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장호 서예가
[인터뷰] 김장호 서예가
  • 강현일 기자
  • 승인 2020.01.15 15: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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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비봉루서 은초선생 작업보고 서예의 길로…

증조할아버지는 서당, 할아버지는 한약방 운영하셨고
소설 베껴 쓴 어머니 붓글씨 보면서 서예 눈썰미 키웠다
경상대 경영학과 재학 중 서예 동아리 ‘백우회’ 가입
89년부터 서울에 올라가 정도준 선생에게 글씨 배워
서예를 계속 하는 이유는 나 자신의 발전은 물론이고
진주의 서예 문맥을 끊김없이 이어나가기 위해서이다

김장호 서예가는 자신이 서예를 계속하는 이유로 진주의 서예 문맥을 이어나가기 위함이라고 말했다.
김장호 서예가는 자신이 서예를 계속하는 이유로 진주의 서예 문맥을 이어나가기 위함이라고 말했다.

설원 김장호(60) 선생은 먹향을 맡으면 감기가 사라진다고 했다. 김 선생은 지역 서예에 대한 자부심이 상당히 강하다. 1950년~1960년대 당시 서예로 진주를 이길 수 있는 지역이 없었다고 한다. 그만큼 진주에 실력 있는 서예 문인들이 많았다. 또한, 문화예술 쪽도 상당히 강했으며 개천 예술제도 이런 이유로 생긴 것이라고 했다. 본 기자는 김 선생이 말하는 진주 서예가 왜 강하고 전통이 깊은지 궁금했다.

김장호 선생은 진주시 금곡이 고향이다. 김 선생은 경상대 경영학과를 졸업했고, 서예를 시작한 지는 40년이 됐다. 어릴 적 글씨를 접할 기회가 많았다. 증조할아버지가 서당을 하시고 할아버지는 한약방을 하셨고 어머님께서는 옛날에 소설을 붓으로 쓴 다음 보관을 많이 하셨다. 어머님의 붓글씨를 많이 보면서 눈썰미가 생겼다.

이후 은초 정명수 선생님의 비봉루에 우연히 갔는데 문을 여는 순간 풍겨오는 묵향이 너무 좋았다. 그때 정명수 선생님이 붓으로 작업하는 것을 봤는데 대 붓으로 작업을 했다. 그 붓으로 글을 쓰는 모습을 본 순간 서예의 매력에 빠지게 됐다. 그때부터 서예의 매력에 빠져들게 되었고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됐다.

그 후, 김 선생은 대학교에서 ‘백우회’라는 서예 동아리에 들게 됐다. 서예에 빠져있던 김 선생은 공부보다 붓으로 글씨를 더 많이 썼다. 그 당시 광주민주화운동으로 인해 전국대학들에 휴교령이 내려졌었다.

그 당시 비봉루에 올라가서 매일 서예를 했다. 김 선생은 먹 향을 맡으면 편하고 좋다고 했다. 감기가 들어도 먹 향을 맡으면 감기가 사라질 정도로 좋았다고 한다. 그만큼 서예는 김 선생에게 매우 큰 의미가 있다.

사진 2 - 희신(喜神)
희신(喜神)

김 선생은 89년부터 서울에 올라가 소 헌 정도준 선생에게 글씨를 배웠다. 소 헌 정도전 선생은 제1회 대한민국미술대전에서 대상을 수상했고 국내 최초로 해외 초대전을 19번이나 할 정도로 대단한 분이라고 했다. 정 선생의 집안은 대대로 최고의 서예가들이 많다. 그래서 최고의 서 맥을 접할 수 있었고 김 선생에게는 가장 큰 복이라고 했다. 지금도 김 선생은 더 높은 지향점을 향하여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수십 년을 자신의 서예발전을 위해 한 발짝씩 나아가고 있다.

또 한, 김 선생은 서예란 문자를 매개로 하는 예술인 만큼 필연적으로 내용을 담기 마련이며, 그 내용은 의사 전달보다 심회, 의지 상징성, 지향점을 드러내는 용도로 쓰인다고 했다. 그런 만큼 서예가 내면의 깊이와 높은 인문학적 수준을 요구하고 있고, 서예는 시각적 표현인 만큼 필연적으로 조형미와 색채 미를 갖추어야 한다고 했다. 김 선생은 높은 수준의 미적 차원을 갖추기 위하여 필 획의 장법을 요구한다.

좌망귀(坐忘歸)
좌망귀(坐忘歸)

따라서 서예는 필묵이 있는 곳을 쫓기도 해야 하겠지만 필묵이 없는 곳도 더 잘 쫓아야 한다고 했다. 필묵이 있는 곳만 쫓으면 표현에만 치중하여 깊이를 잃기 쉽고, 필묵이 없는 곳만 쫓으면 조형미를 잃기 쉽다. 그래서 대소, 허실, 장단, 경중의 조화를 통하여 의, 기, 신의 표출에 신경 써야 한다. 서예가 종합예술이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고 ‘서여 기인’이라고 말하는 이유 또한 같은 맥락일 것이라고 했다.

