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찬의 소설 따라 역사 따라] 제13화. 단종 12살에 왕위에 오르다
[정원찬의 소설 따라 역사 따라] 제13화. 단종 12살에 왕위에 오르다
  • 경남미디어
  • 승인 2020.02.27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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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왕 승하 4일만에 즉위한 단종 ‘최초 적장손 승계’ 완벽한 혈통
24개 항목 국정운영 세부지침 담은 즉위교서 발표
가장 핵심적 사항은 의정부 중심으로 국정을 운영하겠다는 것과
부정과 청탁 척결위해 분경(奔競)금지법 확대 적용한다는 두가지

의정부 중심의 국정운영은 어린 왕 주위 종실접근 원천 차단 의지
분경금지법 확대 시행은 수양대군 측의 강력한 반발 불러와
하룻만에 철회하는 수모겪어…계유정난의 어두운 그림자 드리워져
12살의 어린 나이에 즉위한 단종. 출처_영원문화재단
12살의 어린 나이에 즉위한 단종. 출처_영원문화재단

단종의 휘는 홍위(弘暐)이다. 8살이 되던 해에 왕세손으로 책봉되었으며 문종이 즉위하자 10살이 되던 해에 바로 세자에 책봉되었다. 그러나 문종이 재위 2년을 넘기지 못하고 승하하자 12살 어린 나이로 조선 제6대 임금이 되었다.

1. 왕의 이름을 외자로 짓는 이유

임금의 이름이 들어가는 글자는 누구도 써서는 안 되고 불러서도 안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많이 사용하는 글자나 두 글자로 이름을 사용하면 일반 백성들이 사용할 수 있는 글자가 제한되기 때문에 이름을 외자로 쓰되 희귀한 글자를 사용하거나 없는 글자를 만들어 쓰기도 하였다.

조선 임금 중 이름이 두 글자인 왕은 태종과 단종뿐이며, 다른 왕들은 원래부터 외자였거나 왕이 된 후 개명을 했다. 예를 들어 태조 이성계는 이단(李旦)으로, 정종 이방과는 이경(李曔)으로, 철종 이원범은 이변(李昪)으로, 고종 이재황은 이희(李熈)로 고쳤다.

이들은 본래부터 세자로 책봉 받은 인물이 아니었으니 두 글자 이름이라고 하더라도 이상할 것은 없지만 단종은 원손, 세손, 세자를 거쳐 임금이 된 경우인데도 외 글자 이름을 쓰지 않고 두 글자 이름을 썼다. 한 글자로 지으면 단명한다는 이유로 예외적으로 두 글자로 지었다고 전해지지만 어디에도 그 기록은 찾을 수가 없다.


세종의 이름 이도(李祹)에 얽힌 일화.

▶세종이 즉위하자 개성유후 이도분(李都芬)은 이사분(李思芬)으로 고쳤다. 비록 한자도 다르고 이름의 일부 음만 세종과 일치하는데도 이름을 고쳤다고 한다.

▶충청도 공주의 이도역(利道驛)은 이인역(利仁驛)으로 바꾸었다. 이 역시 임금의 이름과 한자가 같지 않은데도 단지 음이 같다는 이유로 이름을 바꾼 것이다.

2. 단종 즉위하다


문종이 승하하고 4일이 지난 뒤 단종은 근정문에서 즉위교서를 반포하고 조선 6대 임금으로 즉위하였다.

소자(小子) 조종(祖宗)의 업을 능히 담당하지 못할까 두려워하여 연못과 얼음을 건너는 것과도 같이 매우 염려하고 두려워한다. 모든 사무를 매양 대신에게 물어 한결같이 어려움을 크게 구제하기를 바라니, 그대들 대소 신료는 각각 맡은 바 직책을 다하여, 힘써 나의 정치를 보좌할 수 있도록 하길 바란다. <단종실록> 단종 즉위년 5월 18일 기사 중에서


그리고 즉위교서에 24개 항목의 세부지침을 덧붙였는데 가장 핵심으로는 국정 운영을 의정부 중심으로 하겠다는 것과 부정과 청탁을 뿌리 뽑기 위해서 분경(奔競)금지법을 확대 적용하겠다는 내용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의정부 중심의 국정 운영은 어린 왕 주위에 종실들이 기웃거리는 것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겠다는 의지의 표시이기도 했다. 사실 당시 법전인 <속대전>에 종친들이 정사 관여를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것은 선언적일 내용일 따름이지 크게 새로울 것은 없었다.

단종 어진 상상도. 출처_영원문화재단
단종 어진 상상도. 출처_영원문화재단

3. 분경금지법 확대 실시

그러나 문제는 분경금지법 확대에 있었다.

