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찬의 소설 따라 역사 따라] 제15화. 안평대군 계유정난에 휘말리다
[정원찬의 소설 따라 역사 따라] 제15화. 안평대군 계유정난에 휘말리다
  • 경남미디어
  • 승인 2020.03.12 09:2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소설 〈공주는 소리 내어 울지 않았다〉 속의 역사 이야기
※ 이 코너에서 연재하는 이야기는 소설 ‘공주는 소리 내어 울지 않았다’ 속에 전개되는 역사적 사건을 돋보기로 확대하여 재구성한 것입니다.

안평대군, 수양대군을 견제하기 위해 김종서·황보인 등과 손잡아
부왕 세종, 안평대군을 동생인 성녕대군의 양자로 선택
계유정난이 일어난 다음날 아침 안평은 양어머니집에서 체포

강화도로 귀향, 교동도로 귀양지를 옮겼다가 그곳에서 사사
수양대군은 안평대군의 죄목에 ‘양어머니와 간통’ 적시해

장남 이우직은 안평대군과 함께 강화에 유배되었다가 교형
외동딸과 며느리는 정난공신 권람에게 노비로 하사 ‘혈족 단절’
안평대군의 사저 무계정사. 암각문 ‘武溪洞’은 안평대군이 직접 쓴 것으로 전해내려오고 있다.
안평대군의 사저 무계정사. 암각문 ‘武溪洞’은 안평대군이 직접 쓴 것으로 전해내려오고 있다.

안평대군 이용(李瑢)은 문종, 수양대군에 이어 세종의 셋째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서예, 시문, 그림에 탁월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수양대군 주변 인물이 무인들이 많았다면 그의 주변에는 문인들이 많았다. 특히 그의 서체는 탁월하여 명나라 황제까지도 감탄하였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나 문종이 갑자기 죽고 어린 조카 단종이 왕위에 오르자 수양대군이 권력에 대한 야욕을 본격적으로 들어내기 시작하면서 그의 운명은 달라졌다.

권력의 중심에 있던 고명대신 김종서, 황보인 등은 수양대군을 견제하기 위해 안평대군과 손을 잡았다. 그래서 수양대군으로선 결코 살려둘 수 없는 인물이 되고 말았다.

계유정난이 일어나던 날 밤.
안평대군을 잡기 위해 수양대군의 수하들이 그의 집을 쳐들어갔을 땐 그는 집에 없었다. 밤새 도성을 뒤졌지만 안평대군의 종적은 찾을 길이 없었다. 김종서가 철퇴를 여러 번 맞고도 아직 살아있다는 정보만으로도 수양대군은 정신을 차릴 수 없는데, 게다가 안평대군 행방마저도 오리무중이니 그는 좌불안석이었다.

사실 안평대군은 양어머니 집에 있었다. 안평대군은 일찍이 숙부인 성녕대군의 양자로 들어갔는데 양어머니를 친어머니처럼 극진히 모셨다고 한다. 그래서 계유정난이 일어나던 날도 양어머니 집에서 자고 있었다.

여기서 잠시 양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할아버지 태종은 양영대군, 효령대군, 충녕대군(세종), 성녕대군 네 아들을 두었다. 그 중에서 성녕대군은 태종의 늦둥이 막내아들이었다. 39살의 늦은 나이에 본 막내아들이었으니 태종의 사랑은 각별했다. 성녕대군은 창녕성씨와 혼인하였으나 혼인 1년을 넘기지 못하고 14살이던 해에 홍역에 걸려 죽었다. 애지중지하던 성녕대군의 갑작스런 죽음은 태종에게 큰 슬픔이었다. 그래서 태종은 죽은 아들을 위해 손자 중에서 가장 똑똑한 손자를 골라 양자라도 들여 주고 싶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세종에게서 난 똑똑한 손자들이 많으니 그 중에서 고르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세종의 아들들은 모두 양자로 들어가길 원했다. 많은 재산을 상속받는 즐거움을 떠나 할아버지 태종으로부터 인정을 받는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순서로 본다면 당연히 둘째인 수양대군 차례였다. 그러나 태종의 생각은 달랐다. 문인보다는 무인의 성향을 더 많이 지닌 수양대군의 모습이 어쩌면 태종 자신의 모습을 닮은 것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거친 수양대군보다 다재다능한 안평대군에게 더 마음을 두었다.

뒷날 세종은 아버지 태종의 유지를 받들어 수양대군을 버리고 안평대군을 동생인 성녕대군의 양자로 선택했다. 수양대군으로서는 충격이었다. 태종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했고 부왕인 세종으로부터도 인정받지 못한 자신이 너무나 서글펐을지 모른다. 동생 안평대군에 대한 열등의식은 거기서부터 시작되었다. 계유정난으로 권력을 잡은 수양대군이 결국 동생 안평대군을 죽이게 되는 원인도 안평대군에 대한 열등의식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사실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안평대군이 양어머니 댁에서 묵었던 그날 밤 계유정난이 일어났다.
수양대군의 수하들은 안평대군이 늘 머무는 무계정사를 덮쳤지만 그곳에 없었다. 밤새 안평대군의 찾으려 도성을 뒤지던 병사들은 날이 샌 뒤에야 성녕대군 군부인 댁에서 안평대군을 체포할 수 있었다.

