강신웅 교수의

향토인문학 이야기

<57> 진주역사의 시대별 인문학적 고찰

4. 진주(晉州)라는 큰 고을(州)로의 성장과정 (중)

 

경남 서남부 지역 일대를 한 주로 구획하고 ‘청주(菁州)’라 칭해
행정 관청 소재지인 주치(州治)를 현재 진주지역에 설치
행정과 군사 중심지로 부상하면서 진주지역이 큰 고을로 발전
경덕왕 때 강주(康州)로 개칭했다가 고려 건국 뒤 본격적 사용
통일신라 신문왕 5년에 거열(거타)주에서 분리해 설치
그 이전에는 중요성을 갖지 못하는 변방이었다고 추정
남강 이름으로 옛날 자료엔 청강(菁江)으로 된 것 많아
‘청(菁)’은 우거진 숲과 화려한 꽃을 의미하는 형용사
지역명칭 아닌 지각적 이미지 그린 용어 사용이 특이

 

진주 남강. 진주의 초명(初名)인 청주(菁州)의 ‘菁’자를 사용한 청강(菁江)으로 된 옛날 자료도 많다.(사진=진주시)
진주 남강. 진주의 초명(初名)인 청주(菁州)의 ‘菁’자를 사용한 청강(菁江)으로 된 옛날 자료도 많다.(사진=진주시)

1. 진주의시원(始原)

진주의 처음 이름 즉 초명(初名)은 청주(菁州)이다. 청주의 ‘청’은 우거진 숲을 의미한다. 삼국사기 권8, 新羅本紀, 神文王에 보면, “五年春, 復置完山州 以龍元爲摠管, 挺居列州以置菁州, 始備九州, 大阿飡福世爲摠管…” 즉 “신문왕 5년(685) 봄에 다시 완산주(전주)를 설치하고 용원으로 총관을 삼고, 거열주에서 떼내어 청주(菁州)를 설치함으로써 비로소 구주를 갖추고 대아찬 복세로 하여금 총관을 삼았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통일신라의 지방행정구역을 소개하는 삼국사기 지리지에도 “강주(康州): 신문왕 5년에 거타주를 나누어 청주를 설치하였다. 경덕왕 때 강주로 개명했는데 지금의 진주이다” (康州) 神文王 五年 唐垂拱元年 分居陀州置菁州 景德王 改名 今晉州 - 삼국사기 권34 地理志)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고 ‘구주오소경(九州五小京)’이라는 지방행정제도를 갖추는 마지막 단계로 거열주(혹은 거타주)를 나누어 청주를 설치하였고, 경덕왕 때 강주로 이름을 바꾼 것이 지금의 진주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두 가지 사실을 알 수 있다. 하나는 진주가 처음부터 광역적 행정중심지를 의미하는 주(州)로 출발했다는 것이며, 또 하나는 그 전에는 거열주에 속했는데 그 땅을 나누어 새 이름인 ‘청주(菁州)’로 이름 붙였다는 것이다. 통일신라시대 구주의 ‘주(州)’는 현대의 도에 해당한다. 이러한 지방행정중심지가 되기 이전에 지명이 밝혀져 있지 않은 것은 주가 되기 이전까지는 밖에 널리 알려질 만큼 중요성을 갖지 못하는 변방이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진주 땅은 한반도 가장 남쪽에 있어 삼국이 영토분쟁을 벌이던 삼국시대에는 주목의 대상이 되지 못하다가 통일신라 행정체제에 포섭되면서 구주제도의 마지막을 장식한 것이다. 이를테면 갑자기 전국 무대에 큰 중심지로 발탁되어 등장한 것이다.

진주의 기원에 관해서는 아직 분명하게 정리되지 못한 점이 있다. 진주의 기원은 거열성 혹은 거타주라는 설이 남아 있다. 이 점은 이제 분명하게 정리되어야 한다. 한반도의 많은 지역이나 도시의 기원은 삼한시대의 성읍국가에서 찾아진다. 그러나 진주는 삼한시대의 자료가 없다. 가야권역에 속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정도이다. 성읍국가에서 기원한 다른 많은 전통적 군현은 주로 3음절로 만들어진 고유한 우리말 이름(서라벌, 달구벌, 비사벌, 고타야 등)이 있다. 그러나 진주는 서기 685년 봄에 ‘청주(菁州)’라는 이름으로 역사의 무대에 갑자기 나타난다. 처음부터 통일신라 구주(九州)의 하나로 대두하였고, 이름은 처음부터 2음절의 중국식 명호였다. 나중에 경덕왕이 더욱 한화(漢化)된 강주(康州)로 개명하였다. 그리고 거타주(居陀州)의 영역 가운데서 빼내어 처음부터 지리산 동남부의 군사적 행정적 중심지로서 진주를 성립시킨 것이다. 이것이 진주가 다른 경상도 군현과 구분되는 기원상의 중요한 특징이다.

