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승원 참진주로타리클럽 회장
강승원 참진주로타리클럽 회장
  • 경남미디어
  • 승인 2020.01.09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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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한 게 봉사활동을 하고 오면 장사가 잘 돼요

2009년 창립멤버로 참진주로타리 클럽에 들어와
그동안 주로 장애인가정을 대상으로 봉사활동 해
병들었을 때 클럽회원들이 늘 찾아와 준 것 감사
보석감정사 따, 주얼리 가게 2개 운영하고 있어
5년 후 필리핀,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로 진출계획

 

강승원 참진주로타리클럽 회장은 봉사활동을 하고 오면 희한하게도 장사가 잘된다고 말했다.
강승원 참진주로타리클럽 회장은 봉사활동을 하고 오면 희한하게도 장사가 잘된다고 말했다.

강승원(42) 참진주로타리 클럽 회장은 “희한하게도 봉사활동을 하고 오면 장사가 잘돼요”라고 말했다. 꼭 장사가 잘되라고 로타리클럽에 가입한 것도 봉사활동을 하는 것도 아니지만 봉사활동을 하고 오면 장사가 잘 되니 참 신기하다고 했다.

강 회장은 2009년 참진주로타리가 발족할 때 창립회원으로 클럽에 들어온 이후 줄곧 성실하게 회원으로 활동했다. 특히 강 회장이 기억에 남는 일은 8년 전에 허리디스크로 인해 요양을 하기 위해 함양 골짝에 들어간 적이 있다. 사람들 속에서 멀어지기 위해 일부러 오지를 찾아

갔다. 그런데 그 오지까지 매주 클럽 회원들이 방문해 놀다가곤 했다. 한두 번으로 그칠 줄 알았는데 함양에 있을 동안 내내 이어졌다. 그만큼 참진주로타리 클럽은 회원들 간의 정이 두텁다고 했다.

참진주로타리클럽은 주로 장애인 봉사활동이 많다. 아직 장애인들에 대해 배려가 일상화되지 않아 장애인이 사는 가정에 가보면 불편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문턱도 휠체어가 다니기 불편할 정도로 높고 다른 부분들도 그렇다. 그래서 참진주로타리클럽은 장애인가정을 대상으로 생활에 불편한 것들을 없애주고 온다.

강 회장은 봉사를 통해 가장 보람된 것은 아이들이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클럽에서 봉사활동을 할 때면 아이들과 함께 하는 경우가 많다. 회원들이 40대가 주축이라 아직 아이들이 초, 중, 고등학생이 많다. 그런데 이들이 봉사활동을 하고 나면 자신들이 사는 환경에 대해 부모들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곤 한다. 봉사활동을 하기 전에는 세상에 다 자기들처럼 사는 줄 알다가 더 어렵게 사는 사람들을 보면서 자기 환경에 대해 부모님께 감사인사를 하는 것. 그런 마음을 가지고 아이들이 커 가는 것이 무엇보다 클럽활동에서 얻는 보람이라는 게 강 회장의 고백이다.

강 회장은 1978년 진주에서 태어났다. 동명고등학교와 경상대 공대를 나와 어머니가 하던 주얼리 가게 일을 하면서 보석에 대해 눈을 떴다. 지금은 어머니 가게를 정식으로 인수를 하고 옆에 가게를 하나 더 내서 2개의 주얼리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강 회장은 보석은 진주에서 미래가 없다고 했다. 지금도 경기가 어렵지만 문제는 KTX의 개통이다. KTX시대가 열리면 주얼리와 같은 패션계통의 업은 진주에서 자리잡기 어렵다는 게 강 회장은 전망이다. 다들 2시간이면 서울의 명품점에 쇼핑하러 갈 수 있는데 굳이 진주에서 패션용품을 사겠냐는 것. 그래서 강 회장은 해외진출을 계획하고 있다. 5년 후를 목표로 필리핀과 말레이시아 등지로 진출계획을 짜고 있다고 귀띔했다. 주얼리의 경우 우리나라가 디자인이나 세공에서 충분히 경쟁력이 있어서 이들 나라에 가면 사업전망이 밝다는 게 강 회장의 생각이다.

다음은 강승원 회장의 인터뷰이다.

▲참진주로타리클럽은 언제 설립됐나.

-2009년 7월 1일 창립했다. 벌써 11년째 됐다.

▲회원은 몇 명인가.

-30명이다.

▲회원이 많지 않다.