수양대군은 안평대군을 곧바로 강화도에 귀양을 보냈다. 그러나 그것도 불안했던지 교동도로 귀양지를 옮겼다가 그곳에서 사사했다. 불과 이레 만에 죽인 것이다. 그의 나이 36세.

그가 죽은 뒤 수양대군은 안평대군의 죄목 25가지를 열거하여 발표했다. 그 중에 세 번째 죄목이 양어머니 성씨를 간통했다는 죄목이었다. 양어머니를 친어머니처럼 모신 안평대군을 두고 계유정난이 일어나던 날 밤 양어머니 집에서 잤다는 이유만으로 간통죄를 씌웠던 것이다.

1. 안평대군의 후손

안평대군은 12살이 되던 해에 이미 죽은 병조 판서 정연(鄭淵)의 딸과 혼인했다. 그때 정씨의 나이 9살이었다. 슬하에 2남 1녀를 둘 만큼 가정은 화목했다. 그러나 문종이 죽고 수양대군과 안평대군의 대립이 심화될 무렵 처가의 대부분이 수양대군을 지지하는 세력에 가담하고 있었다. 안평대군으로선 심히 불쾌한 일이었다. 처가와의 관계가 멀어지면서부터 부부의 금슬도 깨어졌다.

사실 안평대군의 맏동서는 신숙주(申淑舟)의 형 신중주(申仲舟)이고, 둘째 동서 권담(權聃)은 계유정난의 1등공신인 권람(權擥)과는 4촌간이다. 동서의 배후 인물들이 모두 수양대군의 최측근 사람이다.

처가로부터 외면당할 무렵 안평대군의 차남 이우량이 병으로 죽고 말았다. 설상가상으로 아들이 죽은 지 오래지 않아 이번에는 부인 정씨마저 세상을 떠났다.

- 안평 대군의 부인 정씨가 졸하였다. 정씨는 졸한 병조 판서 정연(鄭淵)의 딸인데, 안평대군이 박대하여 서로 보지 아니한 것이 이미 7, 8년이었다. 졸하게 되자 그 염(斂)하고 빈(殯)하는 여러 가지 일을 전혀 돌아보지 아니하였고, 그 아들 이우직도 또한 가서 보지 아니하니, 서인의 죽음과 다를 바가 없었으므로, 보는 자들이 개탄하지 아니함이 없었다. - <단종실록> 단종 1년 4월 23일 기사 중에서


부인 정씨는 계유정난 5개월 전에 죽었는데 그때 안평대군 뿐만 아니라 장남 이우직도 장례에 참석하지 않았다. 아내의 죽음을 외면한 안평대군의 심중을 수긍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들이 어머니의 마지막 가는 길을 외면했으니 이 무렵에는 두 집안이 원수보다 더한 관계로 악화된 상태임을 짐작케 한다.

결과적으로 보면 안평대군의 처남 네 명은 계유정난 때 모두 수양대군을 지지했다. 1등 공신에 오르고도 남음이 있었다. 그러나 세조는 연일정씨 형제들에게 공신은커녕 어느 누구도 높은 벼슬에 올려주지 않았으니 토사구팽당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안평대군 일족의 최후는 비참했다. 안평대군은 강화로 유배되었다가 교동도로 유배지를 옮겼는데 그곳에서 사사되었다. 계유정난을 일으킨 지 8일 만에 사약을 내린 것이다. 형제간의 싸움으로 유명한 태종은 이복동생인 방간 방석을 죽였지만 친형제는 죽이지 않았다. 그러나 수양대군 눈엔 동기간도 없었다. 안평대군뿐만 아니라 훗날 넷째동생 금성대군도 수양대군에게 죽임을 당하였다.

장남 이우직은 안평대군과 함께 강화에 유배되었다가 1년이 지날 무렵 교형(목매달아 죽이는 형벌)으로 죽였고, 외동딸과 며느리는 계유정난 1등 공신 권람에게 노비로 하사되었다. 수양대군에겐 제수와 조카딸인데 이들을 자기가 수족처럼 부리던 권람의 집 노비로 팽개쳤으니 비정한 수양대군의 인간성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이로써 안평대군의 혈족은 모두 끊어지고 말았다. 성녕대군의 양자로 입적하여 그 혈손을 이으려던 태종의 바람도 여기서 모두 조각나고 만 셈이었다. 성녕대군 군부인은 조카와의 불륜이라는 멍에를 쓰고 경주로 귀양을 떠나야만 했다.

천재적 예술가 안평대군 이용(李瑢)은 그 재질을 다하지 못하고 3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다음 글에서는 짧은 생에 남긴 그의 예술적 천재성을 조명해 보고자 한다.

다음 이야기는 < 안평대군의 천재성 형에게 짓밟히다 > 편이 이어집니다.

정원찬 작가
▶장편소설 「먹빛」 상·하권 출간
▶장편소설 「공주는 소리 내어 울지 않았다」 출간
▶뮤지컬 「명예」 극본 및 작사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