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근칼럼東松餘談] 싸가지와 송곳
[하동근칼럼東松餘談] 싸가지와 송곳
  • 경남미디어
  • 승인 2020.02.07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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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근동국대 언론정보대학원 교수전 imbc 사장
하동근동국대 언론정보대학원 교수전 imbc 사장

싸가지라는 말은 표준말 싹수, 즉 ‘앞이 트일 징조’라는 말의 호남사투리다. 싸가지라는 말은 경상도 사람들도 요즘 별다른 거부감없이 자주 쓴다. 자신의 맘에 안드는 언행을 하는 상대방을 놓고 ‘싸가지가 없다’고들 한다. 본래 표준어법으로는 싹수가 노랗다, 싹수가 보인다, 싹수가 없다 등 장래성과 관련된 의미의 표현으로 주로 쓰였는데 이게 싹+아지 즉 싸가지라는 단어로 전용되면서 ‘싸가지가 있다. 없다’라는 어법이 대세가 되고 그 뜻 또한 본래의 뜻보다는 사람의 언행에 대한 주관적인 평가를 표현하는 단어, 속된 말로 그 사람의 말과 행동이 ‘지금 당장 바로 이 자리에 어울리지 않고 형편없다’는 부정적인 의미로 주로 쓰이고 있다. 특히 상대방에 대한 예의나 존경, 이해와 배려심이 부족한 언행을 하는 사람을 놓고 흔히들 싸가지가 없다는 말을 자주 한다. 다른 한편으로 싸가지 없음은 따질 것을 따지고 바른 말은 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도 하다.

송곳과 관련해서는 우선 ‘낭중지추(囊中之錐)’라는 말이 있다. 송곳은 아무리 주머니에 숨겨도 그 뾰족한 끝을 숨길 수가 없다는 뜻이다. ‘송곳처럼 폐부를 찌른다’는 표현은 그만큼 요점, 핵심을 날카롭게 파고들어 상대하기도 어렵고 아프고 괴롭다는 의미다. 송곳은 그래서 아주 작은 틈만 있으면 파고들어 상대방을 꼼짝할 수 없게 만드는 매우 전략적인 도구이기도 하다. 가느다란 송곳 하나로도 돌처럼 딱딱한 커다란 얼음덩이를 깰 수 있는 이치가 여기에 있다. 그만큼 파괴적이다. 그런데 이 송곳은 내가 사용하면 분명히 유용한 이기가 될 수 있지만 ‘송곳 거꾸로 꽂고 발끝으로 차기’라는 속담처럼 상대방이 이 송곳을 쥐고 나를 찌르면 괴롭기 짝이 없는 치명적인 도구가 된다.

여기서 말하는 싸가지와 송곳으로 비유될 수 있는 인물이 유시민과 진중권이다. 둘 다 이 시대를 풍미하고 있는 진보진영의 셀렙이자 논객이다. 이들을 좋아하고 따르는 팬들도 많다. 그런데 두 인물이 근자에 반목하면서 결별 아닌 결별을 선언하고 나섰다. 계기가 된 것은 조국이란 인물을 놓고 두 사람의 견해가 충돌하면서다. 유시민은 조국에 대한 무한애정을 보이며 그 싸가지 없음이 급격히 무디어지기 시작했다. 어떤 의미에서는 조국의 입장을 변호하기 위해 자신의 전매특허인 싸가지 없음을 버리고 감성에 호소하고 의리에 집착하는 싸가지 있는 행보를 보였다. 반면, 진중권은 어떤 상황에서도 그 날카로움을 숨길 수 없었는 듯 이번에는 자기편을 향해 그 날카로운 송곳의 끝을 들이댔다. 잘못된 논리의 오류와 언행은 피아 구분을 해서는 안된다는 관점에서 나온 언행이다. 자기편이라도 잘못된 것은 잘못된 것이며 지적받아 마땅하다는 견해를 보이며 여기저기 보이는 대로 찌르고 나섰다. 진보진영 입장에서는 목에 가시같은 존재가 되었다.

유시민과 진중권이 보이는 태도의 차이점은 어디서 출발할까? 두 사람 모두 그동안 특유의 논리적 날카로움을 무기로 행보를 같이하며 반대편 진영을 괴롭혀왔는데 자기편에서 문제가 생기게 되자 한쪽은 자기편을 봐주자고 나선 반면, 다른 한쪽은 내편도 문제가 있으면 비판받아야 한다는 데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유와 명분이 어쨌던 보통 사람의 입장에서 본다면, 누가 더 일관된 태도를 견지하고 있을까? 정·비·공이라는 술자리 건배사가 있다. 세상살이는 정답도 없고 비밀도 없고 공짜는 더더욱 없다는 뜻이다. 두 사람의 행보 중 과연 누가 정답이고 혹시 이 같은 태도를 보이게 된 배경에 우리가 모르는 비밀이라도 있는 것은 아닌지? 이들의 언행이 향후 치러야 할 정치적 댓가는 어떤 모습으로 드러나게 될지 그 귀추가 궁금해지는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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