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찬의 소설 따라 역사 따라] 제11화. 문종의 죽음과 어의 전순의의 이상한 처방
[정원찬의 소설 따라 역사 따라] 제11화. 문종의 죽음과 어의 전순의의 이상한 처방
  • 경남미디어
  • 승인 2020.02.13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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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종의 병 악화 배후에 수양과 어의 전순의 모종의 역할 의혹

문종의 병이 갑자기 악화되기까지 전순의의 행적은 비상식적
종기에 금기시하던 반하 먹은 꿩고기를 수라에 올려 병 악화

 

문종 승하 3, 4일 전에 전순의가 ”곧 나을 것“이라 허위보고
절대적인 안정 필요 불구 사신 맞이·활쏘기 경연에 참관케

 

문종 사후 전순의의 죄를 물어야 한다는 대신들의 요구에도
전의감 청지기로 눈가림식 강등조치만 내려져 의혹 투성이

 

※ 이 코너에서 연재하는 이야기는 소설 ‘공주는 소리 내어 울지 않았다’ 속에 전개되는 역사적 사건을 돋보기로 확대하여 재구성한 것입니다.

조선시대 어의의 치료_문종의 종기를 치료한 어의 전순의는 당대의 명의임에도 불구하고 이상한 처방을 내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진은 드리마 ‘마의’ 중 한 장면.(사진=MBC)
조선시대 어의의 치료_문종의 종기를 치료한 어의 전순의는 당대의 명의임에도 불구하고 이상한 처방을 내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진은 드리마 ‘마의’ 중 한 장면.(사진=MBC)

1. 의학의 천재 전순의

[한국농어촌방송/경남=정원찬 작가] 전순의는 미천한 신분으로 태어났지만 전의감에 들어와 그 재능을 세종으로부터 인정받았다. 그는 365권 분량의 방대한 의서 <의방유취>를 편찬하는 사업에 참여하였으며 의관 김의손과 함께 <침구택일편집>을 편찬하기도 했다.

<의방유취>는 세종의 어명으로 편찬한 동양 최대의 의학 사전이다. 의관 전순의, 최윤, 김유지 등이 편찬에 참여하였는데 전순의의 이름을 맨 앞에 기술한 것으로 보아 그의 역할이 컸을 것으로 짐작된다. 처음에 365권으로 편찬하였으나 이후 많은 교정과 손질을 거쳐 성종 때에 인쇄하여 전의감, 혜민서, 각 지방 관아에 배포한 책이다.

또한 그는 <산가요록> <식료찬요>를 저술하였다. <식료찬요>는 음식으로 병을 치료하는 의서로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식이요법 의서이다.

세종이 지병으로 승하하게 되자 전순의는 의관으로서 소임을 다하지 못한 죄를 받아 전의감 서고지기로 물러나 앉았지만 그것은 관례상의 처벌이었다.

한 달 반 뒤, 신료들의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는 다시 전의감으로 돌아왔다. 그 후 밀성군(세종의 서자)의 병을 치료한 상으로 말을 한 필 하사받은 기록을 제외하면 그의 이름이 실록에 나오지 않다가 문종이 급사하기 열흘 전에 그의 이름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전순의가 내전에서 나오면서 말하기를,

“임금의 종기가 난 곳이 매우 아프셨으나, 저녁에 이르러 조금 덜하고 고름이 흘러나왔으므로, 콩죽을 드렸더니 임금이 기뻐하셨다”고 하였다. <문종실록> 문종 2년 5월 5일 기사 중에서

 

2. 전순의 처방의 의문점

문종의 병이 갑자기 악화되기까지 전순의의 행적은 상식적으로도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많다. 문종의 종기를 다스림에 그는 종기에 금기시하던 꿩고기를 수라에 올리게 하는가 하면, 안정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는데도 불구하고 명나라 사신을 맞이하는 일, 활쏘기 경연에 참관케 하는 일 등을 하게 하여 종기를 덧나게 했다.

1) 꿩고기 처방
여름철에 야생에서 잘 자라는 반하(半夏, 천남성과의 다년초)를 꿩이 즐겨 먹는데, 한의학에서는 독성이 강한 이 반하를 먹은 꿩고기를 종기 환자가 먹을 경우 치명적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민간에서는 환자가 아닌 일반인들에게도 꿩고기는 겨울철에만 먹고 여름철에는 먹지 않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전순의는 의학전문서적인 「식료찬요」를 편찬할 만큼 음식으로 병을 치유하는 최고의 전문가였다. 그런 그가 문종에게 수시로 꿩고기를 바치게 하였다. 더욱이 구운 꿩고기를 바치게 하였는데 구운 꿩고기는 화기(火氣)를 더하기 때문에 더욱 해롭다.

