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웅 교수의 향토인문학 이야기] 7. 진주지역 토박성씨(土薄姓氏)와 인물
[강신웅 교수의 향토인문학 이야기] 7. 진주지역 토박성씨(土薄姓氏)와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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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2.06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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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말선초 진주지역 3대 성씨 걸출한 인물 맹활약

하공진(河拱辰) 고려 전기 문신
목종 시해 때 침임해온 거란 성종 군대 철수 이끌어
하륜(河崙) 조선건국 뛰어난 정치가
조선 건국의 기반조성에 큰 공 세워 좌의정까지 올라
강민첨(姜民瞻) 고려말 무인으로 맹활약
거란 소배압 십만대군 침입 시 흥화진에서 적 대파
강회백(姜淮伯) 고려말 문신
조준 정도전 등 탄핵 정몽주와 뜻을 같이하다 유배

 

진주 경절사 하공진 영정.
진주 경절사 하공진 영정.

지난 호에서 진주지역의 토착(土着)성씨인 강(姜), 하, 정, 소 및 유, 임(壬) 그리고 강(康)씨 들의 생성과정과 분포 사항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이번 호에서는 상기 일곱 성(姓)씨 중에서 비교적 활동을 많이 함으로써 재경(在京)이나 재지(在地)에서 그 족세가 왕성했다고 판단되는 세 성씨인 강(姜), 하(河), 정(鄭) 중에서 고려조 때에 그들 명성이나 공적이 뚜렷했던 것으로 기록된 東國輿地勝覽이나 여타 史書에 나타난 내용 중심으로 그들의 행적과 인물론에 대해서 기술해 보고자 한다.

먼저 진주 하씨 중에 고려조의 뛰어난 문신인 하공진(河拱辰 ?-1011)은 고려 전기 문신으로 성종 13년(994)에 압강도구당사(鴨江渡勾當使), 목종 때 중랑장(中郎將), 얼마 뒤 상서좌사낭중(尙書左司郎中)의 벼슬을 거쳤다.

현종 1년(1010)에 동서계(東西界)에 있을 때 임의로 군대를 동원하여 동여진의 촌락을 치다가 실패한 일이 드러나 유배를 당했다. 이 해 거란 성종이 목종을 시해한 강조(康兆)의 죄를 묻는다는 구실로 고려에 침입하자 유배에서 풀려났다. 호부원외랑(戶部員外郎) 고영기(高英起)와 함께 군사 20여명을 거느리고 남쪽으로 피난하던 현종을 뒤따라가 양주에서 거란군의 철수 교섭을 자청, 국왕의 사절로 거란 성종을 만나 군대를 철수시키는 데 공을 세웠다.

이때 고영기와 함께 거란에 볼모로 잡혀가 거란왕에게 신임을 받았으나, 탈출을 꾀하다가 실패하여 연경으로 옮겨져 양가의 딸을 아내로 맞아 살면서 철저한 감시를 받게 되었다. 평소 저자에서 준마를 많이 사서 고려로 가는 길에 배치하여 두고 귀국을 꾀하다가 탄로가 나 거란왕의 국문을 받게 되었다. 거란왕의 온갖 악형과 회유에도 불구하고 절개를 지키다가 마침내 죽임을 당하였으며, 죽은 뒤 상서공부시랑(尙書工部侍郞)에 추증되었다. 그의 파란만장한 일생은 고려조에 ‘하공진 놀이’라는 궁중 연회로 전해지기도 했다.

다음은 고려말 조선조 초기에 뛰어난 정치가이자 문신이었던 하륜(河崙)에 대해서 기술해보고자 한다. 하륜(河崙 1347∼1416)의 자는 대림(大臨), 호는 호정(浩亭)이며, 상기한 하공진(河拱辰)의 후손으로, 부친은 순흥부사를 지낸 하윤린(河允潾)이다. 그는 1347년(충목왕3)에 태어나 1365년(공민왕14) 문과에 급제한 후 1367년 감찰규정(監察糾正)이 되어 신돈(辛旽) 문객의 비행을 탄핵하다가 좌천되었고, 1388년(우왕14)에는 최영(崔瑩)의 요동정벌(遼東征伐)을 반대하여 양주로 유배되었다가 위화도회군(威化島回軍) 이후 복관(復官)되었다.

조선 개국 후 1393년(태조 2년) 경기도관찰사가 되어 한양천도(漢陽遷都)를 관철시켰으며, 1398년에는 충청도순찰사로 있으면서, 제1차 왕자의 난 때 이방원(李芳遠)을 도와 공을 세우고 정사공신(靖社功臣) 1등에 책록(策祿)되고 진산군(晉山君)에 봉해졌다. 1400년(정종 2년)에 일어난 제2차 왕자의 난 때도 이방원을 도왔고, 그 해 명나라 태조의 국상(國喪) 때 진위(進慰) 겸 진향사(進香使)로 가서 정종의 왕위 계승을 승인받고 돌아왔다.

