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찬의 소설 따라 역사 따라] 제10화. 독살설에 휘말린 문종의 죽음
[정원찬의 소설 따라 역사 따라] 제10화. 독살설에 휘말린 문종의 죽음
  • 경남미디어
  • 승인 2020.02.06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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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발한 종기가 호전되다가 갑자기 악화되어 이틀만에 숨져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문종의 병상 기록을 보면
의도적으로 종기를 악화시켜 죽음에 이르게 하였다는 의혹 짙어
문종이 사망한 이후 수양대군과 의관 전순의의 수상한 행보
전순의의 치료에 의문을 가진 대신들이 전모를 밝혀라 하지만
수양대군이 전면에 나서서 이를 유야무야하게 마무리 지어

 

※ 이 코너에서 연재하는 이야기는 소설 ‘공주는 소리 내어 울지 않았다’ 속에 전개되는 역사적 사건을 돋보기로 확대하여 재구성한 것입니다.

 

 

문종의 어진
문종의 어진

1. 세자 시절부터 종기를 앓다

문종이 종기를 앓기 시작한 것은 그의 나이 36살 되던 해인 10월 하순부터이다. 종기의 치료는 덧나지 않게 무리하지 말고 안정을 취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처음 종기를 앓았을 무렵 문종은 세종을 대신해 대리청정을 하고 있을 때였다. 세종은 아들의 치료를 위해 대리청정을 거두고 아들을 쉬게 하였다. 그랬더니 치료 효과는 빨리 나타나 20일 쯤 뒤에는 종기의 뿌리가 빠져나오고 병이 치유되었다.

그러나 세종의 건강도 말이 아니었다. 세자는 과중한 업무에 시달려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날 무렵에는 종기가 다시 덧나고 치료하기를 거듭했다.


『세자에게 등창이 생기니, 여러 신하를 나누어 보내 가까운 명산대천과 절을 찾아 부처님께 빌게 하고, 정부·육조·중추원에서 날마다 문안드리게 하였다.』 <세종실록> 31년 10월 25일 기사 중에서


문종에게 등창이 나타난 최초의 기록이다. 이 무렵은 세종이 승하하기 5개월 전으로 세자가 대리청정을 맡아 업무가 과중할 무렵이었다. 절을 찾아 기도하게 할 정도라면 가벼운 증상은 아닌 듯하다. 그러나 면역력과 관련된 종기는 관리만 잘하면 쉽게 죽는 병은 아니다.

세종 또한 늙은 나이에 어깨와 등 부위에 종기가 나서 고생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안정을 충분히 취하고 적절한 치료를 병행하면 완치는 아니더라도 완치에 준하는 수준까지 호전시킬 수 있다.

문종의 가계도
문종의 가계도

세자의 병에 차도가 없자 세종은 죄인들에게 사면령을 내리는가 하면 종친들에게 명산대천이나 절에 가서 쾌유를 비는 기도를 올리게 명하기도 했다. 또한 세종은 세자의 치유를 위해 세자에게 주었던 대리청정을 거두고 친정을 하겠다고 선언하였다. 세자가 국정에서 손을 떼고 안정과 치료에 전념한 결과 20일 만에 종기의 뿌리가 빠져나오는 경사를 맞이하기도 했다.


임금이 말하기를,
“동궁의 종기 뿌리가 어제 빠졌으니, 내 심히 기뻐하노라.” 하였다. 이에 2품 이상은 모두 시어소(時御所)에 나아가 하례하였다. <세종실록> 31년 11월 18일 기사 중에서


그러나 세자의 종기는 재발과 치료를 거듭하였다. 특히 종기 뿌리가 뽑힌 지 2달도 지나지 않아 하나밖에 없는 경혜공주의 혼례를 치르게 되었고 그 때를 전후해서는 더 악화되기도 했다. 그런 가운데 이듬해 세종 32년 2월 세종이 승하하고 문종이 5대 임금으로 즉위하게 되었다.

2. 문종의 병상 기록

문종은 37세인 2월에 임금이 되었다. 그 무렵 한 달 가까이 종기를 앓았고 이후 21개월 가까이 종기 치료에 관한 기록이 없다. 문종 2년 5월 4일에 임금의 몸이 불편하여 안평대군을 대자암에 보내어 기도하게 한 기록을 보면 그 무렵 종기가 재발한 듯하다. 세자 시절에 했던 것처럼 김종서 황보인은 종묘와 사직에 가서 병의 치유를 기도하고 여러 신하들은 명산대천을 찾아 기도하게 했다. 그러나 문종은 종기가 재발한 지 10일 만에 갑자기 악화되어 사망하고 말았다. 갑작스런 죽음이었다.