그러나 진주의 시원에 대해서는 다르게 이해할 수 있는 역사 기록이 있어 논란거리가 되어왔다. 즉 ‘진주는 본래 백제 거열성인데, 신문왕 때 나누어져 청주가 되었다’는 내용이 고려사지리지, 경상도지리지, 세종실록지리지, 그리고 동국여지승람에 까지 계속되었다. 특히 동국여지승람의 기록은 진양지 등 대부분의 후대 지리지에 인용되어 왔다. 뿐만 아니라, 현대의 한국학중앙연구원의 민족대백과사전에도 진주의 백제 거열성 기원설이 상속되고 있다. 상기의 문헌들에 나타난 이들 기록은 ‘본래 백제 거열성’ 혹은 ‘본 거타주’의 ‘본(本)’은 거열성 혹은 거타주와 같다는 의미가 아니라, ‘떼낸(挺)’ 혹은 ‘분리(分)’를 의미한다. 그런데 지금의 거창지역에 속하는 거열성(거타주)이 청주 권역에 속함으로써 사실상 거열주의 중심이 청주(진주)로 옮겨진 결과를 나타낸 것이다.

2. 진주의 초명(初名) 청주(菁州)

진주에 붙여진 처음 이름은 사실상 청주(菁州)이다. ‘청(菁)’은 우거진 숲과 화려한 꽃을 의미하는 형용사이다. 우리나라의 옛 행정 지명은 대체로 특정 장소 이름, 보통은 랜드마크가 되는 산 이름에서 기원한 것이 많다. 그러나 청주라는 이름은 지역에 대한 지각적 이미지를 그려내는 뜻을 가졌다는 점이 중요하다. 우리나라 행정구역 이름은 순수한 우리말을 한자 음으로 표기한 것에서 시작하여 중국의 지명을 그대로 도입하여 사용하는 경우, 그리고 의미를 한자로 번역한 이름 등이 있다. 어느 경우나 대부분 장소에 관한 명칭이 지명이 되었다. 예를 들어 완산주의 완산(完山)은 완산주가 위치한 산의 이름으로 그 지역의 랜드마크가 되는 특정 장소에서 기원한 이름이다.

진주처럼 지역의 지각적 이미지를 형상화한 이름은 우리나라 다른 행정지명에서는 찾기 어렵다. 중국에도 청주(靑州)는 있지만, 청주(菁州)는 없다. 아마도 진주지역에 대한 특별한 장소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이 지역의 자연에 대한 얘기를 듣고 이 풍토 환경을 잘 그려내는 의미인 ‘청(菁)’을 지역의 고유명으로 부여한 것으로 생각된다. 말하자면 최초의 지명 결정에 중앙정부의 특별한 관점이나 기준이 적용되지 않고 지역성을 존중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또 더 깊이 생각해보면 진주의 푸른 숲과 화려한 꽃이라는 지역 풍광에 대한 장소적 이미지가 그만큼 강렬한 인상을 주었던 것이 아닌가 한다.

현재 촉석루 경내에는 진주가 고향인 敬齋 河演의 칠언절구가 걸려 있다. 고향 진주에 대한 하연의 애틋한 추억이기도 하다. 촉석루와 청강(菁江)이 진주 기억의 중심을 차지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다. 청강은 진주의 초명인 청주(菁州)에서 온 남강의 이름으로 옛날 자료에는 청강으로 된 것이 많다.

河演의 菁州 관련 漢詩 한편을 기술해 본다.

古城絶壑大江頭

높은성 깎은 벼랑 큰 강머리에

冬栢梅花矗石樓

동백 매화 우거진 촉석루 서 있구나.

若也登臨留勝跡

만약에 여기 올라 좋은 자취 남기려면

請題佳句記菁州

아름다운 글을 지어 우리 고을 청주에 적어 두게.

이어 계속 천리길 진주(晉州)인, 강주(康州)의 형성과정을 살펴보기로 한다.

강신웅

본지 주필

전 경상대학교 인문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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