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유영희 국가중요무형문화재 12호 ‘진주검무’ 예능보유자
[인터뷰] 유영희 국가중요무형문화재 12호 ‘진주검무’ 예능보유자
  • 강현일 기자
  • 승인 2020.02.20 1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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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넘어 성계옥 선생 권유로 진주검무에 발 딛어

진주검무 신라 화랑 관창의 칼춤으로부터 유래된 춤
진주 낙향한 고종의 궁중 무희 故 최순이가 권번에 전수
어릴 때부터 춤에 관심…서라벌예술대학서 한국무용 전공

결혼하면서 춤 접었다가 성계옥 선생 만나면서 다시 시작
검무 할 땐 자신이 논개나 병사가 된 듯 무아지경에 빠져
진주시민 모두가 진주검무를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게 꿈

유영희(74세) 선생은 검무 할 때는 자신이 논개가 되고 병사가 되어 무아지경에 빠진다고 말한다.
유영희(74세) 선생은 검무 할 때는 자신이 논개가 되고 병사가 되어 무아지경에 빠진다고 말한다.

유영희(74세) 선생은 검무를 할 때는 자신이 논개가 되고 병사가 되어 무아지경에 빠진다고 말한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검을 휘두르는 춤사위는 예사롭지가 않다. 그냥 딱 ‘춤꾼’이다. 유 선생은 2003년 진주검무 이수자 인증서를 받았다. 진주검무는 궁중에서 연희하던 검무의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으며,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궁중무용 중에서 그 역사가 가장 오래된 여성 검무로서 높은 역사적 가치를 가지고 있는 춤이다. 그 중요도를 인정받아 진주검무는 1967년 국가무형문화재 춤 7종목 중 제일 먼저 중요무형문화재 제12호로 지정됐다.

유 선생은 초중학교를 함양에서 나오고 고등학교 때 서울로 가서 서라벌예술대학교로 진학했다. 공부에는 취미가 없었다. 유 선생의 끼는 타고났다. 어릴 때부터 공부는 싫어하고 노래와 춤을 좋아했다. 중학생 때 기타와 아코디언 연주에도 심취했다. 서라벌예술대학 무용과에서 한국무용을 전공했는데 가족들에게는 가정과라고 속였다. 당시만 해도 무용과 학생은 ‘딴따라’로 불렸고 국문과나 가정과를 나와야 시집을 잘 갈 수 있었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또 가족들이 공부를 위해 학원을 등록해주면 몰래 춤 동아리나 다른 학원에 가서 춤을 공부했다고 했다. 서울에서 지내면서 어머니 반대에도 불구하고 무용을 전공하고 계속 춤을 췄다.

유 선생은 유년시절부터 춤추고 노래하는 것을 좋아했다. 유 선생의 아버지는 아코디언과 여러 가지 악기를 했으며, 어머니는 신관용유 가야금 이수자, 동생 중 한 명은 성악도 했었다고 한다. 가족들이 음악을 좋아해서 그런지 음악만 나오면 절로 춤이 나온다고 했다. 유 선생은 1996년도 대학교 때 춤을 배우려고 일본에 유학까지 갈려고 했었다. 하지만 집안의 장녀라서 반대가 심해 포기했다. 그 이후 부모님이 계속 결혼하라고 닥달해 결혼을 했는데, 가정을 돌봐야 해서 춤을 쉬었었다. 잠시 쉬던 중 진주검무 예능보유자로 계시던 故 운창 성계옥 선생의 적극적 권유로 진주검무를 마흔이 넘은 나이로 다시 시작하게 됐다.

진주검무는 신라 화랑 관창의 칼춤으로부터 유래된, 천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춤이다. 전쟁과 승리를 상징하는 검무는 조선 중·후기에 궁중으로 유입되어 여기무(女妓舞)로 변화되면서 궁중과 지방 관아에 예속되었던 관기에 의해 연희 됐다. 진주에서는 의기 논개와 임진왜란 때 순국한 의병들을 위한 제향(祭享)은 물론, 여러 애국 행사에는 예로부터 진주검무를 헌무로 올려 그 맥을 이어오고 있다. 이후 일제강점기 때 고종의 궁중 무희로 있었던 진주교방출신 故 최순이가 진주로 낙향하여 진주 권번에 검무를 전수하기 시작했다고 유 선생은 진주검무의 역사를 설명한다.