태종이 즉위하자 좌명공신(佐命功臣) 1등이 되었고, 1402년(태종 2년)에는 명나라 성제의 등극사(登極使)로 조선왕조의 완전한 인준을 증거하는 고명인장(誥命印章)을 받아와 조선건국의 기반을 닦는데 큰 공을 세웠다. 1412년에 좌의정에 올랐다가 1416년 70세로 벼슬을 그만두고 진산부원군(晉山府院君)이 되었다. 그 후 노구를 이끌고 함경도에 있는 선왕의 능침(陵寢)을 돌아보고 오는 길에 정평관아에서 별세했다.

진주 은열사 강민첨 영정.
진주 은열사 강민첨 영정.

그는 시문(詩文)에 능하고, 음양, 의술, 지리에도 능했고, 또한 예악과 제도에도 능통하여 개국과 대명외교에도 크게 공헌했다. 그가 벼슬에서 물러나려 하자 태종이 극구 만류했으나, 고집을 꺾지 않자 친히 교서를 써서 진주의 전세(田稅) 100결을 하사했다. 그러나 하륜은 성상께서 주신 것을 어찌 감히 사사로이 쓸 수 있겠는가 하고 따로 향사당(鄕射堂)을 지어 교서를 모셔두고 전세는 시골 노인들을 위해 쓰게 했다.

사후 태종의 묘정(廟庭)에 봉안되었으며,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현재 그의 묘소는 진주시 미천면 오방리에 있다. 그의 저서로는 동국사략(東國史略), 문집으로 호정집(浩亭集)이 남아있다.

다음은 진주의 토박성씨 중에 그 족세가 매우 강했던 강씨 문중의 두 사람의 행적과 인물론을 기술하기로 한다. 우선 문신이면서도, 무인으로써 전공이 혁혁(赫赫)했던 강민첨(姜民瞻)에 대해서 살펴보기로 한다.

강민첨(姜民瞻 ?∼1021)은 고려 목종 때 문과에 급제했으나 슬기가 있고 용감하여 주로 전공(戰功)을 통하여 입신하였다. 현종 3년(1012) 5월에 동여진이 영일과 청하 등지에 쳐들어오자 안찰사로서 주군의 병사를 독려하여 격퇴하였다. 그 뒤 내사사인(內史舍人)이 되었으며, 현종 9년(1018)에는 거란의 소배압이 십만의 군사를 이끌고 침입하자 평장사 강감찬의 부장으로 출전하여 흥화진에서 적을 대파하였다. 패배한 소배압의 군사가 개경으로 쳐들어오자 다시 이를 추격하여 자주(慈州)에서 대승을 거두었다.

이때의 공으로 응양상장군주국(鷹揚上將軍柱國)이 되고, 곧이어 우산기상시(右散騎常侍)에 올라 추성치리익대공신(推誠致理翊戴功臣)에 녹훈되었으며, 이듬해 지중추사병부상서가 되었다. 죽은 뒤에 사흘 동안 조회를 하지 않았으며, 그의 공로로 아들 단(旦)에게도 벼슬을 높여주었다. 죽은 다음에 태자태부(太子太傅)에 추증되었으며, 문종 때 공신각에 올랐다.

다음은 극도로 혼란한 고려말에 정치적 능력을 크게 발휘했던 강회백(姜淮伯; 1357∼1402)으로, 문화찬성사(門下贊成事) 강시(姜蓍)의 아들로 공양왕의 사위가 된 강회계(姜淮季)의 동생이다. 1375년(우왕 2년) 문과에 급제하여 성균좨주(成均祭酒), 밀직부사(密直副使) 같은 여러 관직을 거쳤으며 창왕을 폐하는 데 공이 있어 공양왕 즉위 뒤에 추중협보공신(推忠挾輔功臣)의 호를 받았다. 이 해에 조준 등과 함께 세자사부에 임명되었으나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사퇴하였다. 이때 불교의 폐해를 논하고 한양 천도를 중지하도록 요청했던 장문의 상소가 고려사에 전하기도 한다.

정몽주의 뜻을 받아 간관 김진양 등이 조준, 정도전 등을 탄핵할 때 이에 동조하여 대관을 거느리고 상소하였다가 정몽주가 살해당하자 진주에 유배되었다. 조선 건국 뒤에 동북면도순문사(東北面都巡問使)가 되었으며, 문집으로 ‘통정집’이 있다.

상기 하공진, 하륜, 강민첨, 강회백 이외에도 진주 토박이 성씨들 중에 또 다른 유명 인물들이 매우 많다. 그 분들에 대해서는 차후 다른 관련 주제에서 다루기로 한다.

 

강신웅

본지 주필

전 경상대학교 인문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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