당시 종기로 사망한 사람들을 보면 재발과 치료를 거듭하다가 치료가 되지 않은 상태로 오랫동안 자리보전을 하다가 사망하게 된다. 즉 화농이 뼛속까지 침투하여 죽음에 이를 때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병이다.

문종의 릉
문종의 릉

그래서 문종의 갑작스런 죽음은 더욱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다. 더욱이 사망하기 이틀 전까지만 해도 많이 호전되고 있었는데 갑자기 악화되어 이틀 만에 사망한 것이다. 골든타임은 이틀인 셈이다. 치료를 담당했던 의관들의 무능력이 아니라면 의도적으로 종기를 악화시켜 죽음에 이르게 하였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그런데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문종의 병상 기록을 보면 후자의 느낌을 배제할 수가 없다. 즉 종기를 악화시켜 급작스런 죽음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문종이 사망한 이후 수양대군과 의관 전순의의 행보를 추적해 보면 그들 사이에서 깊은 밀착 관계를 찾아내는 일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최고의 의료진을 곁에 두고 있는 임금이 종기로 갑자기 사망한다면 누가 믿겠는가?
그래서 긴박했던 10일 동안의 병상 일지를 문종실록에서 발췌해 본다.


▶ 문종실록 문종 2년 1452년 5월 5일 (사망 9일 전)
내의 전순의가 내전에서 나오면서 말하기를,
“임금의 종기가 난 곳이 매우 아프셨으나, 저녁에 이르러 조금 덜하고 고름이 흘러 나왔으므로, 콩죽을 드렸더니 임금이 기뻐하셨다”

▶ 문종실록 문종 2년 1452년 5월 8일 (사망 6일 전)
내의 전순의가 내전에서 나와서 말하기를,
“임금의 종기가 난 곳은 고름이 흘러 나와서 지침(紙針)이 저절로 뽑혀졌으므로, 오늘부터 처음으로 찌른 듯이 아프지 아니하여 평일과 같습니다”하니 문안하던 여러 신하들이 모두 기뻐하면서 물러갔다.

▶ 문종실록 문종 2년 1452년 5월 12일 (사망 2일 전)
허후가 아뢰기를,
“지금 종기가 난 곳은 날로 차도가 있으니 신 등은 모두 기뻐함이 한이 없습니다. 날마다 조심하시고 움직이거나 힘들게 하지 마시어서 몸을 보전하소서” 하였다.

5월 12일까지만 해도 문종의 병세는 급박하지는 않았다. 차도를 보이고 있어서 신하들이 오히려 기뻐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틀 뒤 문종이 급사한 것을 보면 의관들이 병세를 감추고 거짓으로 의정부에 보고한 듯한 느낌을 들게 한다.


▶ 문종실록 문종 2년 1452년 5월 14일 (사망 당일)
임금의 병환이 위급하니, 직집현 김예몽 등이 내의와 더불어 사정전의 남랑에서 방서(우리나라 의서)를 살펴보고, 수양 대군 이하의 여러 종친이 모두 들어왔다.


▶ 문종실록 문종 2년 1452년 5월 14일 (사망 당일)
의정부와 육조에서 날마다 임금의 상태를 물으니, 어의 전순의 등이 대답하기를,
“임금의 옥체가 오늘은 어제보다 나으니 날마다 건강이 회복되는 처지입니다” 하였다.
이날 아침에야 전순의 등이 나아가서 안부를 보살피고는, 비로소 임금의 옥체가 위태로운 줄을 알았다.
유시에 임금이 강녕전에서 훙하시니, 춘추가 39세이셨다.

​4. 의문투성이의 죽음

39세의 문종.
5월 12일 허후가 문종에게 병문안을 갔을 때까지만 해도 문종의 병세는 호전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런 그가 불과 이틀 뒤 5월 14일에 갑자기 숨을 거두었으니 허무하고 충격적인 죽음이 아닐 수 없다. 전순의의 치료에 의문을 가진 대신들이 한결같이 전모를 밝혀야 한다고 떠들었지만 수양대군이 전면에 나서서 이를 유야무야하게 마무리를 지었다.
어의 전순의.
다음 글에서 어의 전순의의 치료법과 행적을 추적해 봄으로써 의문사한 문종의 죽음 원인을 밝혀보고자 한다.

다음 이야기는 <문종의 죽음과 어의 전순의의 이상한 처방> 편이 이어집니다.

정원찬 작가
▶장편소설 「먹빛」 상·하권 출간
▶장편소설 「공주는 소리 내어 울지 않았다」 출간
▶뮤지컬 「명예」 극본 및 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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