-그렇게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30명의 회원 중 25명이 창립회원일 정도로 회원들 간에 유대관계는 다른 어떤 클럽보다 낫다고 자부한다.

▲회원들의 직업은 주로 어떤가.

-자영업이 대부분이다. 손치과를 운영하는 송병석 원장도 우리 회원이다.

▲참진주로타리클럽이 지난 10년간 주로 한 일은 무엇인가.

-우리는 주로 장애인 봉사활동을 했다.

▲어떤 것들인가.

-장애인가정을 대상으로 생활에 불편한 게 없는지 살폈다. 장애인이 사는 가정이라 해도 장애인을 위한 시설이 없는 경우가 많다. 또 문턱 등이 높아서 장애인이 생활하기에 불편한 점들도 많다. 우리는 장애인가정에 가서 문턱을 없애고 집 구석구석에서 장애인이 살기에 불편하지 않도록 고쳐주는 일을 했다.

▲장애인만 했나.

-그것은 아니고 저소득층에 대한 봉사도 많이 했다. 저소득층이라고 해도 시내에 사는 사람들은 임대아파트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살기가 괜찮은 편이다. 그러나 시 외곽으로 나가면 사정이 달라진다.

▲어떻게 달라지나.

-시 외곽에 사는 저소득층은 경우 화장실이 재래식인 경우가 많다. 그러면 실내 수세식 화장실로 고쳐준다. 또 부엌도 아직 재래식인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에도 부엌에 싱크대를 설치한다든지 입식으로 고쳐준다든지 하는 활동을 했다.

▲이런 일을 하면서 배운 게 있나.

-우리 회원들은 40대가 주력이다. 그렇다 보니 아이들이 아직 어린 경우가 많다. 그런데 봉사활동을 할 때는 아이들도 동참시킨다. 아이들이 봉사활동을 하고 난 후 감사하다는 말들을 많이 한다. 그게 큰 보람이다.

▲아이들이 무엇에 감사하나.

-아이들은 봉사활동을 하기 전에는 자신이 얼마나 행복하고 잘 사는 지 모른다. 그런데 저소득층이나 장애인 봉사활동을 하고 난 후 자신이 얼마나 잘 살고 있는 지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같게 된다. 실제로 봉사활동을 하고 난 후 뒤풀이를 할 때 아이들이 그런 인사말을 하기도 한다. 그럴 때 봉사를 통해 많이 배운다는 생각이 든다. 저희들의 봉사활동이 아이들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참진주로타리클럽이가 다른 클럽에 비해 이것은 자랑할 만하다 하는 것이 있다면.

-우리 클럽은 오래된 회원이 대부분이다.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25명이 창립회원으로 10년간 함께 활동을 해 온 사람들이다. 그렇다 보니 회원들 간에 끈끈한 정이 다른 클럽에 비해 더 강하다.

▲그런 것을 나타내는 사례를 구체적으로 얘기해 달라.

-회원 중에 항암치료를 받는 분이 계셨다. 투병생활을 하는 것은 여러 가지로 힘든 일이 많을 것이라 생각돼 탈회를 권유했다. 회비도 걱정이 되고. 그랬는데 이분이 끝까지 탈회하지 않고 빨리 나아서 올 거라고 고집을 부렸다. 그런데 실제로 빨리 나아서 회원으로 정상 활동을 하고 있다. 또 한 사례는 자동차 광택을 내는 분야에서 일하는 회원이 있다. 그런데 사고가 나서 오른쪽 팔을 계속 수술을 했다. 이분께도 탈회를 권유했더니 빨리 나아서 활동하러 올거다고 하더니 실제로 빨리 나아서 왔다. 이처럼 오랫동안 활동을 같이 해서 이제 그 어떤 친구들보다도 정이 두텁다.

▲로타리 활동을 하면서 무엇을 느꼈나.

-저는 좋은 일을 하면 반드시 보상받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게 무슨 말인가.

-제가 로타리에서 봉사활동을 갔다 오면 늘 장사가 잘 됐다. 물론 장사를 잘하기 위해 봉사활동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봉사활동을 하고 오면 그날은 장사가 잘 되는 것이다. 그래서 좋은 일을 하면 보상을 받는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게 된 거다.

▲강 회장 개인 이야기를 좀 들어보자. 언제 어디서 태어났나.

-1978년 진주에서 태어났다. 동명고등학교와 경상대 공대를 졸업했다.

▲클럽에는 언제 들어왔나.