이어 김 선생은 지금 세상은 종합적 사유와 거대 담론이 점점 사라지고 있으며 장르를 넘나드는 융합을 추구하기도 하지만, 큰 주제, 큰 과제를 잘 쪼개고, 거기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한두 가지에만 집중해야 하고 전공, 전문이라는 명목으로 인해 세밀함과 깊은 천착을 높이기는 하였으나 거시적 시각을 잃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했다.

김 선생은 “서예가는 자연환경과 인문환경, 그리고 문화 전통적 요소를 벗어날 수 없으며, 이는 간단히 시대 변화를 적극적으로 반영해야 한다. 인문 사회적 요소는 물론 작가 개인의 인문학적 소양이 작품에 반영되어야 한다는 것에만 국한된 의미는 아니다. 작품은 작가와 세상, 작가와 관람객, 작가와 작가의 소통이다”라고 했다. 또 “1950년대 우리 진주가 가졌던 문화예술의 명성과 자부심을 미래에도 계속 이어나갈 수 있게 지역 작가님들이 서로 노력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장호 선생은 개인전을 많이 열었다. 현재 대한민국 미술대전 초대작가, 경상남도미술대전 초대작가 한국미술협회 서예분과 이사, 경남 서단 회장, 근문 서학회 이사, 국제서예가 협회 회원, 한국미술협회 회원, 진주 미술협회 감사, 진양도서관 서예강사, 진주시 주민자치센터 서예강사. 설원 서예연구실 대표직 등을 맡고 있으며, 대한민국 미술대전 우수상, 창원미술대전 최우수상, 대한민국 미술대상전 우수상, 진주미술인상(진주예총), 한국미술협회 공로상, 유당미술상, 울산서예문화상 수상, 앙드레말로협회 뉴파이오니어상 수상 등으로서 다양한 활동을 펼쳐왔다. 또한 한글과 한문의 다양한 서체로 구성된 50여점의 작품 가운데 대작 금강경 8폭 병풍과 조긍섭 선생의 천왕봉은 광개토대왕비를 통해 얻은 중후한 획으로 조형감있게 표현해 냄으로써 다시 한번 그의 예술적 저력을 보여주고 있다.

다음은 김장호 서예가의 인터뷰이다.

▲ 선생님의 고향은 어디인가?

- 원래 고향은 진주시 금곡면이다. 지금은 주약동에 살고 있다.

▲ 서예를 언제부터 시작했나?

- 시작한 지는 40년이 됐다. 어릴 적 글씨하고 접할 기회가 많았다. 증조할아버지가 서당을 하시고 할아버지는 한약방을 하셨다. 어머님께서 옛날에 소설을 붓으로 쓴 다음 보관을 많이 하셨다.

▲본격적으로 언제부터 시작했나?

- 정명수 선생님의 비봉루에 우연히 갔는데 문을 여는 순간 풍겨오는 묵향이 너무 좋았다. 그때 정명수 선생님의 붓으로 작업하는 것을 봤는데 대 붓으로 작업을 했다. 그 붓으로 글을 쓰는 모습을 본 순간 서예의 매력에 빠지게 됐다. 대학교에서 백우회라는 서예 동아리에 들게 됐다. 서예에 빠져있던 나는 공부보다 붓으로 글씨를 더 많이 썼다. 그 당시 광주민주화운동 때문에 전국 학교들이 임시휴강을 많이 했었다. 그 당시 비봉루에 올라가서 매일 서예를 했다. 나는 먹향을 맡으면 편하고 좋았다.

▲ 어머님께서 붓글씨로 소설을 쓰셨다니 무슨 말인가?

- 그 소설을 직접 쓰셨다는 게 아니라 다른 작가가 써놓은 소설을 붓으로 옮겨서 보관했다는 말이다. 그 옮겨놓은 붓글씨를 읽으면서 서예에 대한 눈썰미가 많이 생겼다.

▲ 서예를 왜 하고 있나?

- 진주의 서예 문맥을 이어나가기 위해선 계속 서예를 알리고 나 자신도 발전해야 하기 때문이다

▲ 서예를 할 때 행복한가?

- 물론이다. 난 서예가 정말 좋다. 천직인 것 같다. 감기가 들어도 먹향을 맡으면 감기가 사라질 정도로 붓향이 좋다.

▲ 조금 답변하기 어려운 질문일 수도 있는데 부족한 점은 뭔가?

- 지금 현재도 서예 자체가 선 질을 가장 우선으로 한다. 나는 아직 그 선 질이 완성되지 않았다. 아직까지 내 마음대로 그 선 질이 마음대로 구사되지 않는다는 걸 조금씩 느낀다. 그래서 지금도 항상 노력하고 있다.

▲ 그림은 화풍이라고 하는데 서예는 뭐라고 하는지 궁금하다 주로 쓰는 서예체가 있나?

- 서예체라기보다 서예는 종류가 다양하고 폭이 넓다. 4가지로 나눈다면 전서, 예서, 해서, 행서가 있는데 나는 주로 전서를 많이 쓰고, 전서 안에서 쓰이는 대전을 많이 쓴다. 대전이 조형성이 가장 뛰어나다.

