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규열 칼럼] 와세이캉고(和製漢語)를 수용하는 중국
[오규열 칼럼] 와세이캉고(和製漢語)를 수용하는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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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2.07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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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대일로연구원 부원장전 서울디지털대학교 중국학부 교수
일대일로연구원 부원장전 서울디지털대학교 중국학부 교수

중국이 근대화에 실패하고 서구열강의 반(半)식민지로 전락한 이유는 여러 가지일 것이다. 일부는 관념적이고 모호한 중국어가 근대화를 가로막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래서 나락에 빠진 중국을 구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진 중국의 지식인들은 말과 글을 통일시키는 백화운동에 힘을 기울였고 모택동은 중국어를 쉽게 쓸 수 있도록 간체자를 도입하였다.

서양문물이 동아시아에 전파되기 이전까지 새로운 사상과 문물의 발원지는 중국이었다. 그러나 청나라 중엽부터 나라의 문을 걸어 잠그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지 않자 중국의 발전은 정체되었다. 다른 한편 청과 조선을 정체시킨 원인을 당시 생각의 틀인 주자학에서 찾기도 한다. 유학은 크게 주자학과 양명학으로 나뉜다. 관념적인 이론에 치우친 것이 주자학인데 반해 실질을 숭상하고 생각의 자유를 추구한 것이 양명학이다. 그러나 청과 조선에서는 양명학보다는 주자학의 기풍이 강했다. 반면 양명학은 일본으로 건너가 메이지 유신의 자양분이 되었다.

양명학의 창시자인 중국의 왕양명은 ‘제대로 알기만 하면 누구나 성인이 될 수 있다’고 설파하면서 ‘제대로 아는 것은 조용한 사색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꾸준히 갈고 닦는 데서 이룰 수 있다’고 가르쳤다. 17세기 초 양명학을 전래받은 일본의 무사들은 서원을 세워 평민교육에 앞장서며 수많은 우수한 양명학도를 길러냈다. 이 인재들은 메이진 유신의 주역으로 일본의 근대화를 이루었다.

양명학으로 무장한 일본의 지식인들은 네덜란드학문이라 칭하는 난학(蘭學)이라는 이름으로 서양의 학문을 적극 수용하고 이를 양명학과 함께 후학들에게 가르쳤다. 서양학문을 받아들여 이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탄생한 것이 일본이 만든 한자어 와세이캉고이다. 우리가 현재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민족(民族), 문화(文化), 경제(經濟), 종교(宗敎) 등의 단어가 모두 와세이캉고이다. 와세이캉고는 청일전쟁에서 패한 후, 중국을 근대화시키기 위한 길을 모색하기 위해 일본에 유학한 중국인들에 의해 중국에 소개되어 새로운 중국어가 되었다. 때문에 중국에서는 이를 새롭게 만들어진 한자어 즉 ‘신한어(新漢語)’라고 말한다.

와세이캉고의 능력은 대단하였다. 와세이캉고가 등장하기 이전까지 중국어는 관념적이어서 서양의 문물 개념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 최소 800개 이상이라는 일본에서 만든 새로운 한자어는 사람들에게 서구의 문물과 사상을 명확하게 전달해 주는 데에 큰 기여를 하였다. 중국의 근대화를 꾀하기 위해 무술변법을 추진한 양계초(梁啓超), 신해혁명의 아버지 손문(孫文), 중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소설가 노신(魯迅), 사회주의 중화인민공화국을 건국한 모택동(毛澤東) 이들 모두 와세이캉고의 효용성을 높이 사며 적극적으로 중국어에 편입시켰다. 와세이캉고의 적극적 수용은 중국 백성들을 쉽게 교육하는 데 활용되었고 개명한 백성들은 혁명군으로 중화인민공화국을 건국하였다.

근대화 이전까지 한반도의 선진문물은 주로 중국으로부터 흘러왔다. 그러나 메이지유신 이후, 발전된 문명은 동에서 서로 유입되었다. 발전된 문물이나 학문이 중국에서 오던 일본에서 온들 그것이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우리에게 도움이 되면 받아들여 우리 것으로 만들면 되지! 역사를 살펴보면 스펀지처럼 유연한 자세로 새로운 것을 잘 흡수하는 국가와 민족은 끝내 그 성과를 보았다. 그러나 아무 의미도 없는 글자 하나에 집착하고 제례 형식 하나를 두고 논쟁을 일삼은 국가는 멸망의 나락으로 빠져 버렸다.

주자는 정욕을 버리고 조용히 깊이 생각해서 격물치지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아마 주자는 이렇게 말하고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도 몰랐을 것이다. 중국 고전을 보면 해석이 되지 않는 것이 태반이다. 그러다 보니 이름 있다는 학자들이 저마다 해석하여 주석을 단다. 그리고 이후에는 이 주석을 놓고 후학들이 논쟁을 한다. 자신도 모르니 못 알아듣도록 쓰고 봐도 모르니 마냥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우기며 소모적인 논쟁을 벌이는 것이 실패한 국가의 모습이다. 양명학과 난학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근대화를 이룬 일본과 일본이 만든 새로운 한자어를 수용한 중국에서 지혜를 찾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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