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우칼럼] 일상(日常)의 소중함
[정용우칼럼] 일상(日常)의 소중함
  • 경남미디어
  • 승인 2020.04.23 13:5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과 전 학부장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과 전 학부장

대승불교의 핵심 경전인 금강경(金剛經)에 보면 맨 처음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시작이 너무도 평범하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세존께서 성 안을 걸어 다니며 밥을 빌어 그것을 드시고 발 씻고 자리에 앉으셨다.” 어떤 이는 이것이 금강경이 전하는 전부라고까지 한다. 열반, 해탈을 위한 무슨 거창한 길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밥 먹고, 똥 싸고, 울고 웃고, 미워하고, 사랑하는 우리의 평범한 일상, 이 일상이야말로 빛나는 도(道)의 자리요, 진리의 자리라는 것이다.

우리 인류가 이 지구상에 출현한 이래, 생존과 번식은 모든 생명체가 짊어진 숙명인지도 모른다. 한마디로 먹고 살아나가야 하는 것이다. 이를 수행하는 우리의 일상은 늘 수고롭고 별 볼 일 없어 보이기도 한다. 그렇다고 하여 이 치열한 삶의 일상을 속되다고 부정하고 이를 떠나 공간적으로 어디 먼 곳이나, 시간적으로 먼 미래를 천국이나 열반의 세계로 떠받드는 건 실상(實相)에 눈 감은 것. 이 구체적인 현실을 떠나서 그리는 이상향과 미래는 그저 말과 생각이 지어낸, 손에 잡힐 리 없는 하나의 관념이거나 추상일 뿐이라는 것. 존재감 없는 작은 모래알들이 햇빛을 받으면 얼마나 아름답게 반짝이던가. 일상도 이 모래알들을 닮았다. 아름답고 귀하기만 한 일상이다.

부처님 이야기에 이어 예수님 이야기다. 하느님 나라가 언제 오느냐는 바리사이들의 질문에 예수께서는 대답하신다. “하느님 나라는 너희 가운데 있다.” 너희가 서 있는 ‘지금 여기’ 이 순간순간이야말로 하느님 나라의 기쁨을 맛볼 한 자락이라는 말씀이다. 지금 살아내고 있는 일상을 통해 자신을 성장시켜 나가는 기회로 삼으라는 권고. 다른 것들과 절대 바꿀 수 없는 지금의 일상을 소중하게 다루면서 삶을 살아가라는 말씀이고, 저 멀리 있는 다른 것들을 통해서는 행복의 길에 다다를 수 없다는 말씀이다. 일상의 삶이 최선의 삶이라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우리는 삶의 여정에서 일상을 어떻게 맞이하고 갈무리해 나가고 있는가. 주변 만물에 진리가 있고, 가장 하찮고 지저분한 똥이나 오줌 속에도 도가 있지만, 늘 보니까 자세히 안 보고, 자세히 안 보니까 못 볼 뿐이다. 언제나 곁에 있어서 하찮게 지나쳐버리고, 멀리 있는 특별한 그 무엇인가에 매달려 삶을 소비하고 있다. ‘지금 여기’ 이 순간순간의 삶을 최선을 다해 살아가야 하는 데도 엉뚱한 곳이나 과거, 미래에만 집착하여 삶을 허비하고 있는 우리다. 지금 하늘이 파랗게 개어 있는데도 너무 자주 보았던 것이라는 이유 때문에 또는 장차 더 푸르른 하늘을 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와 희망 때문에 우리는 지금의 하늘을 바라볼 생각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태어나 처음 하늘을 보게 된 사람이 느낄 감동을 생각해보자. 또는 창공을 빼앗긴 채 지하 감옥에 감금되어 있다가 수십 년 만에 다시 푸르른 하늘을 마주하게 된 사람을 생각해보자. 그때 느낄 감동은 기적일 것이다. 우리는 일상의 소중한 가치를 등한시하여 이 기적의 순간을 놓치고 있는 것이다. 시시하고 비루하고 고되지만 우리는 일상으로부터 도망칠 수 없는 이유가 여기 있다.

이렇게 소중한 일상이라면 우리는 이에 대한 관점을 바꾸어야 한다. 그러나 그게 쉽지만은 않았다. 시인(김청미)이 노래 불렀듯이. “… 시상사가 다 그렇지만/소중헌 줄 모를 때가 질로 좋은 때여라/그때 챙기고 생각허고 애껴줘야 해/한번 상하면 돌리기가 만만치 않다는 걸/넘치고 썽썽할 땐 모다 모른단 말이오 …” 은퇴 후 시골 고향에서 지금껏 살아온 나 역시 ‘넘치고 썽썽할 때’는 몰랐다. 일상의 소중함을 별반 느끼지 않은 채 그저 그렇게 살아왔던 것이다. 일상의 가치를 깊이 있게 느끼면서 생활했더라면 맑은 햇살 아래 사랑하는 사람들과 마주 앉아 따뜻한 차 한 잔 마시면서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이야기들을 나누는 그런 순간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우리는 깊이 깨달았을 것이고 무상으로 우리에게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어 주는 햇빛과 바람, 별과 달 그리고 공기와 물, 이런 자연 사물 들을 통해 자연의 은혜를 느끼고 의식했을 뿐만 아니라 흙과 대지, 이를 바탕으로 살아가는 수많은 동물 식물들의 존재와 성장으로부터 생명 존귀의 사상을 깨닫고 배울 수 있었을 텐데도 말이다.

그런데 이번 코로나19가 이 어려운 일을 하게끔 도와주었다. ‘천지불인’(天地不仁)(老子)이라는 섬뜩한 말처럼 거대한 맷돌 같은 자연의 재앙 아래 인간의 소소한 일상은 쉽게 갈려나가고 말았지만, 역설적으로 이 작디작은 바이러스가 그 소중한 가치를 깨닫게 해주었다. 그래서 다시 기회다. 일상에 대한 관점을 바꾸는 기회. 그렇게 할 수 있다면 불행의 한복판에서 헤매고 있는 우리의 삶에서도 기적이 나타날지 모를 일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진주대로 988, 4층 (칠암동)
  • 대표전화 : 055-743-8000
  • 팩스 : 055-748-1400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선효
  • 법인명 : 주식회사 경남미디어
  • 제호 : 경남미디어
  • 등록번호 : 경남 아 02393
  • 등록일 : 2018-09-19
  • 발행일 : 2018-11-11
  • 발행인 : 황인태
  • 편집인 : 황인태
  • 경남미디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미디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7481400@daum.net
ND소프트
「열린보도원칙」 당 매체는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고충처리인 이선효 055-743-8000 7438000@naver.com