▲ 진주는 서예 쪽으로 강한가?

- 물론이다. 1950년~1960년대 까지만 해도 진주에 서예로 덤빌 도시는 없었다. 그만큼 유명한 문인들이 많았고, 그 당시 문화예술 쪽으로는 전국 톱이다. 개천예술제도 그래서 진주에서 생긴 것이다.

▲ 지금은 강하지 않나?

- 그렇다. 지금 진주에 유명하신 분들이 계시긴 하지만 예전 같지가 않다.

▲ 왜 그런가?

- 80년대만 해도 젊은 서예작가들이 상당히 많았다. 그런데 요즘은 거의 보기가 힘들다. 그 이유가 가장 크다.

▲ 왜 줄어드는 것 같나?

- 요즘 젊은이들은 한자를 잘 모른다. 기자도 한자를 잘 모르실 거다. 이로 인해 젊은 층들이 줄어든다. 서예라는 게 30년은 해야 비로소 실력이 나온다. 서예는 세월이 실력이다. 세월이 지나야 비로소 글씨를 알고 무르익은 글씨를 쓸 수 있다.

▲ 무르익은 글씨체라는 게 무엇인가 30년 정도 해야 나오는 경지 같은 건가?

- 서예작가들은 잘 아는 유명한 말이 있다. 소년 문장은 있어도 소년 명필은 없다. 이게 무슨 뜻이냐면 어려서 재능이 있어도 문장은 쓸 수 있지만 세월의 무르익은 글씨체는 따라갈 수 없다는 뜻이다. 그만큼 서예는 세월이 실력이라고 봐도 무관하다.

▲ 김 선생은 글을 잘 쓰는 편인가?

- 작품을 하는데 명문 명구 감동을 줄 수 있는 문장을 써야 한다. 오래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잘 쓰게 되고 잘 할 수밖에 없다. 글 쓰는 건 자신 있다.

▲ 붓으로 글을 쓰면 펜으로도 글을 잘 쓰나?

- 물론이다. 서예 하시는 모든 분들은 기본적으로 펜으로도 글을 잘 쓴다. 하지만 볼펜이라 는 것이 나오는 바람에 글씨체가 악필로 많이 변하는 추세다.

▲ 그 악필을 고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나?

- 펜글씨와 붓글씨로도 교정이 가능하다. 하지만 노력이 많이 필요하다. 인내심을 길러야 한다. 서예는 인내심 키우는 것에는 최고이다.

▲ 김 선생은 책을 많이 읽는 편인가?

- 물론이다.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 명문 명구를 쓰기 위해서는 기본지식은 필수다. 주로 서예 관련 책과 고전을 많이 읽는다.

▲ 진주에 활동하는 유명한 서예작가들은 누가 있나?

- 은초 정명수 선생님의 아들인 정인화 선생이 있고, 김호인 선생님, 윤관석 선생님, 정문장 선생 등 여러분이 계신다. 이분들은 진주의 원로작가이다. 배울 것이 많고 대단하신 분들이다. 이런 분들이 있어서 아직도 진주의 서예문화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것 같다.

▲ 김 선생은 따로 활동하는 단체는 없나?

- 경상남도미술대전 초대작가, 한국미술협회 서예분과 이사, 경남서단 회장, 근문서학회 이사, 국제서예가협회 회원, 한국미술협회 회원, 진주미술협회 감사, 진양도서관 서예강사, 진주시 주민자치센터 서예강사. 설원서예연구실 대표직 등을 맡고 있다.

▲ 김 선생은 언제까지 서예를 할 예정인가?

- 내 생이 다하고, 손에 붓들 힘이 있는 한 작품을 할 것이다. 유명하신 작가 중에는 돌아가시기 3일 전에 붓으로 서예작품을 하신 분도 있다. 그만큼 에너지를 많이 쓰지 않기 때문에 열심히 할 것이다.

▲ 서예할 때 힘든 점은 없나?

- 지금은 서예 자체가 고전예술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는다. 이 즉슨 젊은이들은 물질지상주의로 인한 처음부터 시작조차 하지 않는다. 그래서 생계를 유지하기가 정말 힘들다. 정말 안타깝다.

▲김 선생은 개인전은 많이 해봤나?

10월에 붓든 지 40년 만에 처음으로 개인전을 했다. 한평생 붓과 씨름하고 고전의 바탕 위에서 조형과 선진을 얻기 위해 싸워온 결과물을 놓고 설레임과 두려움이 동시에 왔었다. 현재 내 모습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작업이기에 중도에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선생님의 격려와 주위의 응원 덕에 용기를 내어 자신과의 약속을 지켜낸 것이 다행이고 위안이 됐다.

▲ 김 선생은 서예가로서 어떤 평가를 받길 원하나?

- 진주에서 가장 활달하고 기운찬 글씨를 잘 쓰고, 모든 서체를 잘 다루는 작가라는 평가를 받고 싶고, 후세에 길이 남는 서예작가로 남고 싶다. 강현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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