분경금지법이란 청탁과 부조리를 방지하기 위하여 하급관리가 상급관리의 집을 사사로이 방문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을 말한다. 처음 분경금지법이 시행될 정종 때에는 인사 청탁과 관련이 있는 부서의 관료에게 해당하는 법이었다. 그러나 태종 때에는 이를 무신들에게도 적용하였으니 이조와 병조의 관료들에 확대된 것이다.

드디어 단종에 이르러서는 의정부 대신들뿐만 아니라 모든 종친에게도 이를 확대 시행한다고 발표를 한 것이다.

이는 실로 수양대군으로부터 엄청난 반발을 가져왔다.


수양대군은 도승지 강맹경을 불러 강하게 항의하는 형식을 취하고 강맹경은 조정에서 공론화하는 역할을 했다. (사실 강맹경은 문종이 사망하기 이전부터 수양대군의 수족이었음) 수양대군으로선 사활을 건 싸움이었다. 수양대군 주위로 몰려드는 세력들이 분경금지법에 묶여 발을 들일 수 없게 된다면 수양대군으로선 송장이나 다름없었다.

“우리들에게 분경하는 것을 금하니, 이것은 우리들을 의심하는 것이다. 무슨 면목으로 세상을 살아가겠는가?”

다음 날도 수양대군은 안평대군을 데리고 가서 의정부에 항의했다. 분경 금지에 대한 내용보다는 그것으로 하여 종실이 의심받아서는 안 된다는 데 포인트를 두었다. 사실 수양대군으로선 분경금지 조치에 항의할 명분이 그다지 없었다. 종친이 정사에 참여할 수 없는 건 당연한 일. 그래서 종실의 명예 추락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인 것이다.

결국 명분에 밀린 단종은 하루 만에 분경금지법을 철회하고 말았다.


태종은 분경금지법을 가장 엄하게 시행한 왕이었다. 이조와 병조에 소속된 인사 관련 실무자에겐 따로 감시자를 붙일 만큼 철저한 정보 정치를 했다. 분경금지법은 부정 청탁 방지라는 본래의 취지를 떠나 왕권 강화의 가장 효과적인 수단임이 증명된 셈이다.

그렇게 보면 단종 입장으로선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분경금지법을 철회하지 않았더라면 수양대군의 세력은 원천 소멸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숙부에게 죽임을 당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4. 황표정사


인사를 결정할 때 관련 부서에서 의정부 대신들과 상의하여 세 명을 추천하고, 그 중에 적격자 1인의 이름 밑에 노랑표시를 붙여서 아뢰면 임금이 최종적으로 승인하던 일을 말한다. 임금의 승인 절차는 형식일 뿐 실질적인 권한은 의정부에 집중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좋게 보면 경륜이 많은 의정부가 수렴청정을 대신하고 있다고 볼 수 있지만, 종친의 입장에서는 힘들게 일군 조선을 몇몇 신하에게 뺏긴 꼴이 된 것이다. 종친은 정사에 참여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권좌의 주변을 기웃거리던 수양대군으로선 심히 못마땅한 일이었다.

나중에 계유정난을 일으킨 수양대군에게 나라를 김종서에게 넘겨 줄 수는 없다는 명분을 준 것도 따지고 보면 황표정사가 그 도화선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5. 완벽한 혈통


조선 왕조를 통틀어 단종만큼 완벽한 정통성을 지닌 임금은 아무도 없다. 그는 적장손으로 태어나 임금이 된 유일한 인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수양대군이 세조로 등극하여 임금에 오르긴 했지만, 정통성이 없어서 내내 고생을 했다. 임금의 묘호를 붙일 때 조(祖)는 나라를 세운 창업군주에게만 붙이는 명칭이었다. 그래서 나머지는 종(宗)으로 붙여야 한다.

그런데도 세조라고 붙인 이유는 도적 김종서로에게 뺏길 뻔했던 나라를 되찾았으니 나라를 세운 창업군주와 다름없다는 논리를 적용시켜 태조처럼 세조라는 묘호를 붙이게 된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형식적으로나마 새로운 정통성을 만들어 보려 한 흔적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눈물겨운 발버둥으로만 느껴질 뿐이다. 그런 피를 물려받은 때문일까? 이후 세조의 후손들이 조선왕조를 이었는데 너나할 것 없이 조(祖)를 붙이는 걸 보면 정말 무안후치라 아니할 수 없다.

임진왜란의 선조, 병자호란의 인조. 최고의 못난 왕 베스트에 들어가는 이들도 조(祖)를 붙였다. 나쁜 짓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잘도 배우는 습성을 이들에게서도 보는 듯하다.

다음 이야기는 < 계유정난과 김종서의 죽음 > 편이 이어집니다.

정원찬 작가
▶장편소설 「먹빛」 상·하권 출간
▶장편소설 「공주는 소리 내어 울지 않았다」 출간
▶뮤지컬 「명예」 극본 및 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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