또, 진주검무의 특징은 반주장단이 다양하고 따라서 독특한 춤사위가 매우 다양하게 원형을 보전하고 있다. 또 무 태가 꿋꿋하고 근엄하며 동작에서부터 표정이 이르기까지 전혀 꾸밈새가 없이 정중하고 아정하여 인위적인 교태를 허락하지 않기 때문에 충분한 숙련이 쌓이기 전에는 이 춤의 묘미를 느껴볼 수 없는 어렵고 힘든 춤이다. 진주검무는 현존 전통무용 가운데서 신체상에 미치는 운동력이 가장 크다. 진주시민들이 많이 배웠으면 한다고 했다.

유 선생은 “2003년 진주검무 이수자 인증서를 받은 후, 전승 활동을 위해 진주 시내 초·중학교를 찾아다니며 학생들에게 무료 강습을 할 수 있도록 교장 선생님들께 부탁했지만 다들 안하려고 했었다. 그래도 계속 전승을 해야하는 입장에서 포기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 꾸준히 학교를 방문해 2004년부터 면 단위 학교부터 시작해 시내에 있는 학교까지 12개 학교에 다니며 무료 강습을 했다. 학교마다 축제 공연은 물론 개천예술제, 유등축제 등에 학생들을 참여시킬 수 있었다. 지금 현재도 이수자들과 강사들이 전승 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으니 많은 응원을 바란다”고 말했다

유 선생은 “진주검무를 어떤 장르의 음악과도 어울릴 수 있도록 재구성하여 즐겁고 행복하게 춤출 수 있게 만들어 현재 해가 지날수록 인원이 늘고 있다. 2017년부터 해마다 약 270명 이상의 인원을 19~20개 검무 동아리팀으로 구성하여 진주검무를 선보이고 있다. 현재의 목표는 진주시민 모두가 기본 건강 운동으로 진주검무를 즐기는 것이다. 진주검무 전승자와 예능보유자는 전통 그대로의 진주검무를 지켜나가겠지만, 진주검무가 전 국민이 즐기는 춤으로 도약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유영희 선생은 국가무형문화재 제12호 진주검무 예능보유자, 진주검무보존회 회장, (사)진주민속예술보존회 이사장, (재)진주문화예술재단 이사, 경상남도 문화예술회관 심의위원, 진주 유네스코 창의도시 추진위원, 진주 유등축제 제전위원회 위원, 진주논개제 제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 하고 있다.

진주검무 공연모습 _ 진주검무는 신라 화랑 관창의 칼춤으로부터 유래된, 천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춤이다. 현존 전통무 가운데서 신체상에 미치는 운동력이 가장 크며 다이어트에도 효과적이다.
진주검무 공연모습 _ 진주검무는 신라 화랑 관창의 칼춤으로부터 유래된, 천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춤이다. 현존 전통무 가운데서 신체상에 미치는 운동력이 가장 크며 다이어트에도 효과적이다.

다음은 유영희 선생의 인터뷰이다.

▲ 유 선생의 고향은 어디인가?

함양이다. 중학교까지 살다가 공부하려고 부모님과 서울로 갔다. 지금은 진주에 살고 있다.

▲ 처음 검무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뭔가?

- 어릴 때부터 노래 부르고 춤추는 것을 좋아했다. 고등학교 때부터는 서울에서 지내면서 어머니 반대에도 불구하고 무용을 전공하고 계속 춤을 추었죠. 결혼 후 잠시 쉬던 중 진주검무 예능보유자로 계시던 故 운창 성계옥 선생의 적극적 권유로 진주검무를 시작하게 됐다. 처음에는 거절했다. 서울의 국립극장 등에서 공연하며 잘나가던 시절이었기에 지방에서 작은 규모로 공연되고 나이 많은 분들만 추는 진주검무가 초라해 보였기 때문이다.

▲ 원래 끼가 좀 있었나?

- 끼는 타고나나 보다. 어릴 때부터 공부는 싫어하고 노래와 춤을 좋아했다. 중학생 때 기타와 아코디언 연주에도 심취했다. 가야금 이수자로 진주 지방문화재인 모친으로부터 물려받은 것 같다.

▲ 공부는 안 하고 춤만 췄나?

- 세월이 흘러 지금은 이야기할 수 있지만, 서라벌예술대학 무용과에서 한국무용을 전공했는데 가족들에게는 가정학과라고 속이고 다녔다. 당시만 해도 무용과 학생은 ‘딴따라’로 불렸고 국문과나 가정학과를 나와야 시집을 잘 갈 수 있었던 시기였다.

▲ 진주검무의 가장 큰 매력은 뭔가?

- 목이 꺾이지 않은 직선인 칼을 사용하고 자연과 함께 호흡하며 자신의 내면에서 나오는 흐름을 따라 자연스럽게 표출되는 춤사위로 이루어져 반원으로 이뤄져 있는 꽃잎처럼 펼치는 깍지떼기와 무용 의상인 전복의 자락을 잡고 노니는 자락사위 등이 진주검무의 특징이며 매력이다.

▲ 그럼 그전에도 전통무용을 했었나?

. 처음에는 무용과에서 무용을 하다가 전통무용이 있다는 걸 알고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재미도 없고 이게 무슨 춤인가 싶었다.

▲ 그럼 지금은 진주검무가 재미있나?

. 이런 춤이 없다. 이 춤을 추면 건강이 너무 좋아진다.

▲ 기자가 유 선생을 처음 봤을 때 70대라고 상상도 못했다. 비결이 뭔가?

- 검무를 해서 그런 것 같다. 검무가 운동효과가 상당히 뛰어나다. 요즘 다들 요가나 헬스같은 운동으로 다이어트를 하는데 나는 이 춤만 추고 있으면 자동으로 젊어지고 다이어트가 된다.

▲ 논개도 춤을 잘 췄나?

논개가 속한 진주교방에서 활발하게 공연되던 매력적인 춤이다. 교방에서 가무를 배우려면 검무부터 필수적으로 배워야 했으니 당연히 논개도 검무 잘 췄을 것이다. 춤을 추고 있으면 논개가 된 기분이 든다.

▲ 운동효과가 왜 뛰어난가?

- 진주검무는 반주장단이 다양하고 따라서 독특한 춤사위가 매우 다양하다. 무태가 꿋꿋하고 근엄하며 동작에서부터 표정이 이르기까지 전혀 꾸밈새가 없이 정중하고 아정하여 인위적인 교태를 허락하지 않기 때문에 충분한 숙련이 쌓이기 전에는 이 춤의 묘미를 느껴볼 수 없는 어렵고 힘든 춤이다. 그만큼 난이도가 높은 춤이다. 그래서 다이어트가 되는 것 같다.

▲ 이 춤에 대한 인식은 어떤가?

- 지금은 부정적인 시각이 거의 없는데 과거에는 ‘기녀의 춤’이라는 부정적 시각이 존재했었다.

▲ 진주검무와 일반 검무와 차이점이 있나?

- 진주검무와 다른 검무의 차이점은 보통 네 명이 추는 다른 검무와 다르게 8명의 무용수가 추는 춤이다. 특징은 반주장단이 다양하고 따라서 독특한 춤사위가 매우 다양하게 원형을 보전하고 있다. 또 무태가 꿋꿋하고 근엄하며 동작에서부터 표정이 이르기까지 전혀 꾸밈새가 없이 정중하고 아정하여 인위적인 교태를 허락하지 않기 때문에 충분한 숙련이 쌓이기 전에는 이 춤의 묘미를 느껴볼 수 없는 어렵고 힘든 춤이다. 진주검무는 현존 전통무 가운데서 신체상에 미치는 운동력이 가장 크다.

▲ 유 선생은 스승이 따로 있나?

- 물론 있다. 그때 대학의 최고 선생님들에게 배운 춤이 지금의 큰 자산이 됐다. 부채춤의 대가 김백봉 선생님에게 배웠고 한영숙 선생님에게는 태평무, 승무, 북가락까지 다 배웠다. 졸업하고 나서 무용 좋아하는 사람들과 전 세계로 공연을 하러 다녔다. 서울의 큰 무대에서 공연도 많이 했다.

▲ 진주검무를 많이 배우려고 하나?

. 진주는 아직 진주검무의 중요성을 잘 인지하지 못한다. 현재 서울, 대전, 대구에서도 진주까지 내려와서 배우려는 학생이 있는데 진주 학생들은 배우려고 하지 않는다. 의지만 있다면 완벽하게 가르킬 자신있다.

​▲ 주로 어떤 학생들이 지방으로 내려오나?

학생들이다. 정말 열심히 한다. 배우려고 하는 학생들을 가르치면 정말 보람이 있다.

▲ 전승활동을 따로 하고 있나?

. 전승활동이 제일 중요하다.

▲ 현재 진주검무 이수자와 전수자는 몇 명인가?

- 현재 진주검무 이수자는 100명, 전수자 200명 정도다. 하지만 정부가 지원하는 국가문화재 전승금은 단체종목의 경우 135만원에 불과하다.

▲ 주로 어떤 활동을 하고 있나?

초중고를 찾아가 무료로 강습을 하고 있다.

▲ 지금 학생들은 많이 있나?

- 해가 지날수록 인원이 늘고 있다. 2017년부터 해마다 약 270명 이상의 인원을 19~20개 검무 동아리팀으로 구성하여 진주검무를 선보이고 있다. 현재의 목표는 진주시민 모두가 기본 건강 운동으로 진주검무를 즐기는 것이다.

▲ 그 학생들을 교육시켜 축제에 참여시킬 수 있나?

. 학교마다 축제 공연은 물론 개천예술제, 유등축제 등에 학생들을 참여시킬 수 있었다. 현재도 이수자들과 강사들이 전승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으니 많은 응원을 바란다.

▲ 진주검무의 전통을 이어가는 데 힘든 일은?

일 많다. 2003년 진주검무 이수자 인증서를 받은 후, 전승 활동을 위해 진주 시내 초·중학교를 찾아다니며 학생들에게 무료 강습을 할 수 있도록 교장선생님들께 부탁했지만 다들 안하려고 했었다. 그래도 계속 전승을 해야 하는 입장에서 포기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 꾸준히 학교를 방문해 2004년부터 면 단위 학교부터 시작해 시내에 있는 학교까지 12개 학교에 다니며 무료 강습을 했다. 그리고 리허설할 장소가 없다. 100명 가까이 되는 인원을 수용할 곳이 없어 너무 힘들다.

▲ 처음 진주검무를 할 때 유 선생이 창작하거나 하는 부분도 있나?

. 춤사위도 개발한 경험이 있다. 검무에 대한 자료가 많이 없어서 보존회 식구들과 현재도 연구 중이다. 동작은 어렵지만 제대로 된 매뉴얼이 없다. 계속 연구해야 한다. 후세에 진주검무의 기맥을 계속 이어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 진주검무를 할 때 기분이 어떤가?

. 아픈 허리가 아프지 않고 우울했던 기분도 좋아진다.

▲ 과거에 결혼했을 때도 춤을 계속 췄었나?

좀 힘들었다. 원래 내가 결혼을 안 하려고 했었던 사람이다. 하지만 부모님의 성화에 못이겨 결혼하기는 했는데, 결혼하고 나니 춤을 못추고 집에만 있으니 우울증까지 걸릴뻔했다. 그래서 다시 기회가 생겨 춤을 췄는데, 다시 좋아졌다.

▲ 앞으로의 계획은?

- 진주검무를 더 활성화해 진주시민 모두가 진주검무를 추면서 즐겁고 건강하게 행복한 삶이 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 나아가 더불어 2019년에는 진주시가 유네스코 공예·민속예술 창의 도시 네트워크에 가입할 수 있는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예정이다. 그리고 5월에 80명을 이동기 ‘논개’라는 행사에 창작 퓨전해서 내보낼 예정이다.

▲ 유 선생은 어떤 평가를 받길 원하나?

나를 평가하는 건 원하지 않는다. 내가 한 만큼만 봐줬으면 좋겠다. 강현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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