-저도 2009년 창립할 때 들어온 창립멤버이다.

▲어떻게 해서 들어오게 됐나.

-같은 아파트에 사는 선배가 권유를 해서 들어왔다.

▲10년 전이면 32살 때 들어온 건데 너무 빨랐던 것 아닌가.

-그렇긴 하다. 그때 JC랑 같이 가입을 했다. 그런데 JC활동은 하지 않고 주로 로타리 활동을 했다.

▲그 이유가 무언가.

-JC는 조직에 있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아무래도 분위기가 조금 수직적이다. 그런데 참진주로타리는 대부분이 자영업을 하는 사람들이다 보니 좀 더 개방적이고 독립적인 분위기이다. 로타리가 제 성격에 맞아서 로타리에서 주로 활동을 했다.

▲10년간 활동을 했는데 기억에 남는 일이 있나.

-저한테는 굉장한 추억이 있다. 8년 전에 제가 허리가 아파서 요양을 하러 함양군 골짝에 들어가 산일이 있다. 사람들과 교류를 끊고 오로지 투병생활을 하기 위해 오지를 택해서 들어간 것이다. 그런데 매주 클럽 회원 가운데 한 명이 찾아와서 놀다가 갔다. 그래서 힘든 투병생활을 잘 지낼 수 있었다. 그 회원들의 방문이 아니었더라면 투병생활이 더 힘들었을 거다.

▲이제 허리는 다 나았나.

-지금은 다 나아서 정상적인 생활을 한다.

▲몇년간 투병생활을 했나.

-함양에서 산 기간이 총 5년이다.

▲그렇게 오래 투병생활을 한 건가.

-아니다. 2년 정도 있으니 허리는 나았다. 그래도 바로 현장에 복귀하기는 뭐해서 함양에 있으면서 심심풀이로 주변 산에다가 고사리를 심었다. 그런데 이게 잘 팔려서 점점 고사리 재배면적을 늘려나갔다. 제가 진주로 올 즈음에는 2만평 정도 됐다.

▲고사리 농사는 어렵지는 않나.

-그리 힘들지는 않다. 한번 심어놓으면 비료나 약을 칠 필요가 없느니 봄에 잘라서 팔기만 하면 된다. 수입도 괜찮다.

▲고사리 매출이 얼마나 되나.

-제가 처음 시작할 때는 평당 1만 원 정도는 소득이 났는데 지금은 가격이 많이 떨어져서 평당 5천 원 정도의 매출을 올린다고 보면 된다. 2만평이니까 매출이 1억 원 정도 된다. 여기서 비용을 절반 정도는 차지한다고 보면 될 것 같다.

▲아프면서도 돈을 잘 번 것 같다.

-그렇다. 제가 하는 일이 실패한 것은 없는 것 같다.

▲지금은 무슨 일을 하나.

-보석감정사 자격증을 따서 주얼리 가게를 하고 있다.

▲그건 어떤 인연으로 한 건가.

-어머니가 보석가게를 하고 계셨다. 그래서 대학 졸업 후에 자연스럽게 주얼리 쪽으로 일을 하게 됐다. 그런데 병이 낫고 나서 진주에 와서 본격적으로 하게 된 거다.

▲어머니 가게를 물려받은 것인가.

-어머니 것도 정식으로 인수를 했고 그 옆에 새로운 가게를 얻어서 2개를 운영하고 있다.

▲주얼리가 요즘도 괜찮나.

-지금은 경기가 많이 안 좋다. 그런데 더 나쁜 것은 만약 대전 진주 간 KTX가 생기면 상황은 더 나빠질 것으로 예상된다. KTX시대가 되면 주얼리 같은 패션 사업은 여기서 더 이상 소비가 이루어지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럼 그때는 어떻게 하나.

-저는 5년 정도를 내다보고 외국으로 진출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동남아로 나가면 우리보다 사업여건이 괜찮다. 그래서 필리핀이나 말레이시아 등에 진출할 계획을 가지고 준비하고 있다.

▲우리나라 주얼리가 경쟁력이 있나.

-외국에 비해 디자인과 세공 면에서 경쟁력이 있다. 동남아 등지에서는 우리처럼 이렇게 다양하고 예쁜 주얼리 제품을 만들기가 어렵다. 그래서 이들 나라에 가면 충분히 경쟁력을 가지고 사업을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지금 그 준비를 착착 진행해 가고 있는 중이다.

대담 : 황인태 본지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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