음식과 의술에 전문적인 지식을 갖고 있는 그가 문종에게 꿩고기를 먹게 한 것은 무지가 아니라 의도적으로 종기를 악화시키기 위한 처방이라 아니할 수 없다.

2) 무리한 활동
몸을 피로하게 움직이는 것은 등창에서 크게 금하는 것 중에 하나이다. 이런 기초적인 의학 지식을 천하의 명의 전순의가 몰랐을 리는 없다. 그런데도 임금에게 활 쏘는 것을 구경하게 하고 사신에게 연회를 베푸는 행사에까지 무리하여 참여케 하였다. 이는 종기를 악화시키려는 고의성을 충분히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3) 침 사용
종기가 완전히 곪으면 침으로 찌를 수 있으나 그렇지 아니하면 주의해야 한다. 설사 완전히 곪았다 하더라도 덜 곪은 부위를 찌르면 그것 또한 상처를 덧나게 한다.

단종 1년 4월 27일 사헌부에서 올린 상소에도 이 문제를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종기가 농하면 침으로 찌를 수 있으나 농하지 아니하면 침으로 찌를 수가 없는데도, 전순의는 침으로 찌르자고 아뢰어서 끝내 큰 사고에 이르게 하였으니, 비록 의원을 업으로 하지 않는 자라 할지라도 의서를 펴서 보면 일목요연하게 나타나 있는데, 하물며 전순의는 의원으로서 어찌 이것을 알지 못하였겠습니까?」

3. 의도적 은폐 및 허위보고

임금이 승하하기 불과 3, 4일 전에 전순의가 보고한 내용을 보자.


전순의 등은 임금에게 활 쏘는 것을 구경케 하고 사신에게 연회를 베풀도록 하였다. 그러면서 공공연히 말하기를,
“3, 4일만 기다리면 곧 병환이 완전히 나을 것입니다.” 하였다.
또한 의정부와 육조에서는 날마다 임금의 안부를 물으니
"옥체(玉體)가 어제보다 나으니 날마다 건강이 회복되고 있습니다.“
하였다. <문종실록> 문종 2년 5월 14일 기사 중에서

반하(半夏)_독성이 강한 이 반하를 먹은 꿩고기를 종기 환자가 먹을 경우 치명적일 수 있는데, 어의 전순의는 종기를 앓고있느 문종에게 이를 처방했다.
반하(半夏)_독성이 강한 이 반하를 먹은 꿩고기를 종기 환자가 먹을 경우 치명적일 수 있는데, 어의 전순의는 종기를 앓고있느 문종에게 이를 처방했다.

이 보고 때문에 모든 신료들은 문종의 병이 쾌유되고 있고 며칠만 지나면 나을 것이라 믿고 있었다. 전순의의 보고가 있은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아 문종의 병은 급작스럽게 악화되었다.


임금의 병환이 위급하니, 김예몽 등이 내의와 더불어 사정전의 남쪽 회랑에서 방서의서를 살피고 있었다. <문종실록> 문종 2년 5월 14일 기사 중에서


종기라는 병이 희귀병도 아닌데 그 경과를 전혀 예측하지 못하고 있다가 당일에서야 의서를 열람하는 등 모양새를 갖추고 있는 것이 어색해 보이기까지 하다.

4. 전순의에 대한 사후 처리

문종 사후 많은 대신들이 전순의의 죄를 물어 죽여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임금을 잘못 치료하여 임금이 사망하게 되었다면 그 죄는 전순의 본인뿐만 아니라 가솔들에게도 미쳐야 함이 옳았다. 당연히 재산도 몰수해야 옳다. 그런데도 그가 받은 벌은 전의감 청지기로 강등된 것이 전부였다. 청지기로 강등되었다는 것은 겉으로 보면 치욕적인 처벌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조치는 전순의로 하여금 쉬도록 배려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강등된 전순의에게 누가 청지기 일을 부릴 수 있겠는가? 여론이 가라앉을 때까지 청지기로 쉬게 하였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사면했다. 수양대군이 권력을 쥐고 있을 시기였다.

세조가 권좌에 있는 동안 전순의는 고속 승진을 거듭하여 당상관(정3품)의 벼슬에 오르는 광영까지 누리게 된다. 세조의 품에 안긴 전순의의 삶은 뒷이야기에서 다루고자 한다.

- 12화 <문종 현릉에 묻히다> 편이 다음 글에서 계속됩니다.

 

정원찬 작가
▶장편소설 「먹빛」 상·하권 출간
▶장편소설 「공주는 소리 내어 울지 않았다」 출간
▶뮤지컬 「명예」 